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어머니께서는 요양병원에서 퇴원을 하셨다. 하루가 지났지만 어제의 상황을 간단하게라도 기록해 두어야 했기에 어제의 시점으로 몇 글자 남긴다.
지난 추석날 엉덩방아를 찧고 대퇴부에 금이 간 이후 꼼짝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다가 50여 일만이다. 그간 걷지도 못하고 앉거나 누워서만 지내는 바람에 다리에 근육도 많이 빠졌을 것 같은데 얼핏 보기에는 괜찮다. 막바지 1주일간은 걷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병실에서 나와 면회실까지 오는 걸 보니 입원 전의 건강하셨을 때와 별 다름이 없다. 아들딸이 보고 있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제법 걷는 속도도 적절하고 정상적인 걸음을 보여주셨다. 막내와 나는 둥그레진 눈으로 서로 쳐다보며 흐뭇해 했다. 제복 입은 간호사들, 함께 입원생활하던 노인들께서도 퇴원을 축하한다고 말씀하신다. 퇴원을 못하는 노인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싶어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아직 젊어서 병원신세까지 지는 일이 멀게 느껴지고는 있으나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가족들 이외에 누군가의 도움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노인들의 처지가 남의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본의 아니게 심한 치매 증세를 보인다든가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될 경우, 너나 할 것 없이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 요양병원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하루빨리 복지사회가 되어서 돈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혜택이 골고루 돌아감으로써 노후가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요즘 복지예산을 점점 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정책은 관련 예산을 대폭 줄이고 있는 형국이어서 뭔가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고 속상하게 한다.
바로 아래동생이 거처하는 오피스텔에 잠시 들러서 두어 시간 쉬다가 막내동생은 두 아들 점심 챙긴다며 먼저 귀가하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촌유원지 부근에 있는 모 식당에 들러 점심을 맛있게 먹고 방촌동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어머니 퇴원 기념으로 외식을 한번 하시는 게 어떠냐고 여쭤보니 막무가내로 집에서 하시겠다고 한다. 외출 자체를 귀찮아하시는 아버지라서 그러려니 했다. 어머니나 모시고 맛잇는 점심을 먹고 오라는 게 아버지의 주문이셨다.
감자탕 작은그릇 하나를 시켰는데 어머니는 맛있게 드셨다. 그간 병원음식이 맛이 없다며 여러 번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 이 순간만은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감자탕의 양은 실컷 먹고도 많이 남았다. 어머니는 주인장한테 음식이 좀 남았으니 싸달라고 하셨다. 집에 갖고 가면 아버지와 같이 먹어도 한끼는 충분히 들을 수 있겠다고 하신다.
부모님께서는 평생 온돌생활을 고집하면서 사셨는데 어머니만큼은 앞으로 침대생활을 해야만 한다. 몸을 일으킬 때 무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도 침대생활은 필수다. 우리 5남매의 회비로 1인용 흙침대 1개를 55만원에 구입해서 며칠 전에 안방 어머니 침실에 배치까지 해 두었는데 그 침대 구입 경비는 너희들의 회비로 쓰지 말고 남편인 내가 어머니를 위해 구입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55만원의 회비를 총무인 막내한테 주셨다. 어찌 보면 참 흐뭇한 일이기도 해서 그냥 어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침대 위치에 있던 책꽂이는 없애는 게 좋았는데 거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데 영 보기가 좋지 않다. 깔끔한 맛이 없는 게 흠이다. 필요없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려야 깔끔해지는 법인데 어른들은 좀처럼 버릴 줄 모르신다. 지저분함이 눈에 거슬리는 막내동생은 불만이 많으나 고집스런 부모님을 이길 수는 없다.
흙침대는 바닥의 온도 조절이 가능해서 좋은 것 같다. '어머니, 침대에서 주무시다가 떨어지면 큰일나요. 조심하셔요.'
아버지께 간곡하게 부탁드려야 할 것이 있어 말씀드렸더니 당신께서 알아서 할 테니 조금도 걱정 말라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원래는 2주 정도 더 입원해 계셔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빨리 퇴원시키라고 성화를 많이 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퇴원시킨 만큼 적어도 앞으로 2주 정도는 환자복 입고 있는 환자라고 생각하시고 아버지께서 잘 간호해 주셔야 합니다. 절대로 외출하게 해서는 안 되고 청소 빨래 등 일을 하게 하셔도 안 됩니다. 힘드시겠지만 모든 가정 살림은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맡아서 해 주셔야 합니다. 할 수 있으시겠죠?" 에 대한 반응이 시원스럽긴 했으나 웬지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어머니의 성격상 병원에서 처럼 신경 안 쓰고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길 수 있을까? 성격 급한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만만하게 보시고 또 잔소리를 퍼붓지는 않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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