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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경주 주변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1. 12. 1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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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생일 나들이는 오랜만에 바다를 찾아가는 것으로 정하고 행장을 꾸렸다.

휴게소에서 점촌 동서의 차량을 우연히 발견, 전화를 하니 포항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했고

이내 우리를 찾아오더니 식사비를 계산하고, 처제의 생일 기념으로 용돈까지 챙겨주신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여하튼 우리 형부는 처제를 너무 잘 챙기신다니까."

아내는 싱글벙글 그저 기분이 좋다. 포항의 우산 형을 먼저 만나기로 했다.

 

우산형과 어울려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부대 주변을 잠시 돌아보기로 했다. '해룡사' 앞

 

우산 형의 덩치가 나보다는 좀 크다. 몸무게 2키로그램의 차이다.

 

 

우산형을 두고 친정오라버님같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 아내가 그 옆에 서니, 오누이 같이 잘 어울린다.^^

 

부대 안에는 유명한 일월지(日月池)라는 못이 있는데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서려있다.

해병 부대 안에 위치해 있어서 민간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못이라기엔 너무 얕아서 차라리 늪 같은 느낌을 준다. 연꽃이 필 때 다시 오면 좋을 듯 싶다.

우산 형도 보고, 사랑하는 제자 김중령의 얼굴도 여기서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강화도에 근무하는 김중령이 내년 1월 포항 해병대로 옮길 것 같다는 연락이 있었다.

 

 

 

 

 

우산 형과 헤어지고 오천읍을 경유하여 운치있는 지방도를 타고 장기읍성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포항에서 살 때만 해도 자주 오갔던 길이라 잠시 추억에 젖어보기도 했다.

 

장기면사무소 앞에 있는 척화비,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여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는 뜻을 새겨

쇄국의 의지를 강력하게 밝힌 척화비, 세계 열강의 압력을 끝내는 거부하지 못하고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서서히 열강의 소용돌이 속으로.....

 

장기읍성, 허물어진 성터도 이젠 복원이 되어 옛 모습을 갖추어 놓았으나 오히려 낯설다.

 

동해의 떠오르는 해을 향해 절하는 장소를 표현하고 있는 '배일대'가 성 입구 오른쪽 위에 놓여 있다.

 

 

 

 

 

장기향교,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는 게 고작이다. '장경각'의 현판이 희미하다.

 

 

 

 

 

사진 가운데 농토의 끝이 바다로 연결되고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신창 마을이다.

저 마을로 쳐들어오는 왜구들은 파죽지세로 이곳 읍성까지 단숨에 쳐들어 왔을 것이다.

성 안에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전쟁 수행능력은 어느 정도였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 읍성은 제법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천연요새임에 틀림없긴 한데,

약탈의 눈을 부릅뜨고 공격해대는 저들의 화력에 수비의 불리함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올해 개교 100주년 된 장기초등학교 앞 운동장에는 유서깊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장기에 유배 중일 때 심은 나무라고 한다. 후일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이곳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했으니 역사의 숨결이 숨어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장기읍성에서 멀리 내려다본 바로 그 신창마을에는 이런 곳이 있다.

이 마을 앞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의 냇물이 쾌재를 부를 것만 같다.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왔다고...... 다 받아주는 곳이기에 '바다'라고.....

자그만 아이 하나 모래 위에 인기척도 모르고 손가락그림에 열중이다. 아유, 귀여워!!!!

저 녀석도 더 자라면 어린 시절 바닷가 추억을 조근조근 이야기할 수 있겠지?

 

아이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바위를 배경으로 섰다.

우암 선생, 다산 선생 두 분 모두 가까운 이곳을 꽤나 여러 번 찾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도 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자라고 있었을까? 귀한 바윗속 생명!!

 

 

감포에 가면 늘 들르는 '호궁횟집'이 있다. 이번에는 회 대신에 대게를 시켜서 먹어보기로 했다.

작은 것 3마리를 60,000원에 사서 먹었는데, 둘이 먹기에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알맞은 양이었다.

 

대게의 등껍데기 안에 있는 짭조롭한 게장에 밥을 비비면 이렇게 달콤한 게장밥(?)이 된다.

 

입이 큰 대구가 얼음 속에 갇혀 팔려가기를 기다린다. 한 마리에 25,000원을 호가한다.

 

감포 방파제에서 항구 쪽으로 수시로 드나드는 목선의 움직임이 평화롭다.

 

제법 큰 크기의 멸치가 많이 잡혔다. 젖갈용 멸치란다. 어부들의 일손이 바쁘다.

노란바구니 안에 그득그득 담겨 차떼기로 팔려나간다. 만선은 즐거워!!!!

 

59톤짜리 트롤어선 위에 올라보았다. 뱃바닥은 나무지만 나머지는 모두 쇠로된 철선이다. 

 

 

 

10년째 알고 지내는 사이!! 아내는 그릇류의 생활도자기를 살 게 있으면

경주 민속공예촌까지 찾아가서 이 여인네 집에 들러서 사오는데,

돌아오는 길목인지라 잠시 들러 10만 원 상당의 그릇을 샀다.

아내의 생일선물을 사 주고 싶은 마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선택해 보라고 했더니

넙적한 청자빛 그릇과 컵 두 개를 잡았다. 누군가에게 드릴 선물용 컵도 샀다.

 

진평왕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들렀다. 오후의 햇살이 길게 빗길 무렵이라 운치가 더 좋다.

우리야 잠시 머물다 가는 뜨네기들이지만 저 두 나무는 왕릉을 지키는 충신들 같다.

 

 아버지께서는 엊저녁 어머니께서 담근 고들빼기 김치를 자랑하셨다.

곧 대구의 어른댁으로 가기로 하고 전화를 걸어 들르겠다고 하니 어여 빨리 오라신다.

삼겹살 두 근과 쌈용 채소를 좀 사가지고 들어가 어른들과 저녁 식사를 푸짐히 했다.

식사 중에 당숙어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부전화였는데 아버지께서 통화를 하시다가

내게 인사를 드리라며 바꿔주셨다. 그간 연락도 못드린 것 같아 못내 죄송한 마음 뿐이다.

혈액암 판정을 받으시고 그간 힘들게 병마와 싸워오셨는데 최근 안부도 여쭙지 못했으니....

동생들은 가까이 사니 틈나면 꼭 전화드리고, 당숙댁에 들렀으면 참 좋겠다.

 

어머니께서는 입시를 치른 손자의 합격을 위해 불공을 열심히 들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것 같다면서 다소 섭섭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셨다.

기도빨이 덜 먹힌 것에 대한 섭섭함이랄까? 그러나 기회는 또 오는 법,

 

식사 후 구미로 돌아가려 하니, 물김치와 고들빼기를 챙겨주신다.

아버지께서는 햅쌀도 많으니 그것도 챙겨가라며 인심을 또 후하게 쓰신다.

쌀까지 챙겨주는 것은 지나치다 싶지만 그 따스한 마음을 읽으니 기분은 좋다.

게다가 며느리한테는 친구들과 차라도 한잔 하라며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질투가 났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아마 그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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