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는 하루 전날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달렸건만 목적지인 아스완역까지는 아직 멀다. 해가 뜨고 날이 밝은 뒤에도 계속 더 달려서 오전 10시쯤은 되어야 도착하게 된다고 했다.


밤새 기차는 나일강을 따라 죽 남쪽으로 달렸음을 알 수 있었다. 차창이 너무 더러워서 차창밖 경치가 모두 흐리게 보인다. 문을 열 수도 없으니 흐린 창을 통해서 볼 수밖에 없다.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드디어 목적지인 아스완 역에 도착, 밤새도록 열차의 침대에서 힘들어 했을 일행들은 이제 해방감에 젖어도 좋으리라. 또 하나의 추억거리도 쌓인 셈이고!

덕제는 지금쯤 몸상태가 매우 안 좋을 것이다.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먹고..... 그러다 병이라도 찾아오면 어쩌려고?



필레 신전으로 가는 매표소 부근의 모습이다.

온갖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들의 노점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물건 하나라도 팔아 달라고 1달러를 외치는 분들의 호객행위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마음 편치는 않다. 흥정도 해 보고 깎아도 보는 체험을 해 보는 게 좋은데, 가이드와 일행들을 따라가기 바쁘니 별다른 재미가 없다.

이집트 한낮의 날씨가 따갑긴 해도 그늘 속에 들어가면 시원한지라, 이 때는 정우가 어느새 준비한 저 가벼운 파라솔이 제격일지 모른다. 보기와 다르게 준비성이 참 좋은 정우다.^^ 퇴임 이후 틈나는 대로 지구촌 부부 여행을 진행하고 있어서 머지않아 5대양 6대주를 두루두루 섭렵하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으리라 믿고 기대한다. 정우 화이팅!!


매표소에서 1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필레 신전이 있다.

필레 신전은 처음에는 필레 섬에 있었으나 아스원 하이댐 건설 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 도움으로 4만 조각으로 해체한 후 인근에 있는 이곳 아킬키아 섬으로 1977년 이전을 시작하여 1980년 이전을 완료하였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BC 1600~1100) 신전은 탑문이 먼저 나오고 들어가면 열주(기둥)가 나오는데 필레 신전은 기둥이 먼저 나오고 탑문이 나온다. 이유는 필레 신전은 BC 664년부터 건축되었으나, 이집트가 그리스에 정복당하고 그리스 군주가 들어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BC 350~BC 30)에 지어진 신전이기 때문이다.
필레 신전은 이시스(Isis) 신화가 조각되어 있어서 이시스 신전이라고도 한다. 이시스 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시스에 얽힌 신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시스라는 이름은 '왕좌'를 뜻하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그리스어로 바꾼 것이다. 왕좌는 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 화신은 여자, 즉 왕의 어머니였으며 사실상 왕의 창조주였다. 고대 이시스 숭배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며, 피라미드 원문(BC 2375경~2200경)에서도 이시스가 살해된 자기의 남편 오시리스 신을 애도했다는 언급을 제외하면 그에 관한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시스에 관한 전설은 이시스가 본래 독립된 신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시리스의 아내로서 이시스가 주역을 맡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시리스가 죽은 후이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신 조각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재결합했으며, 그의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했고, 자신의 권능으로 그를 소생시켰다.
전설에 의하면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가 장성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때까지 오시리스를 살해한 세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시스는 세트의 누이이기도 했기 때문에 호루스와 세트의 최후의 전투 때 마음이 흔들렸다. 어떤 전설에 의하면 이시스는 세트를 동정하다가 전투 도중에 호루스에게 참수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학과 민간신앙에서는 공적으로 이시스와 호루스를 완전한 모자관계로 선언했다.
이시스가 아들을 보호한 것은 보호여신의 성격을 잘 나타낸 것이지만 이시스의 주요 특징은 그녀의 능력이 다른 모든 신들의 능력을 능가하는 위대한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 이시스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왜냐하면 죽음의 신 아누비스조차도 이시스에게는 굴복했기 때문이다. 여신 네프티스·네이트·셀케트 등과 함께 이시스는 특별히 죽은 자를 보호하는 신이었다. 으뜸 가는 어머니 여신인 이시스는 유사한 기능을 가진 다른 여러 여신과 관계를 가지면서 점점 다양한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호루스와 여신 하토르('호루스의 집'이라는 뜻)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하토르와 이시스는 여러 가지 점에서 유사해졌다. 신을 별과 관련지을 때 이시스는 천랑성과 동일시되었다.
이시스는 왕좌 위에 혼자서 아이 호루스를 데리고 앉아 있든가, 아니면 관(棺) 앞에 무릎을 꿇고 있든가 하면서 머리에 왕위를 상징하는 상형문자를 달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시스 숭배의식은 이 여신이 추수보다는 인간사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이시스는 애도자로서 죽은 자와 관계된 모든 의식에서 주신 역할을 했고, 마법사로서 병자들을 치유하고 죽은 자들을 소생시켰으며, 어머니로서 생명의 원천이었다.

파라오가 호루스에게 봉헌하는 부조가 탑문 양 옆에 대칭으로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앉아 있는 모습의 부조는 신, 서있는 모습의 부조는 파라오라고 보면 된다.


트라야누스 정자(신전)를 배경으로 한 장!

기둥에 새겨진 클레오파트라의 모습과 그 글씨, 기둥의 약간 오른쪽 직사각형의 둥그스름한 네모 안에 새겨진 글씨는 '클레오파트라' 라고 읽는단다. 로제타석의 발견을 통해서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대부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수천 년의 역사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귀한 유물에 저렇게 손을 댈 수 있음은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자꾸 손길이 닿다 보면 유물 손상은 막을 수 없을 테니까.


필레 신전을 다 보고 난 뒤, 다시 배를 타고..... 다음 코스는 애스원의 화강암 지대에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보러 가는 것이다.

물 위에 떠서 서로의 몸을 감싸서 있는 듯한 저 돌덩어리들, 이 주변 가까이에는 단단한 화강암들이 널려져 있겠구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길게 누워있는 곳이다. 거대한 화강암의 오벨리스크를 만들었던 4000년 전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아스완 지역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화강암 채석장으로 유명해서 채석장에서 화강암을 잘라 멀리까지 운반하여 피라미드, 신전, 오벨리스크 등의 재료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사진이 바로 미완성 오벨리스크인데 암석을 바로 깎아 만들려 했던 것으로 중앙에 균열이 생겨서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길이는 42미터, 무게가 1200톤으로 추정되며 완성되었다면 가장 큰 오벨리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나일강 선상 크루즈는 오늘부터 3일간 본격적으로 시작, 그 첫날 저녁 식사 시간에 잠시 식탁에 앉았다. 이 식당 공간은 배의 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바로 옆으로 나일강이 흐르고 있다. 오히려 식당은 수면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봐야 한다.
강을 오가는 크루즈라서 바다 크루즈보다는 규모가 작은 대신 운치가 쏠쏠하다. 객실은 깔끔하고 2명이 지내기에 아주 좋다. 식사는 1일 3식이 무료 제공되고 식사의 부페 퀄리티도 좋은 편이다. 오후에 무료 다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티타임이 있고 저녁에 댄스홀에서 무료 공연이 있다고 한다.


나일강 크루즈는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3일 동안 흘러가면서 콤옴보 신전, 에드푸 신전에 정박하여 기항지 투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우리 일행도 거기에 맞춰 당분간 진행할 것 같다.


2층의 객실로 들어가니 침대 위에 특별한 작품이 하나 보였다. 샤워 타월로 해바라기 꽃을 만들어 놓은 누군가의 장난끼와 룸서비스가 귀엽게 느껴졌다. 우리들을 위한 배려 같아서 고맙다.^^

크루즈 숙소의 밖으로 보이는 나일강의 강폭은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넓고 광활했다. 그 강 안을 흐르는 수량은 또 오죽할까? 수천 년의 이집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흘러온 저 강 위에 잠시 서 있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인생 기록 같아서 마음이 훈훈해 지는 느낌이다.

크루즈 선박에 일단 체크인을 하고 내려서 누비안 마을까지 작은배를 타고 갔다가 저녁 무렵에 되돌아오는 옵션 여행을 실시하기로 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크루즈 선박 안에서 휴식을 취하면 되었다.

3박 4일간의 나일강 크루즈를 하면서 룩소르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배의 모습, 우리 숙소가 2층의 선미에 위치해서 엔진소리가 신경쓰인다. 체크인 때 숙소를 둘러보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주변의 소음에 몹시 민감한 우리들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닌 거다. 다른 일행에 비해 차별 받는 느낌을 조금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위 말하는 복불복이라고 해야 하나? 괜찮은 숙소를 차지할 운이 부족했다고 우리 자신을 위로하자.



현지가이드인 이스마엘과도 사진 한 장 남길까?

몸집 좋은 뱃사공의 여유로움과 운전 능력에 눈길이 저절로 갔다. 크루즈가 정박하고 있는 부두와 누비안 마을을 오가면서 관광객들을 태워주는 서비스업 종사자일테지만 사공의 포스가 대단하다.


땅거미가 질 무렵의 나일강 건너편의 어느 모래언덕이다. 저 경사진 곳을 이용해서 미끄럼을 타면 엄청 신나겠지?



우리 친구들은 나일 강물에 처음 발을 적시는 순간의 희열감을 다들 어떻게 표현할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병국이는 이곳 배에서 내릴 무렵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는 고통을 줄곧 겪게 되었는데, 4,5일간 음식도 거의 못 먹고 거동도 쉽지 않아서 매우 힘들어 했던 것이다. 여행이고 뭐고 모든 게 귀찮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다. 친구의 치지를 생각하니 퍽 미안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누비안 마을의 속살을 보기 위한 투어였다고는 하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의 모습만 눈에 뜨였을 뿐, 그 특유의 문화와 그들의 역사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기록에 의한 간접 경험에 만족할 수밖에…
'현재 아스완 근처인 이집트 남부와 수단 지역에 있었던 누비안 왕국, 상부 누비아와 하부 누비아로 나누어졌는데 하부 누비아는 기원전 1069~525년에 이집트 25왕조를 세워 100년 정도 이집트를 정복하였고 이후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후 4세기까지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다. 또 이집트를 점령한 그리스로마제국에게 600년간의 지배를 받았다. 누비안 인들은 이집트와 수단에 나뉘어져 살고 있으며 현재 누비아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인조이 이집트 p191)

가이드의 안내로 누비안 마을의 가옥 구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따스한 히비스커스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잠시 가질 수 있었다. 곧 날이 어두워졌다.

누비안 마을 상가를 오가는 낙타를 탄 사람들, 저들이 바로 누비아인들일 텐데, 외모적 특징을 하나 발견했다면 구릿빛 피부에 긴 눈썹, 선명한 눈매와 입술, 짧은 곱슬머리 머리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고 누비안 마을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밤이 이슥해질 무렵에 올라가 본 선상의 풀장, 선선한 강바람 때문인지 사람들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따스한 차 한 잔을 바람과 함께 마시면 제격일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풍다우주(風多雨酒)'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람 불면 차 마시고, 비가 오면 술 마시고’ 풍류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그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다소 아쉽다.

선상 크루즈의 첫밤,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200미리리터 참이슬 소주를 한 병 비우고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