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 22기(회장 장순균) 동기회 송년모임을 준비한 회장단 덕분에 대구 신천역 가까이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20명의 동기동창들이 오후 5시부터 만나 막걸리 마시면서 몇시간 동안 대화의 시간을가질 수 있었다.
정규태 시인이 불원천리하고 영주에서 내려와 환하게 웃고 있고, 저마다의 모습이 다들 반갑기만 하다. 오늘도 영활이는 참석한 친구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 학창시절의 선도부 역할인 거다. 그의 해맑은 웃음은 백만불짜리다. 허리 건강이 안 좋은 일한이는 술 한잔 못하고 총무라는 과업수행에 바쁘고 회장인 순균이는 가족끼리의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자미자 함지산 자락밭에 심은 무 배추 수확하느라 산비알을 수없이 오르내리다가 그만 몸살이 나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2년간 동기회장을 맡으면서 동기회의 틀을 잘 잡아놓은 공이 참 크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라서 오늘 공식적인 동기회에서 또 회장으로 뽑혔다. 만장일치였다. 앞장서 일해야 하는 본인이야 얼마나 괴롭겠냐마는 동기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면서 1년만 더맡겠다면서 수락했다. ‘순균아, 고맙데이. 조금 더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참고로 오늘 행사는 김일한 총무의 사회로 개회사, 고인 동기들에 대한 묵념, 성원 보고, 재정현황 보고, 축시(정규태 시인의 ‘새해를 맞이하며’)낭독, 신임 회장단 선임, 동기회장 인사, 교가 연주, 토의 사항, 건배 제의(3명), 폐회사 순서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그 이후부터는 20명의 동기들 각자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점점 다채로워지니 깊어가는 겨울밤과 더욱 어우러진다. 내 귀에 들리는 이야기를 위주로 몇가지 정리하면,
명배의 고향마을 500평 농장 운영 체험, 팔공도인 재현의 도자기와 사진 세계,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름난 본신의 취미와 자녀 이야기, 태섭의 링컨학교 생활에서 느끼는 그 무엇들, 퇴임을 1년 앞둔 이교수의 카톡에 대한 솔직함과 동기들 사랑, 청도 금강선원 순박의 이웃에 대한 관심, 스포츠댄싱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용수의 용트림, 도서관 도서분류의 일타강사 영활의 순수… 이런 다양함과 다채로움이 우리들의 모습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그런 삶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세계관과 가치관은 존중되어야 하리라.^^
이렇게 밤은 깊어갔고 헤어질 무렵, 이무수 교수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제안하기를 ‘내가 맥주 한잔 살테니 한잔 할 사람 여기 붙어’
이렇게 해서 10명이 2차 술자리에 또 모였다. 막걸리에 취한 뒤 치킨 안주에 시원한 맥주까지 들이키니 취기는 점점 차오르고… ‘이교수, 자네의 따스함이 또한 감동이네. 고마워. 기회 되면 나도 한잔 살게’ (맥주집 사진이 없다. 누군가 찍기는 몇장 찍었던 것 같은데)
신천역에서 헤어지고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방촌동 아파트로 돌아가야 한다. 살짝 졸다가 방촌역을 지날뻔 했다. 신천역에서 방촌역까지 11분이면 도착하는데 그 새 졸았으니 취하기는 했나보다.
모친은 큰아들이 온다고 순두부찌개를 준비해 놓으셨다. 동생도 형님 온다고 소주 2병에 병맥주까지 사놓고 대기중이었다. 3차 술을 또 마셔야 한다. 동생과 나누는 술은 또다른 맛이 느껴져서 참 좋다.^^ 밤 이슥도록 동생과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취해서 잠들고 말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5남매 카톡에 그 사이에 재미있는 동생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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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삼살방(三煞方)
동생이 가게 이전을 모색하고 있다. 형님과 동생이 이런저런 고려사항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는데 어머니가 대화에 끼어 드셨다.
거기가 동쪽이여, 서쪽이여?
동쪽이예요.
형이 말한다, 어머니 자꾸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비과학적이잖아요.
비과학적이라고? 그런 말 하덜말어. 삼살방에 맞아 열흘만에 죽은 사람도 있어.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삼살방은 뭘 말하는 것일까. 三煞方?
어머니 견해를 비과학적이라 단정하는 우리의 견해는 과학적인가? 어머니 세대엔 그런 게 상식이고 그 시대 나름의 과학이었겠는데 지금 우리에게 간단히 무시당하는듯 우리의 굳은 상식 또한 내 자식세대로부터 간단히 무시당할지 어찌 알랴.
어쨌거나 어머닌 당신 상식의 힘으로 난세를 버티며 살아 내셨다.
오리무중...현재는 늘 절박하고 미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한데 여리고 약하신 몸으로 자식들 건사해야 하니 의지할만한 그 무엇이 당신께는 얼마나 절박했을까.
삼살방 살피는 어머니 심정을 난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삼살방 살피는 걸로 불안 재울 수 있었던 엄니 세대엔 낭만과 멋이 있었다. 빈틈과 여지...야박한 말로 무지는 낭만과 멋, 달리 말하면 사기의 풍부한 토양.
점쟁이, 무당, 법사, 의료기 상사, 각지의 절집들...다들 어머니 덕을 많이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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