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두 동생과 함께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23. 10. 14. 19:54

본문

어머니는 강남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어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그새 다리의 근육은 많이 감소했을 것이다. 의사가 절대 걷지 말고 앉지도 말고 누워계시라고만 했으니 오죽하랴. 우리 어머니, 그렇게 부지런하고 건강에 자신하시더니 추석날 아침에 엉덩방아를 찧으신 뒤에는 확연하게 달라지셨다. 안타깝다.
오늘 오후 2시에 면회 신청을 해놓고 그 시간에 맞춰 병원 앞에서 막내동생과 먼저 만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당뇨에 좋지 않은 아이스크림이긴 하나 너무너무 좋아하시니 어쩔 수 없이 사드리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와의 면회시간, 히히덕거리며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질 때 마음 한 켠이 또 무거워진다.  그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막내와 낙동강가 육신사 초입 한옥 찻집 <묘운>을 찾기로 했다. 인산인해의 찻집이다. 어머니는 입원하기 전에 막내딸과 이곳을 찾아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찍었었다.


동생 범주한테서 전화가 온다. 퇴근 중인데 어디 있냐고 한다. 있는 곳을 알려주니 곧 도착할 테니 거기 그대로 있으란다. 갑작스레 삼남매가 찻집에서 만나게 되어 우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


막내동생은 오후 5시에 모임이 있어 먼저 가야 했고 범주와는 찻집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하목정이란 곳을 찾았다. 산과 낙동강에 걸처진 저녁놀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동생은 얼짱 각도로 사진을 찍어 보라고 해서 여러 차례 찍어 보여주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자꾸 갸우뚱거린다.


수백 년쯤은 되어 보이는 배롱나무가 맨살을 드러내고 매끈하게 여기저기 서 있는 하목정을 유심히 둘러보더니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수없이 내뱉던 동생, 오늘의 소감을 페북에 기록해 두었다. 소개한다.


霞鶩亭 하목정

낙동강 바로 옆, 저멀리 가야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의 정자. 지금이야 차가 쉼없이 분주하게 오고 가지만 1600년대 초 조선시대 적엔 맑은 락동강 물 고요히 흐르고 금모래 넓게 펼쳐진,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동네였을 것이다. 특히 낙동강 너머 해지는 모습이 아름다웠을 것이니 정자 이름에 노을霞 字가 들어간 있는 걸로 짐작할 수 있다.

원래는 서울 갈 참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더불어 지낼 이 없이 주말을 맞는 사내는 쓸쓸하다. 나이 들어서도 늘 동생을 보살피는 형님은 오늘도 귀한 시간을 내 주셨다.

나 일곱살 무렵, 할아버지가 심히 아프셨다. 초4쯤 됐었을 형님은 마천동 천마산 아래 작은 개천 모래톱에서 예쁘고 단정한 돌을 주워 간단한 제단을 만들고는 내게 같이 할아버지의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자고 했었지. 우리 형제의 기도빨 덕분인가 할아버지는 곧 회복하셨다. 마음씨도 고왔던 형님.

칼바람 부는 겨울의 등교길에선 외투 벗어 나를 입혔고, 동네에서 나를 괴롭히는 형아가 있으면 싸움도 못하는 사람이 그를 응징하겠다고 나섰다. 매사에 그러했으니...난 여지껏 부모님 말고도 형님의 그늘 아래 살아온 셈이다.

이래저래 설정하고 45도 얼짱각도로 찍어봐도 봐 줄만한 아우라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10여년 전에 같은 설정으로 했을 때는 꽤 볼만하다 싶었는데 왜 이러는 것이냐...하고 보니 아뿔싸, 가운데 머리카락이 휑하니 없어지고 살은 눈에 띠게 쳐져 버렸구나.

그때 내 머리칼은 얼마나 징하게 무성했던가. 세월은 관대함을 모른다. 그러나 그놈의 무정함도 형님만은 비껴 갔으니 형님의 머리칼은 아직도 저리 무성한 것이다.


동생의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옛날 생각나게 하는 우리 동생 글, 참 좋다. 그렇게 늙어가는 게 우리의 삶임을 어찌 부인하랴! 노을이 더 보기 좋을 때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아보자. 가성비 좋은 하빈맛집에서 갈치조림과 막걸리 한잔 걸치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