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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제 하루 있었던 일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09. 8. 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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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지난 토요일 5/23 저녁,

서울 목동으로 이사온 여동생 집들이 모임이 있던

그 다음날의 이야기를 붓가는 대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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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경 일어났다.

서울 목동 14단지는 고요함으로 휩싸여 있었다.

두 동생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고

인기척에 잠을 깬 서준이가 살며시 다가와

내 무릎 위에 엉덩이를 드리대고 말없이 앉는다.

"아이고, 이게 누구여, 잘 잤어?" "네"

이렇게 서준이와 함께 시작된 일요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접속 세상 소식을 접해 보는데,

아, 노무현의 안타까운 죽음이, 어제의 그 슬픔이,

오늘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겠다.

어느 싸이트에 가서 추모 댓글을 길게 달아 본다.

어떤 사람은 노무현 잘 죽었다고 악플을 계속해서 단다.

그것도 똑같은 내용을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 가면서.

'나쁜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남주가 어느새 일어나

또그락또그락 아침 준비를 한다.

식구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

남주가 정성껏 차린 음식이 완성되었을 때는 모두 다 기상!

엊저녁 식사는 도착 시간이 다들 맞지 않아 찔끔찔끔이었는데

오늘은 적어도 4남매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9시경이다.

묵은지를 넣은 고등어 조림, 돼지 갈비, 김치 등

역시 1급 요리사 다운 솜씨로 보여준

고은 엄마 덕분에 우리 모두는 아침배가 불룩했다.

밥 한 공기가 조금 모자란 듯 남은 밥까지 싹 먹어치웠으니까.

 

아침 식사 후,

동생 집엔 TV가 없어서 고은이(고2)의 DMB로

계속되는 '노무현 서거' 방송을 지켜보니

또 눈물이 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비정한 정치 현실을 생각하니 욕이 저절로 나온다.

조카들이 그 욕설을 듣고 흉내내지나 않을까 싶다.

 

이제 두 동생들은 집으로 가야 하리라.

나는 동생들과 헤어진 후, 집주인 남주의 차나 빌려 타고

파주 방향의 '자유로'를 달려 도라산 엮까지

남북정상회담때 노무현이 직접 걸어서 건넜던 그 주변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나 툭 한마디 내뱉었는데,

동생들도 그렇다면 그리로 따라 나서겠다고 한다.

동생들 귀가 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다. 마음이 편치 않다.

모처럼의 일요일 휴일인데, 촌사람인 우리 때문에

식구들과의 오붓한 만남을 방해받는 것 같아서다.

그럼 도라산역보다는 헤이리 마을이 좋을 것 같다.

조카들이 좋아할 법한 공간이니까.

 

남주 차에 아내가 옆에 타고

뒷좌석에 채윤, 지은, 서준이를 태우고 

40키로 남짓 떨어져 있는 헤이리 마을로 달리는데,

채윤이(초6)의 학교, 선생님 이야기가 참 재밌다.

영어 단어 알아맞추기, 영어 연극 이야기.....

서준이는 왜 누나는 자꾸 그런 얘기만 하냐고 투정을 부리고,

운전하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마구 만져대는데

그 손의 작고 고운 감촉이 너무 좋아 웃음이 절로 난다.

가끔 내뱉는 음성도 사나이답게 우렁차다.

귀여운 녀석!!!!

또다른 귀염둥이 지은이는 꽁지머리를 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호기심이 많다.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교회에 가야 했고,

초딩 2학년인 지은이 홀로 따라나선 자투리 여행,

말이 별로 없지만 차창밖 둘러보며 얼마나 좋을까?

마냥 작고 귀엽고 어리게만 보였던 지은이가

이젠 제법 커서 사리판단도 할 줄 안다.

 

헤이리 마을, 예술인들이 모여 산다는 공간,

동생들, 제수, 조카들과 어울려 몇 군데 들러서

사진을 찍고 꽃시계도 만들어 조카들 손목에 채워 보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가게, 착한 가게, 소품 가게 등을 둘러 본다.

서준이는 벌레를 가지고 노는 체험을 하고 싶었는데,

문을 닫아 못하게 돼 섭섭했는지 닭똥같은 눈물를 흘린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다

장남감을 맘껏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이니

5,6만원 정도의 로보트 조립용 장난감 하나 사서

서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나 지은이한테는 사고 싶다던 3만원짜리 지갑을 사 주지 못하고,

달래어 조금 싼 걸로 대신 사 주게 된 상황이고,

채윤이 한테도 휴대폰 보호용 케이스만 사 준 마당에

서준이 한테만 비싼 것을 사 준다?

결국 미적미적하다가 사 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고,

헤어질 때 용돈을 주는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다.

살림이 넉넉치 못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나의 옹졸함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 같아 너무도 싫다.

되돌아오는 차 안, 말없이 그저 핸들만 잡고 있었다.

지은이는 조용한 침묵 때문인지

엎드려 뒤에서 잠이 들고,

 

이원장은 분당의 식구들이 걱정되는지 

귀가를 서둘렀던 느낌이다. 낮 12시 경이다.

나는 영등포역에서 3:10분 출발이라 어중간하긴 하다.

이왕 나온 김에 분식집이든 음식점이든 들어가서

새참 겸 점심이라도 좀 먹고 아이들 배를 좀 채운 뒤에

남주 집에 같이 잠시 들렀다가 나를 태워가도 될텐데......

뭔가 어정쩡하게 헤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꺼림찍했던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의 죽음 때문인가? 맞다. 아무 생각이 없다.

나부터도 모든 게 귀찮고 신명을 잃었다.

 

(더 이상 못 쓰겠다. 마음이 붕 떠서 봉하마을에 가 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 그 삶의 기록도 매우 소중하나

더 이상 글을 잇지 못하겠다. 여기까지만 기록한다.)

출처 : 마음 샘터
글쓴이 : 논강 원글보기
메모 : 2009.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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