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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 1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25. 11. 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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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같은 학과 친구끼리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기회를 얻었다. 현역 근무 시절엔 각자가 다들 바삐 살다보니 함께할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하다가 정년퇴임 이후 자연스레 해외여행에 의기투합이 되었던 것이다. 이집트(EGYPT)란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덕제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 세 명의 친구(병국, 정우, 나)들이 함께하기로 했고 여러 달 전에 (주)참좋은여행과 패키지 여행 계약이 성사되어서 11월 10일(월) 오후 6시 30분, 네 친구가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만난 것이다. 
 
참좋은여행(주)과의 이집트 관광 계약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포함사항
왕복항공권(공항세, 관광진흥기금 포함), 아시아나 마일리지 50% 적립, 전 일정 특급호텔(월드체인호텔 4박 포함), 후르가다 월드체인 힐튼업그레이드 및 호텔 올인클루시브, 전문 인솔가이드 동행, 이집트 5대 특식 포함, 이집트고고학박물관, 세계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람세스 대신전, 네페르타리 소신전, 홍해의 후루가다, 지중해의 휴양도시 알렉산드리아.
 
2. 불포함 사항
1인당 100유로의 가이드/ 기사경비 현지 지불, 이집트 도착 비자 1인 25달러,  나일크루즈팁 1인 15달러,  선택 관광 및 개인 비용, 각종 매너팁, 
 
* 여행 여정
인천 - 기내 숙박(1) - 아부다비 경유 - 카이로(1) - 알렉산드리아 - 카이로(1) - 야간열차(1) - 아스완 - 크루즈(1) - 아부심벨 - 콤옴보 - 크루즈(1) - 에드푸 - 룩소르 - 크루즈(1) - 후루가다(1) - 카이로(1) - 아부다비 경유 - 기내 숙박(1) - 인천
 

수도권 의왕시에 사는 병국이가 제일 먼저 공항에 도착했고, 대구에서 일찍 출발한 덕제가 그 다음, 구미시외버스터미널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약 4시간 정도 걸려 내가 세 번째, 제일 먼 곳 경주에서 출발한 정우가 약간 늦게 도착했으나 10분 정도이니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반갑게 만났고 10박 11일의 여행은 드디어 시작되었다. 
 

항공기 출발은 23:45분, 인솔가이드와의 미팅은 저녁 8시다. 우리끼리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충분히 확보되었다.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공항 구내식당에서 해물순두부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여행을 함께하게 된 분들은 우리팀을 포함 모두 27명이고, 인솔가이드는 첫인상이 아주 좋은 유진 씨였다. 전체가 모여 미팅시간을 가진 뒤에 캐리어를 화물로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와 이륙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위 사진은 덕제의 건강관리법인 '벽 스쿼트' 시범 장면인데, 그가 평소에 자주하는 운동인지라 이 상태로 5분 정도를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나도 가끔 시도해 보는 동작이지만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나도 2분 정도는 쉽게 견디는 편이다. 
 

카이로 공항까지 가기 위해서 UAE의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하기로 했는데,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EY 827편은 다음날 현지시간 05:20에 우리를 그 공항에 내려주었다. 
 

27명의 일행들이 모여서 유진씨로부터 자세한 안내를 받고나서 적당한 위치에서 팀별로 시간을 보내다가 항공기 탑승 시간 20분 전에 E12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들 일행들은 5시간 남짓 기다려서  카이로행 EY 713편으로 갈아타야 했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기엔 다소 지루할 수 있으나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면 된다. 정우는 틈내서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출국장 주변을 여러 차례 순회하다가 돌아왔다. 
 

병국이는 내가 며칠 전에 산동도서관에서 빌려온 <방구석에서 먼저 떠나는 이집트 여행>이란 책을 훑어 보더니 정리가 아주 잘 된 책 같다면서 더욱 열심히 읽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여행'이니 틈틈이 공부해서 이집트에 대한 배경지식을 넓히는 게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 한다. 
 

초승달 모양의 달 디자인, 아부다비 공항의 인테리어 장식일 테지만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이슬람 종교와 깊이 관련되는 것 같긴 한데..... 

에띠하드 항공 EY713 비행기로 갈아타고 카이로를 향해 이륙한 비행기는 어느새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다. 카이로의 날씨는 어떨까? 시기적으로 여행하기 좋은 때라서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좋은 날씨가 우리 27명의 일행들과 끝까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모처럼 마음 모아 여행하는 우리 친구들도 지금의 건강한 모습이 오래 가기를..... 
 

느낌상 홍해 바다쯤으로 보이는 하늘 위를 비행기는 미끄러지듯 날고 있었다. 바다 왼쪽의 산지와 사막은 시나이 반도?
 

출국장에서 병국이가 보던 책을, 비행기 안에서는 정우가 열심히 읽고 있다. 나중에 그는 말했다. 자네가 가져온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렇제? 부지런히 읽으시게. 나도 한번 읽어 봤지만 머릿속에 남은 것은 별로 없어. 기억장치 고장 때문인지 내용의 입력이 잘 안되고 있네. 얼마전 뇌파검사 결과 두뇌 총명도가 내 나이 또래의 평균치가 안 되었으니까 말일세. 나도 인제 옛날의 내가 아니고 시원찮아. 다 됐나 봐. 
 

아부다비 공항을 출발하여 4시간 정도를 날아서 현지시각 12시 45분에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들이 캐리어 등의 짐을 찾는 동안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기념으로 셀카 독사진을 한 장 남겨 본다. 
 

카이로 공항에서 만난 현지가이드, 그의 도움 없이는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아서 인솔가이드와도 긴밀한 협조가 잘 이뤄져야 한다. 우리들과 함께하게 돼서 반갑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면서 우리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인연을 또 맺었으니 그도 당분간 우리의 친구가 된 셈이다. 
 

5천 년 이상의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 이집트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주지의 모습으로 본다면, 이집트인들의 삶은 몹시 미개하고 무질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부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유보한다. 다만 인터넷 검색(출처: 다음 백과)을 통해서 이집트의 역사, 자연환경 등의 전반적인 것을 참고삼아 먼저 간단히 정리해 둔다.
 
* 이집트의 역사(출처: 다음 백과)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BC 2925년경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통일되었는데, 이는 메네스 왕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통일로 인해 이집트 문명은 절정기에 들어섰고, 이후 약 3,000년 동안 본토 출신들이 계속해서 지배자의 위치를 이어갔다. 역사가들은 31개 왕조에 걸쳐 BC 332년까지 계속된 이집트의 고대사를 고왕국·중왕국·신왕국으로 구분한다.
  피라미드는 고왕국의 유산이며, 오시리스 숭배와 조각의 세련미는 중왕국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제국시대와 유대인의 출애굽은 신왕국에 속한다. 아시리아의 침략은 BC 7세기에 일어났으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이 이집트에 왕조를 세운 것은 BC 525년이었다.
  BC332년 알렉사드로스 3세의 침략으로 마케도니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작되었으며, 이 왕조시대에는 이집트의 통치자들이 헬레니즘 세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시는 헬레니즘뿐만 아니라 셈족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머지 않아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이 최고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 구심점이 되었다. 로마인은 BC30∼AD395년에 이집트를 점령했으며, 그후 이집트는 행정적으로 동로마 제국(뒤의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관용령을 내림으로써 이집트의 공식 교회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리우스·아타나시우스·오리게네스·클레멘스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활동 무대였다. 비잔틴 제국의 이집트 지배는 비잔틴 군대가 아라비아의 침략군과 3년의 무력 충돌 끝에 이집트에서 철수한 642년에 끝났다. 그후 200 ∼ 300년 내에 이집트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바뀌었고,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집트는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칼리프국의 일부였다.
  그후 969년에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국의 중심이 되었으며, 상당한 독립과 중요성을 획득했다. 1171년에 이어 이집트는 아바스 왕조의 지배로 귀속되었다. 아바스 왕조 칼리프국이 무너지고 맘루크들이 득세한 것은 1250년의 일이었다. 맘루크들은 아라비아 세계의 군대를 증강하기 위해 이용된 비아라비아·비이슬람의 노예들이었다. 그들이 이집트에 세운 왕조는151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집트를 이슬람 세계의 동부 아랍어 사용권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때까지는 이집트의 아랍화가 거의 완성되었다. 1517년에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어 이스탄불(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다스리는 속주로 되돌아갔다. 맘루크 왕조 말기에 시작된 경제의 쇠퇴는 계속되었고, 그와 함께 이집트 문명도 쇠퇴했다. 1798년 프랑스군의 침략은 불과 몇 년 동안이었지만 이집트를 유럽의 정치무대로 끌어들이는 데 충분했다. 프랑스군이 떠난 뒤 이집트는 무하마드 알리의 수중에 들어갔다. 알바니아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알리는 오스만을 명목상의 종주국으로 하는 하나의 왕조와 제국을 일으켰다.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치부(致富)와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집트는 영국에 막대한 빚을 졌고, 영국은 1882년 내란의 와중에 기회를 틈타 이집트를 점령했다. 이집트는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22년 명목상의 독립을 얻고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1952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타도되고,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2,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이집트 본토 출신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그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잠시나마 시리아 및 예멘과의 연방 수립을 시도했으며,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했다. 1956, 1967년에 이스라엘과 2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의 후계자인 안와르 엘 사다트는 나세르가 시행했던 강도 높은 사회주의 정책의 일부를 파기하려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공격해(1973) 시나이 반도의 작은 영토를 되찾았다. 그후 중동평화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81년 10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밑에서 부통령직을 맡고 있던 호스니 무바라크가 그뒤를 계승하여 사다트의 평화주도정책을 계속했으며, 1982년 이집트는 1967년에 잃었던 시나이 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회복했다.

* 이집트의 자연환경 (출처: 다음 백과)

  이집트는, 경관의 지배적인 특징인 북류하는 나일강에 의해 크기가 다른 극도로 건조한 두 지역으로 나뉜다. 보다 큰 사막지대인 서부 사막(앗사흐라알가르비야)은 와디(건천)가 없는 낮은 대지이며, 보다 작은 동부 사막(앗사흐라앗샤르키야)은 석회암과 사암층의 대지로 와디에 의해 널리 개석되어 있으며, 남동부에는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동부 사막의 북동부에 있는 시나이 반도에도 와디가 많다. 시나이 반도 남부 산지에는 해발 2,642m의 이집트 최고봉인 캐서린(카트리나) 산이 있으며 동부 사막의 홍해 구릉지대에는 해발 1,800m가 넘는 산이 많다. 나일강은 이집트 영내에서는 중요한 지류가 없으며, 가파른 벼랑들 사이에서 대략 8∼16km 너비의 바닥이 평평한 유역을 따라 흐르다가 카이로 북쪽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지며 삼각주 저지대를 이룬다. 이 삼각주는 길이 160km, 너비 240km로 인구가 조밀하고 연중 관개가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자연 식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건조한 서부 사막은 대체로 생명체가 없는 지역이지만, 수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사막의 다년생식물과 풀이 자란다.서부 사막보다 덜 건조한 동부 사막에는 이따금 비가 내려 몇몇 종류의 식물이 자랄 수 있는데 그중에는 타마리스크, 아카시아 및 수많은 종류의 가시관목, 작은 다육식물들, 방향성의 약초들이 있다. 나일 강 유역과 삼각주, 그리고 산재하는 오아시스들에서 이집트 농업의 거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며 인구의 99% 이상이 여기에 거주한다.이집트에는 겨울(11∼3월)과 여름(5∼9월) 두 계절만 있다.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알렉산드리아에서의 1월 평균기온은 11∼18℃),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카이로의 7월 평균기온은 29℃). 연강우량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175㎜ 카이로에서 약 25㎜ 남부의 아스완 부근이 약 2.5㎜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또한 홍해 연안 평야에는 강우가 거의 없다. 광물매장량은 보통 수준이며, 철광, 석유, 천연 가스, 석고, 인산염과 우라늄 등이 산출된다.
 

카이로 시내에 들어와 우리 여행의 첫 일정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들르는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 미술과 고고학적 유물의 보고로서 양과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란다. 얼마 전, 2005년 첫삽을 든 지 20년만에 개관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이집트대박물관(GEM)으로 많은 유물들이 옮겨져서 지금은 박물관의 위상이 조금 떨어졌다고 봐야 하리라. 

미라가 있던 관을 전시해 놓은 1층 전경, 고대의 이집트인들은 현세의 삶은 일시적이고 사후가 영원하다고 믿었기에 무덤과 관을 정성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앉아있는 필경사, 이집트의 200파운드 지폐에 등장하는 필경사로 사카라 마스타브에서 발쿨되었다.

2층 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투탕카맨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투탕카멘은 18세에 요절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파라오인데, 그의 무덤은 룩소르 서안 왕가의 계곡에서 유일하게 도굴 당하지 않은 채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고 황금마스크와 함께 유명해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고 나서는 다음 세상에 부활한다고 믿었다. 죽음 이후 영혼은 일시적으로 육체를 떠나지만 부활할 때 원래의 육체로 돌아올 때, 육체가 없으면 부활할 수 없기 때문에 육체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미라를 만들었던 것이다. 
 

칼릴리 시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본 거대 현수막이 눈에 자꾸 거슬렸다. 똑같은 내용과 사진이 연속적으로 길게 걸려 있는데 자신의 부와 권력 의지를 보여주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그 방법은 참 어리석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시민들을 불편케 하는 공해요 돈지랄이 아닐까 싶다. 왜 자꾸 봐 줄 것을 강요하는가?

주로 칼릴리(Khalili) 시장으로 불리는 '칸 엘-칼릴리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 이집트의 만물상으로 불리운다. 매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지만 특별히 살 물건도 없고 해서 시장골목을 오가면서 눈팅만 하다가 약속 장소에 일찍 돌아와 일행을 기다리다가 전세 차를 타고 숙소인 람세스 힐튼호텔로 갔다.
 

3일간 묵게 될 숙소인 람세스 힐튼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풍광, 그 유명한 나일강이 도시의 불빛을 머금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카이로에서의 첫날 밤, 한국에서 쓰는 시간보다 7시간을 더 많이 쓴 탓인지 나는 잠속으로 금방 곯아 떨어졌다. 잠 자리가 바뀌면 잘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라 고백한 덕제와 정우는 괜찮을지 걱정한 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코를 골면서 잤을 것이기에 룸메이트인 정우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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