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무애산방의 단톡방에 산대장 휘동이가 곧 지리산 천왕봉 등정 계획이 있으니 함께 갈 친구들은 참여 의사를 밝히라는 메시지를 올린 바 있다. 얼마되지 않아 모두 11명의 동기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1박 2일의 지리산 천왕봉 등산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추진되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에서 로타리 대피소까지 2.8킬로미터를 오르고, 다음날 새벽 로타리 대피소를 출발하여 천왕봉에 이르는 2킬로미터를 오르는 지리산 등정 최단거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지리산 입구까지는 세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접근하면 되고 예약해 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셔틀버스를 타고 여유있게 등산 출발지점인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부근까지 가게 되어 있었다.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순균이를 만나 아침 10시쯤, 대구 3호선 전철 매천시장역 앞에서 항도와 병우를 태우고 88고속국도 논공휴게소까지 가는 데는 불과 2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논공 휴게소 화장실 뒤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눈에 쏙 들어와서 사진에 담아 보았다. 하중도의 연두빛 푸르름, 하늘과 구름모양이 모두 다 시원시원하다. 오늘 우리 친구들의 산행을 다소곳이 응원해 주고 있는 듯하다.

8월 25일 10시 30분, 11명이 논공휴게소에서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고 현재의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있는 장면이다. 공동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추가로 미리 구입해 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산대장 휘동이의 치밀함에 걸맞게 친구들의 여러 의견이 종합되고 있는 것이다.

세 대의 승용차(수제, 화균, 나)에 나눠 타고 두 시간만에 예약해 둔 식당에 도착했다. 타고 간 승용차는 전용주차장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가 점심 식사를 했다. 주인장의 손맛이 좋은 덕에 꽤나 흡족한 식사였다. 산채비빔밥에 막걸리 한두 잔 기울이니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산행을 앞둔 만찬의 즐거움을 만끽한 셈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경상남도 환경교육원까지 가는 차 안의 풍경, 비록 10분 가량의 승차였지만 제법 먼 거리를 단축하는 셈이어서 초로에 접어둔 우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더운 여름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3.3킬로미터 한 시간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힘든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 버스 안은 우리 일행 11명이 전부였다. 버스요금은 1인당 2,000원!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미터)에 오르는 탐방로가 매우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는 안내문,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우리가 선택한 최단거리 코스(환경교육원 - 로타리 대피소 - 천왕봉)를 자세히 보니 난이도가 가장 높은 '매우 어려움'으로 되어 있어서 과연 어느 정도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천왕봉 오르기를 자신의 집 드나들 듯 한다는 수제한테 며칠 전 물어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내 체력에 과연?' 그러나 한편으로는 히말라야, 알프스, 로키의 산자락을 이미 오른 바 있는데 아무리 어렵다 한들 못 오를 리 있겠는가 싶다. 지나친 자신감? 아니면 오만함?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과 남녀 친구들 10여 명과 3박 4일의 천왕봉 등정을 시도했다가 고생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비를 만나 꼼짝 못하고 중산리 마을에서 민박만으로 이틀을 지내다가 비가 아직 그치지 않고 있음에도 무리한 산행을 시도, 칼바위 어느 지점에선가 끝내 길을 잃고 몇 시간 헤매다가 고생끝에 겨우 찾아간 장터목 산장, 그 안에서 자지도 못하고 빗속 야영을 하면서 꾸역꾸역 밤을 지샌 뒤, 천왕봉 등정은커녕 곧바로 하산해야만 했던 쓰라린 경험이었다. 그 이후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서인지 지리산 천왕봉을 외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초로의 나이에 고딩 동기들과 등정을 시도한다는 자체가 이제는 나에게 퍽 의미있는 행위요 역사가 될 것 같다.


동기회장 순균이가 제작한 현수막을 펼쳐서 기념 사진을 먼저 한 장 찍었다. 모두 12명이 함께하기로 했는데 영주의 시인 규태가 가까운 지인이 상을 당해 부득이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통보해 와서 11명만 참가해 아쉬움을 남겼다. 등산에 동참하지 못한 것도 섭섭한데 오히려 미안함이 앞선다며 20만냥의 후원금까지 보내주었다.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다. 약속을 못 지킨 것에 대한 미안함을 벌금으로 내겠다는 것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산의 매력은 그것을 이루는 계곡이 얼마나 물이 많고 깨끗한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한다. 지리산은 더 말해 무엇하랴.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 계곡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은 시조로 표현한 바 있다. 지리산이야말로 진정한 무릉도원임을 이미 그렇게 밝힌 거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로타리 대피소까지의 2.8킬로미터의 산행길, 보통의 경사도를 보여주는 등산로지만 간간이 땀도 식힐 겸해서 쉬어야만 하는 우리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목적지에 도달할 것을 믿기에 힘이 들고 땀이 흘러도 그저 즐겁기만 하다.

화균이 각시인 오여사의 정성이 느껴지는 과일 도시락이 우리들 앞에 펼쳐졌다. 메마른 갈증을 풀 수 있는 시간에 펼쳐진 도시락인지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금방 없어지고 말았다. 화균이는 좋겠다. 마누라 사랑을 듬뿍 받아서 좋겠다. 누구누구는 거의 혼자 살면서 홀애비 냄새만 풍기고 있는데, 아내 사랑 듬뿍 받는 화균이는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천왕봉을 향하고 있는 등산로는 조릿대투성이었다. 숱한 산사람들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품고 때로는 지우기도 하면서 등산로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저 조릿대의 기세와 왕성함이 우리들을 압도하고 있는 듯했다. 가끔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야 지나가도록 너그럽게 양보하면서 이 길목만큼은 굳건히 지키고 말겠다는 듯 서로를 엮어 꼿꼿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오가는 산객들 땀냄새를 맡으면서 성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릿대 옆을 지나면서 저들의 독특함과 강인함을 한껏 추켜세워고 싶은 것은 왜일까?

아리랑고개 쉼터에서 우리들은 또 한 번 쉬기로 한다. 목표 지점까지 1.1킬로를 남겨놓은 지점이다. 언젠가 화균이가 이곳 쉼터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산림공무원에게 발각되어 크게 벌금을 물릴 뻔한 사건을 언젠가 수제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오늘은 휘동이가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면서 한바탕 웃고 말았다.

고동색 페인트칠을 한 배낭걸이 구조물이 눈에 띈다. 무거운 배낭은 다 여기에 걸어두고 잠시 쉬다가라는 배려일 게다. 힘들게 여기까지 올랐으니 그대들은 충분히 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드디어 오늘의 목표 지점인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했다. 얼핏 봐도 산장 시설 치고는 좋아 보였다. 지리산의 여러 대피소 중 가장 훌륭한 시설을 갖췄다고 한다.

로타리 대피소 앞쪽에 세워진 이정표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휴식 공간 또한 산객들의 피로를 잠시나마 풀어줄 수 있는 곳이다. 제대를 얼마 앞둔 해병대원 세 명도 그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해병대 출신 화균이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는데 후배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가득했다. 나 또한 2년 전에 별을 달고 해병대 장군의 반열에 오른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를 아느냐고 한 병사에게 물으니 훈련병 시절에 훈련단장님이었다면서 반가워 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제자가 별을 단 이후, 특별한 연락을 주고 받지 못해 요즘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긴 하다. 나와는 띠동갑이니 그도 벌써 50대 후반이다. 삼정검을 찬 그의 늠름한 모습을 직접 보긴 쉽지 않을 테고 텔레파시가 통해서 머지않아 그의 전화나 메시지라도 받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헌아, 잘 지내지? 보고 싶다.'

로타리 대피소의 내부, 쾌적한 시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용인원 18명, 오늘밤은 우리 일행 11명만이 머물게 된다.

대피소는 1층과 2층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1층은 독립공간으로 2층은 개방공간으로 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선택하게끔 했다. 코를 심하게 곤다고 말하는 친구들은 독립공간을, 나는 2층의 개방공간에 자리를 확보하고 여장을 풀었다. 바닥은 전기 난방이고 온도 조절까지 가능했다. 화장실은 건물 내에는 없고 실외 계단을 내려가서 별채에 마련되어 있었다.

대피소에서 판매하는 안전용품, 비상식품 목록이다. 산객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배낭을 비롯한 모든 짐을 대피소에 부려놓고 우리 일행들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법계사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법계사에 대한 인터넷의 기록을 여기에 옮겨 본다.
해발 1,450m고지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도에 자리잡은 사찰이며, 위치상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과도 인접해있으며, 천왕봉 등반 최단코스인 중산리 코스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의 쉼터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1405년에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 때 불탄 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이 준공되어 절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삼층석탑이 있으며, 절 뒤에는 암봉(巖峰)과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이 절은 일본과 묘한 관계가 있는 절로, 예로부터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라고 하여 여러 차례 왜적이 침범하였다. 고려 때 왜적 아지발로(阿只拔屠)가 이 절에 불을 지르고 운봉전쟁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은 일화는 심심찮게 이야기되고 있다.
참고로 법계사가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은 태백산의 망경사이며 법계사보다 20m 정도 더 높다.



법계사 또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주된 법당임을 보여준다.



보물 473호 법계사삼층석탑, 가느다란 철사로 탑 사방으로 고정해 놓은 듯해 보이는데 눈에 매우 거슬렸다. 커다란 바위를 기단 삼아 자연석을 3층으로 쌓아올린 자연스러움 그 자체가 이 보물의 격조일인데,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녹슨 철사가 굳이 필요했을까? 탑신이 바람에 날아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왜 그랬을까?



법계사를 둘러보고 내려와서 출출한 배를 채우는 시간이다. 순박이가 삶아온 많은 양의 수육을 상근이가 준비한 쌈채소로 싸서 한 입 가득 넣고 먹을 때의 그 포만감은 모두가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이었다.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겨 좋은 공기 마시면서 가까운 친구들과의 정을 나누는 시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자, 이제 저녁을 배불리 먹었으니 일몰 장면을 감상해야 한다. 산장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 헬기장으로 쓰이기도 하는 지점에 서니 서쪽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었고 구름이 머금은 붉은빛이 그 여운을 남기고..... 가장 높이 보이는 곳이 천왕봉이란다. 내일 새벽, 그곳까지 올라 새벽의 여명을 충분히 즐기다가 조금 전 자취를 감추었던 그 해를 다시 기분좋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일 새벽 2시 30분부터 등산을 시작해서 약 2시간 또는 2시간 30분 뒤면 다다르게 될 천왕봉, 벌써부터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최초의 심야 야간산행에다가 천왕봉(1915미터)을 처음 오르게 되는 역사를 남기게 되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리라.

수제는 공인회계사란 직업을 갖고 평생을 산 친구이지만 꽤 오랫동안 독특한 사진작가로서의 위상도 잘 보여주고 있다. 난초와 야생화에 대한 사랑이 매우 깊었고 최근 몇 년간은 일출 장면을 주로 사진에 담기 위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전국의 산과 들,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다니는 열정이 계속되고 있다.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위험한 야간 산행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블로그 <조샤프의 산중유감>을 보면, 최근 5개월간에 걸쳐 대야산, 황장산, 월악산, 송황병산, 신불산, 점봉산, 속리산, 조령산, 민주지산, 함백산 등지를 다니면서 찍은 사진이 엄청나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필생의 작품을 하나 남겨 보겠다는 의지와 예술혼이 없으면 엄두도 못낼 일을 그는 하고 있는 것이다.

일몰이 진행될 무렵의 열사흘달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이틀 뒤면 완벽한 보름의 만월이 될 것이라서 내가 느끼는 천왕봉 등정의 기대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을 밟게 될 희열감을 예고하고 있는 달 같아서이기도 하다. 이울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이내 이울고 마는 달의 운명이나 우리 사람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저녁 9시가 되면 산장의 불은 모두 꺼진다고 했으니 취침 준비를 해야 한다. 이불도 베개도 없지만 어설픈대로 산장의 딱딱한 바닥에 몸을 눕혔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이 든 것은 친구들의 코 고는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난 뒤였던 것 같다.

법계사 앞의 이정표 앞, 천왕봉까지 2킬로 거리, 매우 어려운 할딱고개라고 할 정도로 경사도가 급하다고는 하는데, 과연 끝까지 잘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마음 다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순균이가 먼저 가고 내가 바로 뒤를 따라 걷기로 했다. 우선 우리 두 명이 먼저 출발하면 일행들이 곧 뒤따라 올 것이다. 출발시간 02시 30분

최근 순균이는 무릎 관절에 이상이 있어서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지리산 산행에 동참하기 위해 의사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특별 비상약 처방을 받고서 지리산 등정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상 투혼을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자신 때문에 혹 친구들의 등산 속도가 느려지지 않을까 해서 일행보다 먼저 출발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었다. 동기회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먼저 생각하는 그 배려와 정성에 큰박수를 보낸다. 하루빨리 회복하길 바란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나는 평상 쉼터는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서 등산객들의 피로를 덜어주고 있었다. 더구나 야간 산행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등산객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돌 많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극도로 지쳐있을 때, 적절한 위치에 만들어놓은 쉼터야말로 지리산 국립공원 당국의 최고의 서비스임에 틀림없다.


새벽 조명을 받은 산오이풀의 자태, 잠을 깨운 미안함과 동시에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수줍음이 느껴진다. 수제와 휘동은 지리산 산행의 목적을 산오이풀의 군락지를 찾아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경사가 심한 너덜지대의 돌들을 밟고 또 밟으며 오르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스틱에 의지하여 아래만 처다보면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기에 바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선가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희열감이었다. 누구는 이게 바로 오르가즘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희열로 작용한 것이다. 10년 전 몽골 여행에서 보았던 한밤중의 별자리보다 매력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평평한 대지의 밤하늘에서 보는 별보다는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 나무숲 너머로 드러나는 별들의 모습, 특별히 은하수의 물길까지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더 큰 매력으로 작용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저 별들의 향연은 축시에서 인시로 넘어가는 시점의 밤하늘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출시간이 6시 경이니 좀더 늦게 3시 30분에 대피소에서 출발해도 넉넉하다는 친구의 의견도 있었지만 한 시간 더 당겨서 등산을 시작했던 계획이 주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더 날이 밝아지게 되면 곧 사라지게 될 저 별들인 만큼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겨야 하리라.

천왕봉에 거의 다다른 지점, 우리들은 계단에 걸쳐앉아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저 아래 비치는 불빛은 중산마을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 같다. 잠시 후, 산 아래에서 들려오는 법계사의 종소리는 새벽놀이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있는 것 같았다.

자,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사진으로만 수없이 보았던 정상석 앞에 직접 섰다. 감개무량하다. 남들은 수도없이 올랐을 테지만 나는 생전 처음 이곳에 올랐다. 한라산(1950미터) 정상도 2021년 9월에 처음으로 오른 적이 있고, 그 다음으로 해발이 높다는 지리산 천왕봉도 올랐으니 그 성취감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최고봉 백두산도 오른 바 있으니 우리나라 산의 해발 서열 1,2,3위까지는 다 정복한 셈이어서 그 다음 목표는 설악산 대청봉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갔다 왔다는 그곳, 난 아직까지도 오르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그 정상을 밟고 말 것이다.
천왕봉 주변은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기가 느껴지는지 다들 바람막이 옷을 배낭에서 꺼내기 바빴다. 나도 바람막이용 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견딜만 했다.

휘동이가 준비해 온 바람막이 키세스 은박지, 그 속에 들어가 바람을 피하려는 친구들의 모습들이 참 정겹다. 체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의 표현들이라 해석하도 좋겠다. 키세스의 주인은 친구들을 위해 건네주고 본인은 대신 하얀 비닐우의를 입고 바람을 막고 있다. 배려하는 마음들이 훈훈하다.


동쪽하늘에 붉은 빛이 나타나면서 여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일출 구경 자체도 좋지만 일출 전의 여명의 시간이 오히려 더 감동일 수 있기에 그 모든 순간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시간인 거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다 좋다. 이 세상 어디에도 지금 이순간에 느낄 수 있는 감동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소중한 만큼 맘껏 즐겨야 하리라.


이제 여명은 거의 사라지고 일출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네 친구들은 아직도 키세스 안에서 초콜릿처럼 몸을 감싸고 고개만 내밀고 있다. 우의를 입은 휘동은 정상석 위에서 사진 찍는 나를 은근히 바라보고 있다.


서쪽으로는 영봉들의 자태가 구름 속에서 부드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저 멀리 구름에 반쯤 가려진 노고단(1507미터), 가운데 지점의 반야봉(1732미터)을 비롯해서 많은 봉우리들이 유장하게 이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지리산 천왕봉의 볼거리라 아니할 수 없겠다. 차라리 일출보다 더 귀한 장면인 것 같아서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다.





순균, 화균, 병우, 나, 이렇게 넷이서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에 붙어서서 셀카로 기념사진 한 장을 더 찍는다. 셀카봉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 사진은 상근이가 찍어준 사진인데, 나는 주인공이고 주변의 인물들이 엑스트라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일출 직후의 정상 부근 어느 지점에서 산오이풀을 앞에 두고 산 아래쪽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들쭉날쭉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듯한 곡선의 미는 어디론가 도도하게 흐르면서 물결치는 듯하다.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안개와 구름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친구들을 잘둔 행운아다. 친구들 덕분에 이곳을 찾았고, 이곳에서 이렇게 행복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일출 장면을 보았으니 이제 하산을 시작해야겠다는 듯, 몸을 일으켜서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천왕봉 등정기념 사진을 하나 남겨야 한다. 역광 사진이라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아 아쉽다.

해가 뜨고 난 뒤, 천왕봉을 뒤로하고 하산하면서 찍은 어느 한 지점의 사진인데 현재 시간 6시 34분이다.


고사목 사이로 보이는 희뿌연 안개는 아직 아랫세상의 복잡함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저 고사목의 정체는 무엇인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주목일까?

하산하다가 신라의 대학자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이곳을 찾아 지팡이와 신발을 내려놓고 사색에 잠겼다[孤雲崔先生杖屨之所]고 하는 문창대 위에 서서 기념 사진 하나 남겼다.

천왕봉에서 로타리 대피소까지 내려오는 데는 약 1시간 3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러나 몹시 시장했다. 엊저녁 항도가 먹으라고 두 개씩 준 초코파이를 천왕봉 위에서 다 먹었는데도 허기를 달랠 수 없었다. 식사 전에 왕복 4킬로의 정도의 거리를 난이도 최고의 등산을 했으니 오죽하랴.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덥혀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로 하고 부지런한 몇몇 친구들이 벌써부터 바빴다.

우리 아침 식사 테이블 옆에는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분들 세 분이 앉아 주먹밥을 맛있게 들고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말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금방 마음이 통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보다도 대체로 두 살이 더 많은 형님뻘들이었다. 수시로 이 지리산을 오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노란 샤쓰의 주인공은 벌써 스무 번째 지리산 종주 경험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우리 주변 어디에든 우리보다 더 잘난 사람이 늘 있고 더 차원이 높은 고수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이 분들을 통해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어제 올랐던 길로 다시 원점 회귀,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입구로 돌아가기 위해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내려가고 있지만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오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안녕하세요' 다정스레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아리랑고개 쉼터까지 내려왔다. 먼저 내려간 순균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곧장 내려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들은 그냥 쉬기로 했다. 쉬어야 할 곳에서 쉬는 것도 산에 대한 예의 아닌가?

잠시 쉬는 동안 셀카 한 장 남긴다. 옆의 친구는 사진작가인 수제다. 일출장면 사진을 찍기 위해 산을 오를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올라야만 하는 운명의 사나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카메라는 물론, 음식물 챙기랴, 버너 코펠 챙기랴 등등해서 배낭의 무게가 엄청났는데 그걸 말없이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오른쪽 허리춤에는 땀이 날 때마다 이용하는 긴 수건이 늘 걸려있다. 속도를 조절하면서 묵묵히 걷는 그 특유의 발걸음은 아직도 그의 체력이 대단함을 증명해 주고 있다.

드디어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입구에 도착, 하산을 마쳤다. 내려오는데 약 두 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생각보다 다들 잘 걷고 빨리 내려왔다. 셔틀버스 출발시간 11시 20분까지 아직 많이 기다려야 했을 정도다. 그 차를 타고 내려가서 전용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우리 차를 타고 다시 점심을 예약해 둔 식당에서 닭백숙, 오리백숙, 옻닭백숙 요리를 맛봐야 한다.

셔틀버스 정류장에 걸터앉은 친구들의 모습들,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걸은 걸음수가 약 17,000보인 것으로 보아 제법 노익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참 대단했던 우리들이었음을 스스로 격려하고, 또 다른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산대장 휘동 이하 모든 친구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산행을 모두 끝내고 부담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시간, 음식도 맛있고 풍성한데다가 <천왕봉의 집> 식당 주인의 친절함, 가성비까지 가미되니 다들 만족감 최고였다는 평가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식당 측에서 마련해 준 물놀이 장소로 움직여 보자. 흐르는 물에 잠시나마 몸을 담가 지친 몸을 되살려 보는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든 친구들은 시원한 물속으로 첨벙, 그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었다.
순균이 왈, '난, 지금 천왕봉 기를 받아 통증 하나 없고 몸이 새털같이 가볍다'고 했고 휘동이는 ‘천왕봉의 집 나물반찬이 참 맛있었는데 남겨둔 게 아깝다’고 했다.^^


차를 몰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 논공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시간, 점심을 먹은 뒤의 식곤증 때문인지 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조수석에 탄 순균이가 끊임없이 말을 걸면서 정신을 차리도록 했기 때문에 무사히 휴게소까지 올 수 있었다. 순균아, 고마워.
‘산대장 휘동, 설악산 대청봉 등정 계획 없나? 혹시 있으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내맘 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