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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일대(늦봄학교, 동백나무 숲)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1. 4. 25.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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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에서 본 청보리와 다른 키작은 보리가 아침이슬을 머금고 강진의 한 들녘에 한창이다.

 

강진만의 갯벌, 썰물 때라 갯벌의 운치가 고스란히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백련사로 오르는 길, 좌우의 동백나무 가로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늦봄학교 입구다. 늦봄은 문익환 목사님의 호다.

설립 취지는 “물질지상주의와 이기주의, 소비와 오염, 경쟁과 상대적 소외, 분단과 갈등”으로 진단되는

기성의 이 시대를 반성하면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 통일된 민족, 상생과 평화의 대동세상을 열어갈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생명과 영성 교육, 자율과 공동체 교육, 통일과 평화 교육이라는

교육 철학에 따라 아이들이 자기의 개성과 능력을 찾아 밝히 드러내는 학교,

스스로 나누고 섬김으로 더불어 평화를 가꾸는 학교, 역사와 인류사회의 창조적 주인이 되는 학교,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를 이루어 보고자 뜻을 모은 것이 그것이다.
  늦봄 문익환 님을 큰 스승으로 하여 그 분의 사랑, 정의, 영성, 민족의식, 통일과 평화에의

열정을 본받는 의미에서  “대안학교 늦봄 문익환 학교(약칭 늦봄학교)”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온 생명·참 나를 밝히 드러내어라’   <생명과 영성>

스스로 서고·더블어 섬겨 행복하여라’  <자율과 공동체>

‘역사의 주인이 되어 평화세상 가꾸어라'    <통일과 평화>

  " 그래 찬양·고무했다. 맨날 욕하고 그러면서 통일이 되겠어? 상대방의 좋은 점을 자꾸 찾아내 찬양 고무해야 하지 않겠어." (1989년 6월 26일. 방북사건의 첫 공판)
"분단 45년을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못났으면 남들이 들어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어놓은 선, 그게 뭔데 지우지 못하고 1백만의 군대를 남쪽과 북쪽에서 무장시켜 그것이 지워질세라 지키고 있는 것은 민족적인 수치이다....45년 비극의 수치를 씻어내고 45년 분단의 비극을 청산하고 싶어서 갔다 왔다. 무엇이 잘못인가?"
   “이 민족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도시민과 농민으로, 고용주와 피고용자로 등등 사회학적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크게 보아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려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회의 주종관계를 일소하는 일을 민주화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그대로 지배자-피지배자로 분열되어 있는 민족을 통일하는 일입니다.” (방북 관련 재판 상고이유서에서)
   "큰 장벽을 허물기 전에 작은 장벽부터 하나하나 허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뜻을 세우기 전에 작은 뜻부터 하나하나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통일을 이루기 전에 작은 통일부터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일된 통일운동이 남과 북, 해외, 이렇게 삼면에서 분단을 무너뜨리려고 같이 조여들어 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백련사길을 잠시 오르다 보면 이정표와 함께 왼켠으로 보이는 늦봄학교

아스팔트 길에서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 있는 소규모의 소박한 학교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명당중의 명당이라는 생각이다.

 

 

동백꽃이 핏빛으로 후두둑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1962년부터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인데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800미터 가량의 산책길이 있어 매력 만점이다.

규모가 5.2헥타아르(만 5천 평 정도)인 만큼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아름드리 후박나무와 어우러져 동백나무는 붉은 꽃을 절주변에 그득그득 피워내고 있었다. 

절 주변에 동백나무 숲이 많은 이유는 산불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던데.....

 

 

동백나무 지팡이를 가볍게 짚고 담쟁이 기어오르는 석축 앞에 서니 카메라가 또 나를 포착하는구나.

 

어찌 그렇코롬 얄궂게 웃는다요, 잉? 웃으라는 카메라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어서리......ㅎㅎㅎㅎ

 

배롱나무의 꼬부랑 가지 너머로 강진만이 아득히 보이고, 갈매빛 저 산을 넘으면 다산초당이 있으리라.

 

 

사찰지키미 백구는 새끼 낳을 때가 다 되어가는지 아래배가 추욱 처져있는데

꿈틀거리는 새끼들의 뱃속아우성을 듣고 있기라도 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햇살 아래 누웠다.

 

석축의 이음새가 정교하게 맞물려 세월이 흐른 뒤 또 하나의 명소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미색 점퍼가 어색한 중년의 사내, 만덕산 아래 서서 뒷짐을 짚었다. 뭐가 그리 심각해?

초의선사가 있는 백련사를 찾아가서 차를 한잔하고 초당으로 돌아갈 때의 다산 선생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문화적 가치가 물씬물씬 풍기는 장소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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