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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유럽연수기(3일째)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2. 5. 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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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중세의 도시, 비엔나


새벽의 알프스 강물과 마을길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비엔나를 향했다. 비가 내린다. 노란 밀밭에 펼쳐지는 삶의 외로움, 비 속에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삼나무와 자작나무의 어깨가 구부정하게 젖는다. 그 사이에 띄엄띄엄 걸어가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유정신을 느낀다.

중간 기착지는 멜크 수도원.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수도원이다. 소설 속에서는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의 사원인데, 실제로 보니까 밝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다. 인간의 웃음은 경건한 신의 세계를 망가뜨린다는 교조주의적 신부의 말이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중세 시대에는 통했던 모양이다. 주인공 윌리엄 신부가 대응하는 말이 일품이다. "원숭이는 웃지 않는다. 웃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뿐이다." 수도원에서 나는 물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지만, 물 같은 부드러움이 스민 수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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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크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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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브룬 궁전 입구

고딕과 바로크, 로마네스크가 골고루 조화를 이룬 비엔나 시내의 한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무덥지가 않아서 끈적거리지는 않았다. 밝은 여름날 오후 찾은 곳은 쇤브룬 궁전. 베르사이유 궁전에 버금가게 지었다는 아름다운 샘물이란 이름의 바로크식 궁전.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베르사이유가 정원을 주 궁전에서 아래쪽으로 조성된 반면에 쇤브룬은 주 궁전에서 위쪽을 향하여 정원이 만들어져 있어서 묘한 대비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다니? 박물관 앞에서 대학 동창생을 만났다. “너, 재환이 아니가?”,“어라 영식아 여긴 웬일이고?”

이런 우연과 행운을 다 만나다니?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여행단이어서 번개처럼 사진만 한 장 찍고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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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브룬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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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그로리에테'를 바라보면서

 

  박물관 안은 1441실 중에서 16실만 공개되었다.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장식이 화려하게 수 놓은 방에는 그 당시 바로크의 장대함과 로코코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었다.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샹들리에, 중국 등지에서 모아온 도자기와 각종 만물상들은 합스부르크가의 세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케 했다.

뒤쪽 정원은 아름답고 장대했다. 궁전에서 정원쪽으로 바라보면 하늘선에 맞춰 만들어진 그리스 식 건축물 그로리에테를 볼 수 있었다. 열한 개의 열린 문으로 드러나는 텅빈 공간은 허전함과 자유로움과 낭만심을 저절로 불러일으킨다. 그 앞쪽의 넵튠 분수상까지 걸어가면서 이런 고급 취미를 즐긴 당대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감탄을 해본다. 잘 다듬어진 정원 자락에 앉아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다.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걷는 걸음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의미’와 ‘시간’이라는 답을 생각해 보았다. 같은 방향을 향하여 걷는 사람들이 장구한 시간을 관통하면서 같은 의미의 행동을 지속할 때 그 발걸음은 큰 흐름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찾은 곳은 시청사. 그 앞에서 잠시 네오 고딕의 상승감에 빠져본다. 고딕은 불안할 정도로 위로 치솟는다. 그래서 그 불안과 긴장에 미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로마네스크의 균형과 비례보다 압도하는 상승감, 그 당시 유럽은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심을 통해서 많은 백성들을 권력자의 품안에 순종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성 스테파누스 성당을 향했다. 12세기 중엽에 세워졌다가 불에 타고 200년 뒤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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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판 성당

 

   12세기 중엽에 세워졌다가 불에 타고 200년 뒤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역시 고딕의 절대적 상승비율이 저절로 고개를 쳐들고 무릎을 굽히게 만든다.

  아름답다기보다 엄숙한 경건심이 들게 했다. 성당 내부는 약간 어두웠지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간접조명으로 해서 명상과 기도의 자리로는 적당했다. 잠시 묵상하고 나와서 엄청나게 복작거리는 케른트너 거리를 걸었다. ‘소량’이라는 동양계 유학생이 치는 피아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서서 연주회에 귀 기울이면서 잠시 음악에 빠져본다.

저무는 빈의 외곽지, 베토벤이 살았다는 집을 지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햄, 감자들로 구성된 낯선 음식을 앞에 놓고 ‘호이리게’라는 와인 몇 잔과 아코디언과 바이얼린으로 연주하는 아리랑 곡에 우리 일행은 잠시 가족에 대한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그 식당 앞에서 낮에 만난 동창을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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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식당 앞에서 대학 동기를 다시 만나다

 

그리고 우리는 세 번째 호텔을 두드린다.

여행은 즐겁지만, 객지에서 느끼는 이국의 쓸쓸함과 슬픔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원형적이고 내재한 것이기에 예민한 감성인은 피할 수가 없는 법이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달래려고 몇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호텔(Sommer) 문 입구에다 의자를 둘러놓고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꽃이 지고 빈의 종이 울려오는 듯하는 밤이었다.

 

출처 : 마음 샘터
글쓴이 : 남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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