오늘은 강원도 춘천까지 갔다 왔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저녁 8시 30분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춘천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서울 동생네 집에 가서 하루밤 자고
7일째 가출(?) 중인 어머니를 모시고 내일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주 동생 이사하는 것(5/11일)까지 보고 오려는 욕심이 있으신 것 같아
모시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구미로 내려 왔다.
신록이 짙어가기 시작하고
송화가루 부옇게 날리는 5월 즈음엔,
아카시아 나무도 진한 꽃향기로 온 세상을 뒤덮는다.
어제 퇴근 무렵에 맡았던 교정에 그득한 아카시아 향,
아직도 그 내음 강렬하여 어릴 적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할 때면, 동네의 소꿉 친구들과
그 꽃을 한아름씩 따다가 납작한 돌 위에 잔뜩 올려놓고,
묵직한 돌로 그것을 눌러 놓은 다음, 그 밑에 불을 한참 지피게 되면
달구어진 돌 위로 그 하얀꽃은 서서히 노릇노릇해지고,
달콤한 꿀이 잔뜩 흐르면, 그것을 다투어 찍어먹기도 하고,
누름돌을 제거하고 적당히 익은 꽃자루 줄기를 잡고 훑어먹던
그 달콤함은 아직도 내 입가에 소복하게 남아있다.
옛날엔 단맛을 내기 위해 쓰던 것으로 '당원'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얀 설탕이든 흑설탕이든 그것은 나중에 나온 것들이고,
가난했던 시절 우리집의 단맛내는 재료로는 '당원'이 딱이었다.
직경 5,6미리, 두께 1,2미리 정도 되는 하얀 '당원',
그것을 물대접에 대여섯 개 풀어서 단물 만들어 먹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한 단맛을 얻기 위해, 우린 가끔씩 눈깔사탕도 사 먹고,
떨어진 고무신 구해다가 아이스께끼도 사 먹곤 했다.
10원짜리 종이돈을 주고 껌도 사다가 씹곤 했다.
씹고 또 씹었다. 단물이 다 빠져도 벽에 붙여 놓았다가 떼어서 씹고 또 씹고.^^
우리들의 가난한 시절은 그렇게 차라리 추억덩어리였는지 모른다.
오늘 하루 그 아카시아의 향과 꿀처럼 달콤한 여행을 했다.
휴일의 중앙고속도로는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아침부터 햇살이 강한 것으로 보아 기온이 많이 오를 것만 같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썬그라스지만 오늘 같은 날 꼭 필요하다.
써 보니 눈의 피로도가 훨씬 덜하는 것을 금방 알겠다.
작년인가 동유럽으로 여행갈 때, 우산형이 내게 선물해 준 선글라스,
우산 형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춘천을 향해 차를 몰았다.
군위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명혜당은 나에게 소고기 국밥을 권하고,
본인은 된장찌개를 주문해서 조용히 배를 채웠다.
(나의 애마, 산타모 8793을 위해 LPG 충전도 함)
영주 풍기 근방을 지날 때,
소백산 철쭉제를 알리는 알림판을 보았다.
곧 시작된다고 하는데, 올해는 소백산을 한 번 올라본다?
포항여고 근무 시절, 새벽을 깨우며 등정하던 생각이 난다.
4.6킬로나 되는 죽령터널은 구간속도 측정 구간인데
그걸 모르고 시속 130키로 이상 달렸으니 이를 어쩐담?
(고백-지금껏 밀린 속도 위반 벌금이 엄청남)
치악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 한잔했고,
명혜당이 남전 형에게 전화를 걸어서
춘천으로 이동 중임을 알렸고,
지니맘님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볼 수 있는가를 확인하니
춘천 도착하기 20분 전에 다시 연락을 하란다.
횡성을 지날 무렵엔, 그곳이 고향인 동료 김선생이 생각나서
전화를 해서 춘천으로 가는 중인데, 어딜 가 봐야 하느냐고 물으니
강촌이라는 곳과 구곡 폭포를 꼭 한 번 가 보라고 한다.
춘천 도착 전에 명혜당이 지니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춘천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의 왼편에 한방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만나자는 지니맘의 제안이다. 어떤 분이실까?
명혜당은 몇년 전 만나 보았기에 잘 알테지만,
난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으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구미에서 북으로 북으로 3시간 가까이 달려온 길,
지니맘을 만나기 위해서 달려온 길이라는 생각도 한다.
금방 약속장소에 닿았다. 지니맘을 만나기 직전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의 날씨가 이젠 실감 난다. 덥다.
우산 형에게 전화를 걸어 춘천에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지니맘은 우산형과 정서와 호흡이 잘 맞을 거란 명혜당의 말을 의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산형은 오늘 고백 안했으면 섭섭할 뻔 했단다.^^
우산형과 전화를 끊자마자 내 앞에 나타난 지니맘,
청바지 차림에, 반팔 검은티, 하얗게 웃는 소박함!!!
명혜당의 표현대로 얼굴 윤곽이 뚜렷한 미인이 분명커늘,
손을 내밀어 반가움의 악수라도 했어야 하는데,
여인과의 악수가 열적어서? 아니면 익숙지 않아서?
그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헤어질 땐 해야지.^^)
남전 형은 이미 도착한 줄도 모르고,
'논강 잘 가고 있소? 춘천의 햇볕과 녹음에 푹 잠겼다 오쇼.
명혜당 눈빛에 넘 취해서 졸지 말고'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 문자를 명혜당과 지니맘과 함께 보면서 웃었다.
'이미 지니맘 눈빛에 취했어요. 김유정 문학촌에 들러 막국수 먹으러 갑니다.'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더 이상 반응은 없다.^&^
지니맘님은 오늘도 근무 중이었다.
논강과 명혜당의 급작스런 춘천 방문에 조퇴를 하고 나온 듯하다.
퍽이나 미안하고 황송하나 이왕 그리 된 것, 어쩌랴? 그저 감사할 뿐.
처음 보는 자리이지만 마음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마음의 표현인 그 목소리가 주는 편안함 때문일까?
제일 먼저 우린 김유정문학촌으로 갔다.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문학촌은 위치해 있었다.
관광차 두 대가 서 있다. 서울에서 온 듯한 문학기행 팀들이다.
늙수구레한 해설사의 설명을 다들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도 가까이 가서 잠시 들어보니 김유정의 삶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다.
해설사가 혹시 횡성의 김선생 은사인 최종남 선생이 아닌가 궁금했다.
김선생은 문학촌에 가면 그 분을 찾아서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전해 꼭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 바 있다.
(설명 끝나고 가서 물어보니 그 분은 아니라 하고
최선생님은 얼마 전에 이 일을 그만두었다고 전한다.)
김유정의 29년 잛은 인생은 그의 지나친 흡연,
휘문고보 시절 투포환에 맞은 가슴, 치질(치루)때문이었음을 알았다.
특히 그가 죽기 11일 전에 친구인 안회남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 가슴 아프다. (이곳에 옮기고 싶은 충동!)
김유정은 당시의 식민지적 현실 속에서도 웃음과 해학으로
그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자 한 작가로 높이 평가받는다.
일찍 요절했어도 그가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봄봄, 만무방, 금타는 콩밭 등 다수)들은
영원히 우리 문학사 속에 살아 숨쉬고 있어서 위안이 되고 있고,
또 그의 삶과 문학은 이곳을 찾는 학생들이나 문인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춘천'하면 떠오르는 것이 닭갈비와 막국수 아닌가?
닭갈비는 명혜당이 입에도 안 대니, 천상 막국수를 먹어야 한다.
지니맘이 잘 아는 곳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그리로 가기로 했다.
퇴계동의 '퇴계 막국수', 퇴계 이황이 살았던 동네인가 보다.
사람들로 그득하다. 이걸 '인산인해'요 '소문난 잔치'라고 하나.
15명 정도의 할머니들은 그 맛의 삼매경에 빠져 눈길도 안 주고 잡수신다.
우리도 빈대떡과 함께 막국수를 시키니 금방 가져다 준다.
열무김치도 한 뚝배기 가득 준다. 지니맘이 수북이 접시에 담아 놓는다.
저절로 젓가락에 손이 간다. 적당히 발효가 돼서 맛이 잘 들었다.
양념이 적당히 얹힌 채 또아리를 튼 것 같은 막국수와
얼음육수가 우리 앞에 놓였다. 가위와 식초까지 있다.
( 그 뒤의 것은 상상하시라!!!!)
남이섬까지 가는 것으로 하고 경춘가도를 달리는데,
전방 몇 키로 지점에 '강촌'이란 곳이 이정표에 쓰여 있다.
동료인 김선생이 가 보라 한 게 생각나서 어떠냐 했더니
그곳도 좋다고 지니맘이 자세히 안내를 한다. 가끔씩 오는 곳이라 했다.
'강촌에 살고 싶네'라는 노래가사의 실제 장소라고도 하는데,
대학생들로 보이는 남녀 젊은이들이 눈에 아주 많이 뛴다.
옷차림도 다들 대담하다. 특히 여성들은 그 유행이 핫팬츠인지
최대한 긴다리를 보이려 애쓰는 듯 하다.
시원해서 참 보기는 좋다며 흐물댔더니
명혜당은 변태 운운하면서 히죽거린다. 지니맘도 흉봤을 것만 같다. ^^
휴일을 이용해서 낭만적인 경춘선 열차를 타고 흥얼거리다가
강촌역에 내려서 상큼한 자연에 쉽게 몰입되고만 학생들 같다.
스쿠터, 자전거, 산악오토바이 등이 수십 수백 대 진열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알 수 있겠다.
구곡(九谷)폭포,
입구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닿게 된
45미터 높이의 긴 폭포, 고개를 한참 젖혀야 끝이 보인다.
가뭄으로 물이 말라 빗물처럼 떨어지는 폭포이지만,
비가 온 뒤의 큰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상상하니 오히려 무섭다.
겨울에는 빙벽이 형성되어 빙벽 등산 코스로도 쓰인단다.
방문 기념으로 가냘픈 폰카메라를 이용해 여인들과 폭포를 담아 보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맛과는 전혀 다르다. 아쉽다.
남이섬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일단 섬으로 들어가면 걸어다니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여유가 없어진다는 거다.
다음 기회에 남이섬을 찾자는 명혜당의 강력한 요구도 있다.
더구나 지니맘의 귀중한 시간을 뺏기가 미안해서라도
춘천으로 되돌아가는 게 맞다는 판단을 했다.
의암댐 안에 떠 있는 듯한 도시, 춘천!
호수의 양 옆으로 절경을 이루면서 난 길이
다시 댐 위로 이어지면서 매년 춘천 국제 마라톤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댐의 왼쪽으로 난 화천가는 길, 비록 좁은 길이지만 운치가 넘친다.
명혜당도 호반의 시원한 바람에 감싸였음인지 연신 웃어댄다.
지니맘도 오랜만의 드라이브에 기분이 좋다면서 맞장구 친다.
학창 시절, 막연하게나마 춘천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춘천에 살게되었다면서 큰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니맘,
은근히 춘천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호수의 중간에 떠있는 섬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붕어 모양으로 생겨서 붕어섬이라고 하는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니지만 배 타고 들어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다고 한다.,
고슴도치섬 등 이름이 주는 신선함도 지니맘은 이야기한다.
기회 있으면 호반에 떠 있는 모든 섬들을 다 둘러보고 싶다.
소양감 댐,
오늘은 자가용을 몰고 댐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을 통제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갔다. 바람이 많이 분다.
이런 날 산불이라도 나면 큰일나겠다 싶다.
댐 만수위가 192 미터라고 댐둑 너머에 표시되어 있지만,
현재의 수위는 너무 낮아 댐위에서 내려다보기에도 가마득히 멀다.
호수 저 건너편엔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다목적댐'이라는 두 줄의 하얀 고딕체 글씨만
오랜 세월 동안 을씨년스럽게 쓰여져 있는데, 물이 별로 없으니 더욱 애처롭다.
'소양강 다목적댐 준공 기념탑'이라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기념탑의 오래된 위용 만큼이나 낯설고 흐느적거린다.
다시 댐에서 내려와 차를 몰고 시내 쪽으로 달린다.
지니맘이 또 보여줄 것이 있는지 좌회전을 하란다.
아래로 난 경사길인데 나지막한 다리로 길이 연결되고 있다.
이른바 '콧구멍(?) 다리'라 불리는 다리인데,
큰물이 지면 물에 잠길 법한 잠수교 같지만 평상시 훌륭한 다리이다.
평소 소양강댐에서 물을 방류하지 않으면 강바닥이 말라 있지만
지금은 물을 방류하는 시간인 듯 제법 많은 물이 흘러내려가고 있다.
소양강 물이 워낙 차서 아무도 그 안에서는 오래 못 견딘단다.
그래선지 더운 날씨인데도 다리 위에 한참 서있으니 겨드랑이가 시원해진다.
午시, 未시, 申시, 시간은 늘 그렇게 흐르고 있다.
지니맘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춘천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어느 카페에 들렀다.
새우샐러드 하나에다, 커피 석 잔을 시켰고,
커텐 너머로 기울어져가는 강렬한 햇빛을 피해 자리를 잡았다.
지니맘(태진이 어머니)의 차분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어진다.
특히 너무나 인간적인 아들(24세, 고려대 교육학과, 공익근무 중)의 이야기다.
부전공으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어 나중에 국어선생님이 될지도 모르는 친구다.
선생님이 된다면 제일 먼저 전교조에 가입을 하겠다는 소신도 있는 친구다.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와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는 매력적인 친구다.
그러나 지니맘은 어머니로서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이 시대 어머니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너무 훌륭한 학생같아서 당장
태진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청년을 만나보고 싶었다. 명혜당도 그렇게 표현했다.
보통의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어두운 부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 세상 근심을 자신의 일인 양 해결해 보겠다는 그 의지와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런 훌륭한 청년이 이 세상이 어디 흔하단 말인가?
너무 세상 모르고 무사안일만을 꿈꾸는 우리 큰아들이 오버랩되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부러웠고, 그 훌륭한 청년을 잘 키워낸 지니맘이 더욱 위대해 보였다.
학창 시절 남전 선생님을 늘 존경하고 흠모했듯이
자녀를 키우면서도 늘 아들의 선생님이라면 늘 존경의 대상으로 섬기다시피 했다고 고백하는 지니맘,
틀림없이 아들 또한 선생님 대하는 태도를 어머니에게 배웠을 것만 같고,
그래서 선생님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했을 것만 같다.
선생님들 덕분에 아들이 잘 클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얘기를 하는 지니맘,
오랜만에 느껴 보는 진한 감동이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명혜당도 모자 간에 한 잔 할 기회가 있으면 하라는 뜻으로
카페에서 판매하는 와인 한 병을 사서 지니맘에게 건넸다.
서로의 훈훈한 마음의 표현 같아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지니맘은 내가 보기에 천사같은 분이다.
받는 것보다는 줄 때의 기분이 더 좋다고 했다.
천사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그럴 수 없으니까.^^
나도 뭔가를 주는 데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 나도 천사?^^
지니맘은 소양강처녀상 있는 데 한 번 더 보고 가자고 한다.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좋다고 했고,
우리는 시내를 통과해서 의암 호수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기울어가는 햇살이 구리빛 처녀상 조각상 뒤로 아직 강렬하다.
아름다운 다리로 알려진 소양 2교가 호수 위로 가로질렀고,
호수 가의 한 처녀는 왼손에 가볍게 갈대를 쥐고
오른 손으로는 치마를 살짝 걷어올리고 어딘가를 응시하는데
진지함이 잔뜩 묻어나는 듯한 조각상이긴 하다.
'왜 저 처녀는 치마를 걷어올리고 있을까, 섹스어필?'
강촌에서 본 대학생들의 핫팬츠와
소양강 처녀의 걷어올린 치맛자락은 무슨 차이?
오늘 지니맘을 처음 만났던 장소인 춘천한방병원 주차장,
헤어지기가 못내 섭섭하지만 또 가야 할 사람은 또 가야 하는 법이다.
지니맘은 작년 이맘 때 남전 샘과 헤어지던 장면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작년 5월 16일,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전 선생님을 잠시 뵙고는 여기서 헤어졌다고 한다.
너무 존경했던 고3 때 담임선생님을 24 년만에 만나는 그 심정을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니맘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선생님'을 보게되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선생님을 잠시만 보고 헤어져야 했으니 아쉬움이 오죽했으랴.
지금도 지니맘은 더 큰 그리움으로 늘 '우리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다.
앵두나무 몇 그루가 병원 담장 곁에 자라고 있다.
꽃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있지만 물오른 잎들이 오히려 싱그럽다.
탐스럽게 익은 바알간 앵두를 따먹을 때쯤에 우리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샘터 모임을 이곳 춘천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질 때 나는 지니맘의 손을 잡아 보았다.
막내로 태어났지만 장남을 만나 결혼한 맏며느리의 손이었다.
세월의 묵직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거룩한 손이었다.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아카시아의 향처럼 달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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