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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백할 일이 있어요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09. 8. 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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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 살생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꽃속에서 꿀을 열심히 찾고 있는 선량한 벌들을

10여 마리 정도는 죽이고 말았습니다.

맨처음에는 무심코 한 살생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큰일날 짓을 하고 만 것 같습니다.

내 손으로 그렇게 많은 생명을 한꺼번에 죽이다니요.

에프킬라로 수백 수천의 모기를 죽이고,

개미떼의 반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적은 있지만

역할이 분명하고 참 좋은 꿀벌을 그렇게 많이 죽이다니요.

오늘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심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 카페를 통해서라도 고백을 하고 용서받지 않으면

오늘 잠자리가 펀하지 않을 것만 같고,

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        *        * 

동료인 유영배 선생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허리가 좀 아프니 벌침을 좀 맞게 해달라 부탁을 한다.

벌을 잡아 줄테니 허리 부분에 벌침을 좀 놓아 달라는 거다.

그러마 하고 모퉁이 돌아 영산홍이 탐스레 피어있는 화단에 이르러

꽃가루를 한창 몸에 묻히며, 꿀을 빨고 있는 벌에 접근,

손가락을 튕겨 꽃 속의 벌을 잠시 기절시키더니

손끝으로 얼른 잡아 내게 건네 준다.

벌도 고통스러운 듯 버르적거리기 시작한다.

옷을 걷어올린 유선생의 허리 뒤쪽에 벌을 갖다 대니

요놈의 벌이 본능적으로 꽁무니를 움츠리더니 침을 팍!

움찔하며 놀라는데, 순간적인 고통이 대단한가 보다.

벌을 떼어내니 뒷꽁무니 내장끝이 달려있는 침이

살색 피부에 하얗게 박혀서 앙갚음을 하고 있다.

벌이야 방어 차원에서 일침을 가하는 것일 테지만

사람은 오히려 그 벌의 방어 본능을 빌어서

통증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벌 한 마리의 생명은 그렇게 끝나버리고....

 

벌침을 성공적으로 맞은 유선생은

한 방 더 맞아야 좋을 것 같다며 벌잡기를 계속한다.

거기서부터 나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벌 한 마리를 더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그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튕겨 꽃속의 벌을 기절시키는 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살생의 추억(?)이 될 만한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유선생이 벌 잡는 것을 본 내가 살기를 느꼈음인가?

더 적극적으로 '벌 기절시키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단 한 번에 성공했으면 되는데 번번히 실패다.

실패라고는 하지만 벌들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거다.

손가락 힘이 너무 좋아서 벌의 허리를 끊어버린다든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도록 아예 죽게 한다는 것이 문제다.

죽은 벌은 스스로 침을 쏘지 못하니 안 되고

살린 상태에서 침을 찌르게 해야 하니

어떡해 하든지 기절시키는 수밖에 없는 건데

유선생도 나도 계속해서 실패만 거듭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벌들의 피해가 커가기만 한다.

살생하고 있음을 의식조차 못하는 나의 대담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벌을 기절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똑같은 행동을.....

 

본능적으로 꽃을 찾아 꿀을 모으는 벌들,

자연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될 그 벌들일진대,

왜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많은 벌들을 죽이고 있는가.

조금 전 벌들이 향연을 벌이던 꽃더미엔 이젠 더 없다.

눈치를 채고 다들 도망을 갔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한참만에 겨우 한 마리를 잡아 벌침을 맞히는데 성공은 했으나

열심히 살아가는 벌들에게 망나니짓을 하고만 것 같아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내가 환경운동에 관심을 둔 사람 맞나?

벌들을 품었던 영산홍 붉은더미가 나를

조롱하면서 비웃는 듯했다.

출처 : 마음 샘터
글쓴이 : 논강 원글보기
메모 : 200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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