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영남문학 시낭송가협회 발표회에 참여,
배창환 시인의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이란 시를 낭독했습니다.
협회 회장님이 그저께 저녁 행사 하루를 앞두고
시낭독을 하나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배창환 형의 시를 한 수 골라 낭독하기로 했던 겁니다.
시를 외운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 낭송은 못하고
계속 시를 보고 읽는 낭독만 하게 되는군요.
그런데도 회원들은 시가 좋고 낭독하는 목소리가 좋고,
시의 맛을 잘 드러내는 감정 처리가 좋다며 칭찬을 해주십니다.
사실, 배창환 형의 시를 낭독하면서 전율감을 느꼈더랬습니다.
그것이 듣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서 그런지 어떤 회원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고백을 들어야 했습니다.
머쓱해져서 입맛을 다셨습니다만 자꾸만 그렇게 잘한다고들 하니
정말 잘 하나 싶어서 우쭐대는 마음도 은근히 살아나더군요.
협회에서는 11월쯤에 창립 1주년 행사 때
시극을 하나 만들어 발표해 줄 것과 수필 낭독을 요구하더군요.
아직은 막연하긴 하지만 그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습니다.
그러면, 내가 낭독한 창환 형의 시를 옮겨보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명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참고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배창환 시인은 지금껏 발행한 5권의 시집 가운데
80여 작품을 골라서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이란 제목으로
시선집을 곧 낼 예정이라 하네요.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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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시, 배창환)
고등학교 다닐 때였지
노가다 도목수 아버지 따라
서문시장 3지구 부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할매술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나무 의자 몇 개 놓은 선술집
바로 그곳이었지 노가다들이 떼서리로 와서 한잔 걸치고 가는 곳
대광주리 삶은 돼지다리에선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올랐고
나는 아버지가 시켜주신 비곗살 달콤한 돼지고기를 씹었지
벌건 국물에 고기 띄운 국밥이 아닌, 살코기롤 수북이 한 접시를(!)
꺽꺽 목이 맥히지도 않고
아버지가 단번에 꿀떡꿀떡 넘기시던 막걸리처럼
맥히지도 않고, 이게 웬 떡이냐 잘도 씹었지
뱃속에서도 퍼뜩 넘기라고 목구녕으로 손가락이 넘어 왔었지
식구들 다 데리고 올 수 없어서
공부하는 놈이라도 한번 실컷 먹인다고
누이 형제들 다 놔두고 나 혼자만 살짝 불러 먹이셨지.
얼른 얼른 식기 전에 많이 묵어라시며
나는 많이 묵었으니까 니나 묵어라시며
스물 여섯에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남몰래 울음 삼켰지
돼지고기 한 접시 놓고 허겁지겁 먹어대던 그날
난생 처음 아버지와의 그 비밀 잔치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날 일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지금도 서문시장 지나기만 하면 그 때 그 선술집에 가서
아버지와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고 싶어 눈물이 나지
그래서 요즘도 돼지고기 한 접시 시켜놓고 울고 싶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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