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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안동에서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3. 6. 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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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안동(安東)에서

   

  아침 일찍 부모님을 모시고 나선 곳은 낙동강을 끼고 사는 탈춤의 도시 안동이었다. 볼거리가 많기도 하거니와, 부모님의 유교적 정서에 걸맞은 곳이라고 판단해서 여행지로 정한 것이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안동댐과 그 보조댐 사이의 강물 위를 가로지른 건축물, ‘월영교(月映橋)’였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루(月映樓)’라는 이름의 누각이 우뚝 서 있다. 달빛이 강에 투영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밤이라야 제격일 것이지만 아침햇살 비치는 누각 위에 올라서서 사진 몇 장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난간에 앉으신 어머니의 자태는 여전히 고우셨고, 뒷짐을 진 채 먼 곳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여유로움도 선비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다. 오랜 세월 함께하시면서 지니게 된 멋의 은근함이라고나 할까.

  월영교가 ‘원이엄마’의 애달픈 사연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을까? 젊디젊은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삼실과 섞어서 삼아놓은 미투리, 어린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낭군을 그리며 구구절절 써내려 간 편지, 그 놀랄만한 유물들이 미이라와 함께 지난 1998년 고성이씨 집안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미투리와 편지를 남편의 관에 넣어 묻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사연이 전해지고 5년 뒤에 그 미투리 모양을 형상화하여 세운 다리가 바로 월영교인데 철제빔에 목재를 얹어 만들면서 자연스러운 곡선을 절묘하게 살렸다. 다리 위로 천천히 부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니 원이엄마의 애절한 마음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월영교에서 반 마장쯤 떨어진 곳에는 신세동 7층전탑(국보 16호)과 임청각(보물182호)이 인접해 있으나 철길 바로 옆에 있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다소 떨어지고 만 느낌이다. “뭐, 이런 곳에?”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관심은 특별하시다. 메모를 하시고, 안내판의 글도 열심히 읽으셨다. 일제 강점기 때 놓인 철길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된 글감 찾기인 것이다. 안동의 자존심인 고성이씨 법흥종택 부지를 침범해서 조선의 맥을 끊어놓으려는 일제의 의도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고, 더구나 그 임청각의 옛 주인이 독립운동가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임에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지금이라도 당장 일본의 위정자를 불러 세워 분명하게 따져야 해. 너희들로 인해 우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니 확실하게 변상 조치를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이야.”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 아버지다운 반응이셨고, 분노 섞인 말씀은 임청각의 군자정 처마 끝에 한으로 몽글몽글 맺히고 있었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물론 불굴의 정신마저 파괴하고자 했던 일제에 대한 감정이니 오죽하랴.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현실성 없는 대응인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했다. 안동 출신인 아내도 어른들한테서 들은 옛날 얘기를 곁들이더니, 어느 겨울날에 하룻밤을 보냈던 임청각의 추억과 고택지기의 친절함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군자정의 대청마루에 걸려있는 5언절구 ‘거국음(去國吟)’도 언급되었다. 석주 선생의 기개와 선비정신이 칼날처럼 살아있는 한시, 무릎 꿇고 노예로 사느니 서서 싸우다 주인으로 죽겠노라는. 

  자, 이젠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하회별신굿을 보러가기로 한다.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공연장까지 가려면 1킬로미터 남짓 더 걸어야 한다. 마침 주차장과 마을 입구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어 그것을 타기로 했다. 날씨는 덥고 공연시간은 다 되어 가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원형의 공연장엔 관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공연장 바닥에까지 내려가 겹겹이 앉아야 할 정도였으니까. 탈을 쓴 연희자들은 많은 관중에 고무된 듯, 신명난 몸짓으로 화답을 했다. 각 마당(또는 과장)마다 표현되는 서민들의 애환, 파계승과 양반에 대한 비판과 풍자도 볼거리지만 양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는 초랭이, 한 마리의 소를 도살하여 그 염통과 불알을 들고 다니며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백정의 입담과 몸짓은 가히 폭발적이다. 게다가 턱이 없는 이매탈을 쓰고 바보춤을 추면서 초랭이와 주고받는 재담 장면은 하회별신굿의 진수라 할 만하다. 관람석에 앉아있는 외국인을 불러내어 그들로 하여금 놀이에 참여하게 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덤일 것이고……. 굿의 가락과 춤사위에 매료된 관객들은 공연 내내 하회탈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공연장을 빠져나와 하회마을 상류에 있는 병산(屛山)서원에 들르기로 했다. 비포장도로를 10리 정도 더 달려가야 모습을 드러내는 고고한 이미지의 서원이다. 서애 유성룡의 제자들이 스승의 학문과 덕을 기리는 의미에서 세웠다고 한다. 서원의 건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입교당(立敎堂) 맞은편에 고고하게 서 있는 만대루(晩對樓)이다.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국 건축사의 백미’ 라고 평가한 바 있다. 앞에 둘러쳐진 병풍산과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의 조화에 고무되어 시국을 논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깊이 있는 영남학문의 체계가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원 전체를 둘러보고 만대루에 오른 소감을 아버지께 여쭈어 봤더니,

  “이렇게 멋진 곳이 또 있겠어? 35년 전, 모 대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한문학과 이교수, 도서관학과 김교수와 동행해서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오히려 기분이 좋구먼. 여전히 서원 앞을 흐르는 강물은 그 멋스러움이 살아있네. 저 병풍산 좀 봐라!”

  아침 일찍 대구를 떠나 안동 지역으로 향했던 부모님과의 하루 여행은 석양빛을 받으며 금호강 언저리에서 마무리되었다. 자식 내외와 함께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신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의 아픔을 안고 사는 분들이 알면 내가 얼마나 부러울까마는 부모님께서 늘 건강하고 금슬 좋게 살아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금호강의 석양빛은 내 마음만큼이나 평화로웠고, 하늘을 떠돌던 구름도 이제 더미더미 그 여운을 남기고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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