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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상원사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10. 8. 1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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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 위로

주차장에서 월정사로 가기 위해 넘어 건너야 하는

아치형 '금강교'라는 다리가 무지개처럼 걸려있는데,

너무 흰빛이고 육중해서 그 밑을 흐르는 물빛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징검다리가 놓였더라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리 건너 오른켠으로 난 전나무 숲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은 꽤 유명한 길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 좋은 선물임에 틀림없으리라.

얼마나 와 보고 싶어했던 전나무 숲길이었던가? 

아직은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인적도 드물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온갖 매미 울음소리가

어떤 교향악보다 감동적인 것은 우리의 들뜬 기분 때문일까?

흰나비 몇 마리가 나풀대며 숲속의 공간을 돌아다니고,

다람쥐 가족도 먹이를 구하는지 이리저리 바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던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곧게곧게 몸을 키우다가,

그 수명을 다해 밑동만 남긴 것도 몇 그루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쭉쭉뻗은 몸매와 야무진 옷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늘이 드리운 그늘 아래로 마사토가 깔린 흙길 따라

맨발로 걷다 보면 지상 최고의 기분이 되고 만다.

비가 온 뒤의 촉촉함이 길바닥에 고스란히 배어 있으니 오죽하랴.

아내는 여미재, 소소연한테 전화를 걸어 자랑을 해 대는데,

듣는 사람 염장지르기에 충분할 정도다.

'저렇게 자랑을 하면 남들 약오를텐데,

그것도 모르고 순진하기는. 쯧쯧'

 

관찰할 수 있는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지니고 있다.

관심을 갖고 다가가 자세히 살피면 온갖 애교를 떠는 꽃들,

사진기를 최대한 가까이 들이대어 찍을라치면

그들도 함빡함빡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 주는 듯하다. 

월정사 전나무 숲에서 관찰한 꽃들을 기억해 보면,

물봉선, 동자꽃, 애기똥풀, 이질풀,

고마리, 구절초, 짚신나물, 여우오줌 등이다.

(꽃이름을 맞추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월정사 적광전 앞에 우뚝 선 팔각구층석탑(국보 48호),

고려초기의 대표적 탑인데 개성적 모양으로 눈길을 끈다.

다각다층석탑은 북쪽지방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탑의 옥개석 각진 곳마다 왜 풍경을 달았는지 아내가 묻는다.

"잘 모르겠는데. 좀 아는 것을 물어보도록 해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참 무책임한 대답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아내가 내게 숙제를 낸 셈이니 또 고민을 좀 해 봐야 하리라.

보통의 탑 옥개석 끝에도 풍경을 단 흔적이 흔히 있지 않던가?

'풍경은 보통 절집 건물의 처마끝 네 귀퉁이에 고기형상으로 매달려

항상 깨어있음이요, 그 깨어있음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지켜주는 것이니

탑도 부처님의 또 다른 형상이니만큼 보호해야 하니까......?'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도 아내에겐 설명을 해 주지 못했다.

 

월정사에서 나와 계곡을 거슬러 상원사로 갔다.

절에서 3킬로 정도만 오르면 비로봉 정상이다.

상원사의 위치가 해발 900미터가 넘으니

해발 600미터 정도만 가파르게 오르면 되니

비교적 등정은 쉬울 것 같은데 못올라 봤으니 궁금하다.

상원사 아래 300미터 지점에 주차를 하고,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 본다.

단풍나무, 느릅나무, 고로쇠나무, 아름드리 전나무,

온갖 나무와 숲이 그저 좋은 상원사길이다.

 

조금 오르니,

'한암탄허대종사사리탑 입구'라고 돌팻말이 섰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 있어 그런지 풀들이 무성하다.

한암 선사, 탄허 스님, 만화 스님의 부도에 들러

그 분들의 올곧은 삶과 수행에 경의를 표하고

부도 주변에서 자라는 온갖 풀들과 야생화, 수목들,

풀벌레, 새소리의 속삭임까지 포용하고 있는 부도탑은

당신들이 추구했던 삶처럼 완성되어 있는 듯 했다.

돌덩이에 새긴 그분들의 행적이야 당연히 칭송되어야 하지만

아무런 흔적없이 살다가는 속세의 인생들에 비하면

수행자였기에 누리는 행복인 것 같아 오히려 부러웠다.

스님들의 세계는 나에게는 아직까지 호기심의 대상이기에

기회있으면 자연스레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상원사동종(국보 38호),

몇 년 전 찾았을 때는 종각이 허름했었는데,

지금은 새로 건축을 해서 종을 그 가운데 안정감있게 매달아 놓았다.

동종의 양쪽, 구름 위로 하늘을 날면서 옷깃 흩날리며

연주하는 비천상이 아름답게 양각되어 눈길을 끈다.

종각 안에 들어가 땀을 씻으며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다.

지금까지 살아온 속세의 삶을 관조하는 기분도 든다.

 

법당 안에는 스님이 '석가모니불'을 염송하고,

많은 불자들이 두 손 모으고 법당 마루에 앉아 있다.

스님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좌대 위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목조 문수동자좌상(국보 221호)과 비로자나불 두 분이 앉아계신다.

특히 문수동자좌상은 검은머리 위 양쪽에 쪽을 쪄서 얹었고,

평화롭고 통통한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고는 명상에 젖었다.

오른팔을 어깨까지 올려 길쭉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펴

엄지와 검지를 오므리고 있고, 왼쪽 팔은 무릎과 평행하게

옷자락을 자연스레 내려뜨린 채 손바닥은 위로 향해 있다.

인간적인 숨결이 느껴지는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조선 세조 12년에 둘째딸 의속공주 부부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세조가 몸의 종기를 부처님의 힘으로 고치려

상원사로 가던 도중에 만난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법당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의

고양이 석상 역시 세조임금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고양이의 은혜를 기리는 의미로

고양이 상을 조각했다고 하니, 적어도 550년 세월의 유물임에 틀림없다.

월정사는 6.26 때 불타 없어져 새로 지은 건물일 테지만

상원사는 방한암 선사가 목숨 걸고 지켜냈으니 옛 그대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까지는

1.4킬로밖에 되지 않아서 금방 갔다 올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오늘은 등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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