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 모처럼 고등학교 동기모임에 참여했다.
졸업 이후, 매달 22일(영신고 22회 졸업생이니까) 저녁마다
일정 장소에서 늘 만나온 고등학교 동기회,
그 역사도 어언 30년 세월이 넘었다.
박승로 변호사에 이어,
최석완 변호사가 회장을 맡게 되더니
소수의 이사진으로 구성하던 회장단의 틀을 깨고
가까운 동기들 다수(30여 명)를 대거 이사로 위촉한 것이다.
총무는 우리상조 수성점 대표 성호경이 그대로 맡고,
선생인 나도 졸지에 동기회 이사로 위촉이 되어
특별회비 10만 원을 내야했다.
적은 돈이지만 동기회 발전과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모두 기꺼이 낼 수 있는 돈 아니던가?
회장의 의도도 예상한 대로 다수의 동기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모임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수백 명이 졸업을 했지만 모임에는 10 명도 참여하지 않는
썰렁한 동기회여서는 곤란하지 않겠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나 또한 시골에 살다보니 동기회에 그 동안 소원했고,
익숙치 않아서 조용히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이왕 모일 바에는 확실하게 떼로 모여야 하지 않을까?
검찰청 옆에 있는 '상락' 한정식 식당에서
7시에 모여서 10시까지 음주와 담소를 하다가
일부 친구들은 포커, 고스톱 판을 만들어 놀고,
나는 그들의 돈독오른 모습을 소주 잔에 담아
입에 잔뜩 털어넣으면서 즐기고,
장순균 장학사는 문제교사들을 성토하면서
그 답답한 마음을 맥주로 달래다가.....
다들 그냥은 헤어지기가 조금 섭섭해서인지
범어로터리 주변의 '머큐리 노래방'으로 이동,
두어 시간 정도 더 즐기다가 해산했다.
많은 친구들이 중간에 도망을 갔다.
경기가 안 좋은 탓인지, 아니면 늙어서 그런지
패기도 옛날 같지 않다.
젊음이 없는 듯해 슬프다.
대리운전을 해서 귀가 길에 올랐다.
회장을 집에 태워다 주고 방촌동 집에 들어가니
아직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계시다.
만취한 아들을 보더니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라며
잠 자리를 펴 주신다.
'미안합니다. 어머니,
제가 술이 너무 취했지요?
잠시 자고 일어나 일찍 구미로 가야 되니
바로 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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