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구 어른 댁에 들렀더니
몇 년 전에 쓴 글이라면서 내게 주시더니
컴퓨터 워드로 좀 쳐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차분히 읽어 보니 글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대로 옮겨서 함께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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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의 관음송
이은택(논강의 父)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에도 조상들의 얼과 한이 배어 있다면 그 낱낱의 자연들도 우리의 역사일 수밖에는 없다. 실타래처럼 엉킨 애환은 향토맛 같은 전설이 되고, 묻혀 기록되지 못한 설화는 선인들의 숨결과 수택이 되어 의미를 넣으면 나무도 말을 하고 바위도 말 상대가 된다. 세월이 쌓았으면 그 부피가 푸덤 속 같아 좋고, 또 세월이 없으면 그런대로 이야기의 갈증을 느껴서 좋다. 때문에 우리 것 우리 문화에 허기진 마음은 늘 호젓한 여행으로 우리의 강과 산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 청령포를 찾은 것도 결코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법흥천을 거쳐 주천과 연당을 힘차게 훑고 내려온 물길은 청령포 나루에 와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 듯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50미터의 절벽에 부딪쳐 거센 물결은 결이 삭고, 둥글게 둥글게 펼쳐진 모래톱에 사납던 강심은 풀이 죽어 마침내 결 고운 혀끝으로 나룻터를 핥는 것이다.
그 조용한 수심에 낮 요기라도 하려는 듯 길을 잘못 든 새 몇 마리가 물가에 내려앉는데 왠지 강나루엔 관광객도 별로 없다. 강 이쪽과 저쪽에 진을 치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 그 배엔 고씨동굴을 찾아 왔다 잠시 들렀다는 남녀 5, 6명만 탔을 뿐 햇빛 쏟아지는 청령포는 한산하기만 했다. 휴가철이긴 하나 연휴가 아니어서일까? 하지만 안동 하회의 축소판처럼 동그랗게 빚어놓은 청령포의 칠월은 사람이야 있건 없건 상관없이 솔바람에 가락을 짜듯 매미 소리만 요란하다. 마침 하늘을 자질하던 댓마리의 까마귀들이 솔밭 위를 날고 있다. 토종 까마귀들 직접 본 것도 오래 전이어서 그 역시 반가운데 그 무리에 고명이라도 얹듯 백로 두어 마리도 그 위에서 날고 있다.
솔밭 밖으론 영월을 닮은 강돌들이 천여 평 정도 깔려 있다. 그리고 나루터 양 날개에는 곱고 흰 모래밭이 물결과 맞닿아 수백 미터를 굽어 흘렀는데 강폭은 좁으나 물은 깊고 푸르러 흡사 화선지에 ■(오메가)모양을 그려 놓은 듯 그 태깔과 살점이 자못 기이하기만 하다. 그런데 바깥 자락을 안으로 여민 것처럼 수백 그루의 노송들이 안으로만 굽은 것은 왜일까? 한갓 무심한 자연의 수목일지언정 모두 님을 그리는 몸짓인가? 단종의 거소(居所)였다는 유지비(遺址碑)를 향한 노송들의 굽은 허리도 예사롭지는 않다.
초라하게 서 있는 금표비(禁標碑)를 지나 노산대(魯山臺)를 오를 때마다 걸터앉아 쉬었다는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349호) 앞에 발을 멈춘다. 여타의 노송들을 시신처럼 거느리고 창공을 휘어잡을 듯 우뚝 솟은 거목 앞에 머리를 숙인다. 수령이 600년이고, 높이가 30미터이며 둘레가 5미터가 되는 거대하고 우람한 관음송! 두 가닥으로 굵게 자라 하늘로 치솟은 그 위용 앞에서 이름 없는 나그네는 그만 기가 질리고 마는 것이다.
“워메-! 고 소나무 참말로 겁나게 커 버렸다이-!”
전라도 고창에서 왔다는 어느 관광객이 호들갑을 떤다.
“금메! 나도 요로크롬 큰 나무는 첨 본단께.”
“근디 말여. 요 소나무가 육백년이 됐는지 오백년이 됐는지 고걸 워치게 안댜? 나가 육백년을 묵은 것이다 허고 어디 표시해 논 것도 웂넌디......?”
“히-힛, 나도 고것이 쪼깨 궁금하던 참인디......? 어쩠거나 아는 수가 있응께로 수령 육백년이란 걸 떠억허니 써 붙이가꼬 아는 체를 헌 것이것제.”
“응, 그란께 요그 요 야트막한 쌍바라지에 단종대왕이 앉아가꼬 쉬셨다 그 말이지라.”
“아 그렇다고 조기 조 안내판에 씌여 있잔여.”
익살스러운 관광객의 말투가 전혀 밉지가 않다. 하지만 그들의 말마따나 600년이라면 참으로 엄청난 세월이 아닌가. 그러나 그 세월을 뛰어 넘은 관음송은 지금도 싱싱한 가지와 푸른 잎으로 뒤덮여 앞으로도 1000년쯤은 더 살만큼 젊고 또 젊게만 보인다. 더구나 그 세월의 풍마우세에도 흠집도 없고 늙은 삭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관음송은 한 마디로 거대한 두 마리의 용이었다. 남쪽으로 갈라진 몸통은 몸 전체가 주홍색이고, 북쪽으로 갈라진 몸통은 검은 빛을 띠었는데 두 가닥의 몸통엔 하나같이 뒤틀리며 구름을 박차고 오를 듯한 두 개씩의 발이 달려 있다. 용의 발가락처럼 생동감 있게 뒤틀린 가지를 보고 그냥 소나무 가지라 하기엔 왠지 의미가 없어 넋 잃고 보다가, 다시 또 살펴보노라니 540년 전 원통하고 짧게 한 생을 살다간 단종의 혼백이 홀연히 내려와 앉는다.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정하고 귀티 나는 불행한 왕의 얼굴을 잠시 두 손 모으며 눈 속에 그려본다. 또한 자신의 복위(復位)를 위해 충신을 비롯한 선비, 군노(軍奴) 환관(宦官) 등 264명이 죽임을 당한 후 자신마저 사약을 받았을 때 그 처절하게 원통했던 심사를 감히 헤아려 보기도 했다. 16세의 어린 나이로 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1456)되었을 때 단종의 피맺힌 한은 그 관음송에 주저리주저리 맺혔을 것이다.
가파른 노산대에 올라 구중궁궐이 있는 한양 쪽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 발 내려와 망향탑에 잔돌을 쌓은 단종은 돌아오는 길에 관음송에 올라앉아 가슴 저미는 한을 눈물로 쏟았을 것이다. 그리곤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의 삶을 예측한 뒤 수결을 남기듯 겨우 59년 된 관음송을 어루만지며 비참한 유언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죽이려는 적들이 궁궐에 가득한데 이제 살면 며칠이나 살겠느냐! 허나 내 너에게 이르노니 네 비록 무심한 수목이긴 하나 나의 얼과 넋을 너에게 주겠노라! 그러니 나 죽은 후에라도 왕자의 기상답도록 훤칠하게 자라 나의 넋처럼 혼백처럼 머언 훗날까지 천년 만년 살아 달라!” 라고. 하기사 강물은 앞을 막고 층암절벽은 퇴로까지 막은 천혜의 적소(謫所)에서 항차 죽음을 앞둔 단종의 마지막 절규를 아무리 무심한 수목일지라도 감히 모른 체 할 수는 없었으리라.
아무튼 관음송에 대한 불가사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종이 앉아 쉬었다는 지상 1, 2미터의 갈라진 높이가 541년 전과 다름없이 조금도 높아지지 않은 것도 이상하려니와 한 뿌리에서 갈라진 몸통 색깔이 전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소나무 중에 유독 관음송만이 600년이란 오랜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절대 순수한 자연의 힘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역설적으로 단종이 만약 복위되어 천수를 누린 왕이 되었다면 그 관음송이 과연 600년이란 오랜 수명을 누릴 수가 있었을지?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죽음을 앞둔 비운의 어린 왕이 수시로 걸터앉았던 옥좌만은 차마 더 높일 수가 없어 541년 동안 그 높이 그대로를 고집스럽게 유지해 온 것은 아닌지? 비록 하나의 자연 현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합리적일지는 모르나 그 관음송이 지닌 오랜 세월의 비밀만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름날의 변덕인가. 태화산 끝동에 걸렸던 검은 구름이 노산대 위로 몰려든다. 그리곤 이내 굵은 빗방울로 둔갑하여 기어이 세찬 소나기 한 줄굼을 청령포에 뿌린다. 복더위답게 한나절을 들볶던 햇살은 어디로 숨었는지. 호되게 때리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만이 강변에 부서진다. 리듬을 맞추듯 천둥소리가 떨어지면 번개는 자지러지도록 검은 하늘을 짓이기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삽시간에 사위는 물바다가 된다. 이토록 성난 자연이 인간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줄 때, 물과 구름을 탄 용은 비로소 등천을 한다던가?
눈을 돌려 솔밭 속의 관음송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나 구름과 빗줄기에 가린 솔밭은 아득히 멀어 보이지 않고 겉도는 잔 안개만이 강심으로 떠 간다.
“두 마리의 용으로 변신한 관음송은 이미 등천을 했겠지? 아니면 지금쯤 여의주를 챙겨 물고 이제 막 등천하는 순간일거야. 천연기념물 349호라는 그 시시한 명칭 외에는 세상이 몰라주는 오랜 섭섭함도 모두 잊고,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하늘 나라를 향해 지금 막 날아가고 있을거야.”
가슴이 뿌듯하도록 혼자만의 소망을 빌며 강물을 건넜다. 그리곤 거듭 거듭 용으로 승화된 관음송이 푸른 하늘로 오르리라는 기대감을 내려놓은 채 그 곳을 떴다.
억수같이 퍼붓던 비는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뒤에야 그쳤다. 그리고 단종이 모셔져 있는 장릉(莊陵)으로 갔을 때는 거짓말처럼 날씨도 개어 뭉얼뭉얼한 흰구름 사이로는 파란 하늘도 언뜻 보이고, 소리를 뚝 그쳤던 매미들도 다시 흐드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날의 소나기는 대기가 빚어내는 일 막 일 장의 연극이요, 땅이 깨지도록 포효를 하다 멀리 사라지며 웅걸거리는 천둥소리는 세상을 꾸짖는 하늘의 성난 노여움인가. 그리고 가랑비 사이를 빗긴 햇살에 동녘 능선 위로 살짝 걸친 일곱빛 무지개는 여름이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인데, 그 물색 듬뿍 찍어 벽에 걸어 놓아도 좋으련만, 자연의 신비한 빛깔은 잠시 찾아 왔다 사라져 갈 뿐, 어느 누구에게도 촉수(觸手)를 허락지 않는다.
이제 10월이 오면 그 푸성귀의 여름도 풍요로운 가을 섶으로 묻힐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 없이 포개지는 기왓장 같은 세월이지만 그 접혀 가는 세월을 비집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은 뜻이 있는 길도 보인다.
곰삭은 세월만 깔아 놓고 말이 있을 리 없는 자연들. 그 자연을 만나는 것도 뜻 있는 길이라 싶어 오는 가을이면 나는 다시 그 만남의 길을 나설 것이다. 가서 전국이면 그 맛에 취하고, 그럴싸한 모양새면 가년스러울 그 뼈대에 살을 붙이며 우리 것이 남아 있는데 대한 고마움을 느끼다가 아기자기한 그들의 밀어들이 살갑게 다가오면 다시 진솔한 박음질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엮을 것이다.
메모 : 2005.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