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주는 서울의 신정동에 산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셔도 멀리 산다는 이유로 제 때 내려와 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엊저녁 대구에 내려왔던 것이다. 어머니 병문안도 하고, 두 오빠와 여동생도 만나볼 겸해서 내려온 거다. 부모님 가까이 아들들이 대구와 구미에 살지만 다소 무심한데 비해 딸들은 역시 남다른 데가 있다. 큰딸은 큰딸대로 막내딸은 막내딸 대로 할 일을 다한다. 맏아들로서 딸들의 부모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새삼 고맙기 그지없다. 알뜰살뜰 잘 살피기를 잘하니 그저 감동이다. 아들보다 딸들이 훨씬 낫다는 세간의 평가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효주는 '남주'라는 부모님이 지은 이름 대신에 언제부턴가 스스로 이름을 바꿔 효주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남주(南周)'라고 부르면 '효주'라고 다시 부르라고 요구할 정도로 '효주'라는 이름에 집착한다. 본받을 효(效), 주인(주님) 주(主), '주님을 본받겠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냄새가 고스란히 배어나는 이름이다. 오래 전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교회 내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계속한 결과 얼마 전에는 서울 목동제일교회에서 주는 권사 직분을 부여받고 새로운 각오로 활동을 시작했다. 5남매 중에서 종교를 가진 유일한 동생이다.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는 있으나 워낙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오빠 동생들이라 전도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다만 형제들로부터 효주의 종교는 존중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효주가 권사 직분을 받는 날, 축하해 주기 위해서 우리 4남매는 한마음이 되어 소정의 축하금을 전달해 주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를 면회하는 시간, 면회실이 좁고 답답해서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우리 3남매를 보더니 그저 좋으셨다. 어제 아침에 열호재 마당 한켠에 외로이 자라고 있는 감나무에서 대봉감 10개 정도 따 놓았던 것을 깨끗이 씻은 다음 그 중에 홍시가 다 되어가는 것을 잡수시라고 드렸는데 그자리에서 다 드셨다. 퍽 맛이 좋았던 모양이다. 잡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3남매는 기분이 좋다. 맛있게 홍시를 먹어서 오늘 점심은 안 먹어도 되겠다면서 웃으시는 모습이 참 예쁘시다.
어머니께서 또 툭하면 하는 말씀이 있다. "내가 자식을 다섯이나 두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사실 그 말씀은 우리 5남매가 얼마나 우애가 좋은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집안이고 형제 자매간의 갈등이 이런저런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우리 5남매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소리 높여 싸우거나 갈등 때문에 힘들어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의견 충돌로 얼굴 한 번 붉힌 적도 없다. 서로간의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도 싸움까지 가지는 않았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여서 갈등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거다. 부모님께서 재산이 많아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암투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늘 가난했던 부모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얼마 전, 바로 밑 동생(구미함소아한의원 원장)과 함께 찾았던 하목정을 두 여동생과 다시 찾았다. 하목정 입구에 있는 하빈밥집에서 갈치조림(가성비 최고의 음식, 1인분 6,000원)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바람 쐴 겸 찾은 하목정(보물 2053호)은 우리 3남매의 방문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고즈넉한 분위기, 방구매기 수법의 건물이 주는 매력은 물론 맨살의 배롱나무가 주는 이미지가 한낮의 가을햇살과 함께 은근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랑스런 동생, 두 자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
맏이와 막내의 사진, 막내는 요즘 배드민턴 운동을 즐기고 있다. 초등학교 때 배구선수로 활약한 바 있고 운동신경도 발달했고 재빨라서 1년도 채 안된 경력의 배드민턴 솜씨가 몇 년의 경력자만큼이나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막내 썬글라스도 참 잘 어울린데이!
배롱나무는 겉과 속이 똑같은 청렴결백의 상징이다. 그래서 선비의 삶과 관련되는 건물 주변에는 이 나무를 많이 심어서 그 나무의 속성인 고결함과 숨김없음을 배우려고 했다. 다른 나무는 수피가 있어서 그 안의 질감을 알 수 없지만 배롱나무는 있는그대로의 속살을 보여준다. 막내동생에게 그 배롱나무의 속성을 이야기해 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는다.
하목정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대부분이지만 모개나무가 몇 그루 있다. 떨어져있는 누런 모개 열매를 모으고 있는 동생들, 왜 이렇게 흠집이 많고 우툴두툴 못생겼냐며 웃는다.
어릴 때 우리 막내동생은 오빠들 틈에 크다보니 심부름도 많이 하고 간혹 얼굴이 모갯덩어리 같다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니 얼굴은 모개덩어리같데이"
동생의 반응은 늘 의연했다. 오빠들이 아무리 놀려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승리법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금주야, 니 친구들 여기 많데이, 그 뒤로 앉아 봐라. 사진 찍어 줄게."
"오빠, 아직도 모개라 카면 우짜노? 섭섭데이.^^"
팔작지붕의 하목정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풍모로 서 있다. 오리들이 자맥질하고 있는 낙동강의 노을이 퍽 아름다운 곳에 서 있는 정자이기에 이름도 하목정 아니던가!
성주읍의 명소인 성밖숲을 찾았다. 아름드리 왕버들이 천연기념물이라는 높은 벼슬을 받아 성주읍민들을 호령하고 있는 듯했다.
효주도 내년이면 이순의 나이가 되고, 막내도 지천명의 5학년 1반, 51살이 된다.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하얗게 세어가고 가늘어지는 머리털과 늘어가는 주름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고려말 우탁(1262~1342)이 남긴 시조 한 수 인용한다.
한 손에 가싀 쥐고 또 한손에 막대 잡고/ 오는 백발 가시로 막고, 가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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