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이름이 특이해서 금방 인지되는 사람, '여소녀'
몇 달 전, 구미낭송가협회 창립식에 처음 만난 여인, '여소녀'
그날의 기념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아내가 여소녀 회원님의 얼굴을 발견,
"어, 이 사람은 나의 고등학교, 대학의 동아리 후배같은데?"
오랜 세월 연락이 없다가 우연히 그렇게 알게 된 선후배 사이,
최근 두 번 정도 반갑게 만나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를 긴하게 나누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 같은데, 그 긴밀도가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덩달아 알게 된 나도 둘 사이에 끼어 선산의 독동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제 오후 4시 30분 경, 도립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도서관에서 논술교육을 이제 막 끝내고 나오는 여선생님을
납치라도 하듯 내 차에 태우고는 30분 거리의 독동마을을 향해 달렸고
단숨에 선산읍 독동 마을 입구에 닿았다. 겨울엔 해가 짧다.
서산의 햇살이 막바지 힘을 보여주고 있는 듯, 빛의 강렬함으로 긴 그림자를 만드는 시간
독동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독동(禿洞)의 반송(천연기념물 357호)이 인상적이다.
화장실 건물 같은데 담장이 너무 높아서 조화로움을 잃고 말았다.
바윗돌과 어울리게 하려면 바위 아래쪽의 위치에 기와를 얹었어야 했다.
'내가 뭘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냥 느낌일 뿐이다.^^
탁 트인 마을 앞은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데, 멀리 구미보가 보인다.
보가 완공되고 물을 가두기 시작하면 그 주변에 레저시설이 들어서고
심지어 수상비행기까지 날 수 있는 곳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감동일까?
역사처럼 면면히 흘러야 할 강을 막았으니 그 재앙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는 용서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와 닿을 뿐.
10년 전부터 조성하고 있다는 영남유교문화 진흥원 건물과 부지는
규모가 제법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선 한옥건물들이 하나같이 웅장하고,
곳곳에 심은 소나무(한 그루당 5,000만 원)들도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아서
뿌리 내리고 세월이 좀 흐르면 이곳 분위기는 한층 격조가 높아질 듯.
전통민화를 연구하는 곳도 있다.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여소녀님은 우리 부부에게 저녁을 사 주겠다고 한다.
'도개다곡묵집'이 유명하다는데 혹시 그곳을 아느냐고 묻는다
평소 묵을 좋아하는 터라 친구와도, 아내와도 가 본 곳 아닌가!
"좋지요. 제가 잘 아는 곳이고 마침 잘 됐습니다."
"혹시 저 때문에 두 분이 불편한 것은 아닌지요?"
"무슨 말씀, 여소녀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즐거운데요."
도개에서 소보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달리면
'도개다곡묵집'이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어설픈 듯 보이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도로리묵 손맛은 일품이라서 미식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서비스로 주는 배추전의 맛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선산 생곡리에서 세를 얻어 묵집을 운영할 때, 손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집 주인이 욕심을 내어 그 묵집을 인수받아 장사를 할 정도였단다.
여선생님이 사 주는 저녁 묵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구미로 돌아왔다.
그냥 헤어지지 섭섭해서 내가 차 한잔을 사기로 했다.
찻집 '다류원', 오랜만에 들러 우전 녹차와 대추탕을 주문,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두 여인네 사이에 낀 나였지만 조금도 낯설지가 않았다.
여소녀님은 텁텁하고 소박하며 정이 많고 정이 깊은 여인이었다.
억척부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헤어지기 전에 비닐주머니에 싼 무언가를 건네준다.
선배님과 나를 생각해서 반찬 몇 가지와 직접 만든 술을 주고 싶었단다.
아니, 이렇게까지? 여하튼 고마웠고 앞으로 또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비닐주머니를 열고 보니 고들빼기 김치, 무말랭이, 파김치, 나물장아찌(?), 귀한 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특히 술은 인삼, 구기자 등 온갖 좋은 성분이
무한정 들어있을 것 같은 약주였다. 이런 감동이 또 어디 있을까?
자랑질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이곳에 또 기록삼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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