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가옥, 군산시 개정동 413-1 군산간호대학교 내에 위치해 있다.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식, 일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띠며, 해방 후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면서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 된 적이 있다. 이영춘 박사에 대한 브리태니카 사전의 설명을 보자.
이영춘(李永春, 1936~1980)는 평남 용강 출신으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호는 쌍천(雙泉), 본관은 평창이다. 평양고등보통학교 및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을 거쳤고 전북 군산의 일본인 농장인 구마모토 농장의 자혜진료소에 부임하여 3천 세대 2만 여명에 이르는 농장 농민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던 중 1935년 일본 교토 제국대학에서 '니코틴의 성호르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국내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방 후 농촌위생문제와 농민의 질병예방 및 치료를 위해 농촌위생연구소와 개정중앙병원을 개원하였다. 인근 지역인 김제와 완주, 익산의 지역진료소를 연계한 1차-2차-3차 의료 전달 체계를 구축했고, 학생의 진료를 비롯 학교보건위생교육 강습에 이르기까지 학교보건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화호 여중학교, 개정 간호대학, 모세스 영아원 등을 설립했으며 국내 처음으로 양호실과 농민의료보험을 도입하기도 했다. 대한공중보건협회장, 기생충박멸학회장 등으로 한국 농촌위생개선에 헌신한 그는 '한국의 슈바이쳐', '예방의학의 선구자', '공중보건의 개척자'라 불리고, 정부는 생전에 문화훈장을, 1980년 11월 서거 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그의 전기로는 "흙에 심은 사랑의 인술"과 "쌍천 이영춘 빛 가운데로 걸어가다"가 있다. 그가 생전에 살던 구마모토가 지은 한식, 양식, 일식의 복합 건축양식의 가옥은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고 "쌍천 영춘 기념관"으로 조성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1920년 <나무숲>이란 작품, 구마모토가 영국 왕실 박물관에서 구입한 그림이라고 전해진다. 120*94센티
바닥은 티크 목재를 사용했다. 역시 옛 그대로다. 70년 세월이 그대로 멈춘 것만 같다.
이영춘 박사님이 사용하던 가죽 소파
건축 당시의 타일 그대로라는데 엊그제 완성된 타일처럼 느껴진다.
유리창 하나도 깨어지지 않은 채 옛날의 것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놀랍다.
일본인에 대한 증오심에 대한 표현으로 이곳에 진입해서 돌팔매질이라도 했을 텐데.....
지역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푼 이영춘 박사님이 거처하는 곳이라서 감히
그런 저주섞인 파괴행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으리라는 결론이 아닐까?
어느 것 하나 새롭게 보수한 것이 없고, 옛날 그대로인 것,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전두환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영춘 박사가 돌아가시던 해(1980년)다.
벽에 사용한 통나무는 백두산 낙엽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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