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동기 희륜씨가 경주를 찾아서 꼭 봐야 할 것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신과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따라 나는 경주 진평왕릉 가까이 사는 또다른 동기 정우네 집에서 1박 2일간의 모임을 갖기로 했다. 대구의 희경씨 부부도 함께할 수 있었다. 신랑인 손교수께서 동대구역에서 희륜씨를 만나 자신의 차에 태워 경주로 오면서 합류하게 될 것이라 했다.

나는 정우네 집에 30분 먼저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여유있게 마시고, 약속 장소인 <동궁과 월지> 주차장에서 모두를 반갑게 만났다.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서 금관전시회 15:30분 예약을 완료해 놓고 오아르 미술관으로 향했다. 개관한 지 몇달 되지 않았으나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의 부드러운 곡선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곳이어서 미술관의 위치 선정만큼은 매우 잘했다는 느낌이었다. 2025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것도 건축가 유현준의 안목과 설계능력에 그 위치 선정이 가산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몇 점을 사진으로 담는다. 지금 전시되고 있는 것은 미술관소장품 기획전이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화백들과 줄리안오피, 쿠사마 아요이 등 해외작가까지 포함한다.




희경씨 부부가 넓고 큰 유리창을 통해 거대한 봉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안과 밖을 넘나드는 배경인지라 참 보기에 좋다. 머리가 하얗게 쇤 뒷모습이 오랜 세월 부부로 함께해 온 연륜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희경씨 신랑은 경주가 고향이어서 틈나는 대로 자주 찾는다고 한다. 고향 사랑이 오죽할까!

희경씨 부부가 앉았던 자리에 희륜씨도 똑같은 모습으로 앉았다. 눈앞에 보이는 왕릉(?)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멋쟁이 여인! 최근 사진작가로서 글사진책, <그 나무, 그 뿌리>(아래 사진)를 펴내어 주변 지인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은 여인! 시적인 감각이 여전히 뛰어나 글을 쓰기만 하면 영락없이 더 큰 감동을 선사하는 여인!

희륜씨의 글사진책 겉표지이다. 희륜씨의 어머니 염이환 어른, 사진작가 채희륜씨, 희륜씨의 딸 성효진의 이야기를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솔직하게 써 내려간 얇은 책이다. 사진은 사진대로 글은 글대로 감동의 향연 그 자체이다. 특히 '그 나무, 그 뿌리에서 나온 내가/ 또 출가하고, 자녀를 두고, 올해 딸을 시집을 보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딸의 시간을 사진으로 짚어가 보려한다.// 이 작업은 분명히 먹먹한 가슴과/ 아슴푸레한 눈물과 함께 갈 것이다./ 그리고 힘든 순간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의 힘이 견인해 갈 것이다.'라고 쓴 부분은 읽는이의 가슴을 울리고 만다.












오아르 미술관의 1층은 카페와 전시장을 겸하고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사진 왼쪽 윗부분에 지금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의 주제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1층 전시관 안쪽에는 민화 호랑이의 포효를 그린 8폭 병풍이 자리하고 있다.

오아르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한참동안 감상하고 난 뒤, 우리는 경주의 명소인 황리단길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포근한 날씨가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손교수님이 초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집앞에는 보물로 지정된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가 서 있다. 모처럼 고향집 앞까지 왔으니 부부의 기념사진 한 장은 이렇게라도 남겨야 한다.


황리단길의 모 식당에서 버섯전골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했는데 그 비용은 손교수님께서 제공해 주셨다.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 동기 희경씨를 너무너무 잘 챙겨주고 있는 분인 것 같아서 더더욱 감사하다.

황리단길을 지나 인왕동 소재 첨성대가 있는 곳, 이탈리아 피사의 시탑을 닮아가는지 첨성대는 확연하게 전보다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의 경주 지진 때문이라고 정우는 설명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같은 동기인 병국이가 살던 집이 있는데…. 그는 이제 경주를 떠나 수도권에 살고 있으나 오래 전에 그의 집에 들렀던 장면이 오버랩되어 잠시 그를 소환해서 관련 얘기를 나눴다. 아마 모친 옆에서 요양보호사 역할을 하고 있을 병국이는 귀가 조금은 간지러웠을 것이다.


선도산 쪽으로 보이는 저 나무, 메타세콰이어의 자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반월성의 높은 곳 성곽(?)에 올라 경주시내 방향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찍으니 눈맛이 살아난다.

토성일 테지만 적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해자도 복원시켜 놓았다. 그 전에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없었는데…. 복원해 놓은 뒤로는 난 이곳에 처음 왔다는 결론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보인다. 재선충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특히 경주 포항지역은 지자체에 비상이 걸릴 정도로 그 피해가 워낙 심한지라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토성의 성곽밟기 놀이라도 했을 만큼 제법 긴 구간을 걷고 또 걸었다. 경주국립박물관으로 가기 위한 내리막길은 낙엽 때문에 아주 미끄러웠다. 잠간이긴 했지만 긴장해야 했다.

낙엽들이 뒤덮인 밭에는 당국이 뿌려놓은 꽃씨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희륜씨는 이곳을 지나면서 낙엽 속에 숨어있던 광대나물을 우연히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야생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다르다. 찍은 사진을 보니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성덕대왕신종, 성덕왕(재위 702~737)의 원찰(왕의 넋을 기리기 위한 사찰)이었던 봉덕사에 있던 종, 1975년에 지금의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졌다. 일명 에밀레종이다.

국보인 고선사터 3층석탑, 덕동댐이 생기면서 고선사터가 수몰되자 박물관 경내로 옮겨졌는데 그 규모와 생김새는 감은사시 3층석탑과 찰주만 없을뿐 매우 흡사하다. 건립 연대가 거의 비슷한 시기라는 결론이다.



서봉총의 금관

금관총의 금관

금령총 금관, 6세기, 삼국시대(신라), 보물

황남대총 남분 금허리띠, 5세기, 삼국시대(신라), 보물. 길이:99센티

황남대총 북분 금허리띠, 5세기, 삼국시대(신라), 국보, 길이:120센티

천마총의 금관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 가장 화려하다는 느낌을 주었고, 줄 서는 사람이 많아서 옆모습만 찍었다.

교동 금관, 6개의 금관 중에서 가장 수수하긴 하나 가장 금의 순도가 제일 높다.(금 89.2%, 은 10.9%, 순도 21.4k)
겉으로는 눈부시게 빛나는 신라 금관이지만 사실은 100% 순금이 아니다. 금관은 금에 은을 섞어 만든 합금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순금이 지나치게 무르고 쉽게 휘어지기 때문에 은을 섞어 강도를 보강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시대에 따라 금의 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초기의 금관은 순도가 높은 편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은의 함량이 늘어 순도가 낮아졌다. 그 이유는 후대로 갈수록 금관의 크기가 커지고 무게가 늘어나면서 이를 지탱하기 위해 더 높은 수직 강도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물로 지정된 얼굴 무늬 수막새, 신라 천 년을 상징하는 신라의 미소이자 천년의 미소이다. 7세기에 만들어진 지름 11.5센티의 기와조각이다. 일제 강점기 때 경주 흥륜사(영묘사) 터에서 발굴된 이 수막새는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의 손에 들어갔고, 그가 귀국할 때 일본으로 옮겨졌다. 이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되돌아오게 한 사람이 박일훈 전 박물관장이다. 1972년 10월 14일 박 전 관장의 설득으로 다나카 도시노부가 직접 경주박물관으로 방문해 기증했다고 한다.

희륜씨는 경주 방문의 목적 세 가지(오아르 미술관 방문, 금관전시회 관람, 천년의 미소 감상)를 모두 이루었다고 흡족해 했다. 희경씨 부부는 모든 관람을 끝내고 섭섭하게도 대구로 돌아갔고, 희륜씨와 나는 정우네 집으로 가서 옥희 여사께서 정성껏 준비해 놓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 후 내려주는 커피의 맛까지 즐기고 나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그러나, 경주까지 왔으니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정우와 옥희씨 부부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야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친절이었다.^^







다시 월정교다. 반월성 앞으로 흐르는 남천에 복원해 놓은 다리(당시에는 '문천교'였음)인데, 원효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어려있는 곳이어서인지 느낌이 남다르다. 당시 원효의 마음을 알아챈 무열왕의 지혜와 요석공주의 보살심이 설총을 탄생케 함으로써 빚어진 역사의 흐름은 불교의 대중화와 이두문자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다음 날 아침, 정우와 나는 진평왕릉 부근과 명활산성 입구까지 조성된 황토길을 걸으면서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셨다. 거의 매일 아침 걷기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정우의 생활태도는 우리 또래들로부터 큰박수를 받아야 하리라.
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하고 집에 오니 희륜씨와 옥희씨는 집에서 정담을 나누면서 아침 식사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거실 창밖으로 탁 트인 남촌의 아침햇살을 느끼면서 정갈하게 차려놓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이 우리들에게 온전히 주어졌음에 감사해야 한다.
울산 태화강 십리숲에서 이 동네로 출근해서 놀다가 오후에 다시 퇴근하는 가마귀떼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정우의 이야기를 떠올린 희륜씨는 가마귀떼의 출근 시간 날갯짓 장면을 사진으로 담은 것 같다. 또 하나의 예술품이다. 원근감이 교차되는 산의 명암과 점점이 박힌 가마귀떼의 조화가 신비롭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98호,
얼굴은 높은 돋을새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덩이가 도톰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편안한 얼굴이 특징이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보물이다. 높이 10미터, 둘레 30미터에 달하는 큰 바위의 네 면에는 34점의 조각들이 사겨져 있다. 불상, 보살상, 천인상, 공양상, 사자상, 마애탑 등이 바위의 각 면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 계곡은 입구에서 마애탑 두 개가 먼저 보이기 때문에 이 골짜기를 탑곡 혹은 탑골로 부른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자세히 보면 두 개의 탑이 부조로 새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덕왕릉으로 올라오는 길, 정우는 경주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이곳 경덕왕릉은 처음 온다고 했다. 경주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접근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경주시민이라면 벌써 찾아와 알현했어야 하지 않았겠냐며 농담섞인 핀잔을 주었더니 허허 웃는다. 앞으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이곳을 안내해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왕릉의 소재지는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산7번지이다.

경덕왕릉에서는 무인 복장을 한 십이지신상이 잘 새겨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십이지신상은 김유신 묘에서도 볼 수 있다. 돌기둥 40개로 난간을 두른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경덕왕릉 답사를 끝으로 1박 2일간의 소모임은 끝났다. 희륜씨는 경주에서 동대구역까지 내 차의 조수석에 앉아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모른다.
희륜씨와 똑같은 마음으로 정우 부부의 친절함에 다시금 고마움을 전한다. 충분히 친절을 베풀고도 모자란 듯, 푸짐하고 맛있는 점심 식사까지 제공하고야 마는 친절함과 봉사는 잊을 수 없다. 다음 기회에는 구미의 내 농막(일명, 열호재)에서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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