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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蘇來) 포구에서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4. 1. 1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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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용 증기기관차 한 대가 소래역사관 앞에 서 있다.

수원 인천 사이를 57년간 오가다가 1994년에 멈춰 선 기차다.

낱낱이 들출 수 없는 사연이 철교 위 철망 안에 숨어서

골뱅이 껍데기처럼 켜켜이 어지러이 침목으로 누워 있다.

방금 떠오른 붉은 햇빛은 소래선 철길 아래 퍼지더니

배고픈 철새들의 어지런 자맥질로 물살이 선명했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하얗게 얼어붙어

물길 따라 출항하는 새우잡이 배도 포구에 묶여 앉아 있다.

5년째 소래포구에 살고 있다는 심형 집에 이틀간 머물면서

삶의 바다와 가족의 강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나눴다.

심형은 편백나무 전용 침대와 새로 튼 솜이불을 제공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죽부인까지 건네며 감동을 선물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에도 가 보았다.

허물어져가는 소금창고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닷물 퍼올려 천연소금 생산하던 염전의 역사가

창고에 기댄 수차와 흩어진 검은 타일 위에 선명했고

소래염전을 이어주는 다리, 소염교(蘇鹽橋) 변천사도 읽었다.

서구풍의 풍차가 낯설었으나 그림처럼 어우러져

해질 녘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섬에 가고 싶다 했더니 영종도 무의도 실미도가 지척이다.

귀한 사진을 찍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연속 사진

심형은 표정이 살아있는 한 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

단가가 비싼 필름일망정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고 했다.

매이지 않고 자연에 몸 드리울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논강, 내일은 없어. 오늘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가 가슴에 품고 사는 가족들의, 사진을 천천히 읽으면서

소래와 월곶 사이로 흐르는 물길의 갯벌 사진을 찍었다.

 

심형 부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인연(因緣)이 닿은 사람에게 정을 쏟고,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 아무런 대가 없이.

나한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영혼을 다하여 사랑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상상한다. 심형께서 건강을 완전히 되찾고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기타 치면서 공연하는 모습을.

나는 상상한다. 심형 가족들이 기타 연주에 맞춰

아름다운 화음의 노래로 웃음짓는 모습을.

기쁜 눈물 흘리며 큰 키와 품으로 껴안는 모습을.

시낭송을 좋아하는 논강이 찬조출연, 훤하게 낭송하는 모습을.

당신이 찍었던 소중한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담아

심형의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해 주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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