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당 선생은 통영에 계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부득이 참여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한다.
함께 하면 늘 즐거움을 주는 친구인데 못 봐서 섭섭하다.
섬나라 우산국에서 근무하는 국당, 늘 듬직한 국당,
몇 년 전 형과 누이를 한꺼번에 잃고 참 힘들어 했는데
요즘은 또 모친이 건강하지 못하니.....
‘토끼’라고 불리는 여인, 조경아씨(한양대 근무)가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구미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경,
대합실에 가서 확인 차 전화를 거니 옆에서 톡 나타난다.
남전 형도 토끼가 구미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포항에서 일찍이 출발, 곧 구미터미널에 도착할 것 같단다.
토끼를 태우고 남전형이 기다리고 있는 터미널로 가서 상봉,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남전형의 제안대로 금오산으로!
남전 형과 토끼, 나, 이렇게 셋은
금오산 자락의 법성사란 절을 찾았다.
4월 초파일이라 절집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누구든 원하면 푸짐히 제공하는 점심 공양,
가래떡과 방울토마토까지 먹어보라는 인심이 정답다.
배를 채우고 금오산 등정을 시작(이때 시각이 12:00),
남전 형과 토끼는 2001년 지리산 종주 길에 만난 사이인지라
오랜만에 이렇게 등산을 하는 것이 제격이긴 한데
오후 4시까지는 내려와야 일정에 맞아 떨어진다.
오늘 저녁 모임을 준비하기에 바쁜 마누라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5월초의 신록은 단풍만큼이나 아름답다.
사시사철 짙고 푸른 소나무 사이로 연두빛 이파리들은
단풍 못지않은 농담(濃淡)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다.
정상을 향해 치달아 오르는 능선의 부드러움도,
깎아내린 거대한 암벽과 부딪히면서 앙칼진 각을 세웠고,
그 위로 다시 뻗고 뻗어 정상을 향하면 현월봉(縣月峰)과 만난다.
멀리서 보면 완연한 부처님의 누워있는 얼굴 형상이어서
옛사람들은 이 산을 ‘와불산(臥佛山)’이라고 했다 한다.
네모난 현월봉(해발 976미터) 표지석을 잡고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물 한 모금 시원스레 마시니
온 세상이 내 발 아래 있다. 이것을 누군가 ‘호연지기’라 했던가?
동쪽 아래로는 멀리 낙동강을 품에 안고 구미 시내가 펼쳐졌고
서쪽 능선은 아래로 흘러내려 오봉 저수지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원스런 풍광은 볼수록 좋다. 그저 좋다.
정상을 목표로 산을 힘들게 오르지만 적당할 때
하산할 줄도 알아야 산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다고 배웠다.
숨 한번 크게 고르고 하산을 시작하니 등정의 즐거움도 한 순간임을 알겠다.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절집, 약사암을 끼고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아까 올랐던 그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그 옆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다소 가파른 길,
우리 셋은 그 왼쪽 길을 택했다. 돌들이 참 많다.
토끼는 하산 중에 두 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졌다.
등산 전에 명혜당이 신던 등산화를 신으라고 권했건만
괜찮다고 고집하더니 쯧쯧..... 얼마나 아팠을까?
하산하자마자 광평동 E-마트로 갔다.
명혜당이 주문해 놓은 회를 내가 찾기 위해서고,
남전형과 토끼는 빈손으로 집들이에 갈 수는 없다며
뭔가를 사들고 가야겠다하기에 마트에 들러야 했던 거다.
나는 볼일을 금방 보고 나왔지만 남전과 토끼는 한참만에야.....
구미역에 17:20분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매현,
남전 형이 구미역까지 내 차를 빌려 타고 마중하기로 되어 있는데,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 약속을 지킬 형편이 못 된다.
남전은 매현한테 전화를 걸어 그 폰을 내게 건넨다.
사정을 잘 얘기하고 집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라는 뜻이다.
역 앞에서 택시 타고 아파트(201동 804호)로 곧장 오라고 했다.
집에 와 보니 명혜당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손님이 들이닥치면서 더욱 마음이 급해지는 듯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냐는 듯한 불만 섞인 말투도 흘러나온다.
늦으면 늦는 대로 준비하는 느긋한 성격이 아니라서
급한 마음에 남편한테 내뱉는 넋두리겠지만
남전이나 토끼가 들으면 다소 무안해질 것만 같다.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인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모처럼 샘터님들을 위한 자리를 주관하는
명혜당의 그 순수하고 갸륵한 마음을,
남전 형이 하산 후의 찜찜함을 씻어내는 동안,
방금 도착한 매현과 토끼의 도움으로 저녁 준비를 마쳤다.
우산 형은 9시경, 서백은 10시경 도착할 것 같으니
모두 모였을 때 준비한 프로그램(지신밟기, 토끼 작호식)을 진행하면 되고
일단 현재 모인 인원(6명)만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명혜당의 정성이 담뿍 담긴 무쌈말이, 훈제오리, 버섯소불고기,
우럭매운탕, 베이컨말이, 취나물무침, 야채샐러드 등이 푸짐해 보인다.
특별 메뉴로 준비한 카나페, 초코 머핀도 간식으로 적절했다.
‘소백산맥’(소주, 백세주, 산사춘, 맥주를 같은 비율로 섞은) 술로 분위기를 돋우면서
시작된 논강-명혜당의 집들이 모임, 오고가는 술잔 속에 축하의 메시지는 이어지고,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 소훈이도 느닷없는 모임에 어리둥절했지만
함께한다는 것과 포식하는 즐거움은 대단했을 것만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취기는 은은하게 돌기 시작하고.....
예정대로 우산 형과 서백이 도착했다.
토끼 조경아 씨의 작호식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소소연(召素淵), 소소당(召素棠), 소소헌(召素軒) 중에서 하나를 택하기로 했는데,
다들 ‘소소연’이 좋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토끼’가 아닌 ‘소소연’인 것이다.
이름 대신에 부르는 호(號),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는 의미있는 호(號),
적어도 대부분의 마음샘터님들은 남전으로부터 하나씩 받았다.
우산, 논강, 명혜당, 예원, 매현, 미목, 서백, 시재, 류정, 선재 등.....
작호식을 통해 정식으로 호를 부여받게 되면
으레 술을 한 잔 사야 하는 불문율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소소연도 그래야만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호를 받았으니
미처 준비가 안 됐단다. 더구나 그녀는 급성 간염으로 금주 중이다.
작호식 겸하여 남전형의 최근 창작시 발표회도 했다.
‘리어카 마음’ 등 4편의 시를 A4용지에 프린트한 것을
소소연, 매연, 명혜당, 서백 등이 차례차례 낭송했다.
서백의 시 낭송은 제법 형식을 갖추었는데,
문예 아카데미 모임에서 배운 대로 해 봤다고 한다.
은사께서 쓴 시인만큼 더욱 잘 낭독해 드리고 싶은
제자의 간절한 마음 표현 같아서 더욱 좋았다.
남전형은 2000년 시인으로 정식 등단한 이후,
아직껏 시집 한 권을 내시지 못했지만
평소에 풍부한 감성과 시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시를 읽고 쓰면서 창작과 다듬기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오랜 세월 그렇게 숙성되다 보면 머지않아
봇물 터지듯이 시집이 잇달아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이럭저럭 분위기 살려 온갖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어느덧 자시, 축시를 넘어 새벽을 향하고 있다.
예정된 문경 찻사발 축제에 가 보려면 몇 시간만이라도 자야 한다.
소소연의 눈가엔 피로감이 잔뜩 묻어있다. 자야만 한다.
다들 자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참고 있는 듯하다.
명혜당, 소소연, 매연은 안방에서, 우산형과 남전형은 서재에서
나와 서백은 거실에서 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
나는 코를 워낙 심하게 고는지라 신경이 바짝 쓰인다.
같이 누웠지만 서백이 먼저 잠들기를 기다렸다.
아니 옆으로 누워서 코골이를 피해 보고자 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명혜당은 북어탕을 해장국 삼아 끓여서 아침상에 올렸다.
다들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우산형은 술을 그리 섞어 마셔도 머리가 안 아픈 것으로 보아
소백산맥 술이 괜찮은 것 같다 하니 남전형은 '아이, 그럼'
자신이 발견해 낸 술이라며 만족스러워 한다.
명혜당이 건넨 칡즙 한 잔을 곁들이며 집을 나섰고,
우리 일행은 청명한 날씨에 고마워하면서
문경의 찻사발 축제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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