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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방학의 마지막 휴가 2박 3일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09. 8. 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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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비진도, 낙안읍성, 그리고 여수 동생네


  2008년 8월 14일 오후 5시, 남해든 서해든 바닷가의 어느 곳이든 가서 해수욕을 한번 해보고 싶다던 아내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2박 3일의 짤막한 여행을 시작한다. 습도 높은 여름날의 더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는 고통 중의 하나라서 틈만 나면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끝지점인 현풍을 지나 구마고속도로를 내쳐 달린다. 마산 앞바다까지 계속 간다? 해수욕을 할 만한 데로 가려면 어디가 좋을까? 아내는 어디든 좋으니 나보고 결정하란다. 통영이 좋겠다 싶어서 그곳이 고향인 국당 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영 주변의 어느 섬으로 가는 것이 좋으냐 했다. 국당은 사량도, 욕지도, 소매물도, 비진도 등을 얘기하면서 최근 통영 미륵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가 생겼으니 꼭 한 번 타보라고 권한다. 그거 타고 통영에서 하루 밤 잔 다음 섬에 들어가는 게 좋다고 친절하게 대답하는데 전화 목소리가 약간 알코올에 젖어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로 향하다가 진주를 조금 지나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로 이어 달리니 잠간 만에 통영에 닿는다.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등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통영, 동양의 나폴리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 도시, 통영! 특히 육지와 미륵도를 연결한 해저터널이 그 운치를 더하고, 미륵도 일주도로가 또 다도해의 장관을 실감케 하는 곳, 벌써 이곳을 일부러 찾아온 것도 너덧 번은 된다.

  오후 7시가 되어간다. 케이블카 매표소를 찾았으나 이미 영업이 끝났다. 케이블카들이 아직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막바지에 탑승한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게다. 내일 다시 와서 타기로 하고 대합실 매장으로 들어가니 대형 TV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북경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이 중계되고 있는데, 결국 중국 선수에게 1점차로 지고 말았다. 은메달이다. 올림픽 7연패가 무산되는 순간이라서 아쉽다. 결승전에서 유난히 실수를 많이 하던 한국 선수는 스스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반면에 중국 사람들은 양궁계의 지존이요 아성인, 세계 최강 한국을 드디어 꺾었다면서 좋아서 야단들이다.

 

  통영한산대첩축제가 열리고 있는 통영 시내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회를 한 접시 사먹고 싶어 중앙시장을 찾았는데, 주차할 공간이 거의 없다. 거북선 앞 무대는 대형 조명시설을 갖추고는 벌써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차량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남망산 공원 바로 밑에 겨우 주차를 했다. 차도를 제외한 부두의 웬만한 공간은 상점으로 변했다. 하얀 지붕의 4각 천막들이 줄을 섰고, 많은 손님들이 그 안을 채워서 음식을 들거나 술을 한잔씩 기울이고 있다. 시장 입구의 한 횟집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다가 보이는 쪽에 자리 하나가 이제 막 비고 있다. 그곳을 차지하고 앉아 모듬회 하나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창밖엔 공연장의 불빛이 현란하여 술맛을 돋우는데 우연히 내가 건넨 말 한 마디에 금방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마는 아내의 예민함이 마음 아팠으나 서로가 미안한 마음이었기에 웃음을 되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부두에 설치된 거북선 조형물을 찾아 그 안을 둘러보았다. 고증을 통해 실제와 똑같이 복원해 놓은 것 같긴 한데 감상할 만한 분위기와 여건이 되지 않은 탓에 그 진면목을 보지는 못했다. 거북선을 둘러보고 나오니 공연이 막 끝났다. 구경하던 관객들이 한꺼번에 시내로 흩어지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참았던 비가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새도록 내려 통영 일대의 강수량을 150미리 이상 올려놓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식사는 충무김밥으로 해결했다. 여객선 터미널을 찾아서 섬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니, 욕지도가 볼 것이 많고 좋긴 한데, 배에 승용차를 실으려면 오후 5시 배밖에 없다고 한다. 그 전에 다니는 배는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있는 상태란다. 큰 섬을 차량 없이 돌아다니기는 어렵고, 작은 섬을 찾는 게 맞다 싶어 차선책으로 비진도행 승선권(일인당 7.000원) 두 장을 샀다. 아내도 20년 전부터 어떤 책을 우연히 보고 거기에 소개됐던 섬이라서 기회가 되면 꼭 찾고 싶었다고 한다. 2년 전 남전, 토담과 함께 소매물도로 가는 도중에 한참을 바라봤던 섬이기도 했다. 두 개의 섬을 모래톱이 가늘게 연결해 놓은 듯한 특이한 섬이라서 자꾸 눈길이 갔던 것이다. 터미널 주차장에 산타모 8793을 세워놓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10:00시에 배에 올라 50분 만에 비진도에 가볍게 내렸다.


  두 개의 섬 사이를 2미터 정도의 모래톱이 200미터 가량 이어지면서 연결된 하나의 섬, 그 모래톱의 한쪽은 곱디고운 모래로 또 다른 한쪽은 제법 크면서도 둥글둥글한 몽돌로만 이루어져서 신기하다. 해수욕은 주로 모래 쪽에서 낚시는 주로 몽돌 쪽에서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지형이 형성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지리 선생인 유 선생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어린애들을 대동한 가족들이 많이 있고, 친구들, 연인들끼리도 많이들 왔다. 허연 이를 드러내며 물놀이하는 저들이 마냥 보기 좋다. 우리도 해수욕장에 온 이상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또 아내는 아직껏 비키니를 입고 해수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으니 오늘이야말로 그 첫 경험의 기회가 아닌가? 샤워실과 옷장 이용비 8,000원, 파라솔 임대료 5,000원, 튜브 임대료 5,000원을 지불하고 파라솔 아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내의 분홍색 비키니 차림은 너무 화려해서 주변의 시선을 끌만한데 누가 보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몇 장의 사진을 남긴 후, 바닷물에 몸을 적셨다. 물이 깨끗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바닷말 등 온갖 부유물이 떠다녀서 지저분하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 잔뜩 부푼 튜브 안에 쏙 들어간 아내를 데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니 무섭다면서 사색이 되고 만다. 겨우 허리춤에 들어왔을 뿐인데, 수영을 못하니 죽을 것만 같은가 보다. 이 정도로 뭘 그리 무서워하는가 싶어 웃음이 자꾸 난다. 에이, 겁쟁이! 장난끼가 동해서 더 깊은 곳으로 데리고 가니 발로 내 몸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기세다. 안되겠다 싶어 데리고 나왔지만 나는 자꾸 웃음만 난다. 에이, 겁쟁이! 파도가 부서지는 10센티도 안되는 깊이에만 앉아 있으려 한다. 그래도 좋기만 하단다.


  보기에도 너무 꼬마들 노는 것만 같아 보여서 일단 튜브 위에 편하게 앉아 있게 해 보았다. 양팔을 뒤쪽으로 걸치고 두 발을 앞으로 뻗고, 엉덩이를 동그란 튜브 안에 넣었다. 그리고 튜브를 끌어서 약간 깊은 곳으로 가서 띄우니 너무 재미있단다. 진작 이렇게 안 해주고 공포에 질려 날 죽이려 했다면서 앙탈을 부리는데 귀엽다.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외국인이 우리 옆에서 튜브 놀이를 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다가가 말을 걸어 본다. 튜브의 정담이 시작된 것이다. 영어회화가 가능한 아내를 둔 덕에 옆에서 귀동냥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왔고, 여인의 아버지가 통영의 SLS 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처음 한국에 와 봤는데, 너무 좋다며 웃는다. 아내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탈리아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런 책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 후로도 두 남녀는 강렬한 태양 아래 온몸을 태우기도 하고 멋진 수영 실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는 대담함도 보여 주었다. 남자 가슴 주변의 새까만 털은 매우 섹시하여 뭇여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도 그를 향해 어설픈 영어로 아부성 발언을 한 바 있다. 'Your chest-hair is very attractive. do yoy know?' 그러면서 몇 올 안 되는 내 가슴털을 보여주니 그도 머쓱하게 웃어 버리고 만다.

  바로 옆의 파라솔을 차지하고 앉은 20대 초반의 남녀에게도 간혹 눈길이 간다. 여자는 PMP로 보이는 뭔가를 계속 보고 있고, 남자는 오랜 시간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눈감고 누웠다가는 다시 일어나 앉아 여인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여인 또한 남자 얼굴을 응시하는데 별다른 말이 없다. 저들은 저렇게 말없이도 잘 통하는 연인 사이인가? 부부 사이도 특별한 말없이 마음이 잘 통하려면 오랜 세월 같이 살아봐야 하는 법인데…….


  두세 시간 해수욕을 즐기다가 섬을 빠져 나와야 했다. 나도 모르게 물속의 돌에 긁힌 오른쪽 발등에서 피가 나는 바람에 더 이상 물놀이는 불가능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통영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멀어져가는 비진도, 언제 다시 또 찾을 때가 있겠는가마는 인연을 맺은 섬이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점심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터미널을 찾았다. 많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통영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치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 것으로 보아 통영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통영 8경 가운데 하나로 이미 지정이 된 듯 관광 홍보 책자에도 어느새 올라 있다. 표를 사고 40분 정도를 기다려야 차례가 올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개통된 지 얼마 안 되는 시설이라 그런지 모든 게 깨끗하다. 4명씩 마주 앉아 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케이블카는 굵은 밧줄에 대달려 미륵산 8부 능선까지 왕래하면서 관광객들을 태워주고 내려주기를 반복하면서 숨고르기에 바쁜 듯하다.


  꼭대기에 올라보니 통영 시내는 물론 그 주변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배들이 하얀 거품을 내품으며 바다 위를 평화롭게 오가는 것이 자그마하게 보인다. 비진도, 소매물도, 욕지도로 오가는 배들이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를 저렇게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의 섬들이고 바다이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피로 물든 슬픔의 바다였음을 누가 부정하랴. 어느 편이 이기고 지고 간에 피차간에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슬픔의 역사를 간직한 바다이다. 전술의 핵심인 '학익진'으로 그 숱한 적선을 유인 궤멸시킴으로써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이순신 장군, 그의 전술전략은 세계 전쟁사에서도 높이 평가되었다고 하니 그는 우리 역사의 위대한 영웅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그분의 유비무환의 정신과 선공후사의 희생정신은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사리사욕에 물들어 사는 우리 현대인들은 충무공의 사람됨과 행적에 대하여 머리 조아리면서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통영 관광을 마치고 이제는 어디로 갈까? 여수로 시집 간 동생인 남주의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하지 않을까? 아내에게 여수 순천 방향으로 가자고 제안하니 좋다고 한다. 순순히 내 뜻을 따라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여기까지 온 김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다. 올케 집에 가는 게 뭐 그리 내킬까마는 나를 배려해 주는 마음이 고맙다. 여수로 들어가기 전에 벌교 낙안 읍성에 사는 아내의 초등학교, 고교 시절 친구인 전경희 씨가 거기 있을지 모르니 있다면 한 번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니 아주 좋은 생각이라면서 친구에게 당장 전화를 한다. 마침 친구가 낙안에 있다면서 전화를 반갑게 받는다. 서울에 계속 있다가 오늘 아침 낙안으로 내려와 지금 방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란다. 현재 우리가 순천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니 한 시간 후면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면서 최대한 빨리 오라는 거다. 식사도 낙안에 예약을 해 둘 테니 배가 고파도 조금 참고 같이 식사하잔다.


  아내는 최근 우연히 안동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에 참가했다가 그 정겨움과 분위기에 반해서, 누군가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영락없이 참가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남편을 떼어놓고 가는 섭섭함이야 왜 없을까마는 나 또한 그런 성격의 모임에 잘 참여하고 사람과의 인연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뭐라고 탓할 수도 없다. 그리고 아내는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어렵지 않게 나한테 잘 들려준다. 남편에게 어떠한 비밀도 만들지 않겠다는 배려라서 좋다.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 대해 얼핏 들어만 봐도 다들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관계하는 모임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도 있어서 부러울 정도다. 원래 아내는 어떤 일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모임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지만 안동초등학교 모임은 아닌가 보다.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서 만나지만 순수하던 시절의 동네의 친구들이라 잊지 못할 것 같고, 잊혀진 세월만큼이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서 너무 좋다고 한다. 카페지기로부터 운영진으로 활동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에도 순순히 응하는 것만 보아도 알만하다. 그러니까 아내는 모임을 통해서는 물론이요, 온라인상에서의 카페 모임을 통해서도 삶의 재미와 소통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저녁 만나게 되는 전경희 선생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는 계속 연락이 안 되다가 모임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간의 만나지 못했음을 만회라도 하듯, 기회가 되면 서로 만나고 싶은 사이가 되었나 보다. 전 여사는 저녁 8시 30분 경에 낙안읍성에 도착한 우리를 데리고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갔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이 얼마나 맛있던지 잎새주를 반주로 곁들여 먹는 저녁 맛은 꿀맛이었다. 남도의 맛 그 자체다. 식사를 하면서 내가 본 전 여사의 첫인상은 참 소박하기 그지없다. 머리를 전부 빗어 올려서 쪽진 머리를 했는데, 옛날 여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서 보기에 좋다.


  15년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교단을 떠나 살다가 서른 여섯의 나이에 병마와 싸우고 있는 10년 연상의 한 남자(故 최현길, 고지도 필사가, 2007년 작고)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그를 도와 산 10년 세월은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다. 그간 공기 좋은 곳(경기도 양평)을 찾아 농사를 지으며 살기도 했고, 순천의 낙안읍성으로 내려와 성밖 한 켠에 '한국관광명품관'을 내고 자신은 한지 공예에 열중하고 남편은 고지도 필사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지병인 당뇨와 고혈합의 합병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7년 가을, 세상을 떴으나 전 여사는 남편이 작고하기 직전에 그의 56회 생일 선물로 기획한 '아름다운 고지도전' 전시회를 열어서 그의 혼이 담긴 크고 작은 두루마리 고지도를 펼쳐서 세상에 알렸고 호응도 좋아 매스컴에서도 취재한 바 있다고 했다. 올해는 경북 청송에서 그 고지도 전시회를 8월 22일부터 열기로 되어 있단다. 규장각의 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이기붕 박사는 고 최현길에 대해서 '고지도들의 외침을 가슴 뭉클하게 느낀 그림쟁이 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양평의 삼선당에서, 순천의 낙안읍성에서, 고흥의 새우섬에 온몸으로 고지도를 그렸던 그분의 행적은 미망인 전경희 선생의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더욱 성숙되고 승화된 작품으로 표현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벽 3시가 넘도록 전 여사가 우리에게 베푸는 정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술을 좋아하는 내 정서에 꼭 맞는 분위기이긴 하나 난 오늘 그 여인을 처음 보는 자리라 약간의 체면치레도 좀 필요한 거다. 전날의 수면 부족을 생각하면 잠자리에 벌써 들어가야 할 시간이건만, 그럴 수 없다. 주인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정성들여 담은 오가피주 한 주전자가 들어왔다. 잣이 박혀있는 곶감 안주도 깔끔하게 준비했다. 주인장의 멋에 취하고 몇 잔의 술에 취해 나는 그저 두 여인네의 이야기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아내는 낙안읍성에서 이런 만남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이라도 했는지, 서울에 사는 초등동기생 조강영, ○○○은 연달아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면서 낙안의 분위기에 잔뜩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젠 차를 마셔야 한다면서 전 여사는 연잎차를 준비하는데 그 정성이 대단하다. 연꽃을 수반 가운데 세우더니 끓는 물을 많이 부어서 수반을 채운 다음, 조금 시간이 지나서 연꽃의 잎을 하나하나 핀셋으로 벌리면서 그 은은한 색깔과 향기를 우러내는데 마치 그 색과 향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 환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술에 취한 사람도 한 잔 마시면 금방이라도 정신이 되돌아올 것 같다. 한 잔 따라 주기에 맛을 보니 과연! 여인은 차인들이라면 연잎차 정도는 기본적으로 즐긴다고 하지만 난 처음 맛보는 것이라 고백했고, 차의 매력을 잘 모르는 술꾼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이제 그만 마셔도 되겠다 싶은데 여인은 그래도 그만둘 수 없다면서 직접 담근 산사춘 한 주전자를 또 들여왔다. 피곤함만 해결되면 밤새도록 마셔도 될 텐데,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옛날 같으면 밤을 새서 마셔도 생생했건만 이젠 그게 잘 안 된다. 몇 잔 더 마시다가 결국 조는 모습을 주인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연잎차 몇 잔을 더 권하더니 이제 그만 자자고 한다. 그리고 여인은 나에게 문제를 낼 테니 맞춰보란다. 차 마시고 술 마시고, 또 차 마시고 술 마시고 하는 것을 4자로 뭐라 하는지 알아요? 모른다 했더니 '차곡차곡'이라고 한다. 맞다. 술은 불가에서 곡차라고 하니까. 그야말로 여인은 우리를 위해서 정을 차곡차곡 베푼 것이고, 그것이 거의 새벽 3시가 되어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이 마련해 준 침실은 아늑했다. 시원하고 안락한 요에다가 삼베 이불, 그리고 하얀 모기장, 그 안에 누워 아내와 잠시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6시 40분이다. 아내와 읍성 주변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했다. 성내의 초가집에서 민박하고 일찍 산책 나온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8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성안의 가옥들은 옛모습 그대로다. 성곽 위를 거닐면서 들여다보는 멋 또한 색다르다. 낙안읍성을 둘러싼 산의 곡선 모양을 그대로 닮은 초가집의 둥근 곡선, 지붕 위로 줄기를 뻗고 자라고 있는 박넝쿨, 담장을 뒤덮은 담쟁이, 노란 수세미꽃, 담장 밑의 봉숭아, 과꽃, 채송화 등이 어우러져 마냥 정겹다. 어릴 적 우리 고향 모습이라서 너무 좋다. 쌍청루(雙淸樓)란 현판이 걸려있는 남문 위에 한참을 앉았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장은 벌써 요구르트와 차를 준비해 두었고 흑현미죽까지 쒀서 아침상으로 올린다. 우리는 그 정성에 탄복하면서 고마움을 가슴 깊이 새겼다.


  전경희 선생은 헤어지기 전에 보여줄 게 있다면서 본인이 운영해 왔던 공방으로 안내했다. '한국관광명품관'이란 하얀 간판을 세로로 내건 소박한 공방인데 보기에 좋다. 그러나 곳 철거를 하고 성내의 전시관으로 옮길 예정이란다. 공방 안은 전 여사의 한지 공예 작품들 가운데 등불 공예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아내는 올케를 생각했음인지 침실 등을 하나 사 가자고 한다. 마음이 고맙다. 친구가 손수 정성들여 만든 작품이기에 값이 얼마든 팔아주고 싶고, 이왕이면 의미 있는 곳에 선물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작용한 것이리라. 또 줄넥타이(펜던트)가 참한 것이 있어 내게 선물로 하나 사려고 하는데 그것은 전경희 선생이 나에게 그냥 선물을 한다고 한다. 그저 고맙고, 감읍할 따름이다. 전 선생, 그대는 바로 우리 시대의 천사인가 봐요.


  전경희 선생과 헤어지고 여수에 사는 남주 동생네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전화를 걸어 점심이나 같이 하기로 약속을 이미 해 두었다. 순천에서는 17번 도로를 따라 금방 갈 수도 있지만 순천만이 바라보이는 와온 포구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일몰을 구경하느라 포구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 봤던 저녁놀을 잊을 수 없어 일부러 돌아가는 코스다. 전경희 선생도 그리로 갈 것 같으면 자신이 만든 부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사곡의 '모리에' 찻집에 들러 차 한 잔 하고 부채 구경이나 하고 가라고 했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과연 ‘모리에’ 찻집은 갤러리를 겸한 찻집인데 훌륭하다. 많은 문인들이 그곳을 찾아 그 독특한 분위기에 젖었다 가곤 한다며 주인장은 자랑을 한다. 전시되고 있는 부채는 매우 다양했다. 전경희 선생이 직접 만든 부채인데 부챗살에 온갖 문양의 그림으로 장식을 하거나 한지의 질감을 살려서 독특함을 갖추고 있어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남주 동생이 이사한 집은 여천시의 학동 신동아 파밀리에 아파트다. 분양을 받아서 이사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세로 들어왔단다. 이미 집이 하나 있는데 집을 살 필요가 있냐는 거다. 맞다. 그래도 새집에 살고 싶어서 이사를 했고, 기분도 괜찮단다. 돈 잘 버는 남편을 둬서 좋겠다 하니 씨익 웃기만 한다. 남편에게서 일정액의 돈만 받아서 그 한도 내에서만 오랜 세월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있는 동생은 남편의 수입도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사업이 번창하는 정도로 봐서는 제법 돈을 잘 버는 것도 같은데 남편은 아내한테 대단히 인색하다고 투덜거린다. 한번은 벽시계가 고장이 나서 좀 바꿔야 안 되겠냐고 물어 봤다가 너무 헤프다면서 혼났다고 하는데, 겉으로 표현도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 했다고 한다. 멀쩡한 차를 팔아버리고 5천만원이 넘는 승용차인 '제네시스'를 현금 주고 사면서 꼴난 시계 하나 사자는 것 때문에 헤프다는 핀잔을 듣는다는 게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 믿고 살기 때문에 남편의 모든 허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대단한 동생이다.


  조카 한지은! 초등학교 1학년, 큰외삼촌이 오늘 온다니까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속 웃고만 있다. 미소가 귀여운 녀석, 누구 닮아서 그렇게 이뻐? 하면 아빠 닮아서 그렇다고 답하는 녀석, 오자마자 우리 부부의 모습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는데, 어릴 적 내가 그린 그림과 비슷했다. 외숙모를 크게 그리고 나를 작게 그려서 어? 외숙모보다 외삼촌이 키가 더 큰데 왜 이리 작게 그렸어? 하니 씨익 웃는데 엄마를 그대로 닮았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발등 위에 조카를 앉게 한 다음 공중으로 띄웠다 내렸다를 반복하다가 내 머리 위쪽으로 내려놓으면 그 스릴과 재미에 자꾸 해주기를 요구했던 녀석, 올해는 키가 크고 무거워져서 그런지 잘 안 된다. 몇 번 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이렇게 녀석들은 커가는 것이구나 싶다. 내 아이를 그렇게 키웠고 조카들도 그렇게 데리고 놀았는데 이제 몸집이 커지니 귀여움도 덜해지는가?


  조카 한고은! 고등학교 1학년, 안 보는 사이에 부쩍 큰 것 같다. 멋도 좀 부리려는 듯 발톱에 연두색 메니큐를 칠했다. 모자를 써서 머리 꼬랑지를 모자 밖으로 냈는데, 숙녀티가 완연하다. 늘씬한 몸매와 외모가 어른을 닮아간다는 느낌이다. 동생 지은이와는 다르게 크면서 웃는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던 놈, 이젠 다 커버려서 오랜만에 건네는 말일망정 조심스레 해야 할 것만 같다. 학기 초에 급우간의 갈등 때문에 여러 고민도 많이 했을 녀석, 이젠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는지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동생 남주는 지난 4월 거금 800만원 정도를 들여서 가슴 성형을 했다고 하는데 이젠 자신의 진짜 가슴 같아서 좋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도 봉긋한 가슴이 괜찮아 보인다. 아내도 농담 삼아 오빠가 남주 동생 가슴 보러 가자고 졸랐다는 말로 우리를 웃겼다. 예전에는 옷을 입을 때도 아무거나 신경 안 쓰고 입었는데, 요즘은 옷 하나를 골라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목욕탕에 가서 만난 친구도 동생의 훌륭한 몸매와 가슴이 부러웠던지 자기도 해야겠다고 해서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남주 동생은 또 같은 자매인데 왜 이래 다른지 낳아준 부모님 불평도 했다. 누구는 풍만해서 브래지어를 맞춰야 할 정도고 누구는 빈약해서 확대 수술까지 해야 했으니 말이다. 나는 운동을 많이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차이가 아니냐고 답했는데 대화의 내용이 너무 우습기도 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원래는 점심만 먹고 구미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한서방이 우리 부부가 여수에 온 사실을 알고는 그냥 보낼 수 없고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파트 앞뒤 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다. 잠이 슬슬 온다. 동생도 잠을 자 두라고 한다. 자신은 교회에 잠시 가서 청소를 하고 오겠다 한다. 당번이냐 하니 그게 아니고 교회의 청소는 자신이 전담한다면서 오빠가 자고 있는 동안에 끝내고 오겠다 한다. 그리 해라 하고 혼곤히 잠이 들어 두 시간을 정신없이 잤다. 일어나 보니 아내마저 자고 있다. 고은이는 학원에 갔고, 지은이는 엄마를 따라 간 모양이다. 조용한 아파트에 나 혼자 남은 느낌이다. 컴퓨터를 켜서 인테넷 여행을 잠시 했다. TV를 틀어 베이징 올림픽 경기 상황도 둘러보았다. 잘 하고 있다. 금메달이 6개, 은메달이 9개, 동메달이 몇 개, 땅덩이 작은 나라치고 아주 성적이 좋다. 인구 비례로 보더라도 우수한 성적이다.


  교회 청소를 마친 동생이 지은이와 웃으면서 돌아왔고, 고은이도 멋쟁이 가방을 들고 학원에서 돌아왔다. 오늘 저녁 식사는 외식이다. 한서방의 퇴근 시간을 기다려 6시쯤 모 식당으로 갔다. 전어회를 준비했단다. 독특한 맛을 즐기는 남도 사람들에게 걸맞게 전어회 맛은 경상도와는 달랐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다. 고기를 어떻게 칼질하느냐의 차이와 양념의 차이 같다. 포항 등지에서 먹어본 맛과 좀 다르다. 특히 비빔전어의 맛은 감동적이다. 아내도 너무 맛있다면서 배가 나올 정도로 과식을 하고 만다. 식사를 하면서 한서방은 내게 골프 운동을 시작하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나중에 기회 있으면 가족끼리 만나서 한번 칠 수 있도록 준비를 좀 하란다. 그는 3년 전부터 골프에 빠져서 해외까지 가서 라운딩을 하는 모양인데, 그의 늦바람을 어찌 말리겠냐마는 나는 솔직히 말해서 골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 같아서 거부감이 조금 있다. 좁은 땅덩이에 골프 인구가 자꾸 늘어나면 골프장이 여기저기 생겨야 할 것이고 그러면 본의 아니게 골프 매니아들은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마는 결과가 아닌가? 한서방의 진지한 권유에 대해 웃고 말았지만 난 골프보다는 배드민턴이 좋고 테니스가 좋다. 골프장의 라운딩보다는 운동 삼아 우리 동네를 몇 바퀴 도는 것이 더 좋다.


  한서방의 은근한 정을 느끼면서 귀로에 올랐다. 깜깜한 밤길을 달리면서 아내와 나는 2박 3일간의 여행을 정리했다. 아내도 너무 좋은 여행이었다면서 흡족해 하고 나 또한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니 행복하다. 별 욕심없이 떠난 짤막한 여행,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여름방학을 정리하면서 아내의 소원을 풀어 주었고, 새로운 기분에 휩싸인 이틀 밤도 내게는 특별했다.

메모 : 2008.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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