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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시남' 커피숍, '정가네동산'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1. 6. 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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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모처럼 김천나들이에 나서기로 했다.

 김산 시인께서는 오늘 선약이 되어 있어서 만나지는 못할 것 같고,

언젠가 바람재들꽃에서 소개된 '시남'커피숍을 가 보고 싶다 했더니,

거기 가게 되면 내 얘기를 하고 차 한잔 마시라고 권하신다.

'시남' 커피숍이 있는 곳은 김천시내를 약간 벗어나 추풍령 쪽으로 가다보면

봉산면 태화리를 좀더 지나 신암리 입구로 들어서는 길이 나타나는데

이내 '시남' 커피숍 이정표가 보이고 3,4백 미터 더 들어가면 왼쪽 길가에 있다.

 

 카페에 들어가 보니, 젊은 처녀 대여섯 명이 재잘대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

우리까지 찾아와 자리를 차지해 앉으니, 남자 주인은 조금은 바빠진 듯?

주인이 와서 차 주문을 받기에 김산 시인님이 가 보라고 해서 왔다 했더니,

"그렇쟎아도 종인 형한테서 방금 연락 받았습니다. 우람별님이시죠?" 한다.

갸름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르고 잘생긴 이미지의 장년의 주인은 인상이 퍽 좋았다.

'바람재 들꽃' 카페를 얘기했더니 본인은 초창기의 멤버라면서 소개를 한다.

카페지기님의 보금자리인 '정가네 동산'을 꼭 한번 가 보고 싶다 했더니, 당장 정가네님께 전화를 걸어

오늘 우리집 손님이 그리고 갈테니 대기해 있으라고 말을 하는데 서로 격이 없음을 알겠다. 

 

 많은 시집들이 꽂혀 있는 서가와 주변의 가구 배치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주인의 독특한 안목이 느껴진다.

 

찻집의 모든 그림은 주인의 아내가 그린 작품이란다. 뭔지모를 그림세계가 느껴진다.

커피향과 어울리는 그림 같아서 발길을 들여놓은 이상, 떠나기 싫은 공간이 될 것 같다.

 

나무에 걸린 사연들이 뭔지 궁금해진다. '희망나무'라고 명명하지는 않았을까?

 

사용하던 카메라가 대여섯 개 책꽂이에 얹힌 것으로 봐서 주인은 사진 매니아임을 알겠고

아닌 게 아니라 사진 얘기가 나오니까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안목있는 말이라 놓칠 게 없다.

사진은 피사체를 대하는 사람들의 안목에 따라 그 생명력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카메라의 좋고나쁨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메라를 탓하는 것은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없다는 말도 곁들였다.

사진가들은 그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 독서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신선했다.

 

커피 필터로 조명기구를 감싼 것도 반투명의 조명효과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기에 적절하다.

 

병에 꽂힌 말라버린 연밥의 균형미와 줄을 타고 오르는 식물의 두툼한 생명력도 시선을 끈다.

그림과 병에 기대선 창비 시집들은 시를 좋아하는 손님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했다.

 

'시남'의 화장실은 '아름다운 화장실'로도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독특한 개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시남'이 무슨 뜻이냐 했더니, '시를 좋아하는 남자'를 줄인 말로도 통하고

동네 이름이 '신암리'인데 그것을 연음해서 발음한 것이라고도 설명을 해 준다.

주인은 아직 시인으로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시인을 꿈꾸고 있단다.

순수시보다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더 좋아한다고 했고, 유명한 누구의 시보다는

덜 유명할지는 몰라도 문** 시인의 시가 더 좋고 유명한 김**의 소설보다

같은 김천 출신의 김**의 소설이 더 호흡에 맞는다고 하는데 문학적 소양이 대단했다.

 

 '시남' 커피숍의 주인이 집을 짓고 남은 재료로 편지통을 하나 만들어 봤단다.

그의 아내가 적절하게 그림을 그려넣은 것이라는데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아 좋다.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 80-2번지가 그 주소라고 한다.

 

 

 

김천시 감천면 광기리 389-1 번지에 있는 정가네동산을 찾기로 했다.

'시남' 커피숍의 주인이 안내해 준대로 시내에서 10여 분 정도 벗어나니

벼르고 벼르던 '정가네 동산'이 눈에 갑자기 확 나타나는데, 

무릉도원과 이상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아내도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정가네님께서는 '시남'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다렸다면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처음 뵙는 미모의 사모님께서는 어느새 오미자차와 수박을 준비해 놓으셨다.

 

끈끈이대의 꽃, 온갖 종류의 나비들이 날아들고 있고 오랫동안 피어 있어서

정가네 사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며 자랑을 하신다. 기회되면 한번 키워 보란다.

 

 

아그배나무 그늘 아래 평상을 펴고 해가 질 무렵이면, 정가네님 두 부부는 이곳에서

차를 한 잔씩 하신다고 한다. 좌우에 뻗은 산을 좌청룡 우백호로 하고,

앞에 우뚝 선 작은 산이 안산의 형국이니 명당이 어디 따로 있냐 하신다.

여기가 바로 명당이고 묻힐 곳이라 하시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정가네님께서는

그야말로 신선의 풍모를 고스란히 갖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주하지 못하고 물방개처럼 전국을 휘젖고 돌아다니는 나로서는 그저 부끄러울 뿐....

 

저녁 식사하고 술 한잔 하고 가라는 말씀이 한없이 고마웠으나

아내의 몸상태를 생각하니 계속 머무를 수 없었다.

 

마침 김천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오 교장선생님께서 정가네 동산을 방문하셨기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옥잠화 피는 8월 경에 다시 한번 찾아올 것을 말씀드리고 빠져나왔다.

 

담도 대문도 따로 없는 정가네 동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운치가 넘친다.

좌우의 옥잠화가 시원스레 자라고 있고, 입구의 오른켠으로는 쥐똥나무가 나즈막이

일렬로 서서 낮은 담장처럼 왕성하게 자라면서 뿌리를 내렸다. 입구의 왼켠으로는

향기 짙은 치자나무를 50여 그루 정도를 심었는데, 지난 해 추운 겨울을 지내면서

힘을 잃고 시들었거나 죽었다고 한다. 혹시 모를 재생을 기다리는 중이라 한다.

 

현충일 오후를 아주 행복하게 보낸 우리 부부는 호국영령에 감사하면서

광기리 어귀를 벗어나 구미로 오는 길에 황혼의 빛깔이 참으로 좋은 지점에서

잠시 머물면서 하루의 보람을 잠시 정리하다가 잿빛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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