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올해 88세의 당고모님께서 갑자기 별세하셨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만 해도 부모님과 통화까지 하셨다는데….. 동네 인근에 있는 약수터로 물을 뜨러가셨다가 쓰러져서 심정지 상태가 됐고 응급구조대의 심폐소생술까지 받으셨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황망한 마음으로 어제 오후 범주, 금주 동생과 만나 대전 H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6촌 동생들 말에 의하면 심장이 평소 좋지 않아 오랜 세월 약을 지속적으로 들어오셨던 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면서 몹시 안타까워 했다.
어제는 여의치 않아 장례식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일단 동생들과 귀가했다가 오늘 내가우리 부모님, 형제자매를 대표해서 장지인 국립괴산호국원을 찾았다. 고모님 가시는 길을 배웅하면서 명복을 빌어드려야 했다. '고모님, 천국에 가셔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길 두손 모아 빕니다.'
언젠가는 한줌의 재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게 우리들의 운명이겠으나 그날까지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고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일지라도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하리라. 포용할 때라야 평화를 찾을 수 있으니까.
대전 H병원 장례식장, 왼쪽에 앉으신 이은복 목사님께서는 오늘 고모님의 입관예배를 위해 특별 초청되어 오셨는데 우리 3남매를 만나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기분좋아 하셨다. 내년이면 80세의 노인이지만 워낙 건강해서 약 하나 드시는 게 없단다. 술, 담배를 평생 하지 않으셨기에 혈관 나이가 50대 중반밖에 안 된다면서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셨다. 보기 좋았다. 아드님도 모교회의 담임목사라고 하면서 지난 주에 발행한 주보를 보여주신다. '목사님, 늘 그렇게 밝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충북 괴산에 있는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고모님의 유해를 모시게 될 장소이기에 조금 일찍 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국가유공자의 묘역이라 그런지 모든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고모부님께서 6.25때 참전 용사였기에 2019년 95세를 일기로 돌아가시면서 이곳에 고이 안장되었고, 고모님께서도 오늘 고모부님 곁으로 오시게 되어 있다. 현재는 유가족들이 대전에서 화장을 마치고 유해를 모신 장의차를 타고 이곳 괴산현중원을 향해 오고 있는 시점이다.
제 1묘역 4구역 10번 담장에 72명의 국가유공지분들과 함께 고 최영칠 고모부님께서 잠들어 계신다.
오후 2시 30분쯤, 호국원 제례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고모님의 유해를안치시키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쾌청한 날씨의 도움까지 받으시며 고모님은 영면에 들어가셨다. ‘편안히 잠드소서.’
왼쪽은 고모부, 오른쪽은 고모님의 유해다.
목사님께서 고인을 위한 추모의 말씀과 기도를 끝으로 안장식이 모두 끝났다. 오후 3시쯤.
당숙모님을 모시고 두 동생, 매제와 국립괴산현충원을 떠나기에 앞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당숙모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 네 어머니는 오실 줄 알았는데. 못오셨구나."
"그러게요. 모시고 오면 두 분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좋을 텐데 어머니도 건강이 안 좋아서 못 모시고 왔어요."
"조심해서 내려가. 어버지 어머니께 안부 좀 전하고....."
"네, 그럴게요. 아주머니도 건강 관리 잘 하셔요."
평소 예쁜 목소리와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감동을 주셨던 고모님을 다시는 볼 수 없겠다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면서 상주들과 손잡으며 헤어졌고, 현충원을 벗어나 화양계곡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엄마마저 잃은 경희 동생의 메시지가 왔다.
“오빠 감사해요. 덕분에 엄마 잘 모시고 집으로갑니다. 오빠도 건강 잘 챙기시고 자주 안부 전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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