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 김윤현
쓰레기와 몸을 섞으면서
지렁이와 함께 뒹굴면서
썩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시체와 오래도록 누워있으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그대
땅땅거리지 않아서 기분 좋다
그대 하늘처럼 높다
- 시집 <지동설> (그루,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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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세상의 모든 걸 다 덮어주고, 바다는 그 어떤 것도 모두 받아준다고 해서 바다인줄 알았다. 그리고 땅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무엇이든 다 품어준다고 믿었다. ‘쓰레기와 몸을 섞으면서, 썩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시체와 오래도록 누워있으면서’도 아직까지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땅이지만, 과연 영원토록 그럴 수 있을지는 예측불허다. 여태껏 ‘땅땅거리지 않아서 기분 좋다’고 여겼는데, 최근 몇 년간 여기저기서 땅이 쩍쩍 갈라지는 현상 등을 보면 무한정 조건 없이 다 품어주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땅의 피부라 할 수 있는 흙을 우리는 너무 함부로 취급해왔다. 대량의 유해폐기물이 흙의 표면이나 지하에 버려졌고, 산성비를 비롯해 대기 중의 오염 물질이 지상으로 떨어져 토양을 오염시키고 땅의 성질을 까칠하게 했다.
그로 인해 식물의 뿌리 끝을 상하게 하여 식물의 성장을 돕는 미생물까지 죽여 버리기 때문에 수목은 급격히 쇠약해진다. 송충이로 인한 피해도 그 배경에는 산성비 등의 대기 오염 때문이라고 한다. 산성비 외에 각종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사용, 각종 가축들의 배설물에 의한 오염 등도 원인이다. 그런 화학적 문제 말고도 인간의 땅에 대한 인식이 건강하지 못할 때 땅도 따라서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톨스토이 우화에 하루 동안 뛰어서 금을 그은 땅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죽자고 멀리 뛰었는데 그만 도착지에서 꼬꾸라져 그가 차지한 땅은 자신이 묻힐 땅뿐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좋은 땅’이 있다며 아무데나 전화질하여 투자 권유하는 사람과 솔깃해하는 사람이 있는 한 결코 ‘좋은 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듯 땅에 대한 왜곡된 욕망은 언약과 축복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는 점점 거리를 멀게 한다. 풀씨가 땅속에 박히면 풀씨의 땅이 되고 고욤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고욤나무의 땅이 된다. 지렁이가 꼼지락거리면 그곳이 지렁이 집이고 두더지가 파고들면 두더지 집이 된다. 땅은 우리네 삶의 근거이지만 뭇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이다. 땅은 영원한 모성으로 생명을 품어주고, 길러내며, 보금자리를 제공하여 지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그 어머니 땅에다 온통 콘크리트를 쏟아 붓고, 흙을 아스팔트로 덮어버려 ‘천지개벽’을 도모하는 게 과연 정당한 노릇일까. 이러다 흙은 사라지고 부동산인 땅만 남는 건 아닐까. 하늘처럼 떠받들어야할 높은 ‘땅’은 어디에.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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