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형님과 커피온에서 만나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함께 찾아간 곳이 바로 매학정, 보천사, 쌍암고택 등이다.
모두 그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차례차례 둘러볼 수 있었다.
매학정은 낙동강 보천탄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선생의 사위인 옥산(玉山) 이우(李瑀 1542~1609)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고산은 초서에 뛰어나서 초성(草聖)이라 하였고,
옥산 역시 서예의 대가였다고 한다. 이우는 율곡 이이의 친동생으로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시(詩), 서(書), 화(畵), 금(琴)을 다 잘하여 '사절(四絶)'이라 불렸다.
그림은 초충, 사군자, 포도 등을 다 잘 그렸는데, 어머니의 화풍을 따른 것 같다.
중국 송나라 임포의 고사가 생각나는 매학정이다. 임포는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소호 근처에 처자없이 은둔생활을 했던 그는 집의 주위에 매화를 심고 학을 사육하며 태평스럽게 살았던 거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도 임포의 풍류를 부러워하는 싶은 분들이 많이 있을 테지만 다들 속세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게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자연을 찾아 머리를 잠시 식히고 있을 뿐이다.
남전 형은 요즘 반야심경을 붓글씨로 매일 한 번씩 쓰면서 마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매학정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바로 보천탄(寶泉灘)이다. 물살이 빠른 곳일 것이다.
점필재 김종직(1481~1492) 선생의 한시 '보천탄에서'도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桃花浪高幾尺許(도화랑고기척허) 복사꽃 뜬 냇물 얼마나 불었는고,
狠石沒頂不知處(한석몰정부지처) 솟은 바위 아주 묻혀 짐작 어려워.
兩兩鸕玆鳥失舊磯(양냥노자실구기) 쌍쌍의 가마우지 옛 터전 잃어,
啣魚却入菰蒲去(함어각입고포거) 물고기 입에 문 채 풀섶에 드네.
매학정에서 숭선대교를 건너 청소년 수련관을 오른쪽으로 두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보천사라는 작은 절이 나온다. 비구니 스님께서 잘 가꿔놓은 꽃들이 인상적인 절이다.
보천사 대웅전 옆에 있는 암각글씨, 누가 새긴 글씨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로 해석이 가능하다. 늘 좋은 날이 되길 바란다는 염원이 담겼다.
보천사 대웅전 안에는 보물 492호인 구미해평동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남전 형님은 3배를 정성스레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난초가 노란꽃을 피웠다. 그 뒤로는 인동꽃이 은은하게 붉어 있다.
해평면 쌍암고택을 다시 찾았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와 보았던 곳, 이번에는 남전 형과 함께다.
쌍암고택의 바깥 주인(최열, 82세)은 오늘도 손님을 맞아 설명해 주시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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