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농암종택 건너편 소목화당(小木花堂)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17. 9. 10. 22:11

본문

안동시 도산면에 소재한 농암종택은 몇 번 가 보았지만

그 종택 앞을 흐르는 얕은 계곡물을 건널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누군가

거길 건너면 좋은 일이 벌어진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드디어 오늘 건너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최종 목적지는 안동시내에 위치한 중앙시네마다. 영화 <김광석>을 보기 위해서다.

최근 나는 연속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데, 구미엔 상영관이 없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영화인 만큼 그 전까지는 안동 주변의 볼거리를 찾기로 했다.

제일 먼저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소재한 광산김씨 집성촌, 오천군자마을을 찾았다.

광산김씨 탁청정공파 종택에는 77세의 곱디고운 여인, 이미령 여사가 살고 계신다.


탁청정

 

 

탁청정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올라 가면 지애정이란 정자가 하나 서 있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 같아서 좋긴 하다. 


정자에는 한 부부께서 1년 전부터 정자를 빌려서 살고 있다고 한다.

광산김씨 예안공파인 윗동서(**문화콘텐츠 원장)가 이 마을에 살아서

함께 깃들어 살게 되었다고 하고...... 광산김씨가 아닌 사람은 자신과

탁청정공파 종택에 살고 계신 이미령 여사밖에 없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미령 여사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분을 빨리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더 발동한다.

이창동 선배님의 친누님 아니신가! 몇 년 전 아내로 부터 들은 바 있는 여사님의 소식,

오늘 아내와 함께 여기까지 왔으니 반드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맞다는.....

 

종택의 사랑채에는 담쟁이가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무작정 종택으로 들어가 인기척을 내면서 예의를 갖추어 주인을 찾았다.

"누구시죠?" / "저는 여사님의 동생이신 이창동 선배님의 후배되는 사람인데,

지나가다 꼭 한 번 인사드리고 싶어 들렀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어서 들어오라는 친절한 말씀을 듣고 아내와 나는 마루에 올라 찻상 앞에 조용히 앉았다.

농암종택 앞에서 맹개마을까지 가는 트텍터를 타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적어도 이곳에서 30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보는 나 자신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싶어서 웃음을 머금고 너스레를 떨어야 했다.

대학 시절에 창동 형을 처음 만나 연극을 하게 되었다는 것과 필동 형님의 도움으로

얼굴에 연극 분장을 받아본 기억도 있다는 것과 대구 대명동에 살 때 형님 댁과 우리 집은

불과 2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연극 연습 마치고 버스도 같이 타고 내렸다는 것과

봉하마을에서 우리 마누라는 창동 형을 우연히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는 것......

 

드디어 이미령 여사는 어느 새 나를 친동생을 대하는 듯한 인자한 얼굴로 환하게 웃어 주셨다.

잠시 기다리라며 주방에 들어가셔서 홍차를 가득 담아 찻잔에 몇 번씩 따라주시면서 마시라고 하신다.

당신께서는 간혹 빠리 여행을 하고 있는데, 여행지를 소개하는 어느 책인가 보면서 무심코 지나친 곳이 많다며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얼마 전 다녀온 빠리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다섯 번째 빠리 여행을 다녀온 마누라 아닌가, 이미령 여사도 지난 6월에 다섯 번째로 갔다 오셨단다.  

두 여인은 빠리 이야기를 한참 동안 늘어놓는다. 77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즐기시는

그 체력과 여유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창동 형의 최근 안부를 물어 보았다.

당신께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 것 같다고 한다.

영화 다섯 편을 만들어 각종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영화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힘들었고, 워낙 바삐 살면서 <시>란 작품 이후 영화를 만들지 못햇는데, 머지않아

하루키의 작품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한 편 만들어질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이미령 여사 두 살 때, 선친과 찍은 사진이다. 75년 된 흑백사진,

선친의 모습에서 창동 형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코와 입술이 그러하다.


이미령 여사님께서는 전통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아시는 분이라

종택에서 쓰던 디딜방아의 원형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인사를 드리고 종택을 나섰다. 여사님께서는 문간까지 배웅을 해 주셨다.

'아무쪼록 건강하셔요. 미처 들르지 못했던 빠리 여행 다시 잘 다녀오셔야죠.'


농암종택 가까이 있는 애일당(愛日堂), 농암 이현보(1467~1555)의 별당 건물이다.

중종 7년(1512)에 부친과 숙부 등을 중심으로 구노회(九老會)를 만들고 경노당을

지어 늙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당호는 부친이 늙어감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에서 '애일당'이라 하였다. 원래는 농암이라 불리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던 건물인데 1975년에 이곳을 옮긴 건물임을 밝히고 있다.





물건너 소목화당으로 가려면 하루 전에 미리 예약을 해 둬야 한다.

트렉터를 타고 건너가서 주인댁이 제공하는 주먹밥과 차 한잔을 들면서

사방을 조망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의 메밀밭을 둘러보는 것이다.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













안동의 중앙시네마 상영관 앞, 한참을 기다려 영화 <김광석>을 보았다.

 

 영화 <김광석>에서 이상호 감독은 가수 김광석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끝까지 추적하고 있었다.

<다이빙벨> 이후 두 번째 다큐멘터리 작품인데, 이 감독 특유의 끈질긴 추적은

또 하나의 멋진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가 아닐까 한다.

소설가 공지영은 '미저리 이후 최고의 서스펜스 영화'라고 했고,

가수 전인권은 '대한민국 모두가 꼭 봐야 될 영화'라 했고,

소설가 이외수는 '진실을 가슴에 간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했다.

 

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의 갑작스런 죽음은 당시 언론에서 자살로 보도되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김광석 주변의 동료 가수, 친구와 가족들의 증언을 종합하고, 죽음의 비밀을 잘 아는

김광석의 아내 서** 씨의 인터뷰가 풍기는 거짓말(앞뒤가 맞지 않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광석의 아버지가 유품처럼 남긴 며느리와의 반인륜적인 대화,

그 뒤의 정황 증거와 김광석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노여움 등등

 곧 김광석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타살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것에 비중을 두고 이상호 기자는 20여 년간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공소시효마저 지난 사건이지만 이상호 기자(감독)는 그 진실만큼은 밝혀내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론에는 공소시효가 없음을 온몸으로 증언해 주고 싶은 것이다.

타살임을 99% 확신한다 하더라도 1%의 자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전문가도 찾아가 보고 김광석의 진본 일기까지 동원하지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