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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여름 마음샘터 모임 4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2. 7. 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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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초인종을 누르니 두농이 깨어 문을 열어 준다.

선재는 욕실에서 잠을 깨우고 있었고, 조금 있으니 남전 형님도, 서백도 거실로 나왔다.

여인네 들이 묵었던 방에서도 차례차례 잠을 깨우고 거실로 나온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단유님은 어느 새, 아침 준비를 다 해 놓았는지

삶은 감자를 접시 안에 가득 담아다 탁자 위에 갖다 놓는다.

'강원도 감자바위'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강원도 사람들이 감자를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서 단유가 설명을 해 준다.

"껍질을 벗겨서 삶아 소금을 약간 친 후, 흔들어 골고루 간이 묻도록 한 뒤에 먹는데

고추장에 찍어서 감자를 먹으면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정확한 기록은

예원 선생님은 메모수첩에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연락해서 알아보면 될 것 같다.

 

단유님께서 꼬꼬면 서너 개를 삶아 조금씩 나눠주었는데 내게는 아주 꿀맛이었다.

건데기를 다 건져먹은 후, 얼큰한 라면국물에 공기밥을 말아 총각김치 반찬 곁들이니

어떤 음식보다 만족도가 높다. 안 먹어도 된다 하더니 견물생심(見物生心), 다들 잘 드신다.

남전 형님과 두농만은 입에도 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의 건강법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음식을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너무 잘 먹어서 문제는 문제다. 살도 안 빠지고.....

 

숙소에서 오늘 예정된 답사코스, 남이섬까지는 12킬로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주차비 4,000원, 남이섬 입장료 10,000원이 답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임을 참고로 알면 좋다.

너무 사람들로 복잡할 때보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조용한 때를 택해서 여행을 하면 더 좋을 듯!!

 

한글 글씨도 멋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돌의 새김이다.

붓끝 갈라짐의 효과를 살리려한 '섬'이란 글자가 독특해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왼쪽으로 보이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는 어느 누구의 조각품인지는 몰라도

누구나 감상하게 되는 선착장 옆에 서 있기에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자작나무가 길 양편에 늘어서 있다. 곧고 길게만 자란 북유럽의 자작나무 숲이 연상되었다.

 

원추리꽃

 

'튤립나무'라고 하는데, 잎이 튜울립꽃 모양을 닮아서 붙인 이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가로수가 바로 이 나무라는 설도 있다. 플라타너스와 비슷하다.

 

 

튤립나무 잎인데, 그 모양이 튤립의 꽃받침을 닮은 게 맞다고 봐야지?

 

물에서도 잘 자라는 왕버들의 튼튼한 몸, 청송의 주산지나 성주의 성밖숲에서 보았던 그 왕버들이다.

 

 

왕버들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싸들고 온 음식을 조금씩 나누기로 했다.

남겨두었던 포항 죽도시장 문어가 특히 맛있었다. 몇 저럼 남지 않은 막바지에는

초고추장에 찍어서 한 잎씩 입에다 넣어주는 남전 형님의 자상함에

회원들은 침을 삼키며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성질 급한 나는 끝까지

참지 못하고 직접 젓가락질을 하려 했으나, 안 된다면서 굳이 직접

당신의 젓가락으로 집어 내입에 먹여주고야 마는 형님이셨다.^^

한병 가득 있는 와인을 차에 두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조금 남은 와인도

잔 없이 나발을 불어야 했으니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두농은 전기자동차를 타고 손흔들며 지나가는 아주머니 일행을 졸졸 따라가서

살짝 웃기고는 과일주 한 컵을 얻어 마시고 불콰해진 기분에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해학적인 조각 솜씨에 웃음이 나서 사진만 자꾸 찍어댔다.

 

하트 모양의 잎을 가진, 달콤한 냄새까지 간직한 계수나무 아래를 지나가기도 하고......

 

두농은 카메라를 들고 와서 여러 장면을 찍었는데, 우리한테는 언제 보여줄란가 모르겠네.^^

 

'겨울연가'의 주인공 사진 옆에 서백이 앉았다. 아마 드라마같은 사랑을 꿈꾸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논강)만 빼고 다 있다. 정식으로 찍어보는 첫 기념사진이다.

 

남전 형만 빼고 다 있다. 내가 쓰는 사진글에 내가 잘 안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글의 예술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서예가의 마음이 읽힌다.

 

담장 위에 눕고, 앉고, 엎드리고, 서서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여인네들의

나체 조각은 흙으로 빚어진 만큼 독특한 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서양의 조각과는 좀 다른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이미지 그 자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남전형은 아이의 통통한 궁둥이를 만지면서 어릴 적 논강이 아니겠냐며 농을 친다.ㅎㅎㅎㅎ

 

사실성이 떨어지는 다소 과장된 작품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니 사랑받을 만하다.

거대한 청동 조각, '모자상' 같은데 모유를 먹이는 어미의 표정이 압권이고,

모유를 먹으면서 오줌을 싸고 있는 듯한 아들의 자세 또한 실감나게 조각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열심히 감상하는 남전 형의 모습 또한 재미있다.

 

 

메타세콰이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겨울연가' 속의 유명한 거리,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의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중국과 일본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어리연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어느 연못, 선재는 '통나무를 타고 건널 수 있을까?' 했다.

 

중국사람들의 단체 관광이 유난히 많은 코스라는 것을 의식했음인지

섬안의 상점들도 차이나 풍의 분위기를 많이 연출해 놓고 있는 것 같다.

 

여미재가 산 관광기념 볼펜인데, 타조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앗, 단유님의 피곤한 모습이 포착되고 말았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하던데......

 귀가해서 빨리 숙면을 취하세요.^^

 

 

남이(1441-1687) 장군의 묘, 26살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병조판서가 된 장군은

유자광의 참소로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유명한 한시 '北征歌'가 돌에 새겨져 있는데 장군의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7언절구의 이 시로 인해 역적으로 몰렸을지도 모르는 남이(南怡) 장군,

그 북벌의 뜻을 펴지 못하고 28살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당해야 했으니.....

그의 원혼은 아직도 구천을 맴돌면서 그 한을 씻지 못하고 있을 것만 같다.

7언 절구의 마지막 결구 '후세수칭대장부'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그의 삶이 30의 나이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십대의 나이에 

나라를 평정할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배 안, 여미재는 명혜당과 나의 모습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데

늘 그렇듯이 선재는 장난끼가 발동, 방해를 하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두농도 웃고......^^

 

남이섬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 샘터님들은 이별을 해야 했다.

각자 돌아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남전 형이 일행을 모아놓고 폐회를 선언하고

마음샘터 화이팅을 외치면서 모았던 손을 치켜올렸다. 시간이 더 있다면

춘천의 의암호 주변을 둘러보고 시원한 막국수를 먹고 헤어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만남은 아쉬움이 으레 따르는 법,

서해안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마음샘터 모임을 정리해 본다.

 

끝으로 두농의 진지함과 망가짐을 오가는 듯한 재미난 이야기에

우리 부부가 매료되었음을 밝힌다. 비록 같은 차안에서의 대화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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