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대구교육청 장순균 장학사와 선주고 유창열 선생이랑
문경에 있는 대야산(해발 930) 등산을 마치고 돌아왔다.
연달아 이틀에 걸친 산행을 무사히 끝마친 셈이다.
그저께는 전교조 활동가인 홍운기, 이상곤 샘과
충북 황간에 있는 월유봉을 단숨에 올랐었으니까.
아직도 월유봉에서 조망한 한반도의 형상이 눈에 선하다.
이상곤 샘은 전라남도 땅 부분이 간척지 같이 생겼다 했다.
휴대폰의 화면에도 그 한반도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대구 칠곡에 사는 장 선생이 전격적으로 제안해서
가게 된 대야산 산행, 모처럼의 기회라서 신명이 났다.
산타페 3573을 맞이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데다가
절친한 친구들과 부담없이 떠나는 여행이라 마냥 좋다.
일요일 새벽 6시 30분,
순균은 약속대로 정확하게 우리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대야산 입구까지 달려가는 것은 산타페 3573을 이용하기로 했다.
새 주인을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산타페도 특유의 냄새를 풍기면서 손님을 맞는다.
순균은 특유의 넉살을 부리면서 온갖 공치사로
나와 산타페의 기분을 한껏 띄우고 만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문경새재 IC로 내려
50리를 더 달려 대야산 주차장에 느긋하게 도착하니 아침 8시 20분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할 시점에 서 있게 되었다.
전국의 산악회 회원들이 즐겨 찾는다는 산,
어떤 단체에서는 적당한 간격으로 줄을 서더니
리더의 구령에 맞춰 맨손체조를 하면서 산행시작을 알린다.
아, 저런 식으로 준비운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어쩌면 산에 대한 예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대야산 용추계곡은 더 없이 훌륭했다.
순균의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했고,
옛부터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등산 초입부터 물맑은 계곡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흘러내린 물이
산꼭대기의 거대한 화강암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돌덩어리를 다듬고다듬어 또 깎고 깎아서
온갖 모양의 기암괴석을 만들어 놓고, 때로는
천천히 흐르며 너럭바위를 부드럽게 매만져 놓았으니
과객들은 그 위에 그냥 퍼질러 앉아 쉬고만 싶은 거다.
유선생은 물가에서 바둑이나 한 수 두고 싶다 했다.
나도 막걸리 한잔 하면서 그와의 대국을 벌이면
신선놀이가 따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잠시 오르니 '용추(龍湫)'라는 곳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 계곡의 대명사가 된 장소이리라.
그 이름은 '용이 머문 웅덩이'란 뜻일 것이다.
두 개의 웅덩이가 위 아래로 움푹 파여 있는데,
연초록의 물을 가득 담아두고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래웅덩이는 펑퍼짐하고 약간 넓은 규모의 깊숙한 대접같다면
윗웅덩이는 마치 안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요강의 이미지다.
웅덩이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많지 않아서 다들 만만하게 바라보지만
흐르는 수량이 많을 때면 고스란히 그 웅덩이로 쏟아져 내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만 같다.
가이드격인 순균은 발길을 재촉한다.
조금 더 오르니 갈림길이 있는 '월영대'가 나온다.
물이 흐르는 계곡의 한 지점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아마 이곳에서 계곡의 풍류를 한껏 즐기고 있을 때,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맞이하면서 지은 이름이 '월영대' 아닐까?
친구는 거창에서 본 '농월정'의 풍류도 이야기한다.
유난히 달을 좋아했던 조상들의 성정이
승경(勝景)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면 영락없이 달 '월'자를 써서
이름하였을 것이니 그 멋과 운치가 한층 더 깊은 것 같다
'밀재'라는 곳까지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제법 경사진 흙길을 오른쪽으로 한참 오르니 땀이 비오듯 한다.
회색빛의 거대한 바윗덩이가 떡 버티고 서서 호령하는 듯한 곳에 서서
밀재가 있는 지점을 내려다보니 제법 높은 곳까지 쉼없이 올랐음을 알겠다.
순균이가 준비한 참외 두 개를 깎아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갈증이 한꺼번에 해결되면서 단맛까지 제공하니 지상 최고의 맛!
저 건너 갈매빛 숲도 능선을 향하여 오르다가
우리를 향해 뒤돌아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듯하다.
순균이도 그 느낌을 받았는지 손을 모아 외쳐댄다.
"산은 날더러 바람처럼 살라하네. 얘들아 노올자!"
메아리가 되어 고스란히 그대로 돌아온다.
3초 정도 뒤의 반응이 너무나 정겹다.
산새들이 알을 품다가 혹시 놀란 거 아냐?
우리야 장난이지만 놈들은 엄청난 스트레스 맞제?
그래서 산에서는 소리치지 말라고 했겄다?
저 멀리 산의 정상이 보인다.
능선을 이룬 정상 주변의 크고작은 바위의 조화가
등산객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고 만다.
'와아'라는 찬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어떤 바위는 부석처럼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밑동은 안정감이 없어서 금방이라도 기울어져 버릴 것 같은데,
누군가 부석 밑에 가녀린 나무막대기를 갖다 세워놓았다.
눈속임같지는 않고 누군가의 장난끼의 발현인데,
그 바위의 넓은 아량은 끝간 데 없어 너그럽기만 하다.
누군가 매어 놓은 굵은 로프 줄을 타고
여러 개의 바위를 오르고 내리다 보니 어느덧,
대야산 정상이 다가왔다. 2시간 남짓 소요된 등정이었다.
해발 930미터의 표지적이 등산객의 손길에 반질반질하다.
친구들과 그것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몇 장 찍어 두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온 세상이 눈 아래 보인다.
맹자는 그런 기세를 일컬어 '호연지기'라고 했던가?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아 있다면 훨훨 날아 올라
저 멀리 촛대봉, 둔덕봉까지 날아가고 싶건만
하늘을 찌를 듯한 이 기세도 이젠 잠시의 착각일 뿐!!!
하산길은 피아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이 오를 때보다 미끄럽고 험하다고 느끼면서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몇 번을 미끄러졌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불안했는지 조심하란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바짝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경사가 심한 곳을 다 내려와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이젠 배가 고파 온다.
월영대까지 내려가서 점심식사를 할까 하다가
피아골 적당한 지점에 계곡물 좋은 곳이 있어
잠시 머물기로 했다.
바위도 제법 넓고 평평해서 좋다.
순균은 식사 전에 알탕을 해야 먼저 하겠단다.
더울 때는 은밀한 지점에 몸을 숨기고 알몸의 목욕을 하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하면서 히죽히죽 웃어댄다.
그러더니 먼저 옷을 벗어던지고 낮은 지점을 찾아 들어간다.
나도 잠시 주저하다가 사방의 인기척을 둘러보고
가까운 지점을 파고들었는데, 기분이 참 묘하다.
흘렀던 땀이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듯하다.
이 스릴과 시원함, 직접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다.
온갖 근심 걱정이 있다한들 이 순간에는 다 잊고 말거다.
근데 계곡물이 너무 차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신성한(?) 알탕 의식을 마치고
순균의 아내가 싸 준 잡곡도시락밥을 먹기 시작했다.
세 친구가 그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계란말이, 김치, 김, 오이장아찌, 소고기볶음된장, 오이 등,
입에 감길 듯한 맛의 감동은 단연 최고라 아니할 수 없다.
유선생이 준비해 온 소주 두 병 또한 금상첨화다.
배를 불리고 나니 하산은 누워서 떡먹기다.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계곡은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계곡에서 더 놀다가 가고 싶다.
조만간에 이곳을 반드시 다시 한번 찾으리라.^^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친 다리도 좀 쉴 겸 산 입구의 상가에 들러
유선생은 하산주 삼아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도토리묵을 안주로 해서 한 잔 마시고 가잔다.
나는 운전해야 하니 딱 한 잔만 하면 될 거고,
두 친구는 마음껏 마셔도 될 테지만
순균의 강력한 만류로 막걸리 한 병으로 족해야 했다.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이번 산행을 마무리했다.
친구와 함께한 대야산 등정(登頂)을 통해
내 몸이 아직은 쓸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5시간의 거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무난히 걸었고,
가파른 경사의 산길이요, 돌길투성이지만
튼튼한 두 다리와 강인한 심폐 기능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산행을 끝낼 수 있었으니까.(부모님께 감사!)
같이 간 두 친구가 의외라는 듯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잘 걷더구만. 그 정도면 됐어. 훌륭해!"
사실, 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근무하는 학교 뒷산을 1시간 30분 정도 걷고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서 등산 기분이 절로 나는
아주 좋은 코스가 있어서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
동료 2명과 늘 산책 겸해서 운동을 한다.
그 효과를 이번 산행에서 실감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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