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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를 하면서 2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09. 9. 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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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다리를 지나 여주로 가는 길,

내비엔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신내리 24-6 번지'가 입력되었다.

큰이모(외삼촌)가 가르쳐 준 주소인 것이다.

내비의 안내를 받아 차를 모는 것은 식은죽먹기다.

간혹 효과적인 안내가 아닌 것 같아서

의심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지만 결국 정확하게 안내해 주니

내비가 길치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운전보조기구다.

 

어느 골목을 굽이치며 지나가니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안내를 종료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주인이신 큰이모부 내외, 다른 친척 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인천 이모부, 이모, (나중에 인기네 다섯 식구 합류)

부산 외삼촌, 외숙모, 허창성, 서울 허창균 형, 서현정의 귀여운 딸,

서장원 부부, 서정혁, 그리고 우리 식구 아버지, 어머니, 나,

모두 모이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 듯, 

안부를 물으면서 너털웃음을 짓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외삼촌은 우물가 한 구석자리를 잡아 큰 원통형 용기를

가스불로 계속해서 달이고 계시는데, 보신탕임에 틀림없다.

 

퉁퉁한 인상의 사람좋은 창균 형은 여전하다.

작년 이맘 때의 대실수를 인식하고 있기라도 하듯,

올해는 우야든동 술을 적게 마셔야 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었단다.

보신탕의 역겨운 냄새를 없애려면 생강을 깎아서 넣어야 되는데,

창균 형은 우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열심히 생강을 깎았다.

3명이 하는 껍질벗기기는 많은 양일지라도 금방 끝이 났다.

 

큰이모네 집은 참으로 멋진 곳에 있었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이 좋다.

풍수지리상으로 보더라도 좋은 위치임에 틀림없다.

슬라브 구조의 건물이지만 기세좋게 우뚝 솟은 느낌이다.

뒤로는 교회가 있어서 앞 건물을 감싸주고 있는 듯하고,

양 옆으로 나즈막한 산의 어깨가 휘어지면서 건물을 품고 있는 듯하다.

영락없는 명당 자리에 건물이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겠다.

마당도 넓어서 차가 7,8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대지 건물 합쳐서 전부 180 평 정도라 한다)

건물 앞쪽으로는 배추 200여 포기를 심어놓은 채마밭이 확보되었고,

담장을 따라서 3미터 정도의 폭으로 제법 넓은 밭이 놓여 있다.

우물가엔 포도나무 한 그루 가지를 뻗으며 자라고 있고,

그 옆으로 장독대가 위치해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석주 동생은 클래식 기타를 가져와 장독대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오늘같은 집들이 때는 '알함브라의 궁전'이 어울릴 것 같다 했더니

긴 손톱의 손가락을 몇번 튕기더니 그 곡을 연주하고 있다.

'역시, 아직까지 연주실력은 녹슬지 않고 살아있군 그래.'

 

디카로 사진 여러 장을 남겨 두었다.

역사의 기록인 만큼 어떤 장면이든 그때그때 찍어 두면

나름대로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두 분의 이모부, 아버지, 세 동서끼리 한자리에 앉아

술자리를 시작하셨는데 진도 조절에 실패하신 것 같다.

이미 맏동서인 아버지께서는 술이 많이 취해 있으시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감정의 절제가 전혀 없으신 것이다.

그냥 생각나시는 대로 누구든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오늘 큰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 점점 불안해진다.

어머니는 벌써 어른의 옷차림과 행동이 못마땅한지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속상해 하시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모부 곁에서 소주를 몇 잔 권해 드려야 했다.

조금 있으니 삶은 부추 위에 얹혀진 개고기 수육이 전달되었는데,

몇 저럼 잡숴보신 이보부께서 아직은 푹 익지 않아서 조금 질기단다.

푸욱 더 고아야 될 것 같다 하니 아버지는 매우 섭섭해 하시기까지 하신다.

결국 노인들은 마음놓고 잡수시질 못하고 입맛만 다신 셈이다.

젊은 우리들이 먹어 보니 쫄깃쫄깃한 것이 맛만 좋은데,

어른들은 치아가 좋지 않아서 흐물흐물한 고기만을 드셔야 하나 보다.

수육이 푹 익을 때까지 어른들은 좀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신다.

그래도 끊임없이 소주잔을 비우시기에 바쁘시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큰이모부의 외손녀인 현정이 딸(2살)이 아장아장 걸어와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 든다.

오동통한 살집에 둥근 눈, 영락없는 엄마 모습이다. 귀엽다. 정말 귀엽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어려움없이 몸을 맡기는 기세도 좋고,

제 몸집보다 훨씬 큰 진도개한테 다가가 마음껏 장난을 치는 배짱도 두둑하다.

우리 마누라는 아직도 개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녀석은 참 대단하다.

여장부로 잘 키워서 사회 변화에 한 역할 하게 함이 어떨까?

 

큰이모부는 귀에 보청기를 끼고도 잘 안들리신다.

약간 소리를 크게 해서 말을 해야 알아 들으시는 경우가 많다.

일흔 한 살의 연세, 머리는 100% 백발이지만 아직 '마음은 청춘'이시다.

얼마 전 이 동네로 새로 이사와서 누군가에게 마을 노인회 가입을 권유받았는데,

아직 젊은 사람이 무슨 노인회 가입이냐고 거부하셨다고 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거부할 것이 아니라 빨리 가입을 하셔야 한다고 말참견을 했다.

새로 이사온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동네 어른들과 친해지셔야 하니까.

그러나 아직 그럴 생각이 없고 필요없다고 다시금 말씀하신다.

과연 그럴까 싶은데, 술 한잔 하시니 고집이 발동하신 게 아닐까 싶다.

여하튼 우리 이모부님도 대단하신 분 같다.^^

 

큰이모부의 큰아들 서장원(45세)과 그의 부인 정혁, 정민이 엄마,

봉사활동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서 결혼까지 한

금슬 좋은 부부, 특히 제수씨의 후덕함은 세상에도 정평이 나 있어

이웃들은 물론, 일가 친척의 칭찬이 자자한 것이다.

시집 온 이후, 시부모님과 한집에 살면서 한식구가 된 지 오래다.

이종사촌 동생인 서서방은 그런 부인 덕분인지 언제나 모습이 환하다.

특히 그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이모부님을 그대로 닮았다.

앞니 사이가 심하게 벌어져 있는 것도 보는 이에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그런 타고난 치아를 괘념치 않고 살아가는 서글서글함이 느껴져서이다.

그는 서울 시내를 종횡무진하는 개인택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온 가족이 가톨릭 신자인 성가정인 만큼,

하느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인천 이모부님의 믿음직스런 아들 부부가 왔다.

귀엽디 귀여운 딸 셋을 데리고 검은색 폭스바겐 승용차를 타고 왔다.

동그란 테의 안경을 써서 그런지 아주 이지적 느낌을 주는 이종사촌 동생

인물 좋은 제수씨와 늘 함께 있으니 신세대 부부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아주 보기가 좋다. 세 아이의 부모라서 그런지 더욱 돋보인다.

건축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유학 중에 만났다는 부부,

지금은 서울 어딘가에 건축사 사무실을 차려놓고 성업 중에 있고,

두 부부가 대학(홍익대, 남서울대)에 건축학 강의를 하러 다니는

박사 교수님들이다. 이모부님과 이모는 든든한 자식이 있어 좋겠다.^^

 

이럭저럭 해는 서산에 지고, 날은 점점 어두워간다.

병원 근무를 마치고 늦게 출발한 서울 사는 유천(범주) 동생도 왔다.

너른 마당에는 돗자리 몇 장이 펼쳐지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마주 앉았다.

방안의 불빛과 차의 헤드라이트 속에서 삼겹살을 굽는 모습도 있고,

우물가에서는 식구들의 음식을 마련하기에 바쁜 모습도 있다.

특히 외삼촌과 두 이모님들의 손놀림은 가히 환상적이다.

자꾸 일만 할 수 있냐며 짬을 내서 꽤 여러 잔의 소주를 마신 것 같고,

나도 창균이 형도 석주도 몇 잔 얻어 마시니 분위기가 더욱 좋아진다.

어머니도 분위기가 좋으니 그 곁에서 한두 잔씩 얻어 마셨나 보다.

원래 술을 마시면 누구나 말이 좀 많아지는 법인데,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 특유의 푸념이 시작된다.

이모님들도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시면서 장단을 맞추신다.

푸념은 계속된다. 최근 며칠간 아버지에게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리라.

목소리는 떨리고, 머리까지 흔들어 가면서 눈물섞인 얘기를 계속 하시는데,

약간 떨어져 앉아 술을 계속 드시고 계신 아버지에게는

들리지가 않는지,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다.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 뒤에 가 앉아 꼭 끝어안고 달랬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가 최근 며칠 힘드시더니 말씀을 많이 하시네."

어머니는 큰아들이 뒤에 앉아있겠다 든든한 마음에 더 기세가 좋아진다.

한참을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데 끊임이 없다.

유천도 어머니를 감싸 안고 또 달래 본다. 둘째아들답다.

부산의 외숙모는 어머니의 얘기 들으며 내내 울기만 했다.

"왜, 울어요? 외숙모 울지 말아요."

여자의 일생을 생각했을까? 친정 부모님을 생각했을까?

 

어느 순간인가 난 술이 취해서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러다 새벽 2시경, 인천이모님의 신음소리에 잠이 깨서 일어나니 

이모님께서는 과음으로 속이 불편한 나머지 계속 구토를 하고 계시고,

자상한 이모부와 아들, 며느리가 초비상이 되어 도와주고 있다.

범주, 석주 두 동생은 거실의 탁자 주변에 앉아 아직 술자리에 있고,

외삼촌과 창균 형이 보이지 않아 마당으로 나가 보니

이슬을 맞으면서 창균 형은 쿨쿨 잠들어 있다. 흔들어 깨웠다.

한참만에 깨어나서는 어찌 된 거냐 한다. 내 신발 어딨냐 한다.

덩치 큰 형을 일으켜 세운 다음 거실로 데리고 가서 잠자리를 마련

누워 자도록 했다. 술이 잔뜩 취했는지 오늘은 순순하다.

작년에는 밤새도록 꼬장을 부리더니 오늘은 순한 양 같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 자는 사이에 또 무슨 사건이 있었다고 유천은 말한다.

"올해 모임은 작년과 달리 사건의 주인공들이 꽤 여럿 등장했는데,

마지막으로 창균이 형이 마무리 점을 딱 찍었어."라고

 

외삼촌이 보이질 않아서 둘러 보니 차 안에 계신다.

안에 들어가서 자자고 했더니, 괜찮단다. 신경쓰지 말란다.

근데 오른쪽 조수석 차유리가 산산조각이 나 있어서 엉망이다.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자세히 말씀은 안 하시고,

전화번호(010-4004-5981)를 알려주면서 외숙모한테 연락을 좀 해 보라 하신다.

전화를 거니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유천이 석주와 함께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외숙모를 모시러 가기로 했다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께서 마당으로 나오셔서 쪼그려 앉으시고는

담벼락 앞에서 구토를 하신다. 과음하시더니 속이 부대끼셨던 모양이다.

같이 앉아서 등을 좀 두드려 드리니 괜찮다 하신다.

조금 후 속이 편해지셨는지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한참만에 외숙모님은 돌아오셨다.

외삼촌과 할 얘기가 더 있으리라 생각하고

우리 3형제는 자리를 피해 거실로 돌아와서

탁자에 둘러앉아 소주잔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참만에 거실문이 열리며 외삼촌, 외숙모도 들어 오신다.

이야기를 평화적으로 잘 끝낸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외숙모는 거실 창문가에 잠자리를 잡더니 몸을 눕히셨고,

외삼촌은 한잔 더 하겠다면서 우리들 곁으로 오셨다.

 

새벽 4시를 넘긴 시각,

한참을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은 점점 새벽을 향해 흐르고,

피곤에 지친 유천과 석주 동생은 결국 피곤에 지쳐 자리를 떴다.

외삼촌도 나도 차례차례 잠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가족, 친인척들과 함께했던 하루,

자주 모이지는 못해도 가끔씩 이렇게 기회를 만들어야 하리라.

함께 어울려 추억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소중하다고 본다.

시대가 복잡해질수록 가족, 친인척의 사랑과 유대가 한층 절박해짐을 느끼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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