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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 2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25. 11. 1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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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클레오파트라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이동하여 카이트베이 요새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둘러보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람세스 힐튼호텔 레스토랑은 아침 6시부터 이용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때의 풍성한 메뉴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메뉴들이었다. 여유있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외출 준비를 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높은 탑은 카이로 타워이다. 1961년 상이집트의 상징인 연꽃을 모티브로 800만 개의 마름모꼴 모자이크를 이어 세운 것으로 187미터 높이로 꼭대기에는 전망대와 회전식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단다.
 
호텔 밖에 대기 중이던 관광버스에 올랐다. 모든 일정을 함께하게 될 27명의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밝은 미소를 주고 받았다. 현지가이드 이스마엘과 인솔가이드 유진씨와도 인사를 나눈다. '아살라무 알라이쿰!', 안녕하세요. 신의 은총과 함께라는 뜻이다.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국도는 곧고 넓게 포장되어 막힘이 없었다.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가는 시간은 버스로 약 3시간 정도다. 어느 휴게소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셋이서 나란히 사진을 찍어보기는 몇십년 만이다. 대학교 재학시절 대구 상동의 복음고등공민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야학활동의 동지들 아니었던가! 우리들 셋, 희경, 현순씨까지 국어과 동기들 다섯 명이 2, 3년간 활동한 바 있으니 어찌 그 시절을 어찌 잊으랴. 나이 차이가 거의 없던 제자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아직도 기억 속엔 청순하고 앳된 그들의 얼굴 모습만 남아 있는데….
 

앞에 보이는 버스가 우리 일행들이 하루종일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이다. 중간 부분의 출입구 계단의 경사가 너무 심한 것이 흠이다. 아직은 우리가 젊어서 오르내리기가 괜찮지만 더 나이 들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발을 헛디디는 날이면 큰일난다. 언제부턴가 격언처럼 들리는 말이 있다. 넘어지지 말고 감기 걸리지 말아라. 늙어갈수록 조심해야 할 게 그 두 가지란다. 넘어져서 골절이라도 되는 날이면?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니..... 
 

여기저기 상당한 높이의 굴뚝이 너무 많이 보여서 주변을 살펴보니 숱한 벽돌들이 쌓여 있다. 현대 이집트의 건축물은 이런 곳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보다 하는 추측이 가능할 것만 같다. 전국토의 95%가 사막인 만큼 벽돌의 재료인 모래만큼은 무한 제공이 될 것이고.....
 

타오르는 불기둥은 천연가스가 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집트는 천연가스의 생산 감소와 수요 증가로 인해 적자가 심화되면서 요즘은 이스라엘과의 대규모 수입 계약과 LNG 수입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알렉산드리아시에 도착했다. 다음 백과에서 알렉산드리아를 검색하니,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어서 인용해 본다.
 
  2020년 추계 인구 530만의 항구도시, 이집트에서 카이로 다음 두 번째로 큰 도시, BC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 도시를 건설한 후 기원전 305년에 멤피스를 대체해 이집트의 수도로 삼았으며, 고대에는 헬레니즘 학문과 과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지중해 연안 나일강 삼각주의 서쪽 끝에 위치한 이 도시는 지금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183㎞ 떨어져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지만 겨울에는 가끔 거센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이 도시는 근교의 농업 배후지와 함께 하나의 주(州)를 이루고 있다. 주민 대다수는 상업·공업·해운업·어업에 종사하며,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면직물·종이·초콜릿·가공식품·아스팔트·기름 등의 제조업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이곳에서 생산하는 면은 최고 수출품으로 꼽힌다. 아울러 곡물과 채소도 주요 수출품에 속하며, 차·커피·목재·천연양모·기계류 등이 수입되고 있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부르키움(그리스), 라코티스(이집트), 레기오 유다이오룸(유다 왕국), 파로스 등의 고대 유적지가 자리잡고 있다. 파로스의 동쪽 끝에는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거대한 등대(파로스의 등대)가 세워져 있었다. 미단 앗타흐리르(해방지구, 이전의 무하마드 알리 지구)는 현대식 도시의 심장부이다. 고대도시의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폼페이의 기둥과 카움앗슈카파의 히드리아누스 지하묘지는 아직 그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이 훼손되었다.
  이 도시에는 알렉산드리아대학교(1942), 무아사 병원과 간호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들이 있고, 그외에 그리스 정교회 알렉산드리아 주교 도서관과 그리스 로마 박물관 등이 있다. 해변도로인 알자이시(군용)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14.4㎞ 이상 뻗어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나일강 삼각주 개발의 거점도시로 철도·도로·항공망을 두루 갖추고 있는 요지이다. 이곳의 항구는 잘 발달되어 있으며, 방파제를 비롯해 선창과 부두 시설도 완비되어 있다.
 

스무 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우리 일행이 탄 버스를 올려다보면서 해맑게 웃으며 환영의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카메라 촬영을 시도하기에 바쁘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자못 괜찮은가 보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K-문화의 영향일까?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가 있던 장소에 세운 카이트베이 요새(Citadel of Qaitbay)의 정면,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시작해서 12년의 공사 끝에 완공한 파로스 등대는, 높이 130미터에 꼭대기에는 이시스 여신상이 세워져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으나 수많은 자연재해로 원형이 상당이 파괴되어 몇 차례에 걸쳐 재건하였으나 두 차례의 지진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1477년에 맘루크 왕조의 술탄 카이트베이가 투르크 군의 공격으로부터 해안선을 방어하기 위해 등대 터에 남아있던 돌로 요새를 건축하고 내부에 모스크를 만들었다. 그러나 1882년 7월 11일, 우라비 혁명 기간 중 북쪽과 서쪽의 성벽이 무너지고 대다수의 무기를 탈취당했으며 1883년 영국의 폭격으로 요새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요새 건설 당시의 타일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경이로웠는데, 우리는 그 위를 자연스레 밟고 다니고 있다.

 

식수 저장용 우물의 입구 모양도 볼 수 있었다.

 

500만 명이 넘게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란 도시, 클레오파트라(재위기간 BC51 ~ BC30)가 다스리던 당시의 인구만 해도 50만 명이 넘었고 2천 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 도시일진대 그 속살은 전혀 보지 못하고 해안 부분의 분위기만 느끼고 곧 떠나야만 하는 처지라서 아쉽다. 클레오파트라의 왕궁터도 저 바닷속에 해저 유물로 남아 있다고 하니 더욱 애틋해진다.

 

사람의 왕래가 뜸한 어느 지점에 나뒹굴고 있는 유물들,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일 테지만 이집트 관계당국은 인력 부족한 탓인지 거의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지중해 바닷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LUNA PARK가 우리 일행들의 점심식사 장소였다.
 

지중해의 신선한 바닷바람을 느끼면서 단풍든 나무 장식을 배경으로 한 장! 바다가 주는 포근함과 시원함은 역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턱을 괴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저 젊은이는 어떤 마음 상태일까? 이 세상 근심을 도맡아 하고 있는 거야? 저 배낭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래도 그대는 젊어서 좋겠다. 물 가까이에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 낚는 풍류객들도 보이네!

카이트베이 요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 어느 지점에 자리잡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내부를 둘러보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못내 아쉬웠다. 그저 도서관 밖에서 그 주변을 살펴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다음 백과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인용해 본다.
 
  대규모 연구기관인 알렉산드리아 박물관과 도서관은 BC 3세기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의해 창설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되었다. 아테네에서 도서관 사업을 경험했던 디미트리오스 팔레레오스가 이 도서관의 조직을 담당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모두 분과별로 조직되었고 관장사제(館長司祭)가 총감독했으며 직원들의 급료는 왕이 지급했다. 박물관과 도서관 본관은 궁전 경내의 브루케이움이라고 하는 구역에 설치되어 있으며 BC 235년경에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사라피스 신전에 보조적인 '딸 도서관'을 설립했다.
  모든 그리스 문헌뿐만 아니라 지중해와 중동·인도 등지의 다른 언어로 된 문헌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까지 망라하는 국제적 도서관을 세우고자 했던 이상이 어느 만큼 실현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확실히 이 도서관은 그리스 문헌이 주류였던 것으로 보이며 기록에 나와 있는 번역본은 70인역 성서가 유일하다.
  이 도서관의 편찬사업 계획에는 그리스 시집의 알렉산드리아 본을 만들고, 저서들을 오늘날과 같은 '책'으로 구분하며(아마도 두루마리의 표준길이에 맞추어) 점차적으로 구두법과 억양표시를 도입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국적인 문헌목록의 편찬사업은 칼리마코스에게 맡겨졌다. 이 목록은 오늘날에는 소실되었지만 비잔틴 시대까지도 그리스 문헌의 교과서적인 참조자료로 이용되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수세기 동안 존속되다가 3세기말 아우렐리우스 때 발생한 내전으로 파괴되었다. '딸 도서관'은 391년에 그리스도교도들의 손에 파괴되었다.
 
  현재의 도서관은 2002년에 고대도서관이 있던 자리에 1990년 유네스코 주관으로 국제회의를 통해 후원기금을 모금해서 새로 지은 것이다. 도서관 외벽에는 전 세계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후원한 나라의 언어를 적어둔 것으로 한글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찾아낸 것은 '세', '월', '름' 세 글자이다.  
 

도서관 앞에는 알렉산더 대왕 흉상이 하나 있는데, 그 옆에 덕제가 서 있으니 퍽이나 잘 어울린다. 문학평론가다운 포스다. 도서관을 꼭 들러보고 싶다고 했던 그였기에 밖에서만 서성거리는 이 순간이 너무 섭섭할 것이다.
 

정우는 벤치에 앉아 한 소녀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서로 환하게 웃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동양인들에 대한 호기심과 이집트 청소년들의 해맑은 미소가 그저 정겹다.

알렉산드리아 도시 여행을 마치고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는 시간, 또 한번 휴게소에 들렀다.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장실을 가야만 해서다. 이집트에서의 화장실 사용은 유료다. 3명이 이용하려면 1달러를 줘야하고 이집트 파운드화를 사용하려면 1인당 20파운드를 주어야 한다. 공짜로 깔끔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저절로 비교되는 장면이다. 
 

저녁식사는 호텔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카이로 시내, 아담한 정원이 꾸며져 있는 한식집, 미나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만리 타국에서도 우리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찌개와 반찬 모두가 맛있어서 배가 든든했고 잠도 잘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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