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강이 쓴 글 '부모님과 함께한 하루'
잘 읽어 보셨나요?
제가 쓴 글을 동생에게 보여주었더니
동생이 그 다음을 이어 쓴 글을 오늘 보내왔어요.
여기에 올리니 감상해 보시지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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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말씀대로 보경사의 칼국수를 드시러 어디론가로 가셨고, 이미 배가 불러 더 이상의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와 어머니는 보경사 주위를 가볍게 산책하기로 했다. 형수님은 피곤하셨는지 차에서 조금 쉬시려 한다. 비가 와서인지 계곡의 물이 많이 불었다. 비가 많이 안 왔으면 참으로 맑고 시원한 계곡이었을 터인데 비가 와서인지 물이 맑지 못하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 대기는 비에 젖어 시원하고 습기를 머금은 땅은 먼지를 피워내지 않으며 진하지 않은 구름으로 순화된 햇볕은 따갑지 않고 부드럽다. 무엇이 부족한가. 실로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그리고 내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님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그 어느 것도 나의 즐거움을 덜어내지 못한다.
어머니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사실 어머니의 말씀은 늘 그게 그거다. 척하면 삼천리,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 영어로 말하자면 스테레오 타이프....늘 정해진 수순을 밟아 늘 듣던 이야기가 역시 정해진 순서대로 나온다. 심지어는 무슨 박자 내지는 후렴구처럼 나오는 한숨소리도 대개는 정해진 수순에서 나온다.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음, 다음에는 이런 말이 나오겠군. 역시 그대로다. 어머니 고생하신 이야기, 무책임하고 생활력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한탄, 사연 많게 어렵사리 살아가는 자식들에 대한 안타까움.....그러다가 또 정해진 순서대로 나오는 이야기... 너희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라, 재미있게 살아라.... 귀에 인이 박힌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그런 말씀들을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앞으로 백번을 더 듣는다 한들 역시 지루하거나 마음의 한 터럭이라도 짜증이 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여 어머니가 나중에 아주 연로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실 만큼의 기력도 없어져버리거나 혹은 돌아가신다면, 늘 듣는 이 목소리,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하는 이 기억들을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인가. 그래서 즐기는 마음으로, 마치 어렸을 때 맛있는 과자를 조금씩 조금씩 아껴먹는 심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을 음미하고 음미한다.
산책을 하면서 어머니는 당뇨에 좋다며 산뽕나무의 이파리를 따느라 분주하시다. 해변에 가서도 미역을 한 움큼 집어 챙기시더니 산에 오셔서는 또 산뽕나무의 이파리를 따느라 역시 바쁘시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사실 말년의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말년의 할아버지는 구강암으로 남아있는 세월이 얼마 안 되었을 때도 화단에 심겨진 석류나무에서 떨어진 석류꽃을 하나하나 주워 실에 꿰어 보관하셨다. 감기에 좋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리고 한조각의 신문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다. 화장실에서 뒤를 닦을 때에 쓰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가난에 쫓기고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어려운 세월을 지내오신 분들은 무엇하나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물건의 소중함을 모르고, 작은 것의 귀중함을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삶이 치열한 생존과 노동의 현장으로부터 그 만큼 멀어졌음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물건을 사서 쓰되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노동, 그리고 노동에 스며든 땀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그것을 쓰는데 소요된 화폐의 액수만큼의 의미만 지닐 것이다. 이렇듯 정직한 노동으로 멀어질수록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도 추상화된다. 추상화된다는 것, 익명화 된다는 것........그것은 곧 구체적인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에 대해 공감하고 동정할 수 있는 능력이 박탈되어감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의 산책은 참으로 즐거운 것이었다. 늘 듣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비에 젖어 선선해진 대기를 호흡하고 안개를 허리에 걸고 정답게 서있는 산을 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보경사에서 잠시 산책을 하고 쉰 다음에 바로 우리 일행은 대구로 돌아왔다. 사실,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식사를 하면서 먹은 소주 몇잔으로 나는 이미 충분히 취해 있었다. 주중에 피로가 쌓여서인지, 즐거운 마음으로 너무 무방비상태에서 술을 먹어서인지, 몇 잔의 술만으로도 취해서 사실 돌아오는 길 주위의 정경도 살피지 못하였다. 별로 늦지 않은 시간에 대구 초입에 들어왔는데 그때서야 조금씩 정신이 나며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을 모시면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먼저 마음을 놓아버리다니.... 나도 이제 컸다고, 나이살 좀 먹었다고 어른들 앞에서 당연히 갖춰야 할 조신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일찌기 어려서 눈물을 머금고 가죽허리띠를 내게 사정없이 휘둘러 사람이 당연히 알아야할 도리를 깨우쳐 주셨던 형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내가 벌써 잊었단 말인가.
보경사에서 돌아오면서 아버지는 내내 유원지의 일이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필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차에서 바둑판을 내려 여기저기 펴놓고 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을’ 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님과 나는 결연히 말하기를, “아, 아버지 오늘 같은 날은 좀 신경 접으시고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이미 시간이 늦어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밥 먹고 갑시다’란 독특한 간판을 내건 보리밥 집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 식당은 그야말로 박리다매 전략으로 영업을 하는 곳인데, 사람이 문전성시, 끊일 줄을 모른다. 값은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아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도 부담없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보리가 많이 들어간 비빔밥이 맛있고 무엇보다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그래서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고 한다. 내가 먹어봐도 맛이 있고 값이 싸니 이만한 성공을 한 것이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싶다. 어머니는 이집이 잘 되는 것이 그냥 보기 좋은 모양이다. 남이 돈을 하루아침에 많이 벌고, 크게 성공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않는 모양이다. 장사가 잘 되는 이 집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순하고 부드러워며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아버지는 그 힘든 고생을 하며 하루종일을 일해도 하루 10만원 수입을 올리기 어려운데 이 집에서는 하루 매출이 600만원 정도는 된다하니 아버지 표현을 역시 그대로 빌자면, “이집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파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다”고 하신다.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시면서도 이집 방향으로는 아예 외면을 하고, 한 끼 식사를 하면서 무려 4000원을 이집에 보태시는 것, 역시 당신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아버지께서 이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크게 반대하지 않고 선선히 승낙을 하신 거다. 이 정도면 아버지로서는 큰 선심을 쓴 것임에 틀림이 없는데 아마도 이 큰 선심을 그 식당의 주인은 잘 알 리가 없으리라.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마신 술로 대구에 오기 전까지는 내내 불콰했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와 비빔밥을 먹고, 맛있어 보이는 동동주를 보니 갑자기 눈이 맑아지면서 머리가 시원해진다. 게다가 이제는 형수님이 운전을 하실 수 있으니 형님도 그야말로 프리(free)다. 우리 형제는 대체로 이런 상황에서 비겁하게 술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편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참으로 잘도 간다. 성격이 급한 아버지는 이런 자리에 오래 앉아있으실 만큼 진득하지가 못하시다. 담배를 피우시느라 자리를 떠서 한참 있다 오셔서는 마침내 사업장에 가봐야 한다고 하시며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떠나셨다. 음, 그래 생각해보니 이것도 정해진 수순이다. 아버지는 늘 그런 식으로 일찍 자리를 뜨신다. 반면에 어머니는 형제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자리에서 자리를 뜨는 법이 잘 없으시다. 으례히 하셨던 이야기를 마치 처음 하시는 것처럼 정색을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나와 형님은 또한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정색을 하고 귀를 기울인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참으로 재미있고 우습기도 한 광경인데, 사실 이것이 우리 형제와 어머니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나름의 노는 방식이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그것이 싫증이 나지 않는 거다. 오히려 상당기간 그 놀이를 하지 않고 지내면 슬슬 생각이 나면서 형님을 부르고 어머니를 모셔서 그 놀이를 또 하고 싶어지는 거다. 그 장소가 이런 허름한 술집이건, 낡은 효목동집의 냄새나는 부엌이건 상관이 없다. 장소가 잡히고, 술 몇 잔이 준비되고, 술상이 차려지면 똑 같은 분위기와 똑 같은 절차를 거쳐 똑 같은 이야기를 하며 우리 형제와 어머니하고 모여 논다. 끝없는 반복, 하지만 한 번도 싫증나지 않고 늘 그리움을 자아내는 반복, 어머니의 깊게 패여가는 주름과 침침해져가는 눈을 보고, 형님의 걸걸한 목소리를 논리의 흐름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반복............ 그 반복이 나를 무한히 행복하게 한다.
보리밥집에서의 식사로 오늘의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여행해본 것이 생각해보니 처음이다. 양친은 늘 바쁘셨고 나도 대구에 내려온지가 얼마 되지 않아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여행을 하며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 즐거웠고, 늘 아낌없이 서로 사랑하셔서 보기만 해도 좋은 형님 형수님을 모셔서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메모 : 200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