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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12박 13일 - 1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5. 1. 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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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던 12박 13일의 프랑스 여행을 끝내고, 이틀간의 휴식을 취한 뒤

기지개를 켜면서 그간의 기록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직도 여행 중인 기분이다.

직접 차를 몰고 약 2,600킬로미터를 달렸던 것도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초행길이지만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거침없이 다녔기에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

외국에서 차를 렌트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국제면허증인데, 그 발급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경찰서 민원실에 자동차 면허증과 신분증을 갖고 가서 인지대 8,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 첫날 (인천공항 ---> 파리 ---> 니스)

 

인천 공항, 비행기 탑승 직전, 여행을 함께할 여정회 회원들과 함께 여유있게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예상과 다르게 날씨는 춥지 않아서, 두꺼운 파카가 보기에도 둔하고 더워 보인다.

 

파리행 에어프랑스 항공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면서 내려다보았을 때 눈에 들어온 어느 섬,

중국의 뻬이징 하늘을 지나 몽고의 울란바토르, 러시아 상트뻬쩨르부르크를 지나는 시뮬레이션이

좌석 눈앞에 어른거린다. 하늘에 있지만 지구의 어느 지점을 날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

 

12시간을 넘게 날아 드디어 프랑스 파리 하늘 위에 도착했으나

구름이 잔뜩 끼어 꽤 오랫동안 아래 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드디어 흰구름 속을 뜷고 하강을 시도, 잠시 내려가니 지상의 활주로가 눈에 확 뜨였다.

 

파리 외곽, 드골 공항에 내리자마자, 니스까지 가는 국내선 항공기로 환승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니스까지 날아가는 1시간 30분 동안에도 여행에 대한 기대로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이 겨울 추위를 피해 찾아온 고급 사교장이었던

니스(Nice)란 도시, 지금은 만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프랑스 최대의 리조트 지역이라고 한다.

 

공항 주차장 바로 옆, 렌트카 회사인 '허츠(Herts)'에 들러 예약된 4대의 차를 배정받아

22명의 동료들을 태우고 숙소를 향했는데, 일방통행의 어두운 밤길 때문에 한 동안 헤매야 했다.

마지막날까지 내가 직접 몰아야 할 차는 시트로엥 그랜드 C4 picasso, 번호판 'CW 524 QM'

 

이틀간 묵기로 되어있는 니스의 숙소(엘링턴 호텔)는 별 네 개를 달아놓은 고급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방 배정을 받고 있다. 각 방에 2명씩 11개의 방에 투숙! '첫 숙박, 잠이 제대로 올까?'

 

**** 2일째 (니스 ---> 에즈 ---> 모나코 ---> 망통)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에즈'라는 동네를 찾는 것으로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침 8시 30분이 되어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 걸로 보아 위도가 높은 지역임을 알 수 있고

우리 한반도보다 위도가 높다면 추운 날씨가 예상되지만 기온은 영상의 온도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의 사람들이 만끽할 수 있는 지중해성 기후 덕분이란다.

 

높은 언덕의 고립된 성벽을 둘러 적의 침입을 막았던 이 지방 특유의 장소다.

 '독수리 둥지 마을'이라 불리는 요새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에즈 마을,

야자수가 여기저기서 서 있고, 가파른 해안선을 끼고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다.

 

 에즈 마을의 속살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새하얀 돌로 포장된 좁은 길과 돌로 지은 집들이 눈길을 끈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 좁은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조금도 지루한 줄 모르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집들은 대부분 선물용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장이며, 금은 세공과 보석을 비롯한 다양한 공예품들이

쇼윈도우를 장식하고 있다. 곶과 지중해의 전망이 매우 아름다운 곳, 아내의 첫인상처럼 아주 좋다.

 

누가 조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배처럼 불룩한 배에 자꾸 눈이 간다.^^

 

 

사진 찍는 사람까지 모두 22명으로 구성된 여행단(여정회),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하나 남기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좌장 어른들이시다. 대학의 학과 직속 선배님들이어서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다.

 

'리베라의 진주'로 불리는 모나코 공국은 19세기부터 고급 리조트지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고급 호텔과 카지노, 모든 것에서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나라는 서비스 또한 최고라고 한다.

면적은 불과 2제곱킬로미터로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지만 엄연히 하나의

독립국이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쓰고 통화도 유로이기 때문에 국경을 넘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대공 궁전이 있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매우 훌륭하다.

바닷물도 얼마나 맑은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당국의 관리가 특별하리라.

건물의 옥상 위가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 것은 공간활용 차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1297년 수도사로 변장한 프랑수아 그리말디가 제노바인이 구축한 요새를 점령한 것이

모나코 왕국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700년 동안 여러 차례 열강에 의한 침략의 위기를 맞으면서

현재까지 독립을 이어오고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관광국이 된 것은 최근 100년의 일이다.

19세기 중엽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바위산이던 곳에 카지노를 도입한 것이 당시의 대공 샤를 3세,

이후 모나코는 고급 휴양지로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대공 레니에 3세는

1956년에 헐리웃 여우 그레이스 켈리를 왕비로 맞아 모나코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그레이스 켈리는 1982년, 자동차 사고로 돌연 유명을 달리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모나코에서 동쪽으로 잠시 달려 가면 이탈리아와의 국경 도시인 망통(Menton)이라는 곳이 있다.

프랑스에서 유일한 레몬 산지이고, 겨울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 도시인 것이다. 그러나 점심을 먹었던 식당의 바가지 요금 충격으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디저트가 공짜라고 해서 먹었는데 나중에 돈 지급을 요구받았던 것!

 

망통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니스의 숙소롤 돌아오면서, 길을 찾지 못해 잠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해질 무렵의 니스의 해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고자 했던 유창열 단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일행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제 각각 숙소를 찾느라 바빠지면서 괜한 오해를 낳는 해프닝이 된 것이다.

 

니스 시의 법원 건물 앞 광장을 지나 왼쪽으로 들어가면 시장이 위치해 있는데

많은 일행들이 그곳을 찾아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피곤을 씻어냈다.

 

다음 날 아침 6시, 전날에 미처 보지 못했던 살레야 광장 주변을 걸어 보기로 했다.

살레야 광장에서는 매일 아침 꽃시장과 채소시장이 선다고 했으나 이른 시간 때문인지 볼 수 없었다.

 

 

 

 

 

 

 

구시가지의 깨끗한 골목을 누비면서 고색창연한 건물의 신비감 속에 한참 동안 빠져들기도 했다.

간혹 만나는 현지인들은 낯설게 생긴 나를 힐끗힐끗 바라볼 법도 하건만 대부분 무신경했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현지인들에겐 이방인의 출현이 썩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 3일째 (니스 ---> 생폴 드 방스 ---> 칸 ---> 마르세이유)

 

니스에서의 이틀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생폴 드 방스'라는 작고 그림같은 마을을 찾았다.

니스와 칸의 중간쯤에서 서쪽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 위치한, 절벽 위의 요새 마을이다.

그랑 거리의 돌로 된 바닥이 아주 인상적이다. 갤러리와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등이

오밀조밀 붙어서 고유한 장식을 뽐내며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진열장 안의 누드 그림이 하나 있어서 당겨서 찍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마르크 샤갈(1887~1985)의 무덤 앞에 잠시 머물렀다.

그의 부인과 합장된 유택은 소박했고 한 예술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몽돌로 둘러져 있었다.

 

생폴 드 방스 관광 ---> 앙티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리말디 성은 현재 피카소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라 하는데,

주차를 해놓고 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말았다. 결국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칸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만년설이 강렬하다.

 

앙티브 ---> 칸

 

칸(Cannes) 해변의 모습, 영화제로 친숙한 곳이다. 영화제 뿐만 아니라

여름철 야외음악제 등 1년 내내 행사가 끊이지 않는 곳이란다.

 

 

칸 영화제가 매년 열리는 장소인 팔레 데 페스티벌 데 콩그레(Palais des et des Congres)

 

여기저기 'Je suis Charlie'라고 써 놓은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던 아내가

어느 현지인에게 다가가 묻고 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몇 마디 주고 받다가 자리를 떴다.

'샬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샬리에 대한 의심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가 보다.

 

 팔레 앞의 돌길에는 칸을 방문한 배우와 영화 관계자들의 손모양이 새겨져 있어서

누구의 손바닥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다들 분주하다. 아래는 실베스터 스탈론의 손!!

 

 

항구의 서쪽 언덕에는 교회 하나가 우뚝 서 있었고, 여기에서 바다쪽으로 내려다보는 풍광이 좋았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은 용감한 갈매기, '또 하나의 모델 탄생?'

누군가 먹을 것을 줄 거라는 기대감이 읽혀진다. '녀석도 사람들한테 길들여졌을까?'

 

 

노트르담 데스페란스 교회의 내부 모습을 잠시 담아 보았다.

 

옛 항구의 서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지의 풍경이 평화롭다.

 

 

 

 

아파트 벽에 거대하게 그려진 그림으로 보아 칸이 영화의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칸의 서쪽 언덕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갖는 동안, 각자 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나는 유영배 선생님 사모님께서 정성껏 준비해 온 것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칸에서 숙박지인 마르세이유를 향해 가다가 지중해의 일몰 풍경을 보고 싶은 욕심에

까시스 부근의 바닷가로 향했다. 저 강렬한 노을의 손짓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지중해의 강렬한 노을빛을 가슴 속에 담아두었다. 제주 강정항에서 보았던 노을빛과 오버랩 된다.

 

 

인구 80만의 도시 마르세이유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사람들의 통행도 뜸했다.

일행과 식당에 모여 3일간 느꼈던 여행의 맛을 토로하면서 준비한 소주를 불콰해지도록 홀짝홀짝 마셨다.

 

 

**** 4일째 (마르세이유 ---> 엑상 프로방스 ---> 아비뇽)

 

마르세이유 시내를 둘러보고 엑상 프로방스를 거쳐 아비뇽으로 가는 날이다.

 

마르세이유의 노틀담 성당(Norte Dame de La Garde), 도심의 가장 높은 곳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가장 최근에 들어선 것으로는 1870년대의 성모 마리아 상과 아기 예수 조각상이 있다.

 

 

 

성당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조망은 압권이었다. 유명한 이프 섬이 보이고,

마르세이유 시내 어디든 눈에 다 들어차서 '호연지기'가 느껴질만 했다.

 

'물의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롱샹 궁전과 그 정원, 마르세이유 시의회가 건축가 에스페랑디유에게 의뢰해

지난 1869년 완공한 이 대리석 궁전은 '뒤랑스 강의 여신'을 기념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롱샹 궁전에는

19세기 인구 폭증으로 도시민들이 심각한 물부족을 겪던 시기에 뒤랑스강과 도시를 연결하는

수도를 연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일화가 얽혀져 있고, 물이 가져다 준 시의 번영을 기념하기 위해

도시 북쪽의 언덕 위에 물의 궁전인 롱샹 궁전(Palais Longchamp)을 세웠던 것이다.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보기에도 좋다.

 

 

 

 

마르세이유 ---> 엑상 프로방스

 

마르세이유 북쪽의 28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는

매우 다양한 별칭을 갖고 있다. '세잔과 졸라의 도시', '문화의 도시', '물의 도시' 등이 그것이다.

산과 평야, 바다로 둘러싸인 풍부한 자원의 도시로 석회 탄산수염을 함유한 광천 때문에 로마 시대부터

온천욕으로 유명하다. 중심부에 자리한 로통드(Rotonde) 분수를 포함해 23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도시 전체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온천욕, 물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세잔(1839~1906), 에밀 졸라(Emile Zola)와 함께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친구로서 엑상 프로방스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세잔은 1839년 1월 19일, 엑상 프로방스의 오페라 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목탄을 갖고

낙서하기를 좋아했으며, 22세 때는 엑상 프로방스의 법과대학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그러나 파리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금방 돌아와 1906년 사망할 때까지

거의 고향을 떠나는 일 없이 계속해서 자기 주변의 자연을 모티브로 제작 활동을 했다.

그 혹독하며 고독한 탐구에서 근대 회화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 탄생했던 것이다.

'생트 빅트와르산'(성스러운 승리의 산이란 뜻)은 세잔이 가장 사랑한 모티브다.

해발고도 1000미터, 엑상 프로방스를 보살피듯 솟은 이 산을 그는 80회 이상 그렸다.

 

 

화가 세잔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는 미라보 거리, 문화와 예술이 거리 곳곳에 숨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리의 끝에는 도시의 중심인 미라보 광장이 위치해 있다. 주변으로는 화려한 17세기, 18세기 건축물과 분수가

늘어서 있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부유한 귀족 가문들의 우아한 주거지였으며, 때로는 사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미라보 거리의 한 식당에 들어가 샐러드 하나를 시켜서 점심 겸해서 맛있게 먹었다.

 

 

 

엑상 프로방스 --> 아비뇽

 

아비뇽의 교황청, 1309년부터 1377년 동안 교황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웅장한 고딕 양식의 높이 50미터에 두께 4미터나 되는 거대한 벽으로 무장하고 있다.

중세에 한 때 가톨릭의 로마 교황이 아닌 로마가 아닌 아비뇽에서 산 적이 있다.

'교황의 바빌론 포로 시대'로 불리는 시대다(1309~1377).  당시 교황청과 프랑스 국왕 사이에는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 전 보르도의 대주교이자

프랑스인인 클레멘스 5세였다. 그는 1309년 프랑스왕의 압력에 굴하여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겼다.

이후 약 70년간 7명의 교황(모두 프랑스인)이 아비뇽에서 즉위, 아비뇽은 로마를 대신하는

가톨릭의 중심지로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향취가 높은

도시의 분위기는 700 년이 지난 지금도 아비뇽에서 그 명백을 이어가고 있다.

 

교황청 북쪽에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암벽 위에 만들어진 로셰 데 동 공원이 나온다.

론(Rhone) 강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는 '아비뇽의 다리' 즉, '셍 베네제 다리'가 보인다.

 

바우 형님과 기복 형님은 부러울 정도로 사이가 좋다. 틈만 나면 소주를 즐기는 풍류가들이시다.

여행 중에도 잠시 짬을 내어 한 잔씩 마시는 즐거움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나도 살짝

다가가서 한 잔 얻어 마시니, 기분이 한결 더 좋아진다. 두 분은 '지인달사의 풍모'를 지녔다고나 할까? 

 

생 베네제 다리(아비뇽 다리), '아비뇽의 다리에서 춤을 추자, 춤을 추자......'라는 노래로 유명하다.

다리가 완공된 12세기에는 맞은 편에 있는 필리프 왕의 탑까지 이어지는 총 900미터의 길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론 강의 거듭된 범람으로 4개의 다리 기둥과 다리를 만든, 성 베네재를 기리는  

생 니콜라 예배당만 남아 있다. 다리에 오르려면 5유로를 주어야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론 강의 평화스런 모습, 그러나 물살의 흐름이 빨라 겁이 날 정도다.

숱한 보에 물이 막혀 썩어가는 우리나라의 4대강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아비뇽의 다리에서 본 시내의 성채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중세의 성벽이 지키고 있는 고도 아비뇽, 유유히 흐르는 론 강과 어우러져

그아먈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여름에 있는 연극 축제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극장으로 변하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인구 10만의 아비뇽 시청이다. 여행 첫날 파리에서 터진, 이슬람의 테러와 관련된 검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비뇽을 관광하기 위해 차 4대를 주차해 놓았던 주차탑의 모습,

주차하기 위해 4층까지 올라가는데 차선이 좁아서 애를 먹던 곳이다.

 

아비뇽의 교외에 위치한 호텔(Novotel)까지 찾아오는 데 날이 어두워 애를 먹었다.

자유여행에서 렌트카로 이동할 경우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필수인 것 같다.

 

 

**** 5일째 (아비뇽 ---> 레 보 드 프로방스 ---> 아를 ---> 퐁 뒤 가르 ---> 아비뇽)

 

평원 가운데 하얀 석회암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산,

중세 무렵,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린 보(Baux) 가문은 남프랑스에서 최강의 세력을 과시하며

80개의 도시를 거느렸다고 한다. 그러나 14세기 말에 보 가문의 혈통이 끊기면서 차례로

프로방스 공국, 프랑스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632년 루이 13세의 재상 리슐리에가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여 페허가 되었으나 예전에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음에 틀림없다. 

 

 

 

 

 

 

 

주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밭, 그 한 가운데에 흰 바위산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4~9월에는 성채 전체가 중세 테마파크가 되어 중세의 무기를 사용한 실연, 곰과 매의 쇼 등

다양한 스펙터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물론 역사학도들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저 위의 성채까지 오르지 못하고 입구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보'라는 이름을 따서 붙인 보크사이트의 붉은 흙도 보인다.

 

고성 마을의 골목들을 들락거리면서 관찰하는 새로운 재미에 빠졌던 시간이었다.

 

 

 

레 보 드 프로방스 ---> 아를(Arles)

 

아를, 프랑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로마 유적이 많은 도시이고,

고흐가 네덜란드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와 인연이 깊은 도시다.

 

기원 1세기(75년 경)에 건설된 것, 2층으로 되어 있으나 60개의 아치를 지니고 있는

로마 시대의 투기장이다. 건설 당시에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5~6세기에는 요새로도 쓰였다.

2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가장 넓은 곳의 지름이 136미터로 프랑스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 끝으로 가서 이 쪽의 투기장 꼭대기를 찍기로 했다.

 

거의 2000년이 다 되어가는 유적이 이렇게 온존하게 보존되고 있다니

당시 로마인들의 건축 기술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마조르 교회(Eglise de Major)

 

고대 극장의 무대

 

반원형으로 된 계단식 좌석이 무대를 내려다 보고 있는 고대 극장,

현재는 몇 개의 대리석 기둥만 남아 있지만 건설 당시인 기원전 1세기에는

이 기둥 뒤로 무대의 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고 한다. 많이 파괴되기는 했으나

요즘도 콘서트나 오페라 등이 공연되어 극장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생 트로핌(Eglise St-Trophime) 교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된 이 교회는 아를에서 유일하게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투기장 등 로마 건축은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함이 인상적이지만

같은 아치를 사용한 건축이라도 이 교회의 회랑은 훨씬 섬세하다는 평을 받고 있단다.

 

중세의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들의 옷차림 또한 여간 볼거리가 아니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포즈를 취하는 여인들의 배려가 고맙다.

 

미사를 마치고 난 뒤의 생 트로핌 교회의 내부를 잠시 둘러 보았다.

 

고흐가 살면서 화폭에 담았던 라마르틴 광장에 서니, 한 예술가의 혼과 만나는 것 같다.

한참을 서서 노란 카페를 바라보다가 그곳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사진기를 들이댔다.

 

고흐의 그림 속 배경이 된 어느 카페, 문을 닫아 놓았다. 차 한 잔의 맛이 아쉬운 순간이기도 하다.

 

 

론(Rhone) 강의 흐름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강의 연안에 막아놓은 빔의 정체는?'

 

라마르틴 광장 골목, 어느 레스토랑에서 일행들과 함께 점심으로 먹었던 샐러드,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다. 그저 귀국하는 대로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먹고 싶을 뿐!

 

 

아를 ----> 퐁 뒤 가르

 

퐁 뒤 가르, 로마 시대에 만든 수도교, 님과 아비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수 백 년은 자랐을 것 같은 올리브 나무, 퐁 뒤 가르에 걸맞는 나무여서 그런지 눈에 확 들어온다.

 

2000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며 높이가 무려 48미터나 된다.

언뜻 보면 수평으로 보이지만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 맨 위층에 있는 수로로 물이 흘러들도록 해 놓았다.

현재 맨 아래층의 아치 위는 도로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이 지난 유적이지만 건축물로서의 효용가치는 지금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아닐까?

당시의 로마인들 문화 수준이 도대체 어느 정도였기에 이렇게 거대한 수도교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불가사의한 건축물 앞에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사람의 힘 또는 재래식 도구만으로 가능하게 했던 그들의 정교한 건축술이 놀랍다.

석양빛에 드러난 다리의 그림자가 오늘도 변함없이 다리의 위대함을 확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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