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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호재 둘러싼 풀들을 깎으면서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23. 8. 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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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야만 하는 사람들, 다들 얼마나 힘들까 싶다. 특히 몇 시간이고 그 더위에 노출된 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웬만한 더위는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나도 오늘 더위에 휩싸이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열호재 주변의 풀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덥고 귀찮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까지 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 해내지 않으면 10일 뒤에나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땐 풀이 웃자라서 깎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결국 오늘 깎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 잔디가위와 낫을 각각 양손에 들고 망사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작업 준비까지 끝냈다. 

잔디깎기는 수시로 하고 있어서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2,3일에 한 번씩은 잔디깎는 기계를 여기저기 몰고 다니면서 정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호재 뒤편의 경사면에 밀착해서 10여 분 정도 일을 하니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간다. 그러나 일은 잘 진척되지 않아서 차라리 예초기를 돌려버릴까 하다가 이내 포기해야 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커서 이웃에 사는 분들의 아침잠을 깨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낫질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힘은 힘대로 들고 진도는 잘 안 나갔다. 바로 위에 사는 김희수씨는 낫질도 참 잘 하더라만 나는 낫질 경력이 일천한 탓인지 뭔가 어설프고 요령부득이다. '에이, 어쩔 수 없다. 내 나름대로 해 보는 거지, 뭐.' 자세를 적당히 낮춘 다음, 오른팔을 힘있게 감아 쳐서 풀들을 쓰러뜨리는 데 초점을 두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힘껏 낫질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수북이 쌓인 풀들이 낫질을 방해하는 단계까지 간다. 그렇게 쌓인 무더기풀은 낫으로 긁어 모아 한쪽으로 치워놓고 다시 낫질 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숨은 가빠지고 땀은 사정없이 흐르고..... 


일을 하면서도 땅바닥에 혹시 뱀이라도 숨어있다가 내 발을 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나에게는 늘 있다. 워낙 뱀을 무서워해서 선뜻 풀베기를 꺼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올해 들어 풀을 뽑다가 그간 우연히 본 뱀만 해도 벌써 세 마리 아닌가! 기겁을 한 이후, 풀이 무성해져도 접근조차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우야든동 저 무성한 풀을 제거해야 한다. 장화를 신었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뱀 때문에 긴장은 계속 되고.....
 


두어 시간 정도 풀 제거 작업을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났다. 보기에도 좀 시원하다. 그런데 일부는 풀을 베어내지 못했다. 힘이 들어서 더 이상 작업을 하지 못해서다. 무엇보다 땀을 잔뜩 흘려 옷이 다 젖어버렸고, 움직임조차 여의찮아서 여기까지만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래도 목표의 80% 정도는 달성한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나머지는 프랑스 빠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천천히 하면 될 것 같다. 풀을 다 없애지 않았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흉볼 사람도 없다. 내 스스로가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열호재여, 내가 없는 동안이나마 편히 쉬시라. 그간 나의 잦은 들락거림으로 피곤했을 텐데 모처럼의 휴가를 맞아 호젓한 자연그대로의 그대 모습을 되찾기를 바란다. 혹 누가 나를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숙명으로 알고 나를 보듯 잘 모셔주게. 나중에 후사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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