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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여행 2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26. 5. 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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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았으나 비가 내리고 있다. 쾌청한 날씨라면 리장의 대표적인 관광지, 옥룡설산으로 향해야 할테지만 오늘 같은 날은 가볍게 갔다올 수 있는 가까운 관광지를 선택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유단장이 안내하는 관광지가 동파곡(東巴谷), 옥수채 (玉水寨), 백사고진(白沙古鎭), 속하고진(束河古鎭) 등의 전통마을이다. 패키지 여행이라면 일정에 따라 예정된 코스로 가야 할 테지만 자유여행 중인 우리들은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별다른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때그때 변경이 가능해서 참 좋다.
 

숙소 앞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호텔 로비로 돌아와 15인승 차량을 기다리고 있으니 약속 시간이 되자 정확하게 그 승합차가 들어와 조용히 정차했다. 니 하오? 40대 중반의 맘씨 좋아 보이는 운전기사와 처음 인사를 나누면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동파곡(東巴谷), 나시족의 독특한 문화와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생태민속촌이 있는 곳이다. 옥룡설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많은 여행객이 들르는 명소다. 그 가까이에는 대규모 공연장이 있어서 장예모 감독이 기획 연출한 '인상여강'이 곧 공연될 테지만 유단장은 전체적인 의견을 물어서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지만 전체적인 의견을 따라야 했다. 해발 3,100미터에서 전문 배우가 아닌 리장 현지의 소수민족(나시족, 바이족, 장족 등) 주민과 농부 500여 명이 직접 출연하여 그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야외 공연이고 인위적인 무대 배경 대신 옥룡설산의 장엄한 산세를 그대로 배경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하니 매력적인 공연이 아닐 수 없다.
 

동파(Dongba)'는 나시족 언어로 '지혜로운 자'를 뜻한다. 나시족의 종교, 언어(동파문자), 생활 풍습, 건축 양식 등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동파문자를 직접 배워보거나 써 볼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나시족의 고유한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를 관광객들을 의식하면서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달인의 모습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상형문자라고 하니 그 독특함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시족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해 주는 가옥의 주방 안을 들어가 보았다. 취사와 동시에 추위를 극복하는 방법까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벽화 한가운데에 그려놓은 거꾸로 앉은 저 개구리의 의미는? 유단장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 가미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시족(Naxi) 문화에서 개구리는 매우 신성하고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단순히 동물을 넘어 지혜, 하늘의 가르침, 그리고 풍요와 연결된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나시족의 전통종교인 동파교 전설에 따르면, 개구리는 하늘에서 나시족에게 귀중한 지혜와 경전을 전달해 준 매개체로 등장한다. 또한 개구리는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의 일부이자 특히 물의 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리장 지역이 물의 도시로 불릴 만큼 수도와 샘이 풍부한 환경이었기에 개구리는 나시족의 일상과 매우 친숙하고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자연의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동파 벽화나 조각 등에서 개구리는 자연이 조화와 축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가 이미 사멸한 것과 달리 동파문자는 오늘날까지도 나시족의 종교 의례나 예술 활동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장인가, 나시족들의 장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공간인 듯한데,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특별히 반가웠던 것은 디딜방아였다. 적어도 농업으로 살아왔던 우리 한민족이나 그들에게는 꼭 필요했던 것일 테니까.
 

나시족들이 공부하는 학교 교실에 들러 책상에 학생들처럼 앉아 있는 상근 부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니차, 원통형의 도구로 안에는 경전이 들어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 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믿는다. 지금 강*옥 선생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마니차를 돌리고 계실까? 귀여운 손주를 돌보느라 대구와 울산을 자주 오가야 하는 처지이기도 해서 손주들의 건강 유지와 자녀의 사업 성공을 빌고 있을 것만 같다.
 

전통주를 파는 곳이 있어 친구들이 급관심을 갖더니 주인이 권하는 술을 한잔 마셔 본다. 총무께서 술맛이 좋다면서 한 병을 구입하겠다고 하니 특별히 충분한 양의 술을 병에 담아 주었다. 식사를 할 때 우리들끼리 한 잔 하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총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입맛이 다셔지는 순간이기도 해서 나도 잔에 조금 따뤄 기울이니 52도 알콜이 짜릿짜릿 식도를 타고 내렸다. 역시 술맛은 주변의 분위기와 호응을 이루게 되나 보다.
 

나시족 주인장의 환한 미소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주문한 상근과 정태는 이미 한잔 취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나시족 전통가옥 2층에서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인, 사진 모델이 아닐까? 1층에서 바라보던 두 남자의 시선을 느꼈음인지 올라와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듯한 눈짓을 보냈고, 한 달음에 오른 두 친구는 여인을 가운데 세우고 나에게 사진 촬영을 요구했다. 근데 남자들은 나를 보고 여인네들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동시에 찍고 있는 것이다. 사진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시족들은 남자들이 여자 집에 방문하는 주혼(走婚) 문화가 있다고 했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생활을 말한다. 걸어다니며 이루어지는 결혼이란 뜻에서 그 이름이 붙은 것이다.
 

동파곡 산책길을 걸으면서 발견한 붉은 토끼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꽃을 수억 만리 타국에서도 만나니 참 반갑다.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동파곡을 떠나 또다른 관광지인 옥수채(玉水寨)란 곳으로 이동했다. 비가 오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오늘의 예정된 코스는 거르지 않고 소화해 내야 한다.

옥수채는 옥룡설산에서 녹아 내려온 물이 지하를 통해 흘러와 지상으로 샘솟는 지점이다. 물이 매우 맑고 깨끗하여 나시족에게는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지로 여겨진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3단 폭포다. 샘터에서 솟아난 물이 겹겹이 층을 이루어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진주 구슬이 뿌려지는 듯 아름답다.
 

이곳 옥수채는 나시족의 전통 종교인 동파교의 성지다. 동파 문화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전시관과 동파학교가 있어서 나시족의 철학과 의례,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를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
 

타르초(Lung ta/Tar-cho), 티벳불교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색 깃발을 의미한다. ‘타르’는 말, ‘초’는 깃발을 의미하여 ‘바람의 말’이라고 불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에 새겨진 경전과 진언이 온 세상에 펴져 나간다고 믿는 것이다. 중생의 평화, 건강, 번영, 그리고 복을 기원하는 종교적 도구가 바로 타르초다. 항상 파랑(하늘, 공간), 하양(바람, 공기), 빨강(불), 초록(물), 노랑(땅) 순서로 배치되는데 이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소를 상징한다.(인터넷 자료 인용)
 

점심 시간, 운전기사가 안내해 준 식당으로 갔다. 비치된 메뉴판을 보고 그때그때 필요한 음식을 주문해서 식사를 하게 되는 시스템이 우리들에게 이미 적용되고 있다고나 할까? 어떤 음식이든 누구든 주문하는 대로 빠른 시간에 식탁에 배달되었다. 대체로 맛이 짠 편이긴 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태섭이는 구글번역기를 통해 짜지 않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메시지를 관계자에게 전달하는 특수역할을 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배를 채웠으니 이번에는 백사고진(白沙古鎭)으로 이동,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독특한 마을 풍경 속에 비와 함께 젖어들기 시작했다. 

백사고진은 리장의 세 고성 중 가장 역사가 길고 가장 원형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리장 고성보다 천 년 정도 앞서서 형성된 마을로 나시족의 발상지이자 목(木)씨 토사(土巳) 정권의 초기 수도였다. 리장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골동품을 파는 가게도 보였다. 시간만 충분히 허락된다면 괜찮은 소품을 한두 개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애써 외면해야 했다. 아버지의 골동품 수집 취미를 나도 모르게 닮아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백사고진 (白沙古鎭)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또 다른 마을인 속하고진 (束河古鎭) 으로 다시 이동,
 

속하고진(束河古鎭)은 리장 고성에서 북쪽으로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옛 마을이다. '속하(束河)'라는 이름은 나시족 언어로 '봉우리 아래의 마을'을 뜻하며 과거 차마고도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리장 고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훨씬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리장 고성의 인파에서 벗어나 산책을 즐기거나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여행가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저녁 식사는 숙소 가까운 리장 고성 안의 식당을 찾아 해결했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몹시 피곤했던지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 일찍 휴식을 취했다. 유단장과 나는 운동삼아 리장 고성의 광장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찻집에 들러 눈여겨 두었던 보이차를 조금 구입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고 말았는데 좀더 흥정을 해서 값을 깎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일정한 크기로 뭉쳐놓은 보이차, 1리터도 채 되지 않는 정도의 투명 통에 담아놓은 것인데 부르는 값 200위안을 곧바로 지불한 것은 실수였다. 얼핏 보아도 그렇게 고급지거나 전통적인 보이차가 아니었고 비싸게 느껴진 것이다. '난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할까? 중국에서 물건 살 때는 흥정 잘하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리장 고성은 넓긴 넓어도 우리에겐 좁디 좁았던가 보다. 일한과 태섭이를 그 많은 군중들 틈에서 만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들도 바람 쐴 겸해서 고성의 거리를 걷고 있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넓은 광장에서 우릴 만난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는 것도 반가움이라 맥주나 한 잔 하기로 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술집을 찾았다.
 

사자산 아래 어느 조용한 찻집이었지만 맥주를 요구해 봤는데 친절하게 종업원이 갖다 주었다. 한 병에 15위안 정도인 착한 가게였다. 천천히 마시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가까워졌고 이내 자리를 떠나야 했다. 약간의 아쉬움은 다음 기회로 돌리기로 한다.
 

신라의 처용처럼 흔들리면서 걷는 리장 고성의 밤길은 조금씩 한적해지고 있었다. 
 

숙소 앞에서 세 명의 친구들 모습을 사진에 담아본다. 환하게 웃는 친구들의 얼굴빛이 다들 좋아 보인다. 자, 그럼 내일 아침 다시 반갑게 만나세. 숙소로 들어가니 순균이가 아직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먼저 자야지 아직까지 깨어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나는 술이 좀 취해서 코도 많이 곯텐데 우짜노?"
"친구야, 아무래도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라."
침대에 누워서 몇 마디 주고받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먼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틀림없이 코를 심하게 골면서 잠든 것 같은데 순균이는 그 다음날도 불편한 내색 한 번 안 했다. 
 

다음날 새벽, 엊저녁 음주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에서 깼다. 순균이도 내가 잠에서 깨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지 내가 깨어나자마자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한다. ‘마다할 내가 아니지.ㅎㅎ’
둘이는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을 깨우면서 리장 고성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에 찾은 고성의 골목길은 엊저녁의 광란의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길거리가 너무도 깨끗했다. 이 거리의 청결 상태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틀림없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자각 앞, 고요하기만 했다. 그 많던 사람들과 흥청거림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새벽의 어두운 골목길을 배경으로 셀카 사진 한 장 남겼다. 이 새벽의 고요를 우리들이 깨워 주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동트기 전 새벽 산책은 특별히 좋았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공간을 방해받지 않고 친구와 단 둘이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았고 고요가 제공하는 모처럼의 신새벽 침묵도 좋았다. 마치 내가 옛 고성을 다 차지하고 거닐고 있다는 희열감이 있어서 좋았다. 내 스스로가 이렇게 만족하고 좋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건강함을 부모님께서 주셨으니 또한 감사할 일이다.

곧 동이 트고 완전히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끝낸 뒤, 8시 20분쯤인가 승합차 운전기사는 어김없이 호텔 앞에 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리장에서 호도협으로, 다시 매리설산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더친이란 곳을 향해서 7,8 시간을 부지런히 달려가야 하는 날이다. 오랜 시간의 승차가 주는 피로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차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볼거리와 자연환경을 잘 포착해서 관찰하고 즐기는 일일 것이다. 끝까지 잘 참아내야 하리라. 오늘 하루도 화이팅, 아리아리!!!
 

휴게소에서 내려다 보이는 진사강(金沙江), 소위 말하는 장강(양쯔강)의 상류 구간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6400킬로미터의 장강 본류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줄기 중 하나로 이름 그대로 금모래가 흐르는 강이다. 예로부터 강가에서 금이 많이 발견되었던 것 같다. 리장 등 윈난성 북서부 지역을 지날 때 진사강은 깊은 계곡을 형성하는데 이 강을 따라 형성된 험준한 지형은 과거 차마고도의 핵심적인 이동 경로였다.
 

우리들 여행의 총책임자인 유단장의 어깨를 주무르며 격려하는 순균이는 천상 우리 동기회장이다. 동기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주 크고 깊다. 단장, 회장 둘 다 힘내시게. 덕분에 이렇게 여행 한 번 잘하고 있다.^^

호도협 입구에 도착, 승합차에서 내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셔틀버스를 타고 호도협 관광을 시작한다.

옥룡설산(5596m)과 하바설산(5396m) 사이를 뚫고 흐르는 호도협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 하나로, 강물의 유속이 매우 빠르고 경관 또한 매우 압도적이다. 지형이 가파르고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데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홍수가 잦아 치수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수력발전 댐들이 건설되어 중국 전력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상류와 하류의 고도차가 170미터라고 하니 그 유속이 얼마나 빠를지 짐작할 만하다.
 

호도협, 호랑이간 뛰어넘을 정도로 좁은 골짜기를 흐르는 강물의 아우성은 관광객들의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거칠고 강렬했다. 높은 데서 엄청난 수량으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일 것 같다.

장쾌하게 흘러가는 호도협을 감상했으니 이제는 매리설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더친의 비래사(飛來寺) 지점을 향해서 부지런히 달려가야 한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환경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나마 날씨가 점차 좋아지고 있으니 내일 아침엔 설산의 일출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유단장과 총무의 기도, 우리들의 염뭔이 잘 통할 것이다.
 

셔틀버스 기사의 운전 솜씨는 대단했다. 호도협과 버스 종점 구간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며 까마득한 절벽 위의 차도를 눈 하나 깜짝 않고 다니고 있었다. 승객들의 운명이 이 분의 손에 달려있는만큼 그는 크게 존중받아야 하리라.
 

어느 휴식처에서 찍은 나시족들 삶의 터전

저 멀리 화려하게 꾸며놓은 원뿔 모양의 타르초가 인상적이다. 왜 저렇게 크고 화려하게 했을까? 산 정상이나 사찰 주변에 소박하게 걸리는 오색 깃발이 타르초인데..... 선글라스를 끼고 어슬렁거리는 일환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최근 아내를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난 뒤 겪었던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데다가 다리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다. 
 

꽃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고원지대에 피어난 생명력만큼은 대견해서 사진에 담는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의 대비가 기분조차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여인과 어느 호젓한 들판에서 올려다보던 뭉게구름 하늘이 생각나서일까?
 

승합차는 이미 우리들의 발과 날개가 되어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곳이면 언제나 세워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고..... 더구나 안전 운전을 책임지고 있는 맘씨 고운 운전기사의 친절함까지 더했으니 최고의 여행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샹그릴라(Shangri-La, 香格里拉) 대로의 회전교차로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불탑이 세워져 있었다. 티벳 불교의 상징인 초르텐이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일상의 신앙이 녹아있는 성스러운 장소이고 티벳불교의 가르침인 조화와 평화, 번영을 상징한다.
 

송찬림사가 멀리 보인다. 해발 3200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작은 포탈라궁이라고 불리는 라마교 사원이다.

멀리 보이는 저 물은 호수의 일부? 유단장의 설명에 의하면 샹그릴라 시에 위치한 거대한 고원 습지이자 호수인  '납패해'라는 곳이다. 해발 3200m에 높은 지대에 형성되어 있는데, 우기에 비가 많이 와서 고이면 호수가 되고 건기에 물이 말라버리면 광활한 초원이 조성되어 숱한 말과 양, 염소, 야크 무리들이 풀을 뜯는 곳이라고 한다. 10년 전에 이곳을 지날 때는 도로 가에 높은 벽이 처져 있어서 볼 수 없었고 소정의 돈을 지불해야 들어가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내키지 않아 돌아갔다고 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확인해 보니 납패해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해발 3천 미터와 4천 미터를 오르내리는 구불길을 몇 시간째 달리고 있는데, 주변의 풍광은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산증 증세가 찾아오면 곤란할 것 같아서 오늘 새벽에 먹어둔 고산증약의 효과가 나타난 덕분인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산소의 양이 부족해서 자주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거의 여덟 시간만에 도착한 더친현[德欽縣]이다. 드디어 하룻밤 묵으면서 다음 날 일출과 함께 경이로운 매리설산의 장관을 틀림없이 감상하게 될 곳이라서 그런지 가슴이 설렌다. 더친현은 운남성 디칭 티베트 자치주의 행정구역으로 샹르릴라시 북서쪽 약 170~180km 거리에 위치한다. 상서로운 곳이란 뜻의 티베트에서 유래한 더친현은 독특한 티베트 문화가 어우러져 있어 여행자들에게 진정한 샹그릴라의 면모를 보여준다.(인터넷 자료)
 

오늘 묵을 숙소에서 내려다 본 저녁 풍경
 

숙소의 내부는 물론 복도 공간까지 깔끔하다. 아마 최근에 완성된 호텔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매리설산의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의 수요가 점점 많아지면서 비래사(飛來寺) 부근의 웬만한 공간에는 호텔과 객잔의 수효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내일 아침의 일출 시간이 6시 30분 경이니 6시쯤 일어나 숙소의 4층 옥상에 올라서 그 변화 과정을 사진에 담을 것이다.
 

현지 시간 05시 47분, 아직 별들이 하늘에 총총하고 일출 시간까지는 여유가 많다.
 

05:54 현재, 설산의 자태가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06:08 현재
 

06:14 현재, 우리 숙소에서 밤을 보낸 관광객들이 일출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 한꺼번에 모여드니 그 수가 적지 않다. 드론을 날려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06:29 현재
 

06:33 현재, 드디어 매리설산 최고봉에 금빛이 조금씩 달라붙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일출의 시작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매리설산은 윈난성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 더친현에 위치한 웅장한 만년설의 산맥이다. 주봉인 카와격보봉(6,740미터)을 비롯해 수많은 고봉들이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어 아직까지 정상 정복이 허락되지 않은 미지의 산이기도 하다. 장엄한 일출과 빙하, 신비로운 호수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며 특히 '일조금산(日照金山)'이라 불리는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06:43 현재
 

매리설산(梅里雪山)을 배경으로 우리 친구들끼리 현수막을 기념사진을 찍었다. 영신 22회 동기들 중에 이곳의 일출 장면을 제대로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이번 윈난성 여행을 함께한 우리 동기 8명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만들었으니 복 많은 친구들이다. 여기까지 와서 꿈을 이루게 해주고 복을 듬뿍 받게 해 준 유단장, 함께하는 모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영신 22기 화이팅, 아리아리!!! 
 

오로지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달려왔던 어제 하루였고, 그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장엄한 일출 장면을 모두 보게 되었으니 크게 만족하고 이제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볼거리 하나하나를 여유있게 감상하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침식사는 이미 했고 지금이라도 짐을 모두 싣고 떠나면 된다.
 

매리 설산이 보여주었던 감격의 여운은 더친현 비래사 지역에서 점점 멀어져가는데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저 설산의 이미지가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간들을 압도하고 있는 저 설산의 의연함은 높이 찬양 받을 것이다. 대자연 앞에서 더없이 작아보이는 인간들이여, 더 이상 자신의 능력만 믿고 자만하지 말고 그저 겸손하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오. 그 순수하고 겸손한 설산의 가르침을 잊지 마시오. 
 

아, 매리 설산!!!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꿈을 심어준 그대여, 늘 그런 멋진 모습 잃지 말기를.....영원히.....
 

자, 이제 다음의 관광 순서는 '바라거종'이라는 곳이다. 리장으로 돌아오다가 왼쪽 길로 접어들어 어설프고 좁은 도로를 거슬러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협곡이 점점 깊어지게 되고 무릉도원의 어부처럼 뜻하지 않게 대협곡의 별천지를 만나게 된다. 바로 거기가 '바라거종'이다.
 

바라거종에 들어서기 직전에 있는 어느 한적한 식당, 우리들은 거기에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야만 했다. 운전기사가 안내했던 식당인데 닭찜을 예약해 두었다고 해서 도착하면 곧바로 음식을 들게 될 줄 알았는데,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고 나서야 닭을 잡고 털을 뽑아 요리를 준비하는 등 예상치 못한 늑장부림 때문에 다소 짜증이 났던 건 사실이다. 항의하자니 부질없는 것 같아서 마냥 기다리면서 정신적 승리로 대처해야 했다. 
 

드디어 닭고기 요리로 배를 불리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
 

바라거종 풍경구 주차장에 도착, 매표소에서 입장료와 교통비를 납부하고 목적지로 데려다 주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풍경구 내의 대협곡, 통천협, 절벽 잔도 등과 함께 묶어서 방문하는 것이다.
 

주차한 차들이 별로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알겠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들에겐 오히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샹그릴라 바라촌은 험준한 바라거종 대협곡 깊숙이 숨겨진 오지마을이다. 전설에 따르면 1300여 년 전 전쟁을 피해 스촨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협곡에 정착하여 평화롭게 살아온 것에서 유래된 숨겨진 낙원이라고 봐도 좋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외부로 나가려면 절벽에 매달린 좁고 험난한 길을 며칠씩 걸어야 했다. 2008년이 되어서야 마을 출신의 기업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절벽을 깎아 만든 도로가 개통되어 외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해발 2900미터 이상의 고지에 위치하며 마을 전체가 오래된 티베트식 목조주택과 돌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간직한 가옥들이 협곡의 가파른 경사면에 층층이 세워져 있어서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외부와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었던 만큼 고유한 티벳 불교 신앙과 생활방식이 잘 보존되어 있고 마을 곳곳에 휘날리는 오색 타르초와 고요한 사찰의 분위기가 영험함을 더한다.
 

바라촌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외부 세계와 연결되려는 꿈, 그리고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평가다. 도로가 개통된 후 외부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샹그릴라의 숨겨진 진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서 '회음벽'이란 이름이 붙었다. 일한이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두 손을 모아 야호 야호를 반복했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 세운 구조물, 투명 유리로 바닥을 설치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깊은 협곡에 티벳불교 사찰이 이렇게 잘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셔틀버스가 마지막으로 내려준 곳이 샹그릴라 대협곡의 입구였다. 상류로 더 올라가 래프팅을 즐길 수도 있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진 탓으로 더 이상의 움직임은 포기하고 강가에서 물수제비 뜨기 놀이를 잠시 하다가 대기해고 있던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바라거종 관광이 예상밖으로 압도적이어서 어제 오늘 연달아 만족도 최고의 관광을 즐겼던 셈이다. 
 

자, 이제 샹그릴라 도심에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틀간 머물기로 되어 있는 샹그릴라 고성 안의 게스트하우스가 그런대로 쾌적했고 숙소 주인도 친절했다. 더욱 좋았던 것은 숙소 바로 앞에 한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어서 두부김치찌개, 삽겹살 등의 우리 음식을 값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당 주인의 한국말 솜씨도 유창해서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다음날 아부지초 등산 중에 먹게 될 점심 도시락도 맛있게 싸 줄 수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고마운가! 일이 제대로 잘 풀리는 듯한 느낌이어서 좋다.  
 

다음 날 아침, 새벽 산책 시간에 샹그릴라 고성 주변의 골목들을 오가면서 매력 포인트를 찾아 나섰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이질감보다는 새롭게 느껴지는 신선함이 더 크게 와 닿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이 고성은 해발 32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1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대 도시란 점에도 큰 매력이다. '듀크종 고성'(獨克宗 古城)이라고도 불리며 '돌 위에 세운 성' 또는 '달빛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차마고도의 중요한 교역 거점으로서 티베트와 다른 지역 간의 문화 및 경제 교류의 중심지였음은 물론이다. 
 

리장의 숙소가 해우주점인데, 샹그릴라 고성 안에도 똑같은 간판이 보인다. 각 지역마다 배치된 숙소 체인점이 아닐까 한다.
 

객잔에서 묵는 손님들을 위해 아침 식사로 제공하는 음식이 우리에게도 배달되었다. 과일과 요구르트, 달걀 후라이 2개, 구운 식빵과 쨈 등 아침식사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먹어보니 주인장의 친절함만큼이나 만족스러웠다. 조촐한 음식 하나로도 기쁨이고 행복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리장에서 새로 달려온 15인승 승합차, 지난 3일간 사용한 차보다 더 쾌적하고 좋았다. 운전기사의 개인적 사정 때문에 다른 분이 다른 차를 끌고 우리 곁에 나타난 것인데 앞으로 며칠간 함께하는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새로 만난 운전기사 또한 상냥하고 친절한 인상이어서 참 좋다. 이름은 우정홍이라고 했다. 
 

오늘은 아부지초 [阿布吉措] 트레킹을 하는 날이다. 해발 3600미터에서 4220미터까지 약 600미터 정도를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올라가는 데 서너 시간 내려오는 데 두세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다. 고산증 증세도 올 수 있고 해서 다들 몸을 천천히 움직여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린다. 더구나 70이 다 되어가는 노구임을 잊어선 안 된다.

순균이는 오늘도 친구들과 두 여인을 위한 특별 공연을 시작했다. 하모니카 콘서트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면 적당한 해설과 관련 이야기가 곁들어지면서 몇 곡의 연주가 이어진다. 흥이 넘치고 분위기가 한층 좋아진다. 에너자이저로서의 역할만큼은 아무도 그를 따를 수 없다. 
 

아부지초로 가는 길의 초입에 위치한 사원의 탑이 우리 일행의 안전을 알뜰하게 보장해 주고 있는 듯해서 좋다.
 

승합차에서 방금 내렸다. 해발 3600미터 지점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는 저 멀리 보이는 돌산과 돌산 사이의 계곡, 호수가 있는 해발 4220미터 지점까지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구슬봉이, 한국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작고 예쁜 것 같다. 
 

한꺼번에 여기저기 피어나면서 이미 군락을 이루었다. 피고 질 때를 정확히 아는 꽃들의 생존방식은 언제나 신기하다. 여하튼 우리 앞에 이렇게 나타나 우리의 트레킹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아 반갑다.
 

태섭이는 꽃사진을 자주 찍는다. 여기저기 자주 보이는 흰색의 꽃을 포착해서 셔터를 여러 번 누르고 있었다.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됨을 알리는 기점 표지판, 종점은 아부지초랄 곳이다. 거기까지 가면 멋있는 호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유단장은 말했다.
 

보춘화, 이름을 몰라 궁금하던 차에 현지가이드한테 물어서 알게된 이름이다. 태섭에게도 꽃이름을 알려주었다. (휘동이는 이 사진을 보고 나에게 알려준 꽃이름은 '히아신스'류의 꽃이라 했다.)

출발지점에서 여기까지는 완만한 초지였는데 앞으로는 오르막만 계속 올라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천천히 천천히! 무리하다기 고산병 증세라도 나타나면 큰일! 한걸음씩 천천히 내디뎌야 한다. 가다가 힘들면 쉬고, 또 가다가 힘들면 쉬기를 반복하다 보면 목표지점에 다다를 것이다.
 

순균이는 잠시 쉬는 동안에 하모니카를 꺼내들더니 연주를 시작한다. 폐활량이 워낙 좋아서 입으로 부는 악기인 색소폰, 오카리나, 트럼펫, 하모니카 등을 거침없이 수십 곡씩 연주하는 능력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 평소에 악기 부는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적어도 하루 일과 중에 악기 연주 연습 시간을 거의 빼놓지 않고 있다. 어디서 부느냐고? 매달 일정액의 사용료를 내면서 집 가까이에 연습실 공간을 확보해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가 연습을 하고 있다. 한번 계획한 일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해내고 마는 치밀함이 오늘의 순균을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쉬는 시간, 쓰러져 누운 나무 위에서 앉아서 총무가 개인별로 준비해 주었던 수박, 망고 등을 먹으면서 요기를 했다. 수분의 섭취가 중요한 만큼 그때 그때 섭취해 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시간 이상 계속 올라서 도착한 잔디밭, 여기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그 힘으로 막바지 1시간 정도 더 오르면 아부지초에 다다른다. 한국요리 전문점 식당 주인이 싸 준 도시락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유단장은 먹는 양이 적어서 자신의 도시락을 자기가 먹을 것을 조금만 덜어내고 현지가이드에게 먹으라고 도시락을 모두 건네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다시 목표 지점을 향해서 걸었다. 태섭이는 숨이 차서 도저히 더 이상 못 갈 것 같다며 식사하던 자리에 그냥 머무르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점심 식사를 한 곳에서 거의 십리를 걸어온 지점이다. 이름하여 유석탄(流石灘), '돌 위로 흐르는 여울'이다. 돌 위로 물이 빨리 흘러가는 곳이란 뜻일 게다. 또 앞으로 448미터만 가면 아부지초[阿布吉措]에 도착한다는 표지판, 이제 거의 다 왔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저 꽃이름은? 복수초라고 해야 할까? 키 작은 야생화를 보니 30여 년 전, 백두산 천문봉에 오르면서 오르막의 길가에 빽빽하게 피어나던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연상된다. 최대한 키를 낮춰서 생명을 유지하고 꽃을 일시에 피워 번식을 도모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느꼈던 순간들이었는데, 이곳의 꽃은 그 꽃들보다 1500미터 이상 높은 곳에서 피어났으니 모든 면에서 수준이 더 높은 꽃이 아닐까? 저 노란 꽃들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 높은 곳에 피어난 저 보라꽃은? '프리뮬라'속의 앵초라는 휘동의 견해다. 꽃대가 긴 것으로 보아 그 어떤 꽃보다 강한 놈인가 보다. 키 작은 노란꽃과 확연하게 대비된다. 노란꽃의 앙증맞음에 비해 보라꽃의 의연함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과 함께 잘 부각되고 있었다.
 

단체 사진에 동기 2명이 빠졌다. 태섭이는 올라오지 못했고, 윤록이는 저 아래 호수를 가까이 가서 관찰하느라 바쁘다. 이구동성으로 친구들이 한 말이 있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여행 중에 본 최고의 경치"라는 것이다. 최고로 기분이 좋고.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연속 3일에 걸쳐 본 것이 모두 대단한 경치였다. 매리설산의 일출 광경, 샹그릴라 대협곡을 끼고 있는 파라거종의 자연 풍경, 오늘의 아부지초 등 연일 눈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으니 이런 복이 있을 수 있냐는 거다. 만족도 200%라고 난리다. 
 

내려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경사도가 있는 길이라 힘이라도 빠지는 날이면 그대로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들 하산할 때 등산스틱이라도 있으면 무릎에 무리가 덜 되지만 거의 준비해 오지 않았다. 나도 준비를 하긴 했으나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던 두 친구의 부인께 하나씩 빌려줘야 했다. 스틱이 없었다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기가 아주 어려웠을 거라며 빌려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두세 번씩 해서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니 참 다행이고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스틱을 사용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하산을 끝낼 무렵 잠시 스틱이 있으면 좀더 힘이 덜 들겠다는 느낌을 가진 정도였을 뿐이다. 
 

야크 두 마리, 한 놈은 열심히 풀을 뜯고, 한 놈은 하산하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털이 유난히 길고 많은 것으로 보아 해발이 낮은 곳에서는 살아가기 힘든 동물일 것 같다.

 

아부지초를 오르기 위해 건넜던 나무다리, 올 때 건너고 나서 그 나무다리의 풍류를 간직하고 싶어 사진에 담는다.
 

해발 4,000미터를 오르고 내려왔으니 다들 체력이 많이 고갈되었을 터, 저녁 식사만큼은 삼겹살을 주문해서 김치찌개와 함께 배불리 먹어두는 게 상책이라면서 총무님의 음식 주문은 참으로 풍성했다. 근데 순균이는 입맛이 싹 없어져서 힘들어 했다. 고산증 약을 안 먹고 자신의 몸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실험을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오른 산이었는데, 하산하고 난 뒤에야 두통이 심하게 나타나 지금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거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중에 또 나아져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원기회복이 됐다니 참 다행이다. 여행 중에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보이지 않고 어떤 말을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게 귀찮은 법이다. 순균아, 힘내! 
 

배불리 식사도 했으니 이젠 샹그릴라 고성의 마지막 밤을 즐겨야 한다. 하나 둘씩 숙소를 빠져나왔다. 고성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언덕 위에 조성된 귀산 공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골목들이 많아 길을 잃기 쉽기도 하겠으나 되도록이면 같이 다니도록 하고 길을 잃었을 때는 각자 알아서 숙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했다. 
 

달빛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 닿았다. 장족의 민속춤 공연과 야시장이 열리는 곳 같다. 주변에는 식당, 기념품점, 카페 등이 밀접해 있어서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한이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주변 사람들의 춤을 흉내내면서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법 손과 발의 동작이 다른 분들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타고난 춤꾼의 자질을 갖췄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일한아, 이제 그만 하고 다른 데로 가는 게 어떨까?"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춤을 추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마니차(기도 바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6명 이상의 성인이 함께 돌려야 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오늘은 수십 명이 달라붙어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다.
 

대불사의 사찰 내부다. 금박으로 장식된 불상과 불화들이 모셔져 있다. 사찰 안은 밖과는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동기들을 대표해서 대불사의 방명록에 동기회장이 이름을 남겼다. "대한민국 대구, 장순균"이라고 
 

귀산 공원, 대불사에서 내려가는 길에 본 광장의 인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 무슨 공연이라도 있는가 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예상컨대 내국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며칠간 오가면서 들리는 대화소리는 거의 중국말이었으니까. 서양인들이나 일본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탑을 세 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계속 돌리고 있는 상근, 내부의 경전을 다 읽어버리고 말겠다는 듯하다. 이번 여행의 총무로서 친구들의 무사고 여행과 앞으로도 쾌청한 날씨가 계속될 수 있기를 빌고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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