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틀간 난 참 행복했습니다.
제수씨의 도움 덕분에 한별이는 수원대 면접을 잘 마치고
오후 3시 20분에 포항으로 내려오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포항 병원에는 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녀석이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 30분 경이었습니다.
그날 스트레스도 좀 받고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오자마자 옷을 갈아 입고, 먹는 것도 귀찮은 듯
잠이나 좀 푹 자고 싶다고 하더군요.
친구들인 토담, 도산, 덕천강이 병문안 차 찾아와서 얘기 좀 하다가
한별이를 쉬게 하고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한잔 했습니다.
친구들은 녀석의 밝은 모습에 위안이 되었다면서
부자간의 관계 회복에 마음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졌지요.
다음 날 아침 7시,
곤하게 자고 있는 한별이를 깨워
머리를 감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외출 허락을 받은 후 경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달리는 경포 국도는 환상적이었습니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도 좋지만,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그 풍성함을 더했지요.
녀석도 재작년 이맘때 쯤, 여자 친구와 만나서
경주에 가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던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대는데, 얼마나 귀엽고 듣기가 좋던지.....
애비한테 거리낌없이 여자친구 얘기까지 속속들이 해 주는데
오히려 마음이 흐뭇해지고 푼푼해짐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커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또 누구는 애비를 닮아 연애를 잘한다 할 겁니다.^^
국도 옆 휴게실에 들러 김밥으로 요기를 한 후,
동국대 면접장소를 찾았을 때는 아직도 30분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랬습니다.
에너지 시스템 학부,
2007년 특성화대학으로 신설되었다는데,
합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녀석의 면접카드를 대신 작성해 주면서
마치 대학교 신입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는데,
녀석도 대학 생활의 시작과 함께 공부에 몰입,
지금까지의 방황을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면접은 제법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2명씩 면접실에 들어가 면접관 앞에서 질문을 받고 답하는 형식인데,
3-5분 정도의 짧은 면접이지만 대기시간이 많아 지루했을 겁니다.
나는 건물 1층에 있는 학부모대기실에서
학교측이 제공하는 학교 홍보물을 보았습니다.
15분 단위로 반복하는 것을 너덧 번은 봤지 싶은데,
동국대 경주분교는 1978년도에 설립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내가 78학번이고, 고딩 시절,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했던
멋있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경주분교 1회 출신이니,
이 학교의 터줏대감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웅변을 잘 했고, 의협심도 강했던 친구였는데,
동국대 경주분교 초대 총학생회장까지 했었으니까요.
지금도 웅변대회에서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
어슴프레 남아있습니다.
면접을 끝내고 나타난 한별이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교수의 질문이 다 면접카드에 있는 내용이었고,
준비된 대답이라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더 지켜볼 일이고, 운명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자, 이젠 돌아가야 하는 길,
11시 밖에 안 되었고, 병원 복귀 시간은 오후 2시이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경주 일원을 둘러보면 좋다 싶은데,
녀석은 바람부는 날씨에 감기 걸릴 수 있다며 포항으로 바로 가자고 합니다.
마침 경주 국제마라톤 경기가 진행 중이라서 도로 통제가 심했고,
여기저기 빙 돌다가 경주 시내를 한참만에야 벗어났습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는 경주 포항간 국도,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점심 식사는 제대로 해 보자 싶어
뭘 먹고 싶냐고 했더니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영일만 온천 주변의 유황오리 음식이 어떠냐 했더니 좋다네요.
영일만 온천 주변,
실로 몇 년만에 찾는 곳인지 모릅니다.
한별이가 어렸을 때,
온천 뒷쪽으로 운제산을 오르던 기억이 있어 물어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 아빠와의 어린 시절 추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몇 가지 추억을 되살려 보아도 어렴풋하다는 반응 뿐이다.
녀석이 어렸을 때, 여기저기 참 많이도 데리고 다녔는데.....
온천 주변엔 반공(半空)으로 달리는 큰 도로가 길게 나서
온천을 가려면 교각 밑으로 왕래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유황오리집은 을씨년스러워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원래 식당은 손님으로 들끓어야 되는 법인데 말이지요.
"한별아, 여긴 안 되겠다. 다른 데로 가자."
"아빠, 우리 장어 먹으러 가면 안 될까요?"
"그거 좋지. 옛날에도 우리 같이 갔었잖아."
가던 길을 되돌아 천곡사란 절이 있는 샘골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샘골 어귀에 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두세 곳이 있는데,
그 전에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지요.
점심 먹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찾아가니
여자 주인이 상냥하게 자그마한 방가로로 안내해 주더군요.
간장으로 양념한 장어구이를 적당량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장어가 귀해서 그런지 마리당 18,000원이라네요. 세 마리 시켰어요.)
두런두런 애비 자식간의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녀석은 조금은 부담스런 질문도 자연스레 던졌더랬는데,
나도 진지하게 대답을 했고, 동의를 받아냈습니다.
이제 녀석도 철이 들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조금 후, 잘 익은 장어 음식이 들어왔고,
장어를 양념에 찍어서 상추 싸서 녀석의 입에 넣어주니
그 맛이 최고라면서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 마리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좀 더 시킬까 했더니, 그 장어맛의 여운과 미련이 있어야
다음에 또 먹게 된다면서 점잖게 사양을 했습니다.
끝으로 나오는 된장찌개로 배를 마저 채우니,
그 포만감에 우린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병원 복귀 시간 오후 2시에 맞춰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옷을 갈아 입힌 다음,
잠시 머물다가 나도 귀로에 올라야 했습니다.
대구 어른댁에도 들려야 했고, 또다른 약속이 있었습니다.
녀석과 병원 입구에서 헤어지기 아쉬워 몇 마디 더 하고,
서로 포옹을 하면서 당분간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나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을 녀석,
그나마 다친 곳이 발이 아니라 손이고,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어서 다행이라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마음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10월의 하루를 기분좋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녀석과 함께 했던 이틀간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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