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전부터 새벽 5시 30분이면 잠에서 깨어난다.
전날 일찍 자든 늦게 자든 그 시간이면 영락없이 깨는 것이다.
과음을 해서 수면 시간이 적어서 알람소리에 깨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잠 상태에서 휴대폰의 알람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천천히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세수하고 머리 감고.....
아침 식사로 미숫가루를 풀어서 간단히 마시고,
6시 20분 정도면 집에서 나간다. 학교까지 15분 소요,
그 시간에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영양가 만점의 방송인데, 재미있게 듣다보면 학교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교정의 정적을 늘 깨면서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숙직 전담요원도 미리 현관문을 열어놓고 날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4층 교무실로 올라가 불을 켜고 모든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교무실 옆에 위치한 우리반(3-2) 교실로 간다.
지난 밤 김예지 양이 잠그고 간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환하게 켜면 교실의 책걸상이 내게 조용히 인사를 하는 듯하다.
맨 먼저, 청소용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낸 다음
들쭉날쭉한 책걸상 줄맞추기 작업을 제일 먼저 한다.
우리반 아이들이 밤 11시 자율학습 마침종이 울리자마자
버스를 먼저 타기 위해 교실을 빠져나가기 바빠서 그런지,
책걸상의 정리는 대체로 불량한 상태로 있는 편이다.
집에 갈 때는 의자를 책상 안에 밀어넣고 나가기로 되어 있는데,
그런 것은 솔직히 관심밖인 듯 몇 명의 아이들만 그렇게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의 몸을 지탱해 준 책상과 의자에 대한 고마움으로
책상 안에 의자를 밀어주고 가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학기 초에 여러 번 강조했건만 아이들은 잘 실천하지 않는다.
그래도 말을 잘 듣는 일부 학생들의 배려가 고맙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런 학생들이 좋고, 그런 학생들을 높이 평가한다.
학습능력에 관계없이 기본생활 습관이 잘 되어 있는 친구들이 좋은 거다.
책걸상 줄을 맞춘 다음, 빗자루를 들고
교실 앞부터 시작해서 책상과 책상 사이 전후좌우에 널부러진
쓰레기를 쓸어 모으기 시작한다.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매달 바뀌는 좌석이지만 누구의 자리인지 알고 있는 만큼
책상 정리 상태라든가 주변의 청결 상태 등을 보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깔끔한 아이들의 책상 주변에는 치울 것이 없을 정도이지만
어떤 친구의 자리는 늘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다.
너무 심한 것 같아 조용히 불러 충고를 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다.
놈들의 생활습관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음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담임인 내가 아침 찍 출근해서 반 교실 청소를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말 안듣는 것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느니보다
차라리 내가 청소를 해 버리자. 아이들에게 더이상 실망하지 말자.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
이렇게 판단하고 일단 시작한 것이다.
군데군데 쓰레기를 일단 쓸어 모아두는 작업을 끝내고
쓰레받기로 하나하나 쓸어담아 교실밖 큰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화장실에 있는 밀대를 깨끗이 빨아다가 교실 바닥을 닦기 시작한다.
매일 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 닦는 순서가 거의 같다.
교실 바닥의 먼지를 말끔히 없애는 작업인 만큼 꼭 필요하다.
순서대로 하면 짧은 시간에도 교실 구석구석 께끗이 닦을 수 있다.
그 다음 작업은 칠판 닦기이다.
사각형의 칠판 지우개보다는 수건 크기의 융성분의 걸레가 효과적이라
두 개의 수건을 칠판의 좌우에 갖다 놓았는데, 그것을 깨끗이 빨아
아이들이 낙서한 것, 만화 그림, 자율학습 참여 상황 등이 쓰여져 있는 칠판을
허연 분가루가 여기저기 묻어있는 칠판을 상하 좌우로 움직이며 닦아낸다.
다 닦아 내고 티하나 없는 칠판을 바라보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그리고 수건을 다시 접고 접어 두 개의 걸레를 칠판 좌우에 깔아 놓는다.
수업이 끝난 후, 판을 지운 지우개를 굳이 털 필요없이
걸레 위에 여러 번 문질러서 칠판을 다시 닦으면 효과는 만점이다.
책상 정리부터 칠판 닦기까지 끝내는 시간은 15분 정도가 걸린다.
맨처음에는 20분 남짓 걸렸는데, 요령이 생기면서 시간이 단축되었다.
이 15분의 시간은 우리반 아이들에게 주는 담임 선생님의 써비스 시간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몰래 청소'를 알게 된 3학년 부장 왈,
"그러지 마세요.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이들 스스로 하게 해야지요."
너무 지당한 말씀 같아서 반박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내 입장에서는 적어도 아이들을 위한 청소가 즐거움이라면
굳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만둘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담임이 청소하는 것이 비교육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우리반 36명의 학생 중 한 명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거지요.
담임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한 학생이
학급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으로 해석하자는 거지요.
어차피 사회는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 없이는 아름다울 수 없는 것처럼
그 아름다움을 창출해 보자는 의미에서도 나는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는 그 일 하는게 짜증나지 않고 즐거우니까요.
입시 준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교실 환경을 위해서
필요한 방법의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즐거운 거지요.
우리 학교 3학년 담임 중에는 손하나 까딱않고 불호령과 권위로써
아이들을 다스리는 선생님도 계십니다만 나는 그를 닮고 싶지는 않습니다.
3년 전, 구미전자공고에서의 새벽 청소체험을 통해서
엄청난 행복감을 느꼈더랬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학급 청소체험도 저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테네시 주립대학의 김좌근 교수님의 말씀을 빌자면
미국 사회의 학생들은 교실청소를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청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회사에 맡긴다는군요.
우리나라도 곧 그런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 글을 읽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시거나
충고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 같네요. 댓글로 마음을 표현해 주시면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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