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에 도산 선생 집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약속한 장소로 가니 10분 안에 다 모였다.
다들 간편한 옷차림으로 여행 준비를 마친 셈이다.
월여 선생의 밝은 연두빛 등산복 상의는
그의 멋있는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특유의 미소가 오늘따라 더 멋있다.
진성 선생은 언제부턴가 우리 모임의 회장님인데,
요즘 나이에 걸맞게 그 멋스러움이 저절로 우러나고 있다.
도산은 늘 그렇듯이 수수하고, 거침없는 언변이 참 매력적이다.
류박사는 엊저녁 대입상담교사단 모임에 참가했다가
오늘 우리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중간에 어렵게 빠져나왔고
오는 차가 없어서 여관에서 자고 새벽에 기차 타고 귀가했단다.
아마 밤새 잠을 좀 설쳤는지 몹시 피곤해 보인다.
큰 키에 다정다감함, 교육학 박사로서의 이성적 사고와
흐트러짐없는 올곧은 행동으로 몸소 모범을 보이고 있어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추고 있는 님이다.
우리 눈에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것이 류박사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싶다.^^
나 논강은 우리 회원들에게 어찌 비쳐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두루두루 나의 좋은 점을 꼬지어 한번씩 얘기해 주는 것으로 보아
다들 나를 괜찮은 놈이라 생각하는 것 같긴 하다.^^
도산이 한번은 술자리에서 나를 추켜세우다가
너무 공치사 하지 말라는 나의 핀잔에 대해서
진심을 말하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면 어떡하냐며
정색해서 섭섭하단 말을 한 것을 난 기억하고 있다.
여하튼 구인회와 인연을 맺은 후로 내가 우리 회원들에게
혹시 인간적 거부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회원들에게 그런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누가 나를 거부하랴.
워낙 어설픈 삶을 살았고, 지금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면
늘 나의 솔직함 때문에 분위기 좋은 자리가 금방 심각해지기도 했던 터라
빚을 진 기분이기는 하다. (여전히 너무 솔직하지요?^^)
오전 10:10분,
새로 산 나의 애마 산타페 3573을 타고
진성, 도산, 류박사, 월여, 나 이렇게 다섯 명은
울진을 향해 달리가기 시작했다. 마음마저 가볍다.
나의 애마는 아직 새차냄새를 잔뜩 머금고 있다.
그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소중한 인물님들을 모시고
1박 2일을 함께하게 되었으니 조심스럽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한 그런 마음일 것만 같다.
그 즐거움 때문에 며칠이라도 마냥 모시고 싶을 것이다.
토담 김용국 장학사는 문경에서 출장을 마치고 곧장 울진으로 온단다.
전문직으로 간 이후 줄곧 바쁘게 살고 있는 토담, 고생이 참 많다.
시군 교육청 장학사 본연의 업무도 바쁜 데다가
만학의 학도답게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으니 말이다.
늘 그렇게 바삐 살면서도 맡은 일은 명쾌하게 잘 처리하는 친구라서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임을 의심치 않지만
토담은 특히 건강을 잘 챙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두 시간 정도를 더 달리면 울진환경엑스포 공원에서 모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열대야 현상을 보였던 요즘, 6월 말의 아침 날씨는 여전히 후텁지근하다.
창문을 꼭 닫고 에어콘 바람을 틀어서 더위를 식히면서 달려야 한다.
문을 열어 환기를 간혹 시키지만 열기섞인 자연풍인지라 이내 문을 닫게 된다.
영덕 병곡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7번 국도 위를 계속해서 달려간다.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 포크레인, 롤러카, 덤프트럭 중장비 일색이다.
고용을 늘리기 위한 토목공사라는 말이 무색하다.
마냥 주변의 바다나 산과 경치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는 법,
누군가 관심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곧 대화의 내용은 풍성해진다.
현 시국에 관한 진단과 나름대로의 대안까지도 언급된다.
그 어느 집단이 이 정도 수준까지 얘기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교육계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하여 결성된 구인회, 그간의 세월이 얼마인가!
그 처음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은 많이 흘렀고,
누구는 곧 며느리까지 보게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아, 세월이여!!!!
(우리 구인회 회원님들, '처음처럼'이란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참가하기로 되어 있던 이목 선생님은
너무 바빠서 부득이 참여차지 못할 것 같단다.
모임 얘기가 있을 때부터 형수님과 꼭 오고 싶다며,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못 오는 심정 얼마나 아쉬울까?
전부터 이목 형은 독립영화에 부쩍 관심을 보이더니
한겨레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독립영화를 열심히 공부했고,
급기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데뷔 직전까지 온 것 같다.
그간 나름대로의 주제를 가지고
엄청난 분량의 동영상을 제작했을 것 같고,
그것을 다시 편집하느라 밤샘작업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머지 않아 그 결과물이 이 카페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
박거사는 연락이 잘 안 된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나?
두 분의 회원이 빠진 7명의 회원은 엑스포 공원에서 만났다.
100년 이상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장 매력적인 곳,
올해 개최되는 세계환경엑스포, 7월 24일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손질을 하느라 여기저기에서 부산스럽다.
류박사는 친환경 엑스포라는 주제와 걸맞지 않는
건물이나 시설물이 좀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고보니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구불구불 틀어져 큰키로 자라고 있는데
자연을 꼭 빼 닮아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 멋을 지녔다.
환경 엑스포가 정식으로 개장이 되면 다시 한번 오고 싶다.
덕천강 선생이 점심 식사차 안내한 곳은 죽변의 7번 횟집,
물회겸 회국수인 음식인 것 같은데, 다들 맛있다며 난리다.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부구의 덕구온천,
곧바로 가기엔 시간이 이르니 그 밑에 있는 '산길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집딸이 부구중학교 다닐 때, 도산이 담임했다고 하니 학부형 집이다.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하단다. 도산은 학부형과 만나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다
퉁퉁한 몸집에 인심좋아 보이는 인상이 마냥 정답다.
술은 안 팔고 음식만 만들어 파는 식당이지만 우리가 부탁하니
술까지 사다 주고, 누룽지까지 먹으라며 가져다 준다.
막걸리 네 병, 김찌찌개, 순두부찌개 소주 등을 마시며
오후의 한적함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주인이 우리를 위해서 틀어준 에어콘 바람도 빵빵하다.
전기세 부담을 생각하니 오래 있지도 못하겠다.
7명은 모두 수영복을 빌려 입고 덕구온천 스파로 들어갔다.
따스한 온천수를 몸에 두루고 하는 수영인지라 특별한 경험이다.
배영, 접영, 자유형을 섞어 가면서 따스한 물위를 헤엄친다.
나는 수영을 잘 못하니 그저 개헤엄이 제일 자연스럽다.
송장헤엄이라 표현하기도 했던 배영은 나에겐 누워서 떡먹기다.
누워있으면 그냥 붕 뜨니까 손만 천천히 움직여 주면 된다.
덕천강의 접영 모습은 아주 보기가 좋다. 선수급이라 할 만하다.
온천 수영장은 야외 온천으로도 통하게 되어 있어
밖으로 나가 보니 둥그런 수조 두 개, 네모난 원목 수조 한 개,
폭포를 연출한 수조 등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받아들인다.
레몬향을 연출하는 수조는 옥색과 노랑색의 독특한 빛을 띠는데,
두 손바닥을 모아 물을 뜨니 그 물빛이 금방 사라지고 만다.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젊은 부부들의 모습이 상큼하다.
30대 젊은 부모 시절에 자식들 데리고 놀던 기억이 새롭다.
마냥 귀엽기만 했던 한별이는 요즘 어찌 지내는지.....
온천에서 다시 이동한 곳은 한국수력원자력(주) 곁에 있는 바닷가 어느 식육점,
도산의 부구중 근무 시절 가까이 지냈던 분들과의 상봉이 있었고,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예정된 산속에서의 하룻밤은 포기해야 했고,
식당 옆에 있는 모텔에 방 2개를 구해 투숙했다.
추억과 삶을 이야기하면서 밤은 깊어 갔고,
여느 때 같으면 카드놀이라도 하면서 보냈을 밤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다들 모범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다음 날 있을 왕피리 숲 트래킹을 대비해서라고 정리하면 될까.^^
아침 8시 잠에서 깨어 얘기를 좀 하다가
10:20분 왕피리에서 숲해설사와의 약속을 해둔 덕천강은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왕피리 답사 코스로 가야 한다고 한다.
봉평리에 있는 모식당에 들러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도산은 강원도 묵호에서 출발하는 울릉도행 배를 타기 위해서
동해시까지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니 부득이 울진에서 헤어져야 했다.
류박사도 어머님 댁에 들러 잠시 쉬다가 개인적으로 먼저 포항으로 간단다.
모든 회원이 함께 하지 못하고 5명만 왕피리로 가야하니 많이 아쉽다.
울진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36번 국도,
옛날 울진 매화중종고 근무시절에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다.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는 도량인 불영사는 그 분위기가 좋고.
주변에 좋은 풍광과 굴참나무 숲을 보여주고 있어 자연의 백미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불영 계곡을 지나 울진군 서면 삼근리 마을로 접어들다 보면
왼쪽으로 나 있는 작은 길이 하나 길게길게 이어진다.
바로 그 유명한 마을, 왕피리(王避里)로 가는 길인데
거기서 무려 7,80리 길이니 그 속살을 잘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시멘트도로로 포장되어 왕복하기가 좋아진 것 같긴 한데,
그 만큼 뭔지모를 마을의 비밀이 잘 새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니
우리의 첫 발걸음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생태보존지역이니 만큼 조심스럽다.
산타페 3573을 훈련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평생 달려야 할 길이 좋은 길만이 아니고 이렇게 구불구불
구절양장같은 길도 오르고내려야 할 때가 있음을 절감케 하리라.
길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오르다 보니
아름드리 금강송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서 우리를 호위해 주는 듯 하다.
조수석에 탄 토담은 소나무 틈새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난다하고
진성 회장도 차를 조심해서 몰라면서 겁이 나 있음을 드러낸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산림청 직원들이 제복을 입고 출입을 확인하고 있다.
방문 목적, 차량 번호, 전화번호(휴대폰) 등을 적어서 신고를 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왕피리 답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숲해설사인 이선생은 두 명의 제자와 함께
우리 일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으니 오죽하랴
간단히 수인사를 하고 일행들은 숲 트래킹을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숲에 대한 관심이나 학습욕구가 없었으나
여기에 온 이상, 숲해설가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야 하고,
뭔가를 여기에서 배워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좁게 난 숲길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꽃은 닭의장풀(달개비꽃)이었다.
조금 가니 숲해설가는 좀작살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한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관찰하는 꽃과 나무(식물)가
오늘 주최 측에서 준비해 놓은 학습내용 같다.
학습목표를 진술한다면,
1. 생태보전지역의 하나인 왕피천의 중요성을 간단히 말할 수 있다.
2. 왕피천 주변에 자생하는 꽃과 나무(식물)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
정도가 아닐까?
이 선생의 제자 두 사람은 그간 학습을 잘 했는지
숲이나 야생화에 대해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과 속성을 훤하게 꿰고 있는 것 같았다.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결과일테지만
그 분야의 문외한인 우리들이 보기엔 전문가들 같다.
1급수의 청정한 계곡물이 강바닥을 훑으면서 흐른다.
물 속에는 제법 큰 송사리, 꺽지 등의 고기들이
그 본래의 신속한 움직임으로 건강함을 알린다.
계곡 옆의 모든 풀과 나무도 경계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왕피천에 사는 살아있는 것의 한살이가
모두 이렇게 평화로울 것만 같다.
누구의 어떠한 위협도 당해 보지 않았을테니.....
물이 흐르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는
작은 새끼고기들이 헤엄치기에 여념이 없고
소금쟁이의 노련한 물위 발걸음은 언제보아도 부럽다.
올챙이가 네 개의 다리를 갖추고는 있어도 막바지의 꼬리를 숨기지 못해서
개구리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오랜만에 보는 자연의 조화가 이렇게 감동일 수 있음은
우리들의 순수가 아직 가슴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많은 풀, 꽃, 나무의 이름을 알아가는 사이
출출해진 배를,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늘이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 머물렀다.
덕천강께서 준비해 온 김밥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저런 담소를 곁들이니 분위기가 이내 좋아진다.
하마터면 숲해설사의 제자 웰빙님은 '동백아가씨'란 노래가 부를뻔 했다.
이 선생은 준비해 온 소주를 한잔씩 돌리며 친절을 베푼다.
툭툭 내뱉는 말로 보아서 나름대로의 의식은 분명한 것 같고,
소명의식을 갖고 환경지킴이, 생태지킴이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알고 보니, 그는 울진 매화중학교 출신이란다.
나의 20대 중반 시절, 직접 그를 가르치지는 않았더라도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과 친구이거나 1,2년 선후배 사이임을 확인했다.
덕천강 선생과는 고등학교 10년 선후배 사이라 서로 잘 아는 사이이고 .
나의 매화근무 시절 가끔씩 들렀던 원남면 길곡리가 고향이란다.
(총학생회 부회장 역임, 환경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며
참여정부 시절에는 서기관급의 공직에서도 근무한 바 있다고 함.)
우리가 그날 숲해설사 덕분에 보고 배운 것을
기억나는 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달뿌리풀, 병아리난초, 산목련(함박꽃), 산수국,
끈끈이주걱과 그 꽃(희귀종), 물레나물,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돌단풍, 천남성, 한량나무,
큰고들빼기, 물푸레나무, 오리나무, 산팽나무, 물박달, 물봉선, >
계곡의 바위를 붙잡고 곡예를 하듯 거슬러 오르던 숲 트래킹,
일정 지점에서 탐사를 마치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시간만 더 허락된다면야 더 멀리 갈 수 있겠다마는
가던 길을 되돌아 올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오르던 계곡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은 올라올 때보다
더 힘들 것 같아 비교적 쉬운 길을 택하여 가기로 한 것이다.
계곡을 버리고 능선을 향해 조금 오르다 보니
마을까지 물을 끌어다 사용하는 관개수로가 나오는데,
그 길이 바로 동네로 내려가는 제일 편한 길이란다.
진성, 월여와 함께 먼저 그 길을 따라 내려갔고,
나머지 일행도 10여 분 뒤에 따라 내려와서 합류했다.
그렇게 숲 트래킹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왕피리에 있는 마을 구석구석을 차로 돌아다녔다.
속사마을 끝에 있는 생태 감시초소에 가서는
이 선생이 주는 냉커피도 한잔씩 얻어 마시고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다가 귀로에 올랐다.
예정 귀가 시간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자유학교 김 교수님은 오후 3시 30분까지 포항으로 돌아와
만날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시간에
아직도 왕피리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포항에 도착하는 대로 연락하기로 하자며
늦게 약속을 잡았다.
왕피리를 오갈 수 있는 자동차도로는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아침에 들어왔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고,
정 반대 방향으로 원남면 갈면리에서 들어오는 비포장도로가 그것이다.
오늘은 그 비포장도로를 이용해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이 선생은 일년에 3,4번은 그 비포장도로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거다. 모처럼 그 길을 안내하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무슨 배짱으로 마다할 수 있겠는가?
거의 기다시피해서 천천히 빠져나오는 비포장도로,
아침에 들어올 때의 길처럼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과속만 하지 않는다면 사고날 리 없는 그런 소박한 길이다.
기분엔 한두 시간 정도를 조심스레 달린 것만 같다.
4명의 소중한 생명이 산타페 3573에 좌우되고 있는 상황,
그런 공동운명체가 된 상황에서 산타페에 요구되는 것은
오로지 절대적인 안전 운행일 뿐이라서 마냥 늦게 달릴 수밖에 없다.
길 중간에서 겂없는 노루(아니면, 고라니) 새끼도 보았고,
집터가 남아 있는 지점에서는 잠시 내려
사람들의 발자취라도 느껴보고 싶었으나
온작 잡초와 나무만 무성할 뿐 거기에 깃들어 있을
삶의 애환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비포장도로를 먼지에 싸인 채 겨우 빠져나오니
울진군 원남면 갈면리로 연결되는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왕피리 입구 길 가까이에 식당이 하나 있어서 들어갔다.
이 선생이 안내한 식당인데, 닭백숙을 잘한다고 한다.
거기서 저녁을 해결하고 한잔 하면서 하루를 정리하면 된다.
닭백숙이 다 되려면 40분 정도를 또 기다려야 하니
자꾸 귀가 시간은 늦어만 가는데,
진성 회장도 월여도 다들 마음은 집에 가 있는 것 같다.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 소리에 민감해져 간다.
총무인 토담도 피곤기가 얼굴에 잔뜩 묻어 있다.
오늘 하루종일 수고해 준 이 선생과
1박 2일간의 구인회 울진 모임을 위해 신경써 준
우리의 맏형 덕천강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숲해설자의 제자답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두 분에게도
감사를 드리면서 산타페를 채찍질, 포항을 향해 내쳐 달렸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려 처음 출발했던 곳에 도착하니 거의 8시 50분,
월여와 진성과는 다음을 약속하며 곧바로 혜어지고
토담과 나는 다시 김 교수님이 기다리고 있는 자유학교로 갔다.
토담과 나, 두 사람은 청소년 자유학교의 교감 신분이기도 해서
아직도 인연의 끈이 질기도록 연결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김 교장 선생님은 그간의 자유학교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도교육청으로부터 지원 받은 비용으로
중등부, 고등부의 교실 바닥을 50센티 정도 높이고,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서 여러 기자재를 구입했다는 것과
2층 위탁반 교실의 인테리어는 물론 책장을 구입해서,
필요한 도서를 300만 원 정도 구입해서 언제든지
학생들이 잘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얼핏 봐도 교장 선생님께서 그 동안 자유학교를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특별히, 1주일 전에는 '더 월드 인 포항'이라는 공간을
자유학교 바로 옆, 길목 좋은 곳에다가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갖고는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을
나름대로 생각해낸 참신한 아이디어를 현실에 적용시켜 보고자
관계 당국에 계획서를 보여주고 협조를 요청해 놓은 상태에서
일단 일을 시작을 했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계획이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정부나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시스템이
곧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
두 번에 걸쳐 갖게 된 휴식년제를 이용하여
미국 테네시주에 거주하면서 겪었던 느낌과
청소년 자유학교를 운영해 오면서 느꼈던 평소의 생각을
더욱 구체화시킨 결과가 바로 '더 월드 인 포항'이다.
즉, 다문화가정을 위한 쉼터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에 온존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무관심과 배타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의 반영이라는 생각이들어
김 교수님의 그 훌륭한 생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토담도 김교수님의 추진력과 마인드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쉼터에 앉아 정수기에서 빼낸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
오늘 하루에 있었던 삶의 흔적을 천천히 더듬어 본다.
의미있는 공간에서의 정리라서 그런지 더 기분이 좋다.
'더 월드 인 포항'이라는 간판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밤에도 불을 켜 두는 게 좋겠다는 토담의 제안을
김 교수께서 즉각 받아들이고 앞으로 계속 그러겠다고 했다.
토담을 집까지 태워다 주고 구미로 혼자 돌아가는 발길은
포항의 저녁 하늘이 주는 느낌 만큼이나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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