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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후 풍경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09. 10. 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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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가 엊저녁 7시경,

동부정류장에 도착, 버스에서 내렸다.

다가가 와락 안으면서 반겼다.

녀석은 구두를 신고 멋을 좀 냈다.

"한별이 구두가 아주 잘 어울리는데 웬 거야?"

"전 번에 서울 올라가서 4만 원 주고 하나 샀어요."

"머리 스타일도 여자의 단발머리 처럼 되어 있네?"

쪼께 멋을 부려 봤다면서 멋적게 웃는데,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차에 태워서 망우당 공원에서 장사 뒷마무리를 하고 계실

아버지께 먼저 가서 오랜만에 손자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다.

 

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뒷정리에 바쁘셨는데,

두 손자 기훈과 한별이를 보자 두 손을 잡고 반가워하신다.

"아이구, 이거 얼마만이냐? 여기 앉아라."

하시며 하던 일을 멈추고, 병맥주 3병을 꺼내 오신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너희들한테 맥주 한 잔 권해야겠다."

다 큰 손자들의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두 손자에게 용돈치고는 너무 많은 돈 100,000원을 각각 주셨다.

나는 두 아들에게 할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에 대해 몇 마디 덧붙였다.

"할아버지께서 하루 종일 커피와 음료수를 팔아서 모으신 귀한 돈이고

그 큰돈을 너희들에게 이렇게 주시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고,

종종 안부 전화라도 드리는 그런 손자들이길 바라고,

그 돈은 함부로 막 써서는 안돼. 꼭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한다. 알았제?"

대답이야 시원스레 잘 하는 아이들이지만 과연 어떨지.....

 

최근 큰아들 기훈이는 서울에서 알바한답시고 돈을 조금 벌었지만

유흥비로 다 써버리고 툭하면 택시를 타고 다니는

쓸데없이 전화를 많이 해서 통신요금이 엄청나게 나오게 하는

문제투성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서 나한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반면에 한별이는 아빠가 보내주는 용돈을 거의 안 쓰고 모은다고 한다.

통장에 조금씩 모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제 형과는 다른 대견한 모습을 보여줘서 그나마 희망적이다.

수시모집 원서를 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요즈음이다.

합격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고, 그저 기다려 볼 뿐이다.

 

추석날 전야,

우리 3형제가 술 한잔 마시며 세상이야기에 빠져있을 때,

제수씨 두 분 등 세 동서가 수성못 어느 카페에서 와인을 들고 있을 때,

두 아들과 조카 한결이는 늦은 시간까지 게임방엘 갔다 왔던 모양이다.

노래방이나 가서 잠시 놀다가 오라고 했는데, 성이 차지 않았는지

게임방엘 갔다고 하는데, 한결이(고1)까지 간 것이 신경 쓰인다.

서울 제수는 시아주머님에 대한 원망이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기훈이와 밤을 깎고 있을 때, 둘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듣다가

주방에서 갑자기 왜 군대를 안 가냐며 화를 내던 제수의 모습에서 느꼈다.

서준이가 지나가다가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하니 "작은 엄마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훈이 군대 문제로 오랜동안 속상해 했고,

아들 만나 또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덩달아 꾸지람을 한다?

제수가 나중에 결례한 것임을 안 듯,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지만

시아주머니에 대한 은근한 원망의 표현이 그렇게 표현된 것임을

강하게 느꼈다. 몇 년 전의 씁쓸함이 오버랩되었다.

겉으로 괜찮다고는 했지만 기분은 영 안 좋았다.

 

추석 날 아침 차례를 지낸 뒤의 일이다.

수면 부족으로 피곤한 듯, 어른들도 아이들도

저마다의 공간을 차지하고 몸을 눕히고 있다.

딸들은 티비의 코메디 프로그램에 눈을 매달고 한바탕 웃어대고....

이럴 땐 온 가족이 어울릴 수 있는 윷놀이가 제격이라.

그런데, 윷을 찾을 수 없어서 미적미적하고 있는데,

범주 동생은 친구인 중섭이를 잠시 만나고 오겠다며 나가고,

조금 후 석주 동생은 심심해 하는 채윤 남매와 다운이를 데리고 나가고,

나는 어찌할까 하다가 덩치 큰 기훈, 한별, 한결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든 금호강가를 거닐든

'추억만들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쪽빛 하늘 아래 금호강가엔

하얀 오리배가 수도 없이 떠다니고 있었다.

한별이한테 물었다.

"우리 오리배나 한 번 타 볼까?"

"아빠, 경주에서 여자 친구와 타 본 적이 있는데, 억수로 힘들어요."

기훈이도, 한결이도 다 타 봤는데 힘들다고만 하지 아무도 응낙하지 않는다.

일단 금호강 가에 차를 세우고 강에 떠 있는 배들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4촌 형제끼리, 부자끼리.

이왕이면 배를 타고 찍으면 더 좋겠다 싶어 다시 제안하니

이번에는 한별이가 동의를 해 준다. "좋아요, 한 번 타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타는 데 비용이 얼마냐 했더니 10,000원인데, 지칠 때까지 타란다.

희망 22호, 4인용 오리배인데 앞에 앉은 두 사람이

페달을 밟으면서 운전을 하고 뒤의 두 사람은 그냥 있으면 된다.

배 주인이 권하는 구명조끼를 다 입었다.

앞에는 기훈이와 한별이가 탔고, 한결과 나는 뒤에 탔다.

강위의 가을바람이 시원해서 좋다.

흐르는 강물은 3급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부유물이 많이 떠다니고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고기들이 많다고 하는데, 잡아먹기는 적당치 않을 듯하다.

대낮의 햇살은 뜨거웠다.

한참을 타다가 한별과 내가 자리를 바꿔 앉고, 페달을 힘껏 밟아보았다.

이리저리 방향을 잡고 미끄러지는 기분이 괜찮았다.

'이렇게라도 추억거리를 만들면 남는 게 있는 법!'

운동삼아 30분 정도 타고 나니 단조롭고 재미가 적다.

한결이도 배가 고프다고 하니, 빨리 내려서 집으로 가야 했다.

배에서 내려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결이에게 학교 공부와 관련해서

분당에서 강남으로의 전학과 관련해서 물었고, 

한별이게는 주변 친구들에 대해서 물었고,

기훈이게는 군대 입대문제에 대해서 물었고,

심각한 낭비벽에 대해서 꼬집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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