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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만해기념관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1. 8. 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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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대학교 졸업여행 때, 용대리 주차장 입구에서 20리 산길을 걸어서 찾아왔던 곳,

언제부턴가 인제군 북면 용대리 마을 주민연합회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하면서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었고,

걸어서 왕복하는 사람들은 좁은 길을 걸으면서 교통사고의 위험을 다소 감내해야 할 것 같다.

20리 산길이라 해도 운치있는 백담계곡을 끼고 걷다보면 쉽게 다다를 수 있으련만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마을버스가 오히려 고마울 것이다. 편도 2,000원

차를 타고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지만, 걸어가면 1시간 30분은 걸어야 하니까.^^

 

옛날에는 큰물 지면 임시로 설치한 나무다리가 떠내려가곤 했단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튼튼한 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다.

 

 

만해 한용운이 편찬한<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했다고 하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 한계사로 창건 후 1772년(영조 51년)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바뀌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潭)이 백 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컬어졌다고 한다. 내설악의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어려운 수행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기본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는 곳

 

만해 기념관, 선생의 민족사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95년 착공 2년 6개월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110여 평 규모로 모두 800여 점의 유물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한편에 만해 스님의 일대기가

비디오로 상영되며, 만해 스님을 기리는 후학들이 만든 조각품 초상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기념관 앞뜰에는 시 <나룻배와 행인>을 새긴 시비와 만해 스님 흉상이 나란히 서 있다.

 

 

 

  

 

 

 

 

 

 

 

 

 

 

 

 

 

 

극락보전 삼존불, 가운데 있는 목조아미타불은 영조 24년(1748)에 조성된 것으로 18세기 불상 가운데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단다. 이 부처의 복장 유물이 보물 제 1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2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수행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여기서 뭘 수행했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 장작을 패는 빛바랜 사진도 그 옆에 있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집권하면서 저지른 무시무시한 철권통치를 국민들이 용서할까?

억울하게 죽어간 광주의 원혼들을 달래주려는 일말의 몸짓이라도 있었을까?

끝까지 광주사태의 책임을 회피했던 비겁한 그를 우리 역사가 용서할 수 있을까?

부정축재한 수천 억의 재산가임을 아는데, 수중엔 겨우 29만원밖에 없다며

거짓 고백을 한, 이제는 늙어버린 전직 대통령을 삼척동자인들 존경할 수 있을까?

그가 오래 묵었던 방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초등학생이 궁금증이 생겼나보다.

"아빠, 전** 전 대통령이 이 좁은 곳에서 산 이유가 뭐야?"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아버지의 설명이 왠지.....

  

만해교육관 건물이다. 규모가 엄청 큰 것으로 보아 수행자들이 아주 많이 찾아옴을 알겠다.

 

 

계곡에 가득찰 정도로 쌓아놓은 저 탑들은 누가 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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