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서울의 희륜씨한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통영 ES리조트를 혹시 이용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거였다.
방 두 개를 예약해 놓은 것이 있는데 하나는 취소해야 할 입장이긴 하나
그냥 취소하기에 아깝다면서 나에게 이용해 볼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마침 아내와의 국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쾌재를 부르며 동의했다.^^
당일 아침, 아내는 포항에서 용녀회원들과의 선약이 12시에 되어 있었다.
함께 갔다가 2시간 정도 기다려 통영으로 출발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했다.
가는 김에 덕천 선생을 만나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전화를 거니 마침 집에 있었다.
와병중인 사모님 소식도 궁금하던 차에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 나누자 했다.
덕천은 내 마음을 알았는지 부부가 함께 나오겠다고 한다. 더욱 좋다.^^
사모님은 수술 중에 악성종양이 발견되어 항암치료 중이었다. 지난 주에는
밥을 거의 먹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오늘은 좀 나은 것 같아 나올 수 있었단다.
사모님은 날 보고 어찌 지내냐며 잔잔히 웃는다. 무좀 땜에 고생한다고 했더니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 한다. 자신은 죽음의 암덩어리와 싸우는데.....
능이버섯 샤브샤브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사모님도 시장했는지 잘 드셨다.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은 훈훈해진다. 사모님의 편안한 미소가 여전히 보기 좋다.
두 부부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내가 프론트에 먼저 가서 점심값을 냈다.
포항에서 경주, 양산, 김해, 거제도를 거쳐 '동양의 나폴리'인 통영으로 들어갔다.
언제 가도 좋다. 아무리 가도 지겹지 않고 늘 새로운 곳이다. 동양의 나폴리답다.
숙소에서 보이는 다도해, 한려수도의 일몰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구름이 많이 끼어 여의치않을 듯.
통영 ES리조트의 명소인 수영장에서 내려다보는 아스라한 해상공원은 최고의 멋을 자랑할 만하다.
여기까지가 첫날 오후에 보았던 풍광들이다. 날씨가 더워서 숙소인 703호에서
마냥 쉬던 중, 서울에서 내려온 희륜씨가 잠시 들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헤어져야 했다.
자신을 포함한 교회 찬양대 회원들 5명이 즐겁게 놀고 있어서 여기서 오래 있을 수는 없다고 웃었다.
덕분에 좋은 곳에 값싸게 머물 수 있음을 특별히 감사해야 했지만 내가 준비한 것은 마음뿐이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이런 전망좋은 곳에서 이틀간 편하게 쉬다가 가면 최고의 휴가 아니겠는가!
다음날 아침, 식사하라면서 희륜씨가 마련해 준 밑반찬과 공기밥 두 그릇,
우리 부부를 위해 제공한 최고의 서비스에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쌈추'에 밥 한 술 올려놓고 그 위에 눌러 얹어 먹는 된장맛은 역대 최고였다.
자는 아내가 먹을 것을 조금 남겨두고 먼저 먹긴 했지만 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어설픈 대학 동기지만 일일이 챙겨주는 희륜씨의 소박한 정성에 그저 행복했음을 밝힌다.
최근의 우리 동기회에 보여준 희륜씨의 진심에 감동한 적이 얼마 전이었는데 또.....^^
'앗, 희륜씨가 요리한 국도 있었는데 사진에서는 빠져버렸다.' 오뎅탕의 구수한 맛을 한번 상상해 보시길.....^^
아침의 리조트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다. 원근감이 저절로 느껴지도록
산위로 올라온 안개는 요술을 부리며 수목들 사이로 자꾸만 자꾸만 비집고 들었다.
영화 속 장면이 부럽지 않은 눈맛은 어디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여인네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좋아라 한다. '젊은 사람일수록 그 감동은 더할까?'
협죽도, 독성이 강하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수학여행 중인 한 학생이 젓가락이 없어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젓가락 대용으로 썼다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5천 배가 넘는다고 하니...... 분홍꽃 뒤에 숨은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또 언제 그 화를 당할지 모른다.
찌그러진 창문, 구부러진 지붕곡선 등은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닮은 듯하다.
통영 ES리조트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가우디 건축물의 벤치마킹이라 해도 좋고..... 건물의 곡선미를 최대한 살린.....
종려나무 주변에 심어놓은 붉은 꽃이 눈에 확 들어와 사진기를 들이댔다.
아침 일찍 산책로를 거닐어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3코스가 있는데, 30분, 1시간, 2시간까지 선택해서 걸어볼 수 있다.
둘째날,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해저터널 부근에 위치한 김춘수 유물전시관에 잠시 들렀다.
김춘수(1922~2004) 시인의 호가 대여(大餘)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서호 전통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워낙 더운 터라 시내 관광은 생략하고
민생고를 해결한 다음 미륵도의 미답지인 풍화리 해안도로를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오후 늦게 다시 리조트로 돌아와 카페에 들러 차 한잔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 상큼한 무지개색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어디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신비로움과 함께 부드러운 비정형의 건물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버섯 굴뚝 아래쪽에 위치한 '달아 한식당'에서 시원한 산양 막걸리를 한 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무좀을 심하게 앓고 있는 나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는 된장찌개, 해물뚝배기 한 그릇씩 시켜서 저녁을 먹고
같은 건물의 노래연습장에 들어가 오랜만에 30분 가량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않은 탓인지 고음 처리가 잘 안 되어 듣기가 민망했다.
노래라 하면 기죽지 않고 잘 부를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는 영 아니다 싶고
노래 제목도 별로 생각나지 않아서 부를수 있는 노래가 몇 곡 안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노래솜씨가 좋았고, 내가 모르는 노래도 많이 알고 있었다.
'에라, 이제 난 노래도 못 부르고..... 도대체 잘 하는 게 뭐가 있지?
술이나 즐기고 식욕은 좋아서 음식을 절제하지 않아 살만 디룩디룩.....
자신을 너무 자학하고 있는 것 아냐? 일단 숙소에 들어가 편히 쉬자'
전날 저녁에 본 프로야구 경기, 한화-두산전, 한화가 8:2로 이겼는데
오늘은 두산이 똑같은 점수인 8:2로 한화를 물리쳤다. 언제부턴가
한화팬이 되어버린 내 자신, 한화의 두산전 1승 1패는 아쉬울 수밖에......
김성근 감독의 근성있는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지
한화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거 같다.
클럽 ES에서 묵었던 이틀은 또 다른 추억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전히 휴식만을 취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무좀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신체상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내가 간절히 바라던 휴가이기도 해서 시기적으로 딱이었다.
아침 10시쯤 묵었던 방을 정리하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마친 뒤, 본관 건물 앞에 섰다.
정면으로 보이는 '루나 피에나 카페'는 모든 건물의 중심지인 듯,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상큼한' 무지개 계단을 타고 오르면 이탈리언 레스토랑으로 연결된다. 대단지화 되어가는,
위락시설만이 강조된 리조트가 아니며, 자연을 주인공으로 인간의 삶이 배경이 되는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압도하지도 않는다. 또 섬의 지형을 해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조화로움을 살렸다는 점에서 클럽 ES는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바로 비진도다. 두 섬이 모래톱으로 연결된 하나의 섬이다.
6,7년 저 아내와 함께 들러 한나절 해수욕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엊그제 같은데.....
아침 일찍 희륜씨가 문자메시지로 꼭 가보라고 권했던 통영 국제음악당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 아침 점심을 겸해 충무김밥 2인분을 사서 맛있게 먹고
고성 - 창원 -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여유있게 귀가했다.
아내는 충분히 쉴 수 있는 여행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많이 보고 체험하며 느끼는 여행도 좋지만
글자그대로의 '쉼'을 목표로 한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휴가가 아겠냐며 흡족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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