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월 24일) 무애산방 팀의 등산하는 날, 대구의 앞산을 오르면서 급작스레 결정된 것이 하나 있었다. 김판사가 일주일 뒤엔 법관 정년퇴임식을 하게 되는데, 퇴임을 기념하는 축하 시낭송을 해 주면 좋지 않겠냐는 이무수 교수의 제안이 있었고 동기회장과 김판사가 그거 좋다면서 나에게 시낭송을 해 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것이 나의 시낭송이었다. 법관 퇴임식에 어울리는 낭송시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주인공인 김판사가 독실한 불교 신자이고 평소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바, 그의 성정에 맞는 시는 조지훈의 <산중문답>이란 시가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나름대로 내고 시낭송 준비를 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중문답
조지훈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는가
마당 가 멍석자리 삽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어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는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태고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는가
큰 일 한다고 고장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데
소원이 뭐가 있는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랏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 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는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만 합니더
청산 백운아
할 말이 없다.

행사는 11시에 예정되어 있는데, 장 회장과 나는 30분 전에 행사장에 도착해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시낭송 배경음악을 컴퓨터에 올려놓고 행사 시작을 기다리면서 속으로 시낭송 연습을 반복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11시가 가까워지자 많은 하객들이 행사장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 동기들도 꽤 많이 참석한 것 같았다.

퇴임을 축하하는 대구지방법원장님의 축사가 있었고, 꽃다발과 각종 패의 전달식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동기를 대표해서 복장을 갖춘 병우가 축하의 꽃다발을 전달했는데 장회장은 웃으면서 그를 '화동'이라고 불렀다.^^

김판사의 퇴임사 장면이다. 퇴임사의 전문을 여기에 실어본다.
존경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께,
김태천 판사입니다. 저는 지난 밀레니움이 시작되던 해인 2000년 2월 법원에 들어온 지 만 26년이 지나 이제 정년퇴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뒤늦게 ‘늦깎이’ 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정년퇴임까지 판사로 봉직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였었는데, 이제 자신에 대한 그 약속을 지킨 듯하여 너무나 기쁩니다. 그 동안 때로는 과중한 업무로 힘에 부치기도 하였지만, 법원 가족 여러분들과 함께 한 이 시간들이 저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때가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약 30년간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하다가 퇴임한 블랙먼 대법관은 “법관 생활은 마치 사막을 건너는 외로운 나그네와 같다”는 유명한 퇴임사를 남겼다고 합니다. 저도 블랙먼 대법관의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판사생활을 하여 오다가, 오늘 드디어 그 사막을 무사히 건너 온 느낌입니다. 법원 가족 여러분들은 모두 저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음을 오늘에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안팎으로 혼돈과 위기에 처한 이 사법부를 이제 떠나야 하는 저로서는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는 때로는 폭풍우를 만나기도 하겠지만, 결코 그 항해를 중단해서도 중단할 수도 없습니다. 올해 ‘붉은 말’의 해를 맞아 강렬한 불의 기운으로 빠른 시일 내에 모든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모습으로 대한민국 사법부의 대항해가 영원하길 기원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판사의 감동적인 퇴임사 직후에 조지훈의 <산중문답>이란 시를 낭송하는 장면, 동기회장인 순균이가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다. 시낭송을 끝내고 관객석으로 돌아오니 몇몇 동기들이 시낭송이 아주 좋았다고 엄지척을 해 준다.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렸다는 평가였다. 주인공인 김판사는 어떻게 들었을지 궁금했다. 아마 자신의 성정에 딱 맞는 시낭송이었다고 좋아했을 것 같다.^^


장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분은 김판사의 사위와 딸인데, 김판사의 영향을 받았는지 각각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단다.


행사가 끝나고 법원 옆에 있는 모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김판사의 일가 친척, 친지, 친구들 모두가 참여하는 풍성한 모임이었다. 주인공인 김판사의 환한 미소가 참 보기에 좋다.

고등학교 동기회장인 순균이는 오늘같이 좋은 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목소리를 높여 만찬 행사의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동기 사랑이 워낙 깊은 친구인지라 그의 자발성과 그 특유의 적극성은 아무도 못 말린다. 동기들로부터 종신회장을 해야 한다는 칭송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모니카 반주와 노래, 박수 치면서 크게 웃는 분위기는 한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 되었다.



급기야 김판사 부인, 아들 내외, 딸과 사위, 손자까지 불러와서 앞에 세우더니 노래를 부르게 하고 모두가 박수로 응답하니 그 흥겨움은 끝간 데 없었다. 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 생활, 7년간의 경북대 법대 교수, 26년간의 법관 생활을 모두 마친 친구의 감회야 오죽할까마는 그의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20여 명 가까운 친구들의 우정이 참 고맙다.

김판사는 우리들한테 외손주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어릴 때부터 가까이 데리고 있으면서 길러준 정이 참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판사의 부인께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박수를 치면서 친구들은 분위기를 잘 살려 호응해 준 것은 분명하다.

김판사의 퇴임식 뒷풀이를 잘 진행해 준 동기회장 순균이, 오늘 꽤나 보람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귀가하기 전에 신천동 모 카페 창넓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신암동 소재 고등학교 시절, 동기들이라면 누구나 버스에서 내려 학교까지 골목을 지나 걸어올라 가야 했던 추억들이 남아있을 텐데, 오늘 나는 장회장과 함께 그 추억의 골목 어귀,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국밥을 먹는 시간, 순균이는 여느 때와 같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를 몰고 귀가해야 하는 나는 막걸리 한 잔을 다 마시지 못했다. 1주일 전의 산행 과음 끝,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넘어졌고 이마에 상처를 내야 했던 장면을 생각하면 자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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