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곡 김정시 선생과 나는 벼르고 벼르던 강릉 여행 1박 2일을 단행했다. 서로 날짜와 시간이 맞지 않아 미뤄왔던 여행이었는데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나의 애마 산타페 7385와 함께 열심히 다녀야 했다.
구미에서 충주까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에서 원주까지는 일반국도를 이용,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타면서 단숨에 포곡 선생의 고향인 횡성에 닿았다. 포곡 김정시 선생은 툭하면 고향 둔내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는데, 그곳이 바로 횡성군에 속해 있다. 한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라서 세계적으로 주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열기가 식은 듯하다. 고랭지 채소, 한우 등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유명세를 잃지 않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봉평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봉평이 자랑하는 순메밀국수의 독특한 맛을 즐기면서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저 행복하다. 메밀막국수를 좋아해서 자주 들르는 내 단골집(칠곡읍 북삼면 소재 고향막국수)이 있는데 거기에서 먹었던 맛과는 또 다른 맛이라서 좋았다.
봉평에서 40여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시 휴식을 취한 대관령전망대, 거기에서 내려다본 강릉시의 모습이 아스라하다.
포토존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왠지 생뚱맞다. 양떼목장과 울창한 수목을 자랑하고픈 의지의 표현만큼은 일단 인정하지만 적어도 포토존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바라다 보이는 자연 자체가 최고의 포토존이 아닐까?
대관령전망대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려 찾아온 곳은 안목해변, 커피 거리로 유명한 곳, 언제부턴가 관광명소가 된 것 같다. 포곡 선생은 어느 곳보다 커피거리를 꼭 한번 와 보고 싶다고 했는데 한참을 둘러본 뒤 평하기를, “기대를 많이 했는데…. 티비에서 본 것과 좀 다른 것 같애.” .......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건물들이 대부분 커피 가게인 것으로 보아 이곳 안목 해변이야말로 '커피 거리'라는 이름에 참 걸맞다는 생각이 드는데 포곡은 무엇을 기대했길래 실망했던 것일까?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류의 과자 받아먹기를 즐기는 듯, 사람들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사람과 특별한 정서적 교감이라도 가능하다면 좋겠으나 저렇게 얻어먹는 습성 때문에 갈매기의 야생성을 잃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림자가 점차 길게 늘어지는 늦은 오후, 커피 거리의 한 3층 건물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마시면서 동해의 푸르름을 한참이나 만끽하다가 포곡 선생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게 될 창덕사(강릉시 운정동 192변지)의 모습, 강릉김씨 한림공파 종손 김영기 선생이 관리하고 있는 집이다. 그 종손은 포곡 선생의 고등학교 동기다. 창덕사는 1965년 5월 18일 사당 준공식과 위패 봉안식(9위)을 가졌다고 한다.
김영기 선생이 찍어준 사진!
창덕사 한림공파의 시조는 휘 영견(시조, 명주군왕으로 불리는 김주원의 5세손)이다. 신라시대 때 대나마란 벼슬을 하신 분이다. 그 외에도 현웅(6세손), 미우(7세손), 양(8세손), 원걸, 상기(9세손), 인존(10세손), 영석(11세손), 시습(23세손) 등 아홉 분의 조상들 위패가 창덕사에 모셔져 있다.
종손의 도움으로 매월당 김시습의 위패는 오른쪽 맨끝에 위치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다른 조상에 비해 한참 뒤(23세손)의 조상이지만 매월당이 시대를 통털어 누구보다 고매한 인격은 물론 문학적 위상과 업적이 훌륭한 분이기에 특별히 봉안된 위패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종손 김선생은 창덕사의 내부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공부했던 다례와 전통주 관련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화하는 시간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왔던 친구처럼 친밀감이 느껴졌다.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주문진항 수산물 풍물시장을 찾았다. 포곡 선생이 강릉 방문기념으로 복어회, 도다리회 등 푸짐하게 한 턱 을 내기로 했고 종손 친구가 단골 식당에 미리 예약을 해 둔 상태라서 도착하자마자 제 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좋은 음식과 추억담을 안주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주잔을 비웠다. 꿀맛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복어를 회로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학창 시절을 소재로 시작된 우리들의 이야기는 최근의 민생, 정치, 경제 등으로 점차 확대되어 끝간 데를 몰랐다.
워낙 일찍 시작한 술자리라서 강릉까지 대리운전해서 다시 창덕사로 돌아왔을 때는 겨우 저녁 8시밖에 되지 않았다. 오렌지색 비닐봉투에 담긴 것은 식당에서 안주로 사 온 복어회인데, 양이 충분해서 늦게까지 편하게 약주를 계속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종손인 김 선생은 직접 담근 전통주를 종류별로 대접할 테니 마음껏 밤새도록 마셔도 좋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역시 종손께서는 참 훌륭하오. 그대는 참 좋고 멋진 친구요!’
종손은 먼저 차를 대접해야겠다면서 팽주로서 귀한 보이차를 많이 마실 수 있도록 물을 끓여 여러 차례 내려주었고 덕분에 포곡 선생과 나는 불콰해진 취기를 달랠 수 있었다.
차를 마시다가 술을 마시기를 반복하는 '차곡차곡' 풍류, 그 멋진 풍류는 밤이 이슥해지노록 계속되었다.
한편, 거북 형상의 탐나고 멋진 바둑판이 있어서 술자리를 미루어 두고 종손과 마주앉아 잠시 바둑을 둬 보는 체험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했다.
종손은 술을 참 좋아하는 분이었다. 포곡 선생은 술에 취해 일찍 자리에 누워야 했지만 덜 취한 나를 의식한 듯 그만 마시자고 할 때까지 계속 전통주(석탄주, 제호주, 연화주 등)를 권했다.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술자리를 끝내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서로 인정하고 술자리를 파했다. 종손은 이미 초저녁에 넓디넖은 방에 잠자리를 정성껏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나는 곧장 눕기만 하면 깊은 잠자리에 들게 될 것이다. 종손은 편히 주무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본가로 귀가하면서 다음 날 일찍 또 만나자고 했다. 그의 따스한 말이 더없이 정겨웠다.
창덕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밝자마자 포곡 선생과 나는 경포 둘레길 12킬로미터를 함께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해국꽃의 우아함은 경포 호숫가에 위치해 있어서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경포호 주변은 볼거리가 많은데 특히 허난설헌 유적지는 꼭 한 번 가 볼만한 가치가 있다. 포곡 선생과 합의가 되면 지금이라도 가 볼 수 있으련만 일단 경포호 둘레길을 걷는 데 집중하자고 해서 포기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그 아쉬움은 덜했다.
해파랑길이 경포호 주변으로 이어짐을 알리고 있다. 해파랑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최장 트레일 거리이다. 동해안의 상징인 "태양과 걷는 사색의 길"로 총길이는 750킬로미터이다.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고 한다. 경포호 주변의 해파랑길은 전 50구간 중에서 39구간에 해당하는데 총길이는 솔바람 다리와 사천진리해변을 오가는 16.1 킬로미터이다. 이 구간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과 경포대가 있다.
벼슬아치 박신과 기생 홍장과의 사랑 이야기가 어려있는 홍장암,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도 소재가 되었던 곳이다.
강릉의 대표문화유산인 경포대, 저 현판의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요 서예가인 유한지(1760~ ?)의 글씨다.
이 현판의 글씨는 주지번의 글씨로 전하고 있으나 강산의 강자는 후대에 다시 써 넣었다고 전한다.
이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치에 몰입된 시인묵객들은 저마다의 솜씨를 발휘하여 작품으로 승화시켜 놓았을진대 나는 이 늘그막에 무엇을 남길까? 그저 발자국 하나 남겨놓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저 경포대의 현판은 조선후기의 문신 이익휘(1767~1843)의 글씨다.
해운정, 보물이다. 조선 중종 25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어촌 심언광이 건립한 정자,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 율곡 이이, 박광우, 송규렴, 한정유 등 여러 명사의 시문이 걸려 있다.
종손 김영기 선생과 헤어진 것은 그가 안내해준 초당순두부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창덕사에 돌아와서였다.
“멀리 찾아와 준 친구들, 고마웠고 기회 되면 또다시 놀러오세요.”
“김선생께서 베푼 친절함, 따스한 잠자리, 차와 함께 마실 수 있었던 전통주, 모두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구미에도 꼭 한번 놀러오세요. 또 만나야 안되겠습니까?”
창의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매월당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김시습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타리, 금오신화 애니메이션 영상자료, 매월당문집 영상자료, 대표적인 한시 '동봉육가' 영상자료를 감상할 수 있는 4개의 시설과 이생규장전 포토존이 있으며 수장고에 보관중인 11점 등을 포함하여 총 41점이 전시되어 있다.
강릉은 김시습의 관향이자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했던 곳으로 유랑시절의 거점이었다. 그는 격식없는 자유로운 시와 글을 썼던 문인이자 불교의 철학과 유교의 이상을 결합하려고 고심한 철학자, 몸과 생명을 중시하는 수련도교를 실천한 사상가,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전통미를 찬미한 여행가였다. 또한 시대와 불화했던 지식이었으나 고결한 인품과 굳센 지조는 후세에 길이 존경받았다. (팜플릿 자료 인용)
1세(1435년, 세종17)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8개월만에 글을 쓰고 읽었다.
3세(1437년, 세종19) 시를 짓다
5세(1439년, 세종21) 세종임금 앞에서 '삼각산시'를 지어 왕에게 비단 50핑를 받으며 오세동자로 불렸다.
15세(1449, 세종31) 어머니가 별세하여 강릉에서 시묘살이를 하다.
21세(1455, 세조1)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속세를 떠나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
24세(1458, 세조4) '유관서록'을 지었다.
26세(1460, 세조6) 관동지역을 여행하며 '유관동록'을 지었다.
29세(1463, 세조9) 유호남록을 짓고 효령대군의 권고로 세조의 불경언해 사업에 교정일을 하였다.
31세(1465, 세조11) 경주 남산 용장사 매월당 서재에서 '금오신화'를 지었다.
39세(1473, 성종4) '유금오록후지'를 지었다.
49세(1483, 성종14) 낙향하여 강릉, 양양 등지를 10여 년 여행을 하였다.
57세(1491, 성종22) 설악산에 입산하였다.
59세(1493, 성종24) 2월 부여 무량사에서 입적하였다.
금오신화에 수록된 5편의 한문소설(이생규장전,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 중의 한 편인 <이생규장전> 을 형상화해 놓은 포토존
국무총리, 서울시장을 지낸 조순 선생의 글씨, 경제학자이자 정치인 조순이 이곳 강릉 출신이라는 점, 글씨를 매우 잘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교양과정부 시절, 그가 쓴 저서 '경제학원론'이란 책을 교재로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다.
매월당 김시습의 친필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자유분방함이 글씨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매월당 기념관에는 문화해설사 한 분이 근무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살다가 10여년 전에 낙향해서 살고 있는데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모른다면서 강릉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한달간 머물면서 해설사님의 말씀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본인이 강릉김씨의 후손이어서 매월당 기념관에서 일하고 있는 이 자체가 아주 좋다면서 환하게 웃는다.
이왕 이곳을 찾으셨으니 커피도 한 잔 하고 가라면서 친절을 베푼다. 휴게실까지 안내해 준다. 휴게실 공간에서 찍은 사진이 위의 저포놀이다. 설명을 숙지하고 게임을 해 보면 운치가 있지 않을까?
강릉을 벗어나 한 시간 남짓이면 도달할 수 있는 오대산을 향하여 부리나케 차를 몰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선재길의 일부라도 트레킹을 해 보기로 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단풍이 거의 다 지고 난 선재길이라 다소 섭섭했지만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즐거움만큼은 최고였다. 이렇게 멋진 자연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저 행복했다. 포곡 선생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곁들이니 그 또한 즐거움이었고, 옮기는 발걸음은 흥에 겨워 더욱 가벼웠다.
트레킹을 마치고 월정사 경내로 돌아오니 단풍이 그나마 남아있어서 좋았다.
누가 저렇게 강렬한 메시지를 보여 주려 했을까? 붉은 단풍잎 한 장만으로도 사랑의 메시지는 충분한데.....
포곡 선생, 덕분에 모처럼 강원도 여행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오. 다음엔 또 어디를 함께 다녀올 수 있을까? 언제라도 좋으니 연락하오. 매월당처럼 전국 어디든 유랑하면서 사는 삶도 참 괜찮지 않겠소? 우리도 어느덧 70에 가까운 삶을 살았으니 주저할게 있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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