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3번지 발산초등학교 건물의 뒷뜰에는
보물 두 점이 자리하고 있다. '이영춘 가옥'을 둘러본 뒤, 곧바로 찾아갔다.
보물 276호인 군산 발산리 석등과 보물 276호인 군산발산리오층석탑이 그 주인공이다.
학교 안에는 총 30여 점 정도의 문화재가 몰려있는데, 그 이유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03년 12월 야마구찌현 출신인 시마타니 야소야라는 자는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돈을 벌어 술의 원료인 쌀을 찾아 군산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자마자 시작한 일이
2개의 군에 486정보의 땅을 사서 농장을 설립한 것인데, 발산리 이곳에 땅을 구입해서
전국을 떠돌며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 개인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발산리에 남아있는 문화재 말고도 미술품, 골동품, 석조공예품 등
수많은 문화재들을 사들였고 그의 금고 역할을 하는 창고까지 지었던 것이다.
해방 후, 시마타니는 자기가 운영하는 농장을 소유한 채 조선에 귀화를 신청하였는데,
협상이 깨지자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으로 향하는 마지막 배가
부산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자신이 수집했던 많은 유물들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귀한 우리의 문화재를 통째로 빼앗길 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나라잃은 설움은 그렇게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 끝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조선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모조리 빼앗아 자국으로 실어나르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군산, 치욕의 세월을 감내했던 군산의 과거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해방된 지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과거의 흔적이 낙인처럼 남아있는
군산의 역사를 발산초등학교 뒷뜰 숲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물 제 234호.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높이는 2.5미터이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일본인 시마타니 야소야가
이곳 발산초등학교 뒷뜰로 옮겨왔다. 석등 밑받침돌에는 여덟 개의 복련을 새겼고,
원통형 기둥돌에는 구름 속에 요동치는 힘찬 용의 모습을 조각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예이다. 불을 켜는 부분은 팔각형 평면으로 폭이 넓은 면에는 타원형 창을 뚫고, 폭이 좁은 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연꽃을 새긴 지붕돌은 경쾌한 느낌을 주는데 꼭대기의 둥근 공모양 장식은 없어졌다.
이 석등은 조각기법이 아주 돋보이는 아름다운 석등이다. 지붕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불을 켰을 때, 그을음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위로 구멍이 뚫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금고용도의 창고다. 반지하 1층까지 포함 3층 규다.
아래 창고의 문 아랫쪽으로 카메라를 집어넣어 찍은 1층의 모습이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아직도 쓸 만하다. 전국에서 수집한 온갖 귀중품들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었으리라. 골동품, 도자기, 한국의 서화 등 값진 것들일 것이다.
6.25때는 인민군들에 의해 우익인사들이 이곳에 감금되어 있었다고도 한다.
일제 시대 일본인에 의한 우리문화 약탈의 실상을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쓰일 만하다.
철제 창살을 통해서 들여다 본 지하의 모습이다. 견고하고 야무지게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발산초등학교의 별관 건물 같은데, 굽어진 형태의 건축물이어서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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