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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의 섬, 청산도 여행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1. 4. 2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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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만에 전라남도 완도군에 위치한 청산도에 다녀왔다.

청보리밭과 유채꽃이 봄바람에 쉼없이 넘실대고 일렁이던 곳,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과 거기에서 본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아침 6시 30분에 집을 출발하여 완도까지는 약 400킬로미터

남성주 휴게소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쉼없이 달려

10시 50분에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청산도행 배표를 구하니 출항 오후 1시, 귀항 6시 40분 배다.

섬에 일찍 도착해서 좀더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배편도 마음대로 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에라, 승선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주변을 좀 어슬렁거려 볼까?

 

 터미널 맞은편 언덕에 위치한 공원으로 올라가서 조망해 본 경치다.

 

멀리 완도와 신지도를 연결한 신지대교가 보이고, 다리 너머로 멀리 보이는 섬은 고금도일 것이다.

 

 

배에 승선하기 전, 터미널 앞 식당 상화식당에 들러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단체 손님들로 들끓었는데 해산물 중심이라 그런지 대체로 음식이 짰다.

 

13:00시, 드디어 청산도로 향하는 배에 500여 명의 승객들이 승선!

 

 

50분 정도 뱃길을 달려 청산도에 도착하니 제주도만큼 바람이 많다. 섬의 특징이리라.

 

 

봄바람에 넘실대는 유채밭에 한 여인이 등장하니 섬하늘이 더욱 돋보인다?

 

샘이 난 사내가 또다른 유채밭에 들어가 자세를 잡았으나 왠지......

노란 유채꽃과 파란 점퍼가 보색을 이루어 강렬하긴 한데, 묘한 유채향에 머리가 아프다.

 

완도군이 주체한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가 4/8부터 4/30까지 계획되어 있어선지 

안내도우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친절하게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청산도와 축제관련 팜플렛도 배부하여 자세하게 안내를 해 주고 있었다.

1코스부터 11코스까지 슬로길이 개발되어 천천히 걸어서 답사할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들고, 길 위엔 꼬물꼬물 움직이는 듯한 파란색 화살표를 표시해 놓아

답사객들이 방향을 잡고 걸어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원작 이청준, 각색 김명곤)를 촬영한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

배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오면 닿을 수 있는 이곳은 이미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소리꾼(김명곤 분) 유봉이 의붓딸 송화(오정해 분)와 저 끝에서 근접거리까지 걸어오면서

무려 5분 30여 초 동안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1993년,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인 '서편제'의 가치가 새삼 느껴지는 곳이다.

섬에 어울리지 않는 서구식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봄의 왈츠'란 드라마의 세트장이었단다.

 

5.7킬로의 1코스를 걷고 있는 중에 내려다 본 아름다운 풍광,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인다. 

 

서편제길을 지나 화랑포길로 접어드니 늙수구레한 농부가 쟁기질을 하고 있는데,

소의 힘이 워낙 세서 그런지 거침없는 속도로 밭고랑을 내는데, 농부는 따라가기 바빴다.

 

 1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엔 슬로장터가 있어서 땀도 식힐 겸,

맛좋은 막걸리 한 되, 두툼한 부추전을 하나 주문해서 아내와 나눠 먹으니 이보다 더 즐거우랴.^^

막걸리 한 되를 거의 혼자 다 마신 셈인데, 이 세상은 이미 다 내것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후의 답사는 술기운에 더욱 흥겨웠고, 어깨춤이 절로절로, 노래도 흥얼흥얼!!

 

이렇게 생긴 화살표가 수도 없이 이어지는데, 넘실대는 바다를 닮아 격에 어울린다.

 

2코스 '사랑길', 바다와 면한 낭떠러지 위에 이런 길이 나 있어

남녀와 호젓하게 걸으면 제격이긴 하나 좌우에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들은

담쟁이 등 덩굴식물의 공격을 받고 있는 고통의 현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장을 기어올라야 할 담쟁이가 소나무 등걸을 타고 배배꼰 상태에서

끝없이 수액을 빨아먹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은 무겁다.

소나무 보호 차원에서 대책이 하루빨리 세워져야 하리라.

전국토 산림의 60%을 차지하던 소나무가 이젠 20%밖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더 이상 강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 멀리 보이는 범바위전망대까지 답사를 하면 좋겠다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는 게 아쉽다.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했다. 좀더 일찍 섬에 들어왔더라면......

 

다랑이논에는 보리가 한창 자라고 있고, 곳곳에 보이는 유채밭은 청산도 여행에서 '약방의 감초'다.

 

드디어 춘흥을 이기지 못해 노래를 터뜨리고 말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건말건

가곡 '보리밭'을 부르고 있는 장면이다. 막걸리에 취하지 않고는 이럴 수가 없다.

명혜당은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기도 했으나 끝 부분에서 작품을 베렸다.^^

 

바람이 많아서 밭도 웬만하면 돌담을 쌓아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곳에는 제주도처럼 돌담을 쌓아 무덤을 만든 곳도 있다.

 

마을 안에 있는 민박집, 달팽이 그림 위에 '초가집민박'이라고 쓰여 있다.

'슬로시티 청산도에 왔으니 쉬엄쉬엄 다니다가 이런 곳에서 하룻밤 유하고

갈길을 가도 괜찮을 텐데 뭘 그리 급히 서두르냐?'는 민박집 주인의 힐난이 들리는 듯해서

걸음속도를 많이 늦췄다. 일상에 쫓겨 사는 우리네 삶이 서글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너 시간 정도의 답사를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지점, 마을의 이름표가 강렬하다.

 

'느리게 깊게 걸을수록 아름다운 청산도 슬로길 100리'란 문구가 와 닿는다.

불과 20리 정도만 걸어 본 답사길이라 아쉽다. 다음에 다시 찾아 나머지 코스를 걸어봐야겠다.

 

뱃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거꾸로 11코스 안통길(청산도의 가장 번화한 거리)을 걸었다.

옛날의 청산면사무소 건물이 안통길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올라가 보니

청산도의 역사, 자연, 생활을 설명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청항에 우뚝 선 청산도탑, 이곳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다. 범바위 전설과 관련한 호랑이의 형상이 아닐까?

아, '푸른 하늘'에, '푸른 산', '청천'에 '청산',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 석자 '청산도'다.

 

청산도를 떠나 완도로 돌아가는 배의 갑판 위에는 바람이 차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저녁 7시가 약간 넘은 시각에 보여주는 일몰 장면인데, 금방이라도 섬위로 꼴까닥 넘어갈 듯하다.

그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소안도나 보길도가 아닐까 한다. 몇년 전 보길도를 찾았던 추억이 떠오른다.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가지만, 슬로시티 청산도의 강렬한 인상은 가슴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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