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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도산 전복죽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09. 8. 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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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오후,
어머니께서는 은근히 저녁 식사하러
대구로 내려왔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셨다.
홍도여행 가셨다가 사온 전복으로 죽을 만들어 먹이고 싶은 거다.
멸치도 두 박스 정도 사셨는데, 좀 나눠주고 싶었던 거다.
일단 전화로 내려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집 현관문 밖에서
천덕꾸러기로 앉아있는 오래된 식탁,
당시에는 30만원 정도를 주고 샀다는 식탁,
지금은 버려져 누군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집들이 때 와 보시고는 퍽이나 아까웠던 모양,
오늘 갑자기 기억이 나셨는지 다리를 잘라서라도(?)
차에 구겨 넣을 수 있다면 대구집으로 가져오면 좋겠다 하신다.
마침 다리가 분리되는 식탁이라서 쉽게 챙길 수 있었다.
마누라는 다리 네 개를 들고 나는 무거운 식탁판을 들고
대구집에 다시 조립해서 냉장고, 쌀독 옆에 갖다 놓으니
나무로 짜놓은 거치대보다는 훨씬 낫다. 기분도 좋아진다.
의자 두 개만 갖다 놓으면 잘 갖춘 식탁이 된다.

오후 자율학습 감독, 시험문제 출제 등
하루 종일 바쁘게 보냈더니 피곤함이 물밀듯이 찾아온다.
베개에 의지해서 삐딱하게 누워 테레비를 보는데
금방 반 수면 상태가 되어 침까지 질질 흘리고.....
아내는 어른들 귀가하시면 곧바로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고 국 끓이고, 돼지목살을 볶고.....
근데 부모님은 손님이 늦게까지 있다면서
저녁 9시를 넘어도 들어올 기미가 없으시다.
돈 버는 재미가 그리 좋으신가?
(그날 매상 확인하니 128,000원이었음. 원금 40,000원)

배가 너무 출출해서 전화를 거니
지금 막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하신다.
두 분이 사이좋게 스쿠터를 타고 퇴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조금 후 문밖이 소란해 지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어머니는 늦은 식사를 하게 된 것이 미안한지
왜 아직 저녁을 챙겨먹지 않았냐며 뭐라 하신다.
사실, 두 노인을 두고 젊은 자식이 먼저 챙겨먹는다는 게
아무리 봐도 도리와 예의가 어긋나는지라
배고픔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기다렸던 거다.

자, 드디어 저녁 시간
그 때 오간 얘기를 이곳에 공개한다.
"어머니, 홍도 어떠셨어요?"
"좋더라. 근데 아버지하고 같이 갔다면 아마 많이 힘들었을 거야."
"왜요?"
"아버지는 배멀미를 심하게 하고,
배에서 버스에서 노는 사람들 꼬라지를 못 보시잖니."
아버지가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 드신다.
"이 번에 이래저래 손해가 많다. 한 5,60 만원 정도 손해야.
2,3일간 장사 못했지. 내가 고향 갔다오느라 20만원,
엄마가 홍도여행 경비로 2,30만원 썼지.
이것저것 계산하면 손해가 많다."
어머니 왈,
"까짓거 돈 벌어 뭐하는데요?
앞으로 난 좋은 데 있으면 여행 다닐 거여."
"그래요. 어머니, 그 돈 벌어서 언제 쓰셔요?
건강하실 때, 틈나는 대로 자꾸 다니셔야 해요."

아버지의 식사 속도는 아주 느리다.
나는 벌써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두 숟가락 더 떠서 그것도 다 먹어 가는데,
아버지는 아직 반의 반도 못 잡수셨다.
느릿느릿 하시는 당신의 얘기로 더욱 더 늦어진다.
반주로 소주 한 잔 하시고, 돼지고기 안주를 아주 맛있게 드신다.
"엊저녁 니 에미가 홍도에서 돌아 왔기에 반갑게 맞았는데,
니 어머니는 날 그리 반가워하지도 않아.(악담을 워낙 말버릇처럼 잘하심)"
그러나, 조금 있다가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너희 어머니한테 내가 큰소리 칠 게 뭐 있냐?
가난한 집에 시집 와서 5남매 훌륭하게 키워서 다들 잘 살게 만든 에미한테
나는 그저 끽소리 안 하고 '입 꽉 다물고' 살아야지
감히 큰 소리 친다는 게 말이 되겠냐?"
"..........."
"내 주변에 있는 노인네들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당신은 그저 마누라한테 충성을 다하고 그저 '나 죽었습네' 하고 살아야,
나중에 대접 받을 수 있는 거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애.
참, 너희 엄마 대단한 사람이여, 넌 어떻게 생각하냐?"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이이잉~ 뭐가 맞어?,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사내새끼냐?"
웬일로 맞는 말을 하시는가 싶었는데 마지막 말은
완전한 반전이었다. 아내가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마치 예상이나 했었다는 듯이.^^

그 때, 유천 이원장의 전화가 왔다. 안부 전화다.
조금 있으니 채윤 아빠의 전화가 또 울린다.
지금 온식구가 감기가 걸려 고생하고 있단다.
형이 지어놓은 한약을 가지러 수지에서 분당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다고 한다. 조심해서 갔다오라 했다.

* * * * * * * * * * * * * *

아버지는 저녁 식사 하시자마자 방에 들어가 주무시고
어머니는 내일 아침 전복죽 만들 준비를 하시려고
아직껏 살아있는 홍도산 전복을 껍데기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이모님들이 요리한 전복죽을
생전 처음 먹어 보았다면서, 그 맛을 잊을 수 없으셨는지
홍도산 전복을 4만원 어치나 사 오셨던 것이다. 모두 15마리,
거실에서 내가 계속 졸고 있으니 아내가 요를 가져다 편다.
곧장 드러누워 코를 곯기 시작, 얼마를 잤을까?
새벽 5시경, 잠이 깨어 티비를 켜니
뇌수종증을 앓고 있는 53세의 총각이
72세의 노모의 보호 아래 겨우겨우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린다.
나레이터의 설명으로 봐서는 무슨 사고를 당했던가 보다.
노모는 5남매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죄책감을 갖고 산다 했다.
여기저기 버려지는 폐지를 주워 모아 한 달에 4,5만원의 돈을 만들어 쓰는 노인,
자신의 위암 수술 후의 관리는 뒷전이고 오로지 자식만을 생각한다.
자식의 대소변을 받아내기까지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자식이 자신보다 하루만 더 일찍 죽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죽으면 저 불구의 자식을 어찌할꼬 하는 마음이 눈물겹다.
모정은 저렇게 기력이 다해가면서도 뜨겁기만 한데, 자식들은 그저.....
왜 그리 눈물이 나오던지.....

어느새 티비 소리에 잠이 깬 어머니는
싱크대 위에서 전복죽 요리를 시작하신다.
아침 7시엔 또 구미로 올라가야 하는 아들 때문에
식사를 서둘러서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몇 번이고 주걱으로 저어 가면서 물과 불을 조절하고 있다.
처음 쒀 보는 전복죽이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다.
맛있었다. 아버지는 왜 이리 맛이 없냐며 투정을 하셨지만
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만큼 값진 게 있을까?
다 먹고 집을 나설 때도 플라스틱 통에 하나 가득 싸 주셨다.

지금은 다시 학교다.
우리반 아이들 자율학습하는 모습 볼라고
8시 30분 경에 와서 지금까지 학교에 있다.
조금 후면 대구에 또 가야 한다.
포항여고 재직 시절 함께 근무했던 김철근 샘이 며느리를 보는 날이다.
수성못 옆 '뉴욕뉴욕' 예식장에서 1시에 예식이 있는 것이다.
아마 많은 옛 동료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데 가면 늘 옛동료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동료들과 헤어지고 나서는 다시 아버지 사업장에 들를까 한다.
어머니가 커피라도 한 잔 타 주시면 그 커피값을
조금은 비싸게 치르고 와야겠다. 매상에 도움이 될 만큼!
오늘은 또 얼마나 매상을 올리실까?
메모 : 2009.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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