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충주인 나는 어릴 때 툭하면 같은 또래인 쌍둥이 형제(최해수, 최장수)와 싸움을 참 많이 했다. 코피를 먼저 터뜨리면 싸움이 끝나곤 했는데, 왜 싸웠는지 기억도 없지만 여하튼 많이 싸웠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각설)
오늘은 포항 사는 해수가 며느리를 보는 날이다. 아들의 나이는 42세, 며느리는 26세의 태국 출신이니 국제결혼이다. 결혼식은 12시 30분인데 두어 시간 일찍 포항에 도착했으니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 며칠 전에 들른 바 있던 윤규 형님의 농막을 다시 찾아가서 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커피 한잔 사 마시면 시간 조정이 가능할 것 같다.
윤규 형님은 농막 옆에 표고버섯을 키우고 있었다. 참, 소박한 버섯농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며칠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늦은 오후였고 해가 지고는 비까지 내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꽤 좋다. 벽공의 하늘 그 자체여서 참 좋다. 작은 텃밭과 직접 세우고 엮어 만들었다는 목책이 인상적이다. 회화나무 한 그루도 선비의 상징이니 어울린다.
이곳은 한문 번역 작업을 하고 연구하는 분들께서 정기적으로 모이는 연구실이다. 나에게도 한문 번역은 관심있는 분야라서 모이는 분들이 과연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잘 아는 분도 두 분(진*규, 김*종)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자, 여기서부터 산책을 시작해서 2킬로미터 정도를 걷다보면 원위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쾌청한 날씨가 참 좋기만하다.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달전지, 포항시민들이 잘 모르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달전지 둘레길은 늘 한적하다.
벤치가 놓인 자리에 조그만 정자를 하나 세워놓으면 좋을 것 같다. 이름은 '삼송정'이라 하고..... 사실은 윤규형이 이곳에 농막을 짓고 지내면서 정자를 세울 수 있다면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싶다고 했다.
달전지 둘레길은 아직도 가을인 듯, 예쁘게 물든 단풍잎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의 왼쪽 위에 보이는 것이 윤규 형이 지은 농막이다. 옛날 초가삼간보다 더 작은 규모의 연구실이다. 달전지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제법 운동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 다리가 두 군데 위치해 있어서 온전히 달전지를 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윤규 형은 좋겠다.^^
달전지 상류, 이런 물이 흘러서 못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의 혼사에 오니 고향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서 참 반가웠다. 제일 오른쪽에 앉은 분은 혼주의 친형이신 최원순 씨(69세), 제일 왼쪽에 앉은 분은 나의 아저씨 뻘인 이광상(70세)씨, 가운데 앉은 여인은 혼주의 바로 밑 여동생(64세)이다. 거의 60년만에 보는 그녀였지만 앳된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며느리를 보는 친구와 찍은 인증 사진, 그는 고향 충주를 떠나 포항에서 산 세월이 오래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살았다고 하니 1990년부터 16년을 포항에서 살았던 나와는 거주기간 면에서는 비교되지 않는다. 거의 포항의 터줏대감이 되어가고 있는 그다. 다만 오래 살고 있어도 말씨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의 부인도 어릴 때부터 연애를 해서 만났다고 하니 우리 고향 사람임에 틀림없다.
해수야, 축하한데이. 몇 년간의 연애끝에 늦게 하는 아들의 결혼이지만 며느리 보니 좋지? 저 싱글싱글 웃는 큰아들 모습이 내가 봐도 참 든든하다. 흐뭇한 결혼식에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 나중에 구미 올 기회 있으면 연락해라. 나도 여유있을 때 그대 집에 들러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결혼식 끝나고 혼주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여유있게 대화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오른쪽에 앉은 분은 나의 고향, 강현마을에 살고 계신 동현 형님이신데, 알고보니 친구 해수 아내의 고모부라고 한다. 어릴 때 같은 마을에서 자랄 때만 해도 동네 형님이었던 분이 해수에게는 처 고모부가 되어 아저씨 뻘이 되신 거다. 반가운 마음에 고향에 갈 일 있을 때에 동현 형님댁에 꼭 한 번 들르기로 약속했다.
구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어제 약속했던 정은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에서 만날까 물으니 형산강 강변에 위치한 아파트 부근으로 오란다. 불과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아파트 부근에서 반갑게 만나고 가까이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형상강이 내려다보이는 2층 구조의 큰 카페였다.
아, 얼마만인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정은이는 여전했다. 모습도 목소리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다만 얼굴에 약간의 주름이 보일 뿐 세월만큼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참 반가웠다. 2003학년도 포항여고에서 근무했던 시절에 만난 제자 이정은, 당시 고3학생이었는데 나에게 많은 엽서를 거의 매일같이 써서 보내주었던 친구다. '새날'이라는 예쁜 이름의 아이디로 당시의 국어 선생님인 나와 많은 정서적 교감을 가진 바 있다고 보면 된다. 인제 '새날'도 어느덧 5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고 고교생 딸을 둔 학부형이 되었으니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다. 현직에 있을 때 진로진학상담교사로 10년을 보냈으니 잘 알지 않겠냐며 딸의 공부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툭하면 바뀌는 대학입시인데 3년 전에 정년퇴임한 사람에게 물어본들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관련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었다. 그저 제자가 대견스러울 뿐이었다.
오늘 날 만나기 위해 고3때 나와 함께 만들었던 학급문집 '삶 곁에 꿈 한 조각'을 읽어 보고 왔단다. 그 땐 몰랐는데 모 친구가 쓴 수필이 너무 좋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는 것과 그 친구는 현재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고, 나는 당시 학급문집 찬조시로 쓴 시 '안개꽃'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정은이는 글을 참 잘 쓰는 친구다. 그녀의 딸 또한 엄마를 닮아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모녀 모두가 포항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 바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새날은 자신의 학창 시절, 국어교사였던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었다. 원본을 사진으로 찍은 것인데 깜짝 놀랐다. 이렇게 귀한 사진이 있다니!! 아래 사진들이 그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추억의 사진들이다. 3학년 1반 부담임이어서 담임 못지 않게 반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던 때다. 30대 중반의 젊은 오빠 이미지를 그나마 지녔을 때이니 더욱 그랬다.^^ 31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과 비교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래 사진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송도해수욕장 주변의 바닷가 풍광, 옛날보다 해변의 모래가 매우 많아져서 산책하기 맨발걷기에 좋을 것 같다. 도로와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보기에 좋다.
POSCO의 굴뚝에 연기가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요즘 경기가 매우 안 좋아서 제대로 가동은 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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