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톱날능선 주변에서 자연을 즐기며 사진을 찍다가 갑작스레 부닥치게 된 불행의 함정, 그는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를 잘 아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가슴을 치면서 안타까워했지만 결국 그는 그렇게 홀연히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은 얼마나 많은 한이 생겼을까 싶다.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숱하게 남겨둔 채 어찌 그렇게 허무하게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단 말인가!
팔공산을 함께 오르고 함께 걷던 친구들은 고인의 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모였다. 이른바 '고 박재현 변호사 추모 등산'이다. 장례식 후, 친구들은 정서적 안정이 필요했던 만큼 당분간 경건하게 지내다가 약 두 달 뒤에 다시 모여 톱날능선이 잘 보이는 적당한 공간을 찾아 위령제를 지내기로 합의를 했는데 보름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의식만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고소공포증이 다소 있고 등산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였지만 이번 추모 등산만큼은 빠지고 싶지 않아서 참가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해 놓은 터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약속 시간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수제, 휘동, 상근, 순박, 순균, 나(권주) 등 6명이 아침 9시 30분에 부인사 주차장에서 만나 등산을 시작했다. 평소의 등산이라면 다들 서로 재담꾼이 되어 장난끼 섞인 말들을 쏟아놓곤 했지만 오늘만큼은 다들 말이 별로 없었다. 서울 사는 종국이가 일찍 대구행 고속열차를 타고 내려오기로 되어 있다고 하니 등산 중에 곧 만나게 될 것이다.
이말재를 거쳐 마당재에 도착했다. 부인사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2.7킬로 올랐는데 여기서부터 서봉까지 가는 2,6킬로 등산로는 난이도가 제법 있는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팔공산 등산 코스 중에 가장 매력있는 코스란다. 고인도 이 구간에서 변을 당한 만큼 오늘의 산대장 상근이는 오늘 산행의 목적이 추모(위령)이니만큼 안전하게 천천히 걸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한다. 산대장다운 요구다.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톱날바위이다. 사진을 찍는 이 장소가 제를 지내기에 제일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여기에서 음식을 간단히 차려놓고 위령제를 갖기로 했다.
친구들이 각자 준비한 음식물을 진설하고 촛불 켜고 향 피워서 위령제 준비를 끝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영정 사진 대신에 '악우 박재현 신위'라고 쓴 지방을 회장이 준비했고, 축문까지 직접 썼는데 집에서 출발할 때 빠뜨리고 왔단다. 그러나 내용을 잘 아는 회장인지라 초혼을 한 뒤에는 말로 직접 '유세차~~ 청작서수~ 흠향' 이렇게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친구야, 고이 잠드시게. 산새, 바람, 구름아! 친구를 영원히 팔공의 품안에서 지켜주소서.'
순균이가 장례식 때는 조용필의 '친구여'를 트럼펫으로 불더니 오늘은 하모니카로 '친구여'를 부른다. 조용필이 부를 때 듣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슬픔만이 남는다. 고인을 향한 우리들의 위로가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했다. 순박이는 말했다. 보행교 모임 때 같이 팔공산을 올랐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날(5월 6일) 다들 사정이 있어서 동참하지 못하고 고인 혼자 산을 오르게 했다고..... 산대장 상근이는 팔공산 등산을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고인이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아쉬움의 대화들이 점심을 함께하면서 간간히 오갔다.
이 장소에도 고인은 무던히 밟고 다녔을 것 같다. 이 장소에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은 팔공산 톱날능선과 아래 사진에서 보듯 아스라하게 보이는 대구 시내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탐방로 임시 통제를 알리는 내용으로 보아 고인의 사고 이후에 설치된 것임을 알겠다. 인사사고가 난 곳이니 조심하라는 뜻일 텐데,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팔공산이 작년부터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위가 달라졌는데, 여기는 아직 표지판이 바뀌지 않았다.
오늘의 등산 목표 지점은 서봉(1153미터)이다. 거기까지 오르고 하산을 시작해서 삼성암지를 거쳐 이말재로 원점 회귀하도록 되어 있다. 산대장인 상근이는 등산 하산 시, '조심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등산에 관한 한, 겸손하지 않으면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늘 강조하는 그다. 등산학교의 온갖 어려운 코스를 다 마친 베테랑이지만 그가 밟는 자리는 늘 안전한 곳이다. 잠시 방심했다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념의 발현인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를 때면 긴장을 하게 되는 나로서는 상근이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기만 했다. 오늘도 나에게 차와 물병을 마시라고 건네면서 친절을 베풀었고, 내 엉덩이를 뒤에서 밀어줘서 가파른 바위를 오를 수 있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등산 때 설사를 만난 나에게 그가 베푼 친절함을 잊을 수 없는데 오늘도 나는 상근이의 도움을 받았다. 고맙고 행복했다.^^
산대장인 임상근 선생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그가 쓴 모자는 20년이 넘도록 써 온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멋있다.^^
톱날능선으로 가는 길을 봉쇄하고 있어서 우회해서 가는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종국이와 상봉했다. 그는 한 시간 전에 서봉에 도착해서 우리 일행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어디서 사람 소리만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애타게 기다렸던 것이다. 자칫하면 서로 길이 어긋날 뻔했는데 여기서라도 조우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반가운가!! 그는 기다리다 못해 우리를 만나기 위해 마당재를 향해서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위령체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우리를 만난 것에 만족해야 했을 것 같다. 서봉으로 되돌아 가야했지만 마음만은 훈훈해졌을 것 같다.^^
순박이가 따뤄주는 막걸리를 받아든 종국이는 시원하게 들이켰다. 연속으로 몇 잔을 마셨다.
우리 회장님은 고인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 또 '친구여'라는 곡을 하모니카로 연주하고 있다.
톱날능선에서 보이는 청운대와 그 밑에 있는 오도암은 수제의 모친께서 젊으셨을 때 자주 찾던 곳이라 한다.
수제는 사진작가다. 한국의 유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일출 무렵의 변화무쌍한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과 그 즐거움을 공유하는 멋쟁이다. 그의 사진은 너무 훌륭해서 많은 친구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고인도 '좋다요'를 연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휘동이 또한 전국을 활동무대로 삼아 좋은 산천경개를 즐기면서 산다. 풍경과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 접사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과 자주 공유하고 있다. 고교 시절부터 공부는 물론 바둑의 고수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고, 초성이 좋고 웃음소리 또한 호쾌해서 남성적 매력을 많이 발산했던 친구다. 내가 즐겨 불렀던 '진주난봉가'는 대학 1학년 때 그에게서 우연히 배웠다. 그는 그냥 불렀을지 몰라도 나는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술 한잔 했다 하면 흥에 젖어 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사가 길어서 상당 부분을 아니리로 처리해서 노래 시간을 줄이지만 그 노래만 하면 창자나 청자나 즐거워져서 좋다.
내 사진이다. 롱다리라는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너무 길게 나왔다. 여기까지 별 어려움 없이 등산한 것으로 보아 '내 다리 장한 다리'라고 위로해 주고 싶다. 오늘의 등산을 위해 3일간 우리 동네 뒷산을 계속 오른 덕택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나는 1주일에 3번 정도는 비봉산 등산을 계속할 작정이다. 선산읍사무소 뒷편에 있는 충혼탑에서 부처바위까지 3.7킬로미터를 왕복하는 것인데 나의 늘그막을 꿋꿋하게 지켜 줄 산행코스가 아닐까 한다.
드디어 목표 지점인 서봉에 도착했다.
하산할 때 찍은 사진은 없다. 발 디디는 곳을 신경 쓰느라 사진 찍는 것을 깜빡한 결과다. 파계사 밑 동네에 있는 동림식당에 도착해서 칼국수를 주문해 놓고 파전을 안주로 해서 막걸리 몇 잔을 하산주로 나누는 시간, 차를 몰고 귀가해야 하는 처지라서 시원하게 들이키지 못해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저녁 및 하산주는 수제가 모두 계산을 했다. '친구야, 고맙데이.'
당분간 팔공산 등산을 보류하고 다른 산을 오르는 게 좋겠다면서 동기회장인 순균이와 산대장 상근이는 다음 달에는 군 부대 뒤에 있는 도덕산에 가 보는 게 어떠냐 한다. 3시간 정도의 코스란다. 그 정도쯤이야 나도 웬만하면 별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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